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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8.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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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8. 소설 '20년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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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4. 고대의 실험 썰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5. 과학은 무엇을...있을까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6. 무신론자를 위한 레퀴엠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7. 위기의 시대, 과학의 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8. 단편 소설 <30초>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9. 단편 소설 <30초>, 썰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0. 영구기관/무한동력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1. 인류의 과학...실상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2. 과학은 감동이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3. 계몽의 임무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4. '계몽의 임무' 해설편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5. 과천과학관 SF2014 전시 이야기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6. 진화에 대한 착각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27. 달 탐사는 마냥 삽질일까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28. Memento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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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모탈러티, 즉 유한성을 명확하게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다른 동물들 속 맘이 어떤지 실제로 알 길은 없고 코끼리나 개 등의 일화에서 보면 얘네들도 뭘 알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직관적인 느낌만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죽음에 대해 인식하는 걸로 따지면 얼추 맞는 이야기지 싶다. 그래서 인간의 조상이 오래전에 죽음이라는 걸 인식한 그 시점부터 지금까지, 이 죽음의 극복은 인류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숙원사업 중 하나다. 여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기 전에, 과연 죽음을 극복한다는 건 무엇인지부터 좀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겠다. 소위 '영생'이라는 것에도 종류가 있는데 이런 쪽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들조차 잘 분류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일단 영생의 높은 레벨은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영원히 죽지 않는 거다. 늙어 죽지도, 병들어 죽지도, 다쳐서 죽지도 않는다. 나를 죽일 수 있는 건 나 자신의 의지뿐이다. 머 이런 정도면 가히 신(god)급의 존재라고 할 만한데, 그리스나 로마, 인도 등의 신들은 수시로 죽고 죽이기 때문에 그보다도 상위의 존재가 돼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다만 여기서는 영생만이 주 관심사기 때문에 우주를 만들거나 태양을 멈추는 등의 창조주급 파워를 전제할 필요는 없다. 한편으로 약해 빠져서는 총에 맞거나 기차에 부딪히거나 용암에 빠졌을 때 죽지 않을 재간이 없으니, 대략 슈퍼맨과 신의 중간 어디쯤 놓여야 하리라.


허나 이렇게 진정으로 영원한 삶을 꿰차는 존재는 물리적으로는 성립이 불가능하다. 영원이라는 단어가 가진 엄청난 무게 때문에 그렇다. 이 우주조차도 영원하지 않으며, 어느 시점엔가는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 결국 열평형 상태에 놓이게 된다고 현대 우주론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걸 우주의 ‘열사망’이라고 부르는데, 원자를 포함해 모든 우주의 물질들이 꽁꽁 얼어붙어 정지하게 되고 에너지의 흐름도 모두 사라진다. 따라서 그 속에서 어떻게든 혼자 살아남아 있겠다는 건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다. 죽도록 심심한 것은 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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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망 상태의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
모든 원자의 움직임이 멈추기 때문에
어떤 빛이나 열도 발생하지 않는 완전한 암흑의 냉지옥이다.
여기에서 혼자 영원히 살고 싶은 용자라면 영생을 허락하마.
 
 
영생의 낮은 레벨은 바로 소설 <메멘토 모리>에서 다룬, 늙어 죽지 않는 상태다. 이런 영생을 사는 대표적인 존재는 <반지의 제왕> 세계에서 톨킨이 만들어낸 존재, 엘프일 거다. 사실 <메멘토 모리>의 발상도 반지의 제왕에서 시작됐다. 영화 2편 <두 개의 탑>에 등장하는 헬름스 딮 전투에는 할디르를 리더로 하는 엘프 궁사들이 수세에 몰린 인간들을 도와주기 위해 짜잔 하고 나타난다. (책에는 이런 이야기 없음) 그 결과 많은 엘프들이 죽고 할디르 본인조차 그만 생명을 잃고 만다. 그 장면을 보면서 궁금해졌다. 가만히 있으면 영원히 사는데 저렇게 위험천만한 전투에 참여해서 죽는 건 너무 아까운 거 아닐까? 아마도 우원이 고귀한 엘프가 아니라 유혹에 흔들리는 보로미르같이 그냥 인간이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실제 보통 사람들이 이런 부류의 영생을 얻는다면 절대로 저렇듯 용기 있게 나설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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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이시다.

가만있으면 영생하는데 인간 따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초 대인배.

 

그럼 어떻게 될까. 용기 있게 나서기는커녕 혹시라도 죽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매 순간을 조금도 죽을 가능성이 없는 상태로 살기 위해 병적으로 집착하게 되지 않을까. 간혹 예외는 있겠지만, 인간의 정신세계라는 게 결국 그런 정도 수준 아니겠느냐는 거다. 이렇게 되면 이제 소설의 뒷부분에 쓴 것처럼, 영생을 얻었음에도 오히려 매 순간 죽음을 두려워하며 죽음의 위험에 대한 경계와 저항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되는 열라 모순된 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렇듯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죄로 인류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고, 결국 문명도 사회 시스템도 붕괴되고 나중엔 매드맥스/북두신권 같은 세상이 되어 서로 싸우고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 설마 그렇게 어리석을까 싶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거 보면 머.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부류의 영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있다. 지금은 없어진 듯하지만 10년 전쯤 이쪽 관련된 연구를 하는 프로와 아마추어 학자들이 모여 있는 웹 사이트를 한동안 열심히 들여다보던 적이 있었다. 일단 그들은 죽음을 순리가 아닌 일종의 질병으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치료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그 말도 완전히 틀린 건 아닌 것이, 사람이 늙어 죽는다는 건 신체가 노화로 인해 손상되어 사망에 이르는 거다. 누구나 보아온 너무 익숙한 현상이라 그저 당연하게 여기지만, 결국 정상적이었던 장기들이 망가지고 그 합병증 등으로 사망하게 되기 때문에 질병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예 황당한 생각만은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 중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아마 미국의 발명가이자 컴퓨터학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일 거다. 우원은 이 사람의 이름을 옛날 음악 하던 시절에 커즈와일이라는 이름의 신시사이저 키보드를 통해 처음 접했는데, 상당히 혁명적인 악기로 각광을 받기도 했었다. 암튼 이 똑똑한 양반은 어느 시점부터 늙어 죽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고 하고, 이를 위해 하루에 비타민 보충제 150알(250알에서 줄임), 알칼리수 10잔, 녹차 10잔을 마신다. 그리고 향후 나노머신으로 하여금 몸속을 돌아다니며 고장 난 세포와 장기를 수리하게 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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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모습을 보면 그의 이런 노력은 그닥 성공적인 것 같지 않다.
1948년생으로 올해 66세.

 


이보다 좀 더 급진적인 그룹은 타고난 육체를 영원히 이어나가는 것에는 유전자적 레벨에서의 한계가 있을 가능성이 크니 몸을 기계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마치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기계 인간과 비슷한 셈이다. 문제는 팔다리나 다른 장기는 어떻게든 만들어 사용한다 쳐도, 정신–혹은 자아- 어떻게 기계로 이식할 것이냐는 점이다. 이전 <나는 대체 뭐냐> 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머릿속의 정보를 디지털로 바꿔서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것은 내 카피 본을 따로 만드는 것일 뿐 해결책이 아니다. 이때는 기계 몸을 갖고 사는 것은 그 카피 본이지 여기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에 대해 일부 연구가들은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을 내는데, 그중에는 뇌 속의 뉴런을 조금씩만 기계로 교체해 가면서 정체성을 유지하자는 방법도 있다. 사실 논리적으로는 꽤 그럴싸하다.


물론 이런 식으로도 정말로 영원히 사는 건 불가능하다. 맨 처음 이야기한 대로 우주 자체가 영원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기계 몸이든 컴퓨터 속이든 역시 사고라던가 문제가 생겨서 어처구니없이 죽게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 설사 동박삭처럼 3천 갑자–18만 년–를 살아도 그건 영생이 아니고 죽음을 극복한 것도 아니다. 제아무리 긴 세월이라도 일단 지나간 시간은 작은 한 점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죽을 때가 오면 100년도 못 살고 가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속절없이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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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삭 추정도.
출처: 이말년 서유기(강추)


이렇게 보면 영생이라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어불성설이며 달성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아의 영속성과 관련해서 우리가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죽음 쪽이다. 만약 죽음 뒤에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 세계는 적어도 우리가 아는 물리적 우주의 법칙에 지배받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 종교들에서 말하는 지복의 천국이나 영원한 고문의 지옥이 있을성싶진 않지만, 여하튼 뭔가 존재한다면 앞에서 영생의 걸림돌로 제기된 열사망이라든가 육체적 한계 등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일단 죽어봐야 안다는 가장 큰 장벽이 도사리고 있다. 애초에 영원히 사는 게 목적이었는데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죽음이 본질적으로 우리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어느 지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블랙코미디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룻거 하우어가 열연한 레플리컨트(복제인간) 로이 배티는 단 4년으로 정해진 삶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지구에 잠입한다. 살아남기 위해 끈질기게 싸우던 로이는 막판에 그를 쫓던 릭(해리슨 포드)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빌딩에서 손을 놓치고 떨어지는 릭을 붙잡아 살려낸다. 이어 '이제 죽을 시간이다'라며 빗속에서 눈을 감는 그의 얼굴에는 허무 속에서도 평온함이 감돈다. 

 

 

나는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못할 것들을 봤다. 오리온의 근처에서 불타는 전함들. 
탠하우저 게이트 가까이의 어둠 속에서 빛나던 C-광선.

그 모든 순간들은 시간 속에서 잊혀지고 말겠지. 마치 빗속의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다.

 


물론 4년이라는 생은 이렇듯 인지력과 감정을 가진 인간에게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어차피 머잖아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처지도 실은 로이와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로이는 아마 그런 통찰과 측은지심에서 릭을 구해줬을 것이다. 이제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까지 다른 생명을 살상할 이유를 찾지 못한 거다. 허나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는 인류에게 '계속되는 생'은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마지막 유혹으로 언제까지나 되돌아올 거다. 마틴 스콜세지의 명작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예수가 받는 유혹도 눈앞에 닥친 신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인간의 소소한 생을 선택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죽음의 무게는 그토록 무겁다. 하지만 끝없이 죽음을 피하려고만 드는 자는 결국 실패할뿐더러, 삶의 진정한 가치도 이해할 수 없다. 로이가 죽음을 받아들이며 지은 마지막 미소의 의미도 느낄 수 없다. 대신 우리는, 윤동주가 읊었듯이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수 있다. 영원을 바라보면서도 유한한 자로서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거다.


칼 세이건의 말과 삶에서 드러나듯, 그것은 과학이 제시하는 최선의 삶의 태도다.

 




 


<공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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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이언티피쿠스가 책으로 나왔다는 말씀 아직 못드렸죠열흘쯤 전에 이렇게 나왔구요보다시피 아주 예쁩니다내부에 사진과 일러스트도 많고, 읽기 좋은 책이랍니다. 11일 현재 알라딘 과학 분야 12위를 기록 중이에요.

 

그래서 출간기념으로 알라딘과 함께 북 콘서트 '과학으로 사람되자'를 개최한답니다


12 19일 금요일 저녁 8, 당연히 벙커 1입니다. 


많이들 오셔서 기기묘묘한 과학 썰과 함께 해 주시라는.

 

책도 팔고 싸인 머 그런 거는 덤저희 벙커를 위해 커피 한 잔씩 드셔 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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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로코롬





딴지마켓에서 책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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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
트위터: @patoworld


편집: 나타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