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K리S 추천9 비추천-1

2014. 12. 22. 월요일

K리S











 

지난 번에 썼던 '외국인을 만나면'이라는 글에 이어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뤄보기로 했다. 통계를 꼼꼼히 분석한 다음에 근로자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어슬렁거리고 한국어나 영어를 하는 네팔사람과 친해지고 인터뷰까지 했다. 이 글은 두 달이나 걸렸다. 결과는 졸라 길다. 따라서 5분 안에 요점만 읽으려면 바로 4번으로 시작해도 좋다. 물론 관심이 있다면 다 읽어보라. 두 달이나 걸렸으니까...




2928786.jpg



1. 이민 노동자들을 미워해야 하나? 사랑해야 하나?

 

‘외국인 노동자는 꼭 필요한가?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왔기에 노동자들은 당연히 좋겠지. 하지만 그들을 수용하는 대한민국은? 인간성과 연민을 보여주려고 수용하는 것인가? 한국인도 살기 힘든데 연민은 무슨 연민? 이민자들은 사방에서 한국으로 쏟아지기 때문에 한국인을 위한 일자리도 감소되고 국가 재정부담도 무거워진다. 설상가상으로 그들 때문에 범죄율도 높아진다.’라는 생각을 하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은 한국사람도 살기 힘든데 굳이 왜 이민자까지 수용해야 하는지의 여부를 의문하며 이민자에 대한 원한까지 품게 된다.


어떤 사람은 원한을 이겨내고 이민자들의 고난에 공감하지만 ‘이민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야 하는데 그들 때문에 한국인들이 살기 힘들어지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으로 마음 불편해 한다.


한편으로는 이해관계가 뻔한 사업가들이나 그들을 후원하는 공무원들과 정치가들이 화목한 다문화주의 시대를 찬양하고 있다. 경제 성장을 위한 다문화주의 말이다.


또는 이민자들에 대한 연민을 안 느끼면 인간도 아니라면서 세계에 모든 영세민들을 받아들이자고 하는 설교자들도 있다.


요컨대 이민 노동자에 대한 시점들은 다양하며 예민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이주 노동자들을 미워해야 하나? 사랑해야 하나?


답은: 이해해야 한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현실을 마주했다면 같은 결정을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네팔에서 태어났다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들에 대한 미움이나 사랑을 느끼기 전에 노동이주라는 사회적인 현상을 상식적으로 이해해야 된다. 이민자들이 누구인지, 왜 왔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봐야 되고 한국인한테 그들의 이주로 인해 생겨난 문제들까지 냉정하게 분석해야 된다. 노동이주를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조금 더 이성적으로 파악한다면 노동자들에 대한 편견이 서서히 사라질 수도 있고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더 건설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말고...




2. 통계부터 살펴보자

 

알고 있는 현실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다르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으면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현실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아예 배제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납득하기 어렵다고 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한 흔히 알고 있는 편견에서 벗어나기가 힘들 것이다.


현실에 가까워지려면 통계부터 분석해야 된다. 통계를 살펴보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숫자가 알려주는 사실을 한번 비교해보자. 질문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질문에 대해서 먼저 어떻게 알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그 다음으로 숫자를 확인 해보라.1




001.png 

[1] 이용한 통계들은 거의 최근에 통계청에서 발표된 ‘2014 외국인고용조사 결과에서 나왔다

(링크 - 통계청)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은 몇 명이나 있나? 다들 어디에서 왔을까?


지금 한국에서 외국인 인구가 167만 명이지만 관광객이나 3개월 정도 머무른 외국인들을 빼놓으면 장기적으로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129만 명이며 한국 총인구에 비하면 2.5%밖에 안 된다.


국적은 다양하다. 54%로 대다수의 외국인들은 중국인과 (12%) 소위 조선족이라는 한국계중국인이다 (42%). 그 다음으로는 비율 순으로 따지면 베트남 9%, 북미 6.7%, 필리핀 3.2%, 우즈베키스탄 2.9%, 인도네시아 2.8%, 유럽 2.2%, 태국 2%, 일본 1.8%, 몽골 1.3%, 나머지 대부분은 스리랑카나, 캄보디아, 네팔과 같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들이다. 아프리카사람들은 0.1%도 안 된다. 정리하자면 한국에서 장기적으로 사는 외국인들 중에 90%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다.



무슨 목적으로 한국에 왔나? 공부? 결혼? 노동? 어떤 비율로?

 

장기적으로 한국에 사는 15세 이상 된 외국인 125만 명 중에 89만 6천 명 즉 71%가 경제활동을 하러 온 것이다. 공부를 하러 온 유학생은 6.4%밖에 안 됐고 결혼을 목적으로 온 이민자들은 10.3%에 달하지만 그 중에 절반 정도가 경제활동을 한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일을 하러 온 것이다.


무슨 일을 하러 왔을까? 일단 알아야 될 것은 일을 하러 온 사람들의 실업률이 무려 4.9%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실업률은 3%를 조금 넘는다. 실업률까지 고려하면 한국에서 실제적으로 일을 하는 외국인들은 85만2천 명이 된다.


산업별로 따져보면 제조업 49%, 도소매나 숙박-음식점업 18%,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 16%, 건설업10%, 농림어업4.6% 순으로 나온다. 직업별로 분석하면 기능원-기계조작이나 조립종사자 42%, 단순노무 종사자29%, 서비스-판매 종사자11.7%, 관리자-전문가 11.4%로 나온다. 이 많은 숫자들을 쉽게 요약하자면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외국인들 중에 80%이상이 노동자다.


물론 통계를 안 봐도 한국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젠 증거가 있는 사실이 됐다 :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 대부분은 노동하는 아시아사람들이다.



이민 노동자의 근무 조건은 어떻게 되나? 얼마나 일을 하나? 얼마나 버나?

 

먼저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90%의 외국 노동자들이 일 주일에 40시간이상 일을 한다. 그 중에 60시간 이상 노동 하는 비율은 무려 30%가 넘는다. 다시 말해서 토요일까지 출근을 한다고 치면 하루에 10시간 넘게 일을 하는 외국인들의 비율이 30%에 달한다. 물론 한국사람들도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도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 할 수도 있겠다. 2013년 OECD 통계에 의하면 한국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43.8 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나왔으며 다른 나라에 비하면 (네덜란드 30, 독일 35, 프랑스 37) 한국사람들은 일을 많이 한다.2 그러나 한국에 있는 외국 노동자의 평균 시간을 얼핏 계산해보면 50시간을 넘는다. 즉, 부지런한 한국사람들보다 이민 노동자가 더 부지런하다.


임금의 수준을 살펴보면 65%의 외국인들이 2백만 원도 못 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백 만원도 못 버는 비정규직 한국 노동자도 많겠지만 외국인보다는 비율이 훨씬 낮겠다. 고용노동부에 의하면 2014년 근로자의 월평균임금은 3백만 원을 넘는다.3 물론 평균이기 때문에 그보다 엄청 버는 사람들도 있고 최저임금밖에 못 버는 근로자도 많겠지만 근로자평균임금은 한국의 중산층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민 노동자들은 평균임금과는 거리가 멀다.


요약하자면 이민 노동자들은 보통 한국사람보다 일은 더 많이 하는 데 반해 돈은 덜 받는 것이다. 부지런한 저임금 노동자들이며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와 비교될 수 있다.


[2] http://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AVE_HRS

[3] http://laborstat.molab.go.kr/  





Untitled-1.jpg


범죄율에는 외국인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나?4

 

지금까지 통계를 통해서 알아본 사실들은 통설의 수준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보통 3D업종의 저임금 아시아 노동자들이다. 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통계를 보면 증거가 있는 사실이 된다. 이젠 예상 밖의 이야기를 해보자. 이민 노동자들이 잠재적 범죄자들이라는 통념을 깨뜨려보자.


뉴스나,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한국 대중매체를 보면 이민노동자들의 범죄성이 지나치게 부각된다. 대중매체로 인해 이민노동자들이 한국의 범죄율 상승에 큰 영향을 준다는 선입관이 생기고 이 때문에 이민노동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심도 병행해서 나타난다. 그러나 통계를 조금만 살펴보면 편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사람들의 범죄율은 이민자들의 범죄율보다 훨씬 높다. 2013년에 15세 이상 외국인 인구가 125만6천명이었으며 외국인의 범죄사건은 2만5천 건에 달했다. 만 명당 190 사건인 셈이다. 한국사람들은 15세 이상의 인구가 4천320만 명 정도였고 학생 범죄를 빼놓으면180 만 범죄 사건이 일어났다. 만 명당 416사건으로 외국인보다 2배가 넘는다. 내 요점은 한국인의 범죄성을 부각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내가 아는 바로는 한국만큼이나 안전한 나라는 없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국에 있는 외국인 범죄성에 대해서 과대평가할게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4] 2013 경찰 범죄 통계 (링크),

     2012 출입국 외국인정책 통계연보 (링크




3. 네팔 노동자를 만나보자

 

통계는 객관적인 자료라 좋지만 따분한 숫자의 나열은 눈에 잘 안 띄고 지루하기도 하다. 그럼 이제는 냉정한 숫자를 외국인 노동자들의 개인적인 사연으로 보완해보자. 객관적인 영역을 떠나 주관적으로 들어가보자고.

 

전라남도 광주에서 일하고 있는 네팔사람 세 명의 주관적 견해. 통계를 사례로 입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 이민 노동자라는 사실을 떠나 잠깐이라도 인간으로서 정서와 자신만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개인을 만나보자.



부지런한 마답

 

26년 전, 파르바트라는 네팔 산골에서 농부 출신인 부모님 사이에서 마답이 태어났다. 유아 시절에는 평온하게 살았지만 8살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부터 고생의 시작이었다. 제일 큰 문제는 새 어머니와의 갈등이었다. 마답은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새 어머니는 마답을 밭에서 일을 부리려고 했다. 어린 마답은 밭일을 하면서 새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학으로라도 공부하려고 노력했다. 18살이 된 마답은 새 어머니와 이복형제들과의 갈등에 지쳐 관계를 끊고 독립하기 위해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로 향했다.

 


002.jpg


 


카트만두에서 건설업 막노동을 하면서 하루에 5천원 정도를 벌었다. 살기가 쉽진 않았지만 독립했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막노동을 하면서 고등학교시험도 준비하고 학원에서 한국어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관광산업으로 일자리를 옮겨 산에서 짐꾼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렇게 노동을 하면서 2011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취학률이 고작 65 %밖에 안 되는 네팔에서 농부 출신으로서 독립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짐꾼에서 관광가이드로 승진했다. 네팔 산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을 가이드 하면서 하루에 2만5천원까지 벌 수 있었다. 막노동을 할 때보다 5배나 벌 수 있었다는 것은 다 공부에 대한 끈기덕분이었다. 그러나 관광 가이드는 1년 중 3개월의 성수기 때만 일을 할 수 있었다. 남은 시간에는 한국으로 이민오기 위해 시험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5 2013년에 드디어 E9 (비전문취업) 비자를 받고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떠났다.


003.jpg



[5]EPS : Employment Permit System (https://www.eps.go.kr/ph/index.html)


2013년 10월 삼성 에어컨 파이프를 납품하는 하청업체에서 비숙련 노동자로 일을 시작했다. 여름에는 일주일에 60-70시간 일을 하지만 보통 때는 40 시간 근무한다.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 일하고 한 달에 백 만원 정도를 번다. 네팔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는 것보다 아주 큰 돈은 아니지만 훨씬 안정적이다. 비수기나 성수기나 상관 없이 한 달에 최소한 백 만원을 벌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숙사에서 자고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소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한 달에 70만 원정도를 모으게 된다.


마답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안정과 자기개발이다. 매일 공장에서 8시간 동안 힘들고 따분한 일을 해야 하지만 남은 시간은 알차게 보내려고 애를 쓴다. 매일 새벽 4시45분에 일어나 체조를 한 다음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아니면 기타를 만지기도 한다. 퇴근 이후의 여가 시간에는 네팔 대학교 입학 시험을 준비하고 한국어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컴퓨터로 한글 타이핑 연습까지 한다. 마답은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아야 뿌듯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됐냐고 물어봤더니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다음에 새 어머니의 학대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한테 의존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으려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슴에 깊숙이 새겼다.


마답은 돈도 모으고 자기개발도 계속 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인터뷰할 때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인터뷰 도중 다친 엄지손가락을 봤지만 산재와 관련된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물어볼 때에 비로소 불만에 대해서 이야기해줬다. 그러나 산재보다는 한국 동료들의 태도에 대해서 씁쓸해했다. 마답은 부지런히 일하지만 같이 일하는 한국사람들한테 자주 막말을 듣는 것은 유일한 불만인 셈이다.


004.jpg


마지막으로 한국사람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외국인노동자들을 무조건 무시하지 않도록 노력해보세요. 우리의 나라, 사회, 문화, 가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외로워요. 그런데도 열심히 일합니다. 우리를 기계처럼 대하는 것보다 이해해주시고 본받을 만한 동료가 돼주시면 더욱더 열심히 할 수 있겠습니다."라고 부지런한 마답이 대답했다.





행복한 뎁

 

뎁은 1990년에 네팔의 수도권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인이었고 어머니는 아이 셋을 키우는 주부였다. 형편도 안 좋은 데다가 부모님은 매일 싸웠다. 집에서는 여동생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참다못한 뎁은 어릴 때부터 집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수도인 카트만두로 가서 일도 하고 고등학교도 다니면서 독립적으로 살기 시작했다. 졸업 후 대학교를 가기보다 학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며 봉사활동 하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자원봉사단체를 통해서 네팔에 오는 한국사람들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뎁은 네팔 시골에서 아이들에게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온 한국사람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납득이 됐나?


19살이 되던 해, 뎁은 군대에 갔다. 의무적으로 간 것은 아니었고 돈도 조금 벌면서 나라를 위해서 뭔가를 하고 싶었던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1년 동안 군생활을 하면서 육체적으로도 힘들었고 돈도 너무 조금 나왔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했을 때 배웠던 한국어를 활용해 한국으로 이민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2010년 7월에 E9비자가 나온 뎁은 전라도 정읍시 노동단지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스프레이로 자동차 부품을 색칠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하루 종일 유독물질을 흡입하는 것보다 차라리 육체노동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육체노동을 할 수 있는 다른 부서로 옮기고 열심히 일하면서 한국어도 잘 한 덕분에 빨리 조장으로 승진됐다. 그런데 기업의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2교대근무 제도로 바뀌었다. 격주로 일하며 잦은 야근에, 건강에 안 좋은 메타놀을 다뤄야 해서 댑은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민 노동자들은 자신이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라 상사의 허락을 받아야 나갈 수 있다. 이민 노동자들은 직장을 옮기려면 어느 정도로 한국말을 잘해야 되고 잔머리도 쓸 줄 알아야 된다. 뎁은 공부를 하러 광주에 가야 된다고 핑계를 대고 다른 일을 하러 장성으로 갔다.


그러나 장성에서 시작한 새로운 일은 위험한 기계를 다루어야 했고 그 기계로 손가락을 잃은 베트남 친구를 보면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돼 도망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같은 회사의 아예 다른 공장으로 옮겼다. 광주 평동에서 삼성 냉장고와 에어컨의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주 쉬운 일이었지만 백만 원도 못 벌었기 때문에 금방 좀이 쑤셨다. 그러나 이번엔 상사가 허락을 하지 않았다. 뎁은 마하트마 간디와 못지않게 소극적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보기 답답할 정도로 일을 느... ...리게 한 덕분에 해고를 당하고 말았다. 전략 성공.


2012년, 마침내 네팔친구의 주선으로 평동에 있는 판넬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월 170만원을 벌면서 할 수 있는 정도의 노동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만족 중이다. 평일은 8시부터 18시까지, 토요일은 12시까지 일을 한다. 육체적으로 힘든 편이지만 위험한 일은 아니다.


005.jpg


뎁은 동네에서 인기가 많다. 잘 생겼고 키도 182센티에 네팔사람치고 아주 큰 편이다. 근사한 체격에다가 잘 웃어주고 성격도 밝고 사교성이 넘친다. 저녁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 월곡시장을 돌아다니다가 모르는 사람들한테 막 인사하고 말을 걸곤 한다. 네팔사람도, 다른 외국인, 이웃 삼촌들, 동네 구멍가게의 한국 사장들까지, 뎁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006.jpg


뎁은 한국에서 행복하다. 그러나 그 행복은 저절로 생기진 않았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2년 동안 네 번이나 직장을 옮겼다. 불만이 생기면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행동으로 대응한다. 대신에 불만이 없으면 육체노동도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일을 한다. 한국에 와서 행복이 생겼다기 보다는 한국에 와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말이 맞다. 노동은 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와 사회에 대한 관심도 많고 가을마다 재즈 페스티벌에서 봉사활동까지 한다. 계속 한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아쉽게도 몇 개월 후면 더 이상 연장할 수 없이 비자가 아예 끝난다. 정착을 성공했는데 마음대로 비자를 연장할 수 없다는 점은 아마 뎁의 유일한 불만이겠다.


007.jpg





의젓한 수딥

 

수딥은 1987년 네팔 동쪽에 다마크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중산층 가족으로서 집안 형편은 나쁘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버지는 고등학교 수학 교사였기 때문에 집에서는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덕분에 수딥은 순조롭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도 남쪽 케랄라의 대학교에서 3년 동안 과학을 공부했다. 그런 다음 네팔로 돌아와서 대학교 과정을 마무리 하려던 때에 네팔에서는 왕권을 타도하려는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파업도 많았고 아주 혼란스러운 과도기였기 때문에 대학교를 제대로 못 다니게 됐다. 그 와중에 형편이 비교적 좋은 아버지는 수딥을 호주로 보내주었다.


21살이 된 수딥은 호주 브리즈번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대학교를 다니다가 한국 여자에게 반해버린 것이다. 부모님은 한국여자가 힌두교도가 아니기 때문에 빨리 헤어지라고 했으나 이미 사랑에 빠진 수딥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호주에서 결혼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부모님은 수딥과 화해하고 네팔에서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부부는 네팔에서 당분간 살게 됐다.


008.jpg


6개월 동안 네팔에서 살다가 임신한 아내는 한국으로 귀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수딥의 고향에서는 시설이 낙후된 데다 정전도 자주 생겼고 돈도 벌기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김치가 없었다. 낭만적인 수딥은 김치를 사려고 12시간 넘게 차를 타고 카트만두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그 둘은 참다못해 결국 한국으로 왔다.


2011년 수딥과 아내는 전라남도 광주에 정착했다. 수딥은 영어를 잘 했지만 한국어를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당분간은 무직이었다. 3개월 동안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네팔에서의 지위와 받았던 교육은 한국에서 쓸모가 없었다. 인도와 호주에서 유학을 했지만 한국에서는 막노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수딥은 자존심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서 세탁기 부품을 조립을 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2백만 원까지 벌 수 있었지만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근무해야 됐다. 그러나 제일 큰 불만은 근무조건이 아니라 한국 동료들의 대우였다. 한국어를 잘 못 했지만 욕은 빨리 배우게 되었다. 끔찍한 근무 분위기 때문에 조립을 그만두고 같은 공장에서 용접반으로 옮겼다. 그때부터 한국에서의 인생이 많이 좋아졌다.


009.jpg


용접반의 직속 상사는 부하직원에 신경을 쓰는 스타일이었다. 외국 노동자의 사연을 잘 이해해주고 기계가 아닌 사람답게 대우해주는 상사였다. 상사가 수딥을 특별히 챙겨주고 1년 동안 한국어도 가르쳐주었다. 경영진한테 소개까지 해준 덕분에 수딥은 영업부로 승진했다. 맡은 일이 생각보다 쉽진 않지만 자신의 진가 그대로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주 만족스럽다고 한다.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과 제일 큰 차이는 출근 시간도 아니고 월급도 아니라 근무 분위기와 존중이다.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인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수딥씨’라고 불린다.


직장에서는 존중을 받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불만을 갖지 않도록 애를 쓴다. 일하면서 좀 힘든 시간을 겪게 되면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한테 기운을 얻는다. 그러나 지금 새로운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바로 수딥이 공장에서 겪었던 막말들을 놀이터에서 아들이 겪고 있다는 것. "같은 인간끼리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수딥이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010.jpg





4.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먼저 통계를 통해서 한국에 있는 외국인에 대한 사실을 여러 가지 알게 됐다. 대부분은 저임금을 받는 아시아 노동자이며 고달픈 일을 한다. 그리고 편견과 달리 범죄율은 비교적으로 낮다.


그 다음으로는 인터뷰를 통해서 통계가 보여줄 수 없는 개인적인 사연을 살펴봤다. 광주에 사는 네팔 노동자 세 명을 만나서 그들이 왜 한국에 이민 왔는지 또 어떻게 한국에서 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해봤다.


이제는 객관적인 숫자나 주관적인 사연을 넘어 내 허술한 상식을 동원해서 노동이주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내 글에 대한 반론이 생긴다면 지금부터 시작일 것 같다.



1) 외국인 노동자들, 달갑지 않은 손님인가?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일을 열심히 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한국 경제에 부담을 주는 게 아니라 생산적인 요소다. 이민 노동자들의 임금이 백 만원이라면 고용주들의 이윤까지 고려해서 그들의 월간 생산력은 백만 원이 넘는다. 마답도, 뎁도, 수딥도, 각자 자신만의 수준으로 한국 총생산과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노동이주를 통해서 특정 공업의 구인난을 해결하고 한국 사회의 고령화도 완화할 수 있다.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이 한국사람들의 밥그릇을 뺏어먹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버리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란 이미지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손님이라는 이미지보다는 머슴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2) 이민 노동자 VS 한국 노동자?

 

이민 노동자들이 아무리 한국 경제에 기여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고 특정 계층에 해로울 수도 있다. 제일 큰 부작용은 노동이주가 한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이다. 한국의 비정규직이나 비숙련 노동자들은 낮은 조건을 마다하지 않고 ‘네네’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이민 노동자들과 경쟁하게 된다. 이러한 불리한 근무조건에서 한국 노동자들은 공장의 노동착취에 대해 반대하기도 힘들어지고 근무조건에 대한 요구도 낮출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숙련된 노동자라면 몰라도 비숙련 노동자는 쉽게 이민노동자로 교체될 수 있기 때문에 낮은 조건을 감수하지 않으면 해고를 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부작용은 아주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들이 이민 노동자의 탓이라고 하는 것은 큰 착각일지도 모른다.


노동하러 한국에 온 것이 아무리 자신의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살기는 쉽지 않다. 더 나아가 자유로운 선택이라기 보다는 압도적인 사회적 구조 조건에 의해 선택된 것이다. 이민 노동자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도전할 곳이나 희망이 없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자기 생활 수준을 올려 희망을 추구하는 현대판 모험가들이다. 죄도 아니고 비난할 바도 아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라도 선진국이 다 된 대한민국은 주변 나라에서 살기 힘든 사람들한테는 동경의 대상이 됐다. 노동이주는 ‘코리안 드림’을 부추기는 경제 발전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멕시코사람들은 미국으로 가고 동유럽사람들은 서유럽으로 가고 싶어한다. 노동이주는 나라간 경제적 차이의 불가피한 결과이며 발전의 논리적인 귀결이다. 경제 발전과 노동이주는 동전의 양면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이주를 막기 위한 제일 좋은 방법은 경제발전의 후퇴겠다.


이민 노동자도 그렇고 한국 비정규직도 그렇고, 다들 똑같은 하위권 노동자이며 저임금으로 열심히 노동함으로써 한국 경제성장에 기여하지만 그 성장의 참 맛을 보지는 못한다. 비유적으로 하위권 노동자들은 다 같이 파이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쓰지만 막상 파이를 나눌 때는 하는 일에 비해서 아주 작은 조각을 받는 것이다. 이민 노동자든 한국 비정규직이든 서로한테 적대심을 갖기보다 근무조건 개선을 위해 다같이 싸우는 것이 효율적이겠다. 투쟁은 약자끼리 하는 게 아니라 약자들이 모여서 강자에게 하는 것이다.


476745_386492_25.jpg



3) 강자는 누구인가?

 

사업가? 이민 노동자들보다 그들을 고용해주는 사업가들은 분명히 강하다. 사업가들은 저임금으로 이민자들을 고용함으로써 인건비를 최소화하고 이윤은 최대화할 수 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사업가들한테 득이 된다. 그러나 여기도 따져야 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양심도 없이 이민자를 부려먹는 사업가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중소기업의 사업가들은 자금적 권력도 경영적 여유도 별로 없는 경제 구성요소에 불과하다. 어떤 때는 이민자들을 고용하는 것이 사업의 생존사항이 될 수도 있다.


대기업과 묶인 하청업체를 예로 들어보자. 대기업은 단가와 같은 계약조건들을 거의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중소기업인 하청업체는 대기업의 지배적인 시장 구조 때문에 순종할 수 밖에 없다. 순종하지 않으면 대기업들이 하청업체를 바꾸거나 납품을 수입할 거라는 협박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외국 노동자를 고용하게 되면 자유로운 경영 결정인가? 무분별하게 사업가들을 비난하기 전에 주체적으로 시장을 만드는 대기업과 시장에 끌려 다니는 중소기업을 구별해야 된다.


한국의 강자는 대기업들이다. 대기업들이 경제를 지배하는 만큼 자기들한테 유리한 시장과 구조를 만드는 재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하위권 노동자들의 불이익을 감안하지 않고 경제 성장의 성과를 독식할 수 있다. 노동착취는 경제 성장에 기여하면서 강자의 부를 축적하게 해준다. 나는 대기업 개혁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건드릴 자격이 없다. 그런 주제를 다루기에는 지식도 한국어 수준도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외국 노동자들 때문에 한국 노동자들의 근무조건이 열악해진 것이 아니고 경제 구조를 만드는 대기업과 같은 강자 때문에 모든 노동자들의 근무조건이 열악해진 것이다.


그리고 강자에 대해서 라면 대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도 있다.


정부의 태도는 모순에 빠졌다. 진심이든 가식이든 정부는 경제성장이 국민들을 더 행복하게 한다고 단언한다. 경제성장이라는 명목 하에 노동기준법을 낮추고 파업의 불법화, 비정규직의 확대, 친(대)기업 반노의 자세를 취한다.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이 행복해지기는커녕 살기가 힘들어지고 미래에 불안해지기만 한다. 정부의 모순은 경제성장을 위해서 노동착취를 더 쉽게 하게 해주는 데에 있다. 즉 국민들을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살기 더 힘들게 한다는 모순.


이민 노동자에 대한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만큼 정부는 이민 노동자들을 환영할 것이다. 이민 노동자들은 고용 시장을 조정할 수 있는 변수가 된다. 필요하면 부르고 잉여가 되면 내보낸다. 정부는 이민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조건은 상관없이 문제가 생기면 기업의 편을 들 것이다. 법은 기업편이다. 이민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한국 사람조차 그런 법을 지키게 하는 것이 어려운데 서툰 한국어에 법이나 제도를 아예 모르는 외국인한테는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놀랍게도 현정부는 외국 노동자들을 후원하지 않으면서도 다문화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되나?


다문화 정책은 한국 남자와 결혼한 외국 여자에 한정돼있다. 외국에서 오는 여자들을 조금 더 쉽게 한국 사회에 동화할 수 있게끔 다문화 센터도 만들고 한국어 수업도 무료로 제공하는 형식적인 혜택을 베푼다. 현정부가 세운 다문화 정책은 결혼 이민자들이 좋은 아내와 순종적인 며느리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이게 다문화 정책인가? 그냥 문화적 동화 정책이다. 이민 노동자들을 제대로 후원하지 않은 한 다문화 정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보편적인 정책을 세워야 다문화 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뭣보다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리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살기 힘든 한국 노동자들한테 어떻게 흔쾌히 이민 노동자들을 수용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정부가 밀고 있는 비정규직화나 고용 시장 유연화의 정책들은 이민 노동자들에 대한 적대심으로 귀결된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반감은 고용 불안정과 연결돼 있다. 따라서 진정한 다문화 정책은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모든 노동자들의 근무조건을 보편적으로 개선하고 사람을 위한 경제 정책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146_L_1209341908.jpg





맺음말

 

정리해보자면 노동이주 자체를 문제로 삼는 것은 착각이다. 이민 노동자들은 한국 비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약자들이다. 대기업의 지배가 압도적인 경제 구조 아래에서 생계를 꾸리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사람들이다. 이민 노동자들과 한국 노동자들끼리 경쟁하는 것은 약자끼리 싸우는 것과 다름없다. 경제 구조, 즉 전쟁터를 조성하는 대기업과 정부가 약자끼리의 싸움에서 어부지리로 이득을 보는 것이다. 약자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대신에 강자의 역할을 따지고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 훨씬 적절하겠다. 물론 쉽지 않다. 외국인 노동자들한테 욕을 하는 것보다 말이다.


다 썼다. 오버했나? 주제에서 너무 벗어났나?


에이... 모르겠다. 처음에는 노동이주라는 현상을 조금 더 잘 이해하게 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팔수록 복잡해진 바람에 그렇게 돼버렸다. 그러나 단언컨대 경제 구조를 조금이라도 파악하지 않은 한 노동이주와 같은 사회적 현상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현상을 꼭 이해해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끝.



prejudice.jpg




K리S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