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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9. 금요일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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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경기도 고양 금정굴 학살 사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법정 소송 승리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6.25 당시 태극단 등 우익 단체들과 고양 경찰서는 좌익이라면 어린 아이들까지 끌고 가서 죄다 학살해 버리는 전쟁 범죄를 저질렀고, 그 참담한 현장이 90년대 중반에서야 공개됐지만, 우익 단체는 지금도 그것이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하며 추모 사업을 방해하고, 그 유족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여 왔던 것이다.


“어리다고 빨갱이가 아니란 법은 없었다.” (내가 우연히 마주쳤던 ‘태극단’ 노인의 말) 


유족들의 대표는 친척의 도움으로 장독대에 숨어 우익의 죽창을 면했던 소년을 남편으로 맞이한, 피해자의 며느리들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끔찍했던 역사적 비극과 상처를 다음 세대로 넘기지 말고 우리 대에서 끝내자는 심정으로

20년 동안 죽기살기로 매달렸습니다."


'우리 대에서 끝내자...' 나는 이 말의 또 다른 표현을 영화 <국제시장>에서 봤다. 이 영화에서 흥남부두에서 탈출해서 생판 타향 남한 부산의 말투를 혀에 익히고 독일과 베트남에서 죽을 고생을 했던 한 한국인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 세대가 이런 일을 겪은 거 보다 우리가 겪은 게 더 낫다고 본다.” 나는 그 말에 눈물을 흘렸다. 어버이연합일지언정, 우리 아버지 같이 완고하실지언정 그분들은 정녕 지금의 한국을 만들기 위해 피를 쏟고 땀을 흘리고 뼈를 깎으신 분들이었고, 그분들의 그 불가사의한 에너지의 원천은 이 고통을 후세에게 물려주지 않고자 하는 발버둥이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나는 참담하다. 미치도록 좃같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도 목숨을 걸어야 했지만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도, 1인 독재를 물리치고 인간이 존엄성이 구현되는, 대통령을 씹었다고 콩밥 먹지 아니하며 어떤 말을 하고 표현을 하든 그에 대한 반박으로, 경멸로 밟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과 표현을 이유로는 단죄받지 않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왔는데... 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인생을 그르쳐 왔는데... 이제 '우리 아이들 세대가' 결국은 우리 아버지가 겪고, 내가 겪은 세월을 다시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몸서리치게 슬프다. 


전쟁나면 우리 기름 창고를 때려부수겠다고 한 통진당원은 미친놈이다. 만나면 몽둥이로 그 머리를 깨놓고 싶다. “우리는 다 반역, 이북은 다 상 받아야 해.” 따위 소릴 지껄인 이석기 역시 다르지 않다. 그 뻔지르르한 얼굴 보면 죽통을 날릴 것이다. 옛날 일심회 사건 때 이덕우 변호사님이 최기영더러 한 소리를 반복할 것이다. “네 나이가 몇이냐? 어떻게 만든 세월인데 네가 이럴 수가 있느냐.”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백만 번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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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었다. 발언이었다. 녹취된 오디오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정당의 지도부 회합도 아니었고 실질적인 실행 계획도 아니었다. 그래 그 말 때문에, 그 발언 때문에 수만 명의 뜻과 마음을 모은 정당을 해산할 수 있는가. 그 모든 정황을 밝히고 폭로하고 까발리면 선거에서 자연스레 해산될 수도 있는 정당을 이런 식으로 해산해야 하는가. 수만 명의 일부가 이런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만 명을 대한민국에서 존재하면 안되는 존재로 치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다는 말인가. 


이석기 같은 개새끼는 국회의원 자격 없다. 인정한다. 그래서 박탈한 거 아닌가. 하지만 어떻게 수만 명의 당원을 가진 정당을 그 일부의 일탈로 단죄하며, 그 수만 명을 대한민국에서 존재해선 안되는 헌법 외의 존재로 폄하한단 말인가. 60년대 영화에서 북한군이 멋있게 나왔다고 영화 감독을 끌고 갔던 그 야만의 세월과 지금이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것인가.


북한 편 들었다고? 전쟁나면 북한 편 들자고 말을 했다고? 그래. 나도 전쟁나면 어쩌면 그들에게 총을 쏠 거다. 동네 주유소 폭파하겠다고 기어드는 주사파 있으면 내가 때려죽일 거다. 그럼 나에게 그런 살의를 품도록 소중한,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고 정치적 이견은 법이 아니라 토론으로 해결되고, 김정은 대장님 만세 부르는 덜떨어진 놈들은 탄압이 아니라 실소와 경멸로 소멸되는 사회를 제시해 줘야 할 거 아닌가. 대체 김씨 일가에 대해서 욕하면 무슨 말벌에 귀 쏘인 듯 발광하는 북한과 자기는 북한을 좋아하고 지지한다는 ‘말’을 하는 일부 당원들 때문에 한 정당을 해산시키는 남한이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제발 종북주의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해 달란 말이다. 그들을 마음껏 경멸할 수 있게 해 달란 말이다. 하지만 오늘 헌법재판소 판결은 나를 종북주의자와 한 편으로 만든다. 어쩌냐. 그들을 옹호하고 그들과 한 편이 되는 것이 내가 지키고 싶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가치인 것을. 이미 1960년대에 김수영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50년 전이다. 반세기 전 한 시인의 절규도 아마 헌법재판소 눈에는 8대1로 정치적 참수와 거열이 마땅한 중범죄요, 그가 속한 정당을 해산해 마땅한 망발로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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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만세 

김수영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에라이 썅, 이때는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 때였고, 박정희가 빨갱이 형의 친구 황태성이 가지고 온 북한 비디오를 보고 열등감에 불탈 때였다. 그때도 김수영은 이런 언론의 자유를 꿈꾸었는데 그래 그 위대하신 영도자의 지휘 아래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북한의 몇십 배의 경제력을 일구고서도, 굶어죽고 말라죽는 세계 최빈국이 그렇게 무서우며 그래도 그 편을 들겠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두려워서 덜덜 떨리냐. 그 간으로 비행기는 어떻게 타며 배는 무슨 깡으로 오르냐 이 상등신들아. 바다에 뜬 배는 커녕 니 마누라 배는 오르겠냐?


자존심이다. 나는 민주 공화국에 살고 있고 언론과 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머리에 두고 살고 있다고 믿었다. 오늘 헌재의 판결은 그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우리가 북한과 다를 게 뭐냐. 이 종북주의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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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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