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24. 수요일
골드문트
지난 10월, 4인조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컬 윤덕원이 솔로 앨범 [흐린 길]을 발표했다.
굉장히 단단한 결속력을 자랑했던 밴드였기에 윤덕원의 솔로 앨범은 약간의 의아함을 주는 소식이었지만, 그의 음악적 재능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소식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게다가 박용준과 함춘호, 신석철 등이 그의 앨범에 세션맨으로 참가했다는 소식은 음악계를 들썩이게 만들었고, 1집 초도 물량이 발매 1주일 만에 완판되었다는 뉴스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윤덕원의 솔로 앨범은 그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찬바람이 불어오던 11월의 어느날, 벙커1에서 '솔로 가수' 윤덕원을 만나 신작 앨범 [흐린 길]에 대한 이야기와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 그에게 궁금한 모든 것들을 캐물어보았다.
골드문트(이하 골)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딴지일보 골드문트입니다.
윤덕원(이하 윤) : 안녕하세요? 신인가수 윤덕원입니다. (웃음)
골 : 신인가수 윤덕원이라고 본인 스스로 소개를 하고 다니시던데요. 본인이 왜 신인가수라고 그렇게 홍보를 하고 다니시는지?
윤 : 아, 사실 인디밴드 활동을 했었고, 또 이제 데뷔 과정 같은 게 다 그렇습니다만 이게 아마추어로 시작해서 어쩌다 보니 점점 프로가 돼가는 단계다 보니까 사실 아, 뭐랄까요... 스스로 그렇게 내가 연예인이나 혹은 뭐 음악을 보여주는 사람이다,라는 인식이 덜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프로로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어떤 일하세요? 그러면 인디밴드입니다 혹은 아 뭐 그냥 음악 해요 이렇게 얘길 했었는데 어떻게 보면 그게 좀 뭐랄까 아…솔직하지 않는, 좀 약간 한걸음 뒤로 빼는듯한 그런 발언이었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 밴드가 잠시 쉬는 동안 솔로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데 마음가짐이 예전과는 다른 거예요. 새롭게 시작을 하는데 뭔가 내가 음악을 보여줘야 되고 음악을 해야 되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되다 보니, 뭐 하시는 분이세요? 그러면 예 가수입니다, 라고 얘기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근데 그게 확실히 좀 차이가 있더라고요. 직업적으로 뭔가, 직업윤리까지는 아니겠지만 뭔가 직업의식 같은 게 생긴 것 같아요. 아 이제 가수해야지. 가수로서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사람으로서 좀 스스로 되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네... 신인가수 윤덕원입니다. (웃음)
골 : 그런데 이런 소개가 사실 팬들한테는 약간 웃음을 주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신인가수라고 소개를 하시니까 왜 신인가수야? 이러면서 말이죠.
윤 : 또 그런 게 약간의 재미는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좋더라고요. 저한테는 나름대로 뭐 어떤 다짐 같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고, 오래 본 팬들한테는 어떻게 보면 재밌는 요소, 아이 뭐 밴드 오래 했으면서 아이 뭐야~이럴 수 있겠고, 처음 보는 분들은 어떻게 보면 이제 또 아...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까, 뭐 그 정도 생각이 드네요.
골 : [브로콜리 너마저]가 워낙 유명한 밴드다 보니까 팬층이 상당히 두꺼운 걸로 유명한데요. 아마도 그 기존의 팬들이 윤덕원 솔로 앨범을 많이들 구입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새로운, 그러니까 기존의 [브로콜리 너마저]는 모르지만 신인가수 윤덕원에 대한 새로운 팬도 이번 기회에 생겼다고 보시는지요?
윤 : 뭐 그런 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그렇게 음반을 낸 것만으로도 그런 팬들이 막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다만 이제 접근 방식도 좀 다르고 그러다 보니까 기존에 어떤 안 들으셨던 분들도 들으실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고 실제로 그런 반응도 좀 받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브로콜리 너마저]도 뭔가 열광적인 팬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기보다는 '아 이 노래 나도 들어봤어'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편한 마음으로 들어주시는 팬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딱히 뭐 예전 밴드의 음악적인 부분들을 가져온다던가 혹은 뭐 더 나아간다 이런 느낌보다는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 더 큽니다.
골 : 그럼 기존 밴드에 대해서 여쭤보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여러 매체에서 늘 물어보는 질문일 겁니다. 인터뷰하기 전에 다른 매체 인터뷰 기사들도 찾아보니까 꼭 나오는 게 기존 밴드 근황 뭐 그런 거던데요. (웃음) 딴지일보 독자분들 중에 모르시는 분들도 있고 하니까, 밴드의 근황에 대해 간단히 설명 좀 해주시죠.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와는 갈라서신 겁니까? (웃음) 원래 밴드 멤버가 독집 내고 그러면 서서히 갈라지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윤 : 제일 큰 이슈는 저희 멤버인 키보드 치는 잔디 씨의 임신과 출산입니다. 얼마 전에 출산을 했는데요. 그 임신 기간과 출산 이후의 일정 기간 동안 쉬게 됐어요. 근데 밴드가 쉬는 동안 저는 음악 하는 사람이니까 음악을 놓을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작업은 하는데 또 마침 다른 멤버들은 학업을 마치거나 혹은 뭐 좀 편하게 있고 싶다, 라는 의사가 있어서 또 팀을 다른 멤버로 세션으로 운영하는 것은 저희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까 제가 그냥 혼자 음악 작업을 하게 됐고, 이렇게 결과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골 : 그러면 밴드 멤버들 간의 관계가 상당히 돈독하다, 라고 볼 수 있는데요. 평생 같이 갈 생각을 하시는 건지?
윤 : 뭐 그렇게 돈독하진 않아요. (웃음)
죽고 못 살고 서로 좋은 말만 해주고 하는 그런 사이는 아니고요. 하지만 서로 함께 하는 것에 대한 믿음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실 가끔 이런 생각도 해요. 여자 멤버들이 많고, 일부는 결혼을 하거나 출산을 할 수도 있고, 그 이후에 육아 같은 것 때문에 예전만큼 편하게 활발하게 활동을 못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은 마음속으로 예전부터 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닥치니까 정말 어... 하기 힘드네요.
진짜 힘들더라고요.
골 : 그러면 앞으로 이제 그렇게 될 수도 있겠네요. 윤덕원씨 혼자 솔로로 계속 활동을 하다가 멤버들이 다시 사생활들이 정리가 되고, 이제 밴드를 할 수 있다, 그러면 모여서 잠깐 몇 개월 동안 활동하고, 그러다가 또 각자 일 있으면 흩어지고.... 윤덕원씨 독집 2집 내고, 3집 내고 그러다가 또 브로콜리 4집, 5집, 6집 이렇게 쭉.....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윤 : 여성 멤버들이 주축이 되는 밴드 중에 오래가는 밴드들이 많지 않잖아요. 근데 그 어려움을 이제는 알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팀을 오래 하는 것만으로도 제가 봤을 땐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솔로 활동은 임시적인 거냐,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아마 솔로는 꾸준히 하게 될 것 같아요. 꾸준히 하게 되고 밴드는 또 밴드대로 꾸준히 하게 될 것 같아요. 둘 다 꾸준히 할 수 있는 모습을 좀 보여드리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저로서는 공백 없이 꾸준하게 활동하는 게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요. 음악이라는 게 기능적인 것도 그렇고 노래나 연주도 그렇고 잠시 안 하게 되면 약간은 퇴보 할 수도 있으니까요.
골 : 저는 개인적으로 팬이니까 좀 구체적으로 여쭤보고 싶은데요. 잔디 씨는 출산과 육아로 현재 바쁘다고 하셨고요. 류지 씨랑 향기 씨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학업으로 바쁘다고 하신 분이 류지 씨였나요?
윤 : 학업이 향기 씨예요.
골 : 기타리스트 향기 씨?
윤 : 향기 씨는 현재 11학년 여학생이고... (웃음)
류지 씨 같은 경우에는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해서 여행을 갔다 왔어요.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고, 조금 쉬는 쪽으로 그 친구는 마음을 잡은 것 같더라고요.
윤덕원을 제외한 브로콜리 너마저의 멤버들
터번을 두르지 않은 무스타파 더거, 향기, 잔디, 류지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골 : 그럼 어쨌든 뭐 싸우지 않은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밴드가 싸운 것도 아니고, 다시 언젠가 모이는 걸로. (웃음)
윤 : 저희는 특성상 언제 모이자! 하면서 으쌰으쌰 모이기보다는 어영부영 모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골 : 알겠습니다. 이제 앨범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어차피 또 앨범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만나 뵙게 된 거니까요. 굉장히 이슈가 됐더라고요. 저도 앨범을 쭉 들어봤는데 90년대로의 회귀? 제가 들어본 바로는 90년대로의 그냥 회귀가 아니라 굉장히 세련된 회귀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굳이 표현하자면 과거의 현재화된 세련된 사운드라고나 할까요? 혹시 이런 음악을 하게 된 어떤 이유나 계기, 그런 게 있나요?
윤 : 아, 사실 제가 1집을 처음 구상할 때, 1집도 아니고 원래 EP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골 : 윤덕원 솔로 EP?
EP(Extended Play)에 대해 모르는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한마디로 싱글이라고 하기엔 좀 길고 정규 음반이라고 보기엔 짧은 애매한 걸 말한다.
윤 : 네. 사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성향의 곡들이 섞여 있었어요. 발라드 성향의 곡들도 있고, 신디사이저 같은 것들을 많이 쓰는 그런 음악들도 해보고 싶어서 써놓은 곡들도 있었고요. 그래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너무 색깔이 갈려지는 것보다는 조금 통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발라드 성향으로 가게 된 거죠.
골 : 원래 발라드를 좋아하는 편이십니까?
윤 : 처음에는 제가 발라드를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어요. [브로콜리 너마저]를 처음 할 때만 해도 하고 싶었던 음악은, 그 당시 많이 들었던 되게 신 나고 막 정신없는 그런 스타일이었 거든요? 그런데 되게 신기한게 그런 정신없는 스타일의 음악은 하면 할수록 잠깐 반짝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경향이 있고, 제가 많이 듣고 오래 들었던 발라드 음악들, 그런 음악 성향이 결국은 나오더라고요. 처음에 윤덕원을 끓는 물에 삶아서 국물을 내보려고 하니까 겉에 묻어 있던 것들이 나오다가, 한참 있으니까 속에 깊이 숨어 있던 것들이 나오는 느낌이랄까요? 그게 아마 이번 윤덕원 1집에 수록된 90년대에 많이 듣던 음악 스타일이 아닐까 해요. 사실 [브로콜리 너마저] 때도 90년대의 가요 느낌이 난다, 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이번에 그걸 제대로 우려내게 된 거죠. 우려내게 된 계기는, 흐린 길과 갈림길이라는 노래 편곡을 [더 클래식]의 박용준 선배에게 부탁을 드리면서 그게 확 기울게 된 것 같아요.
골 : 박용준 씨 얘기가 나와서 드리는 질문인데요. 앨범을 보니까 어마어마한 분들하고 작업을 하셨더라고요? 요즘에 [꽃보다 할배] 같은 프로그램에서 신구 선생님, 이순재 선생님, 이러면서 선생님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제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선생님이라고 불릴만한 분들, 그런 분들이던데, 살펴보니까 아까 말씀하셨던 [더 클래식]의 박용준 씨, 베이스는 [전인권 밴드] 민재연씨, 또 신석철 씨가 계시던데요. 이 분은 사실 제가 잘 몰랐어요. 검색해 보니까 전설의 신중현 선생님 아들이시고... 신대철이랑 다 음악 하는 가족이잖아요.
윤 : 최고의 드러머고요.
골 : 예. 드러머가 존경하는 드러머라는 그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대한민국 최고의 드러머 중 한 분이라고...
윤 : 그렇죠.
골 : 거기에다가 함춘호 씨. 이 분도 어마어마한 분인데요? [시인과 촌장]을 하셨던 함춘호 선생님. 정말 너무나도 쟁쟁한 분들하고 작업을 하셨는데, 이런 분들을 섭외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듣고 싶어요. 쉽지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윤 : 아니, 저는 사실 이분들을 섭외할 생각도 못해봤습니다. 박용준 선배도 사실 되게 반신반의했거든요. 연락처를 구하기는 했는데 마침 또 그때가 [더 클래식] 4집 작업을 할 거다, 라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해서, 바쁘셔서 못하시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아주 흔쾌히 "아, 그럴까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골 : 아, 바로요? 전화하니까?
윤 : 아, 직접 하지는 않았는데.... (웃음) 어쨌든 오케이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바로 달려갔어요. 그렇게 앨범에 대해 말씀을 나누게 되었는데, 말씀을 나누다 보니 편곡을 많이 하시는 이런 선배님들 같은 경우에는 편곡한 다음에 밴드를 합주해서 연주하는, 자기 팀 같은 그런 느낌의 분들이 있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보통 드럼은 어느 분이랑 하고, 바쁘지 않으면 기타는 어느 분이랑 하고... 그런 게 다 있으신데, 마침 박용준 선배의 팀이라고나 할까요? 작업할 때 그분들과 많이 하셔가지고....
골 : 아.... 이분들이 박용준 씨의 앨범, [더 클래식] 앨범을 같이 하셨던 분들이군요?
윤 : 네, 연주를 같이 많이 하셨던....
골 : 콘서트도 같이 한다고 기사가 났더라고요?
윤 : 하나음악 전신이었던 푸른 곰팡이, 그쪽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뮤지션들이기도 해요. 저는 이번에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정말 대단한 뮤지션들을 연주로 만나게 된 거죠.
골 : 그렇죠. 너무 대단한 분들이어서... 사실 [오메가3]의 고경천씨도 대단한 분인데 다른 분들이 워낙 내공이 있는 분이다 보니 제 입장에서는 고경천씨가 묻힌다는 느낌도 약간 들더라고요.
윤 : 워낙 선배들이시다 보니까 경천이 형 같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젊은 뮤지션으로....
윤&골 : 하하
골 : 저는 사실 덕원 씨가 그렇게 인맥이 좋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윤 : 편곡에 참여해주신 선배님들께 그저 감사드릴뿐입니다.
골 : 어쨌든 첫 번째 앨범부터 이렇게 쟁쟁한 분들하고 작업을 하시게 된 점,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이분들이 반주를 했다고 생각하니 앨범을 듣다 보면, 사실 선입견일 수도 있는데 굉장히 사운드가 세련되고 뭔가 내공이 느껴지더라고요?
윤 : 저는 사실 정말 노래 가사와 멜로디만 만들었고, 편곡 부분이라든가 연주 부분을 거의 다 도와주셨기 때문에 고수의 어떤 손길이 닿은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앨범을 만들면서 많은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골 : 첫 번째 곡 흐린 길이 6분인가 되는데 전혀 지루하지가 않더군요. 제가 예전에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곡이 지루하지 않다는 건, 곡이 그만큼 좋다는 반증이다. 건스 앤 로지스의 노벰버 레인이 7분, 8분인가요? 굉장히 긴 걸로 알고 있는데 하나도 안 지루하잖아요. 너무 극찬일 수도 있지만, 흐린 길을 듣다가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노벰버 레인만큼 지루하지 않고 정말 좋구나... 하는 그런 느낌. (웃음)
윤 : 감사합니다. 그래도 저는 최근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좀 더 보컬이 노래를 극적으로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골 :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팬들과 듣는 청자 입장에서는 현재의 보컬 스타일이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또 싱어-송라이터시니까 본인의 목소리에 맞게 작사작곡을 하셨을 거 아닙니까. 그래서 아주 귀에 착착 감겨서 좋더라고요.
윤 : 감사합니다 (웃음)
골 : 사실 예전의 [브로콜리 너마저] 1집 때는 가사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윤 : 아, 네 그랬죠.
골 : 그런데 이번엔 가사가 귀에 착착 감겨요. 또렷하게 잘 들리던데요?
윤 : 일단 저도 나름대로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어떤 긍정적인 발전이 있었던 것 같아요. 목소리가 좀 더 편해진다던가 아니면 발음에 좀 더 신경을 쓴다던가 하는. 특히 [브로콜리 너마저] 때는 모든 파트를 다 보면서 하다 보니 막상 보컬을 할 때가 되면 너무 지쳐있고, 또 연습을 많이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고, 또 급하게 녹음을 해야 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아쉽기도 했고요. 근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풋풋한 느낌은 있었던 것 같아요. 이걸 좋아하시는 분들은 지금 변화가 많이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저 나름대로는 긍정적인 변화라는 생각이 들고, 이런 사소한 발전들을 좀 더 계속 하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골 : 듣다 보니까 기존 브로콜리랑 약간 다른듯하기도 하고... 그런데 감성은 여전하면서도 약간의 미묘한 차이는 있더군요. 본인은 그 차이가 있다고 생각을 하시나요? [브로콜리 너마저]와 윤덕원 사이에...
윤 : 보통 어떤 음반이 있으면 그 화자와 같은 인물이 바뀌는 경우도 있잖아요. 근데 저는 일단은 화자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요. [브로콜리 너마저]의 가사를 쓰던 화자와 저의 솔로 앨범에 있던 화자, 사람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 다만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가사내용이나 이런 면에서 조금의 변화는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이번 솔로 앨범은 제가 만 삼십 세가 지나고 나서 처음으로 만든 음반이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조금은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예전 같으면 이게 뭐야? 하면서 약간의 분노 같은 걸 터뜨렸을 법한 상황이 이제는 조금은 받아들이는 그런 자세로 변했다고나 할까요? 그렇다고 무작정 타협을 하는 건 아니지만요. 대체로 저의 느낌은 그래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이런 쪽의 조금 더 깊은 고민과 함께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골 : 어쨌든 정리하자면 화자는 변하지 않았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다...?
윤 : 성숙하거나 혹은 뭐 세상에 타협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골 : 완전한 타협은 아닌 것 같은데요. (웃음)
윤 : 하하... 그렇죠. 하지만 무뎌지는 정도가 있겠죠. 접거나 굽히지는 않더라도 뭔가 그 끝이 조금씩 닳아가는 느낌이 있을 것 같아요. 닳아 없어지는.... 약간 조금은 둥글어지는 느낌이랄까요?
골 : 이 곡의 앨범 출발점이 된 곡이 흐린 길과 갈림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두 곡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곡 두 개의 제목에 둘 다 '길'이 들어가잖아요. 하나는 흐리고 하나는 갈리는 길.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이 곡을 만든 어떤 계기가 있는지요?
윤 : 흐린 길과 갈림길은 예전에 제가 2010년경에 만들었는데요,
골 : 아 4년 전이네요?
윤 : 네. 2010년에서 11년 넘어갈 때 쯤인 것 같아요.
골 : 딱 이 맘 때네요?
윤 : 네. 그때쯤 만들었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노래는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너무 발라드다 싶어서 밴드 편성을 했을 때는 좀 아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발라드스럽게 편곡을 해서 불러봐야겠다, 이런 마음을 갖고 묵혀놨었던 곡입니다. 제가 원래 곡을 묵히지 않는 편인데, 그때가 제가 결혼할 때였어요. 사실. 그게 또 쉽진 않았거든요. 준비를 하거나 어떤 이런저런 상황들이 쉽지는 않았는데....
골 : 팬들 사이에서 아직도 회자되는 수안보온천 말씀인가요?
윤 : 수안보가 아니고, 부곡. (웃음)
딴 : 아 부곡. 죄송합니다. (웃음)
윤덕원은 2011년도에 부곡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윤 : 길이라는 걸 같이 걸어가는데 참 맑고 개인 길이면 좋겠지만 이게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힘든 상황에 놓인 두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는 노래를 만들어봤는데, 신기하게도 갈림길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보면 내용상으로는 상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비슷한 시기에 만들다 보니까 길을 공유하게 된 것 같아요. 노래가 비슷한 시기에 만들면 의도적으로 좀 약간 다르게 만들거나 아니면 좀 닮아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군요.
이를테면, 이건 좀 신 나니까 요건 좀 차분하게 만들어 봐야지, 이런 식으로 한다든가 아니면 뭔가 슬픈 마음이 있었으면 전체적으로 슬픈 감정이 있다든가 그런 게 있는데, 그때는 그 길이라는 키워드에 좀 꽂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곡을 솔로 때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참 신기한 게 옛날에 졸업이란 노래를 만들 때도 그랬어요. 만들 당시에 아 정말 왜 이렇게 힘들까? 이렇게 생각했던 것들이 그 노래를 실제 녹음을 하고 발표하기 위해서 준비할 때 되니까 더 심해지는 거예요. 졸업은 2005년경에 만들었는데 2010년에 발표했죠. 상황이 더 심해진 거예요. 흐린 길도 마찬가지였고요. 봄 되면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데 어떡하지? 어디로 가지? 어디에서 살아야 되지? 어떻게 살아야 되지? 이런 생각들이 모든 걸 희뿌옇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흐린 길의 이미지가 음반을 구성하는데 저에게 화두처럼 다가왔던 것 같아요. 타이틀곡이 되기도 했고요.
골 : 졸업도 그렇고 흐린 길도 그렇고, 묘하게 사회 비판적인 그런 내용도 조금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이번 흐린 길 같은 경우엔 뮤직비디오를 그렇게 찍었잖아요. 부동산을 배경으로...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다가도 쭉 보다 보면, 아, 집 문제 때문에 힘들구나, 그렇지.... 하면서 이게 노래랑 묘하게 매치가 되요. 그러면서 울적해지고....
윤 : 좀 재밌는 얘기를 하자면 저는 2012년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어요.
골 : 12년에요?
윤 : 네. 이명박 정부가 끝나면 세상에 대해 빡빡하고 짜증 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던 브로콜리의 어떤 그런 부분들이 공감을 덜 받게 되지 않을까.... 세상이 조금이나마 좋아지면 좋긴 한데 지금보다 나아지면 좀 다행일 것 같긴 한데, 그러면 우리가 노래 부르는 포인트는 조금 다른 데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그런 고민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건 뭐 더 심해져서... 너무 심해져가지고... (웃음)
골 : 그 노래 졸업도 작년 재작년보다 올해가 더 어울려요. 얼마 전에 SNL 코리아에 삽입됐잖아요.
윤 : 아, 정말요?
골 : 아, 모르셨습니까?
윤 : 네
골 : 취업난을 풍자한 콩트에 삽입됐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졸업이 삽입되었는데, 그것 때문에 기사도 나고 그랬어요. (웃음)
출처 - 오마이뉴스
윤 : 그랬군요. (웃음)
어쨌든 그래서 저는 사실 기본적으로는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들까? 뭐가 우리를 힘들게 할까? 근본적으로 뭐가 잘못된 걸까? 이런 식으로 늘 생각을 해보는데, 그러다 보니 어떤 이야기든 돌아돌아 가다보면 거의 대부분 사회비판적인 내용으로 갈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상황을 개인적인 부분으로 돌릴 수가 없더라고요.
골 : 그래서 그런가요? 이제는 집회 현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가수 중 한 분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윤 : 최근에는 안 불러 주셔서 섭섭한데요? (웃음)
골 : 매니저분 얘기 들어보니까 최루액도 몇 번 맞은 적이 있다고...?
윤 : 그건 개인적으로 철도노조 때 정동 갔다가....
골 : 아... 거기서 맞으셨어요?
윤 : 네.
골 : 선두에 서신 겁니까?
윤 : 어쩌다 보니까... (웃음)
저 같은 경우에 시위문화에 익숙한 세대는 아니고, 대학 다닐 때 선배를 따라서 가투에 가본 경험이 있는데요. 그런데 이런 부분이 이제는 많이 흐지부지됐죠. 어쨌든 저까지만 해도 이런 부분을 경험했던 세대이다 보니까 거리 집회가 낯설진 않은데, 이제는 좀 다르더라고요.
아무튼 시위 현장 이런데도 사실 못 나갈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것 때문에 눈치를 보고 그럴 이유도 딱히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건 점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더 없어지는 것 같다는 부분이에요.
골 : 분위기를 바꿔서 다시 음악 이야기로 돌아 가겠습니다. 아까 물어봤어야 했는데 흐린 길 뮤직비디오 같은 경우에도 집 문제에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개인적으로 집 문제 때문에 고민을 하셨는지?
윤 : 지금 고민입니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시기라...
골 : 전세입니까 월세입니까? (웃음)
윤 : (웃음) 소위 반 전세라고 하는 월세인데요. 아 정말 쉽지가 않네요. 아이도 있다 보니까...
골 :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으로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하하. 사실 이게 지금 해법도 없잖아요?
윤 : 근데 확실한 건 이제 이런 압박들이 갈수록 서민 쪽으로 가중 되어가는 것 같아요. 압박들과 어떤 피해들이 말이죠.
골 : 정말로 이제는 분위기 전환 좀 하겠습니다. (웃음) 앨범 수록곡 중에 신기루라는 노래가 노래방 반주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몰랐거든요?
윤 : 완전한 노래방 반주는 아니에요. (웃음)
골 : 노래방 반주라기에는 너무 세련된 것 같아서 잘 몰랐어요. 그 기사를 읽고 유념해서 듣다 보니까 전주 부분이 띵띵띵 하는 게 왜 노래방 금영사운드 같은, 그런 것처럼 약간 느껴지긴 하던데요?
윤 : 예. 그런 부분을 조금 넣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사실 의도적으로 뭔가 이렇게 해봅시다. 이런 분위기로 가봅시다. 이렇게 한건 하나도 없어요. 다만 편곡과 연주를 같이 한 분들이 그때를 정말 풍미했던 뮤지션들이고, 또 저의 멜로디도 그런 감정적 기반에서 나오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이게 어떠한 컨셉으로 어떤 사운드를 재현했다 이런 건 아닌 것 같아요. 단지 90년대에 음악을 듣던 키드와, 그때 그 키드가 듣던 음악을 만들었던 뮤지션들이 만나서 만들다 보니 정말 자연스럽게 그런 느낌이 나온 것 같아요. 신기루는 좀 대놓고, 사실 조금 대놓고 그때의 스타일로 만들어보자 작정을 하긴 했어요. 딱 그 곡만.
골 : 사실 노래방 스타일이라는 건 생각 안하고 들으면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생각하고 들으니까 아 요 부분이 노래방식 분위기인가? 그런 느낌? 딱 그 정도. (웃음) 그럼 신기루 외에 또 특색 있게 만들어진 노래가 있다면?
윤 : 특색 있게 만든 것 같은 경우는 문리버 같은 노래.
골 : 그래요. 문리버! 제가 개인적으로 문리버를 관심 있게 들었거든요. 듣다보면 통기타 코드 체인지 할 때 손가락하고 줄 스치면서 치익 하는 소리, 그 소리가 아주 생생하게 들리더라고요. 그런데 거기에다가 덕원 씨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게 들린다고 해야 되나, 조근조근하게 들린다고 해야 되나? 어쨌든 그렇게 듣다 보면 상상이 되거든요? 학교 다닐 때 엠티 가잖아요? 그럼 꼭 통기타 하나 들고 오는 선배들 있었잖아요. 폼 잡고. 저녁에 모닥불 피워놓고 둘러앉아서 술 마시다 보면 하나 둘 잠들어요. 그럼 이제 그 폼 잡던 선배가 모닥불 옆에, 마지막으로 타들어가는 모닥불 옆에 앉아서 줄을 튕기면 여학생들이 몇 명 와요. 그럼 거기서 여학생들한테 조근조근하게 노래 들려주는 그런 오그라드는 분위기....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더라고요? (웃음)
윤 : 그렇죠? (웃음) 다 같이 신 나게 노래 부르면서 듣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듣는 사람 별로 없는 상황에서 혼자 읊조리듯이 방 안에서 연주하는 그런 느낌을 내보려 했었어요. 그래서 의도를 살려 보려고 마이크를 여러 개 설치해놓고 비 오는 날 창문 열어놓고 원테이크로 녹음 한 거예요.
골 : 그럼 빗소리예요? 배경에 조그맣게 들리던 그 타다닥하는 소리가?
윤 : 네 맞아요. 빗소리. (웃음) 의도적으로 정말 집에서 혼자 기타 치면서 카세트 녹음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일부러 만들어냈죠.
골 : 눈 감고 들으면 옆에서 누가 불러주는 것 같아요.
윤 : 허밍 하면서?
골 : 네. 바로 옆에서 허밍 하면서. 또 기교를 많이 안 부리셨잖아요? 목소리 기교.
윤 : 목소리만 수정할 수 없어서. 원 테이크로 가다 보니. 하하...
골 : 또 특색 있는 노래가 있다면?
윤 : 사실 뭐 거의 다 특색이 있습니다만? (웃음)
골 : 예, 뭔가 의도를 청자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하는....
윤 : [별이 빛나는 밤] 같은 경우 스토리가 좀 재밌어요. 공귀현 감독님이라고, 인디 영화감독님이 계시는데, 그 분이 준비한 영화가 있어요. 아직 개봉은 안했는데, 론스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거든요? 그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쓰일 목적으로 이 노래를 만든 거예요. 영화 제목도 [별이 빛나는 밤]입니다.
골 : 아, [별이 빛나는 밤]으로 영화 제목이 확정된 거예요?
윤 : 네. 확정을 그때 거의 하셔서 말씀해주셨는데, 또 약간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하. 어쨌든 제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서 그 영화에 가장 어울릴만한 곡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골 : 아~
윤 : 가사 내용이 사실 영화 내용이에요.
여기서 노래를 잠깐 들어보시고 인터뷰를 계속 읽으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윤 : 많은 분들이 이 노래의 쓸쓸한 정서를 알아줬으면 하는데, 가사 내용이 영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거라고 보셔도 될 것 같아요.
골 : 노래만 들으면 아주 그냥 정말 조용하고 고즈넉한 느낌이 드는 발라드? 그런데 꽤나 의미심장한 노래네요.
윤 : 영화가 딱 같이 개봉하면 좋았을 텐데. 같이 홍보하고....
골 : 영화는 개봉이 언제쯤 된다고 하던가요?
윤 : 잘 모르겠어요. 사실 여름에 완성하시는 줄 알았거든요. 윤덕원 단물이 남아있을 때 빨리 하셔야 되는데....
윤&골 : 하하
골 : 또 특색 있는 노래가 비겁맨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제목 자체가 특색 있었어요.
윤 : 맞아요.
골 : 만화 [멋지다 마사루]에 나오는 비겁맨을 제목으로 차용하셨는데, 제목만 보면 웃긴 노래일 것 같아요?
윤 : 그렇죠?
골 : 제목도 비겁맨이니까, 계속 조용한 노래만 듣다가 이제 신 나는 건가, 경쾌한 건가 했는데 오히려 더 서정적인, 가사도 굉장히 서정적이고 한편의 시 같은 그런 아름다움이 있는 노래가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아이러니가 느껴지더라고요. 제목하고 괴리감이 있으니까. 이게 과연 의도한 아이러니인지, 아니면 의도치 않은 아이러니인지.... 그것도 좀 궁금했어요.
윤 : 사실 가제를 지은 거죠 원래는.
골 : 원래는 가제에요?
윤 : 네, 가제였어요. 어떤 비겁함에 대해서 쓰고 싶었는데, 제목을 붙이려다 보니 마침 그게 떠오른 거예요. 갑자기. 근데 웃긴 게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어떤 노래 가사나, 대사 같은 게 계속 머릿속에 돌아가지고 떨쳐낼 수 없는 그런 때가 있는데, 이 비겁맨이 딱 그런 거예요. 다른 제목을 지으려고 되게 많이 노력해봤는데도 이 가제가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는 거예요. 어쨌든 비겁하다는 게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거잖아요?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거고. 근데 그 비겁맨이라는 말 자체가 웃기고 그러다 보니까 어떤 모순점을 잘 짚은 것 같은 거예요. 그 우스꽝스러운 제목이 말이죠. 그래서 어지간한 제목을 다시 만들어서 붙이면 뭔가 비겁한 것 같아요. (웃음)
골 : 제목을 바꾸면 비겁하다?
윤 : 네. 예를 들어 [비겁한 사람] 이라고 제목을 지으면, 뭔가 묘한 느낌도 없고, 아, 이거 비겁한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적나라하게 가자. 그래서 [비겁맨]이라고 짓게 됐죠. (웃음)
골 : 이번에 이런 경험을 통해서 나중에 [브로콜리 너마저]의 신작 앨범과 [윤덕원 2집] 등을 준비할 때 커다란 자산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윤 : 정말 백지장에 먹물 떨어질 때처럼 확 한번 흡수를 한 느낌이 들어서, 제 생각에는 다음 앨범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골 : 은둔 고수들한테 내공을 전수받은 그런 느낌?
윤 : 그렇죠. 그래서 저도 얼른 작업을 하고 싶고, 사실 그런 마음을 음반 작업 중에 받아서 원래 EP였던 앨범이 중간에 곡을 막 더 써가지고 정규가 됐거든요. 네, 그런 마음이 아직까지도 있어서 아주 의욕에 차있습니다.
골 : 네.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작사 작곡을 직접 다 하시잖아요? 이번에 편곡은 맡기기도 하셨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브로콜리부터 노랫말이 너무 좋더라고요. 본인이 직접 모든 작사를 하신다니까 더 놀라운데요. 아이돌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노래를 들어보다가 가사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게 뭐지? 하는 경우가 꽤 많거든요? 하지만 윤덕원씨의 가사는 읽다 보면 한 편의 시 같다는 생각이 들던데, 그게 좀 궁금해요. 작사를 주로 어떻게 하시는지. 평소에 어떤 영감을 얻어서 일필휘지로 쫘악 쓰시는 건지, 아니면 먼저 멜로디를 만들고 거기에 덧붙일 가사를 고민해서 쓰시는 건지....
윤 : 저는 가사를 먼저 씁니다. 사실은 거의 동시에 나오긴 하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멜로디에 가사를 붙이는 것이 꽤 힘들어요. 그러니까 말이라는 게 특유의 리듬감이 있으니까 말을 써보면 사실 거기에 거의 다 있는 것 같아요. 멜로디가. 저 같은 경우엔 시작이 되는 단어, 문장 같은 걸 발견하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근데 정말 좋은 문장, 읽어봤을 때 뭔가 필이 오는 문장이나 어떤 단어가 있어요. 그런 것들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적어 놓고 읽다 보면 뭔가 멜로디나 박자에 따른 감이 오거든요. 그럼 이제 그런 걸 바탕으로 조금씩 늘려 나가는 거죠. 어떤 때는 멜로디에서 조금씩 더 나간 다음에 가사를, 단어를 더 붙이기도 하고 그 다음 단어를 쓴 다음에 거기에 맞는 멜로디를 붙이기도 하고.... 그런데 저는 그런 작업이 되게 좋은 것 같아요.
골 : 그러면 가사 같은 경우에 평소 메모를 많이 하면서 준비하시는 편인가요?
윤 : 메모는 할 때도 있는데 사실 메모는 거의 신뢰를 안 하구요. 메모를 안 해도 머릿속에 자연스레 남아있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뭐랄까, 머릿속에서 자연도태를 시키는 거죠. (웃음) 근데 요새 바쁘기도 하고 좋은데 잊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기록은 해두는데, 성격상 다시 잘 돌아보진 않는 것 같아요.
골 : 이제 연말, 12월 27일에 부산에서 콘서트 시작하시고, 28일 대구에서, 그리고 연초인 2015년 1월 2일, 3일 서울, 4일 전주 공연. 이렇게 공연 계획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앨범이 9월 말에 나왔는데 연말에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하시는 건가요? 조금은 늦은 감이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웃음)
윤 : 예. 저 같은 경우에는 좀 그래요. 발매와 동시에 전국투어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사실 의외로 많은 경우는 아니에요. 콘서트는 준비가 많이 필요한 거고. 기존에 기다리고 있던 분들에게도 좋은 공연으로 보답해야 하는 거니까 쉽지가 않죠.
골 : 일정이 너무 짧아서 팬들이 좀 아쉬워할 것 같은데.
윤 : 아유 괜찮아요. 저희 팬들은 뭐.... (웃음) 그런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막 목을 매고 기다리지 않는 팬이 저는 좋아요.
골 : 아, 서로 쿨한?
윤 : 쿨하기보다는 제가 되게 대단한 그런 대상이라는 게 부담스러워요. 아, 이 음악 좋아서 한번 더 들어보고 싶고, 라이브로도 가면 좋지. 이 정도 느낌이 전 좋은 것 같아요.
골 : 콘서트 같은 경우에 이번에도 스탠딩입니까, 아니면 좌석입니까.
윤 : 좌석입니다. 아주 편안한 좌석으로 골라놨습니다. (웃음)
골 : 스탠딩은 이제 안 하시는 건가요?
윤 : 솔로로는 스탠딩보다는 좌석으로 하고 싶고요. 약간 새로운 스타일이 있으면 거기에 맞춰서 어울리는 공연장을 택할 것 같은데 이번엔 아무래도 좌석이 어울릴 것 같아요.
골 : 예전에 [브로콜리 너마저] 콘서트를 스탠딩으로 진행하셨을 때, 관객 중 한 분이 쓰러지는 경우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마침 그때 제 지인이 그 공연을 보고 있었거든요? (웃음) 공연을 보다가 저한테 전화를 해가지고 누구 쓰러졌는데 잔디씨 남편분이 의사시라고... 마침 그 공연장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어서 불러서 응급처치하고 그랬다고 되게 웃으면서 듣긴 했는데..
윤 : 다행히도 약간 어질했던 그런 정도였기 때문에 외상이 없고, 넘어지면서 외상이 없었기 때문에 다행이었는데 사실 큰 사태였으면 더 급박할 뻔했죠. 근데 그런 것도 평소에 준비가 되어야 되는 것 같아요. 어쨌든 그 일 덕분에 콘서트장 안전사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골 : 공연장에서는 팬들과 어떤 소통을 하실 계획이신지?
윤 : 인터뷰로 많이 말씀드리고는 있지만 밴드 근황이라든가 앞으로의 계획, 그런 것들을 말씀드리고 싶고요. 또 솔로로서는 어떤 걸 준비하고 있는지 말씀드리고 싶고, 그리고 공연 즈음에서 싱글을 내볼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골 : 벌써 그럼 다음 곡 준비가 다 되셨다는 말씀이신지?
윤 : 네 거의 이제 일단 제 선에서는 8, 90% 정도는 됐고요. 그리고 사실 솔로 가수 1집 발매 기념 공연 치고는 곡 수가 그리 많지는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다른 요소를 어떻게 넣을까가 중요한데, 그래서 커버 곡을 해볼까 싶기도 하고....
골 : 원래 커버 곡은 잘 안 하시는 걸로 유명한데?
윤 : 네, 그러니까 이번에는 특별히 기대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웃음)
골 :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도 좀 느끼긴 했는데, 일 년 동안 국민라디오 진행을 하시더니 입담이 많이 늘었다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윤 : 하하하
골 : 그럼 이제 지루하지 않은 콘서트를 기대해도 되는 겁니까.
윤 : 하하하하. 아니 사실 제가 원래 재밌는 얘기가 코드가 맞으면 할 수 있는 사람이긴 한데 워낙 말하는 걸 부끄러워하다 보니 자신감 없이 말끝을 흐리게 되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2013년부터 국민라디오를 1년간 진행했었고, 그리고 그때부터 라디오 고정 게스트 같은 것도 출연을 하다보니, 어, 신기한 게 말이라는 게 늘더라고요. 그래서 솔로 공연이고 어떻게 보면 좀 차분한 곡들로 채워져 있어서 졸리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냥 편안하게 얘기 재밌게 하면서 시간이 언제 가는지 모르게 만들어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커버 곡에서는 신나는 곡도 준비해보면 어떨까 생각도 들고요.
골 : 아까도 했던 얘기긴 한데 [브로콜리 너마저]로 돌아올 계획이 내년쯤이라고 하셨던가요?
윤 : 네. 내년 정도에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돌어올 것인가 다시 멤버들과 타진을 해봐야 되는데....
골 : 그건 아직 정해진 건 없는 거죠.
윤 : 그렇죠.
골 : 멤버들 근황도 봐야 되는 거고..
윤 : 아마 다들 썩었을 거예요. (웃음) 다들 연주라던가 어떤 무대 감각이 좀 썩었을 거예요.
골 : 그러면 솔로 앨범 1집 활동을 쭈욱 하시고, 이제 한번 밴드 해볼까 할 때쯤 멤버들 불러서 연습 좀 하시다가...
윤 : 몸을 좀 만들어야죠. 한참 활동했을 때의 어떤 그 느낌이 날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매일 연습을 하다가 일 년 가까이 쉬었는데 아마 그게 나오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골 : 그럼 내년 계획은 윤덕원 솔로 2집하고 [브로콜리 너마저] 활동 재개. 이 정도로 보면 되겠습니까?
윤 : 네. 그렇죠. 사실 본격적인 활동은 못하더라도 [브로콜리 너마저]로서 한 번쯤 해야 될 타이밍이라는 생각은 늘 하고 있어요. EP 앨범으로 돌아오든, 정규 앨범으로 돌아오든 말이죠.
골 : 문제는 또 곡이겠네요. 곡을 또 만드시고 연습도 하시고....
윤 : 그쵸. 어쨌든 이명박근혜 정권이 끝나기 전에 제대로 똥을 끼얹고 가야 되는데....
골 : 하하하하하
윤 : 굉장히 딴지스럽죠? (웃음)
골 : 예. (웃음) 마지막으로 딴지 독자분들한테 하시고 싶은 이야기 있으십니까. 인사말이라든지.
윤 : 글쎄요, 딴지 독자분들이 어떤지에 대해선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골 : 저도 모르겠어요. (웃음)
윤 : 왜냐면 저도 많이 봤었지만 시기별로 되게 많이 달랐었고....
골 : 그럼 그냥 보편적으로 이 인터뷰 기사를 읽는 분들.
윤 : 이 인터뷰 기사를 읽는 분들께, 잘 부탁드립니다.
골 : 하하하하
윤 : 이런 말씀드리고 싶고요.
골 : 아니 입담이 많이 늘으셨다면서....
윤 : 노래를 좀 더 들어봐주시고... 아... 시대의 고민과 함께 하는 그런 아티스트가 된다고 하면 너무 웃긴 거고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제가 처음에는 아마추어처럼 시작을 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지금까지 음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부족한 걸 많이 느끼긴 하거든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좋아하는 음악을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근데 확실한 거는 저는 앞으로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연습이나 노력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40대쯤에는 완성된, 어느 정도 틀이 잡힌 뮤지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옆에서 많이 관심의 끊을 놓지 않고 채찍질과 당근 많이 많이 부탁드립니다.
골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집회 현장에 꼭 불러달라는 윤덕원씨의 전언...
윤 : 예. 뭐. 가리지 않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골 : 감사합니다.
윤 : 감사합니다. 신인가수 윤덕원이었습니다.
집회현장에 자주, 꼭 불러달라는 '신인가수' 윤덕원과의 유쾌했던 인터뷰는 이렇게 끝이 났다.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시대의 아픔을 노래로 승화시키는 그의 행보가 점점 더 궁금해진다.
- 끝 -
골드문트
트위터 : @Goldmund73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