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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수요일

독투불패 ParisBoucher






편집부 주


이 글은 문화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2014년이 며칠 안 남은 오늘, 지난 한 해를 뒤돌아 보면, 정말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 일들이 하나같이 엄청난 것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뒤따라 오는 또 다른 희한한 사건들에 묻히고, 묻히고, 또 묻혀서 남은 것은 마지막에 일어난 일 뿐이란 것이다. 북미의 어느 나라는 뉴스 거리가 너무 없어서 신문의 반 이상이 동물 이야기라는데 우리 사회의 다이나믹함은 얼마 전의 기억을 빠르게 추억화 시켜버리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아니,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게 더 옳을 수도 있겠다. 그것이 앞으로 얼마간 내가 떠들고 싶은 것, 건축이다. 건축, 그 엄청난 시간과 돈의 노력으로 이 세상에 나타난 존재는, 그 안팎에서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것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떠들던 간에, 세상에 남는다. 때로는 사람보다도 더 오래 버티어 남는 그 존재는 원체 다이나믹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 걸까? 빠른 변화에 심하게 익숙해져 있는 대한민국은 건축에 대해 매우 무관심하다. 건축은 변하기 힘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거기에 숫자로 값어치를 매겨 그 숫자의 변화에만 모든 관심을 쏟는다. 그러는 와중에, 마지막 남은 숫자가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은, 빠르게 잊혀져 버린다. 아니, 아예 이야기조차 되지 않는다.


아무튼 이유가 무엇이던 간에 우리는 건축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어떤 이슈, 어떤 영화, 어떤 트렌드가 있을 때 빠르게 소비되는 경우는 있어도, 건축이란 것에 대해 건축에 관련 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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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론 딴지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그 안에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이란 것을 제대로 알아볼 기회조차 접하기 힘들다. 정말 관심이 있어서 글을 편하게 잘 쓰는 건축가의 글이나 책을 찾아 읽기 전에는, 건축이란 것이 무언지 뜯어 보기란 불가능하고, 사실 그래야 할 이유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한번 이야기 해보려 한다. 그냥 내가 아는 것들 중에, 건축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최소한으로 알아야 할 기본 상식 같은 것들을 한번 주욱 늘어놔 보려 한다. 개론서 같은 것이 아닌, 그냥 건축에 관한 잡글 정도 되겠다. 때로는 어떤 건축가에 대해, 때로는 건축이 아닌 다른 곳에서 부터의 건축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란다. 그래서 지난 글(‘닭봉이사슴’이라는 닉넴으로 썼던)과는 달리 이 시리즈는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아니 지난 번에도 그랬었나.


이번은 첫 번째인만큼, 건축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부터 이야기 해보려 한다. 우린 모두 건축이라고 하면 부동산을 떠올린다. 어쩌면 건축보다 재건축이 우리에게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건축 = 재산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등식. 맞는 말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수많은 건축물들이, 그것이 예쁘건 편리하건 어쨌건 간에, 누군가의 재산이라는 사실은 건축을 이야기 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일단 그 재산이란 것이 쏟아 부어지지 않으면 건물은 지어질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부분은 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지금은 ‘건축’이라는 것 그 자체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건축이라는 단어는, 한국어에서도 영어에서도 라틴어에서도 모두 ‘기술’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심지어 많은 서양의 언어들의 뿌리가 되는 라틴어에서의 건축은 ‘최고의 기술’ 이란 뜻이다. 사실 건축이라는 말 자체는 이미 세상에 지어진 존재, 집에 대한 것이라기 보단, 그냥 기술에 관한 것이다. 그 기술로 집을 짓건, 다리를 짓건, 땅을 파건 아님 집안에서 그냥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건 간에, 그 일은 다 건축이 되는 거다.


문제는 건축가는 그 기술을 머릿속으로 아는 사람 이란 거다. 건축이라는 것이 행위로서 세상에 표현될 때, 즉 건물이 지어지고 있을 때, 그 건축의 탄생 주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걍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가라는 존재는, 자신이 설계라는 행위를 해서 세상에 지어진 건축물에 비해, 훨씬 옅은 존재가 되기 마련이다. 그놈이 무슨 뛰어난 기술을 가졌건 간에, 이미 지어진 집은 물안세고 해 잘들어오고 구들장 뜨뜻하게 잘 데펴지면 그게 중요하지 그걸 생각한 놈이 뭐가 중요하냐 이거다. 어쩌면 우리는 내방 바닥을 평평하게 잘 깔아주신 미장 아저씨에게 더 감사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아니 실상 그래야만 한다. 왜냐면 그 최고의 기술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사람은, 당신이 살고 있는 그 방을 그려내었지만, 그것조차도 그 사람의 주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일은 머릿속에 그 기술을 쌓아 놓는 것이다. 그 쌓여있는 기술이 누군가의 돈을 만나 미장 아저씨 아줌마들의 피나는 노력에 의해 세상에 나타나면, 그것을 우리는 건물이라고 부른다. 즉 건물이라는 것은, 사실상 건축가의 작품이 아니다. 그게 건축가의 작품일려면 건축가가 작을 해야 하는데, 그가 한건 그림 몇장 몇장 그리고 모형 몇개 만든게 전부다. 심지어 그림도 아닌 낙서를 끄적여 놓는 건축가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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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키로 보는 프랭크 게리옹의 심오한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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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실물(사진: MykReeve/wikipedia) 


 =이 점이 건축과 다른 예술 혹은 기술과 가장 다른 점일 것이다. ‘작가’라고 불리는 자가 실제로 지어지는 데는 손하나 까딱 안하는 것. 의사들을 보라. 수 년 간 쌓아온 학문을 손끝으로 실행시키는 것을. 의술은 매우 뚜렷한 기술이다. 그에 반해서, 건축은, 우리는 건축의 어떤 것을 ‘기술’이라고 부를 수가 있을까? 건축가는 도대체 무엇의 기술자인가? 도면은 도면 기술자가 그리고, 시공은 시공 기술자가 하는데? 어쩌면, 이런 불확실성이 건축을 건축가가 아닌 다른 이들로 멀어지게 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내 관점에서 보기엔, 이런 문제는 한국만의 것은 아니다. 솔직히 다른 선진국들에서도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는 보통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 나는 왜 여기서 굳이 장황에게 건축에 대해 떠들고 있을까. 뭐 그건 다음편쯤엔 알게 되리라 믿으시라.


'건축가의 기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면 아마도 나는, 공간에 대한 일반적 전문 기술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건축가가 있다. 기괴한 형태가 건축의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한는 사람도 있고, 첨단의 하이테크 기술이 접목되어 삶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건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다양한 것을 건축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들의 집단을 그냥 몇 단어로 설명해야 한다면, ‘공간에 대한 일반적 전문 기술’ 처럼 서로 반대되는 두 형용구를 갖은 말을 지어 낼 수 밖에 없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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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축만 하는 사람들도 있단 말이다.

(Daniel Libeskind,Royal Ontario Museum, 사진 저작권: Daniel Libeskind Architect)


이 문제에서 결국 확실한 것은, ‘건축’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선 ‘건축가’들이 뭘 배워서 무슨 짓을 하고 사는 인간들인지 대충 몇몇 훑어보는 것이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편과 다음 편에서는, 열분들이 건축에 대해 이빨좀 털고 싶다면 무조건 알아야 하는 건축가 두 명을 살짝 디벼보기로 하겠다. 이들이 우리에게 건축이 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좀 더 확실히 알려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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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의 르코르뷔지에(작자 미상)



긴 서론을 뒤로하고 드디어 등장하신 이번 편의 주인공은, ‘샤를-에두아르 쟌느레-그리’라는 본명보다는 ‘르코르뷔지에’라는 별명으로 훨씬 유명하신, 그냥 유명하다고 하기에도 뭐 할 정도로 유명하신,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다. 스위스 태생이며 프랑스 국적을 갖고 파리에서 주로 활동을 하시다가 나중엔 전세계로 뻗어나가신 이 분을 프랑스 위키피디아에서는 ‘1887년 10월 6일에 스위스 어디(지명이 너무 길다)에서 태어나 1965년 8월 27일에 프랑스 어디(마찬가지)에서 죽은 건축가, 도시설계가, 실내건축가(décorateur), 미술가, 조각가이자 작가로(Homme de lettres) 스위스인이며 1930년에 프랑스 국적을 획득하였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다재다능류의 대부 같은 이미지를 주는 설명이 별로 마음에 안들긴 하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한다. 르코르뷔지에라는 이름은 대부분의 별명이 그렇듯 그의 얼굴 모양에서 따왔다. 길게 늘어진 매부리코가 까마귀의 주둥아리와 닮았다고 해서 Corbu(꼬르뷰, 프랑스어로 까마귀)라는 별명이 붙어서 그게 Le Corbusier가 된 별로 영양가 없는 이야기다. 


이름은 별거 없지만 그가 건축가가 되는 과정, 혹은 학업은 당시의 다른 건축가들과는 좀 달라 보인다. 당시, 즉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에 대부분의 유럽 건축가들은 여전히 미술학교(Ecole de Beaux-arts)를 통해서 건축에 입문했다. 건축과는 미술학교에 포함되어있었고, 이 곳에서 당시의 젊은 건축가들은 도면을 그리는 법, 특히 지금도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로 지어진 고전 건축들의 그림 같은 파사드(Façade, 건축의 입면, 얼굴)를 그리는 법을 배웠다. 역학, 공학들의 시공기술 분야는 지금도 유명한 기술학교(Ecole polytechnique)같은 곳에서 배워야 했다. 이런 기술학교들과 기술회사들은 당시 한창 발전하고 있던 철근 콘크리트와 강철 같은 새로운 재료들을 사용하는 법이나 더 발전시키는 일에 집중하였고, 에펠 같은 기술자는 당시엔 상상할 수 없었던 높은 철탑을 프랑스 국제 엑스포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건축가들은 그런 활발한 기술의 진보에 저 멀리 뒤쳐져 여전히 돌맹이 깎는 법이나 그걸 그리는 법 정도를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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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르코브뤼지에는 그런 구닥다리 건축교육을 받지 않았다. 시계공업이 주류인 스위스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처음에는 미술을 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곳에서 만난 미술선생님에게 당시 유행이던 아르누보(Arts nouveaux)를 배우던 어린 르코르뷔지에, 샤를 쟌느레는 이후 그 미술선생님의 조언을 따라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시류를 제대로 따라가는 건축학교가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르코르뷔지에는 건축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제도 등 건축의 기본을 배우는데, 이때 일했던 사무실이 오규스트 페레(August Perret), 피터 베렌스(Peter Behrens)같은 프랑스, 독일에서 날리던 슈퍼 건축가들의 사무실 이었던데다가 피터 베렌스 사무실에는 건축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알만한 이름들, 미스 반데로헤(Mies Van Der Rohe)와 월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도 함께 일했었다고 하니, 학교에서 학위만 받지 않았을 뿐,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 밑에서 수료 했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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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스트 페레는 2차대전 이후 전쟁으로 초토화 된 

노르망디의 아브르(Le Havre)란 도시의 중심를 통째로 재건한 건축가이기도 하다. 

사진은 아브르의 중요 상업 지역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성행하고 있는 도제시스템에서 수학한 르코르뷔지에는 어떻게 보면 뭐 딱히 특별할 것 없는 과정을 통해 건축을 배운 것 같기도 하다. 그에게 그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 도제 시스템이 그때나 지금이나 특별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르코르뷔지에는 1911년 5월, 그가 ‘동방여행(Voyages d’Orient)이라고 이름 붙인 여행을 떠나,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며 그 곳의 집, 도시, 그리고 아테네와 로마의 폐허들을 그림으로, 글로 기록해 나간다. 이 여행은 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하며, 그가 그린 6권의 크로키와 메모들은 그 이후 그의 건축행보에서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가 집필한 다양한 책에서 삽화로 등장하기도 하고, 어떤 그림들은 그의 건축에 대한 시각을 확연히 보여주기에 그를 설명하는데 꼭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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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폐허 유적에서 르코르뷔지에가 그린 크로키


이 장면에서 그는 자신이 걸음에 따라 기둥사이 사이로 움직이는 파르테논 신전을 보며 도시안에서의 건축과 관찰자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스위스 메이드 손목시계 장인이고 어머니는 음악가였던 르코르뷔지에는, 대부분의 유명 건축가들이 그렇듯 집이 좀 살았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는 그렇게 돈을 써가며 여행을 하고, 프랑스에서는 또 다른 잉여생활, 독서를 한다. 그의 건축이론을 완성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결국 건축학교나 미술학교 건축과에서의 교육이 아니라, 그가 혼자 잉여잉여하게 즐겼던 독서와 여행인 것이다. 애초에 미술학교를 다닌 그는 그림에도 취미가 있어, 순수주의(Purisme)라는 포스트 큐비즘 미술 이론을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순수주의 그림들은, 설령 미술사에서는 그닥 중요하지 않은 큐비즘 언저리의 이론일지 몰라도, 건축사에서 르코르뷔지에를 이해하기에 이보다 더 쉽고 중요한 이미지가 없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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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의 정물화

공간의 깊이를 무시하고 하나의 가상의 면에 모든 사물들을 투영시켜 놓은 그림이다.

이 그림과 그의 건축의 연관성은 2부에서.


여기까지 정도가 르코르뷔지에의 성장기 되겠다. 아마도 앞으로 다른 건축가들을 이야기 할 때는 이런 성장기를 주저리 주저리 남기지 않아도 될 터이다. 왜냐면 그 이후 세대의 건축가들은 잘 만들어진 건축학교에서 수학을 해도 충분히 건축가로서 세상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도 사실 코르뷰가 했던 여행, 독서, 그림, 조각 정도를 벗어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여행이라는 것도 르코르뷔지에가 동방여행이라고 이름 붙여 뽀대나 보이긴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들에게도 여행이란 것은 건축가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었다. 특히 르네상스시대에 그들이 ‘재생(Renaissance)’시키고 싶었던 건축이 폐허로나마 여전히 남아있던 로마여행은 당시 건축가들에겐 엄청난 선망의 대상이었고, 프랑스에서는 국가적인 공모전을 열어 일등상으로 로마 여행을 보내주기도 하고 그랬다.


다시 르코르뷔지에가 뭐 미술가, 조각가 작가 어쩌구 저쩌구라는 것이 개인적으로 좀 잘못된 설명이라고 생각한 그 지점으로 돌아가면, ‘건축가’라는 것이 어떤 직업인가에 대해서 좀 더 명확히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건축가라는 사람은 공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어느 정도 쌓여 있어야만 건축을 행위로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콘크리트를 붓거나, 그 전에 제도를 하거나 하는 모든 일들 이전에 필히 존재하는 건축이라는 요소는, 이런 다양한 지식과 경험의 덩어리일 뿐인 것이다. 1987년생 르코르뷔지에 선생이 저 과정을 어느 정도 거쳤을 때는 1916년이었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이제 건물을 한 채 지어볼까 말까하고, 그가 그때 엄마한테 땡깡 펴서 지었을 게 뻔해 보이는 ‘엄마아빠 집’은 그닥 주목도 못 받았다. 그는 전혀 천재가 아닌 것이다. 모든 건축가들이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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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의 첫 작품, Villa Jeanneret-Perret

외관으로 봐서는 이후 그의 작품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으나 그의 건축이론이 이미 상당부분 녹아들어 있다.  


사실 르코르뷔지에는 2부작으로 할려고 했는데, 분량조절에 완벽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조만간에 아마도 3부작이 될 르코르뷔지에 편 2부로 돌아오겠다.






독투불패 ParisBoucher

트위터 : @ddesiree6779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