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5. 08. 28. 금요일

정치독투 어제도술





 

편집부 주

 

 

아래 글은 정치독투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독투불패(독자투고 게시판 및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3번 마빡에 올라가면 필진으로 자동 등록됩니다.

 





얼마 전 중국의 <인민일보>에 재미난 기사가 실렸다. 중국에서도 찜통더위로 소문난 우한에서 유학중인 아프리카 콩고 출신의 학생들이 더위를 못 견뎌 비싼 항공료를 감수하고 여름방학 동안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이었다.


보기에는 재미난 기사지만, 사정을 알고 나면 재미보단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우한대학의 중국인 지질학 교수 말에 따르면 아프리카는 고원 지대가 많아서 여름이라도 밤에는 서늘한 곳이 많으며, 콩고만 하더라도 밤에는 15도로 내려간다고 한다. 많은 아프리카 학생들이 밤에도 30도 밑으로 내려갈 줄 모르는 중국의 여름을 견디기 힘든 이유다.


흔히 더울 거라고 생각하는 아프리카에 낮에도 밤에도 날씨가 좋기로 유명한 나라가 있다. 바로 홍해에 접한 동아프리카의 소국인 ‘에리트레아’다. 에리트레아는 11만km2의 국토 면적과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한국(10만km2)보다 약간 넓은 이 나라의 인구는 600만이 조금 넘는다. 대충 한국의 10분의 1이다.


Untitled-1.jpg  


에리트레아도 사막 지대는 덥지만, 해발 2500m에 위치한 수도 아스마라는 연중 평균 기온이 15도에 불과할 정도로 쾌적한 날씨를 자랑한다. 홍해 바닷가까지는 불과 100km 떨어져있는데 낙차가 2500m라서 산악자전거 선수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항구도시 마사와와 수도 아스마라를 잇는 철도는 19세기 말 에리트레아를 식민지로 차지한 이탈리아가 1911년에 건설했다. 깎아지른 벼랑을 잇는 협궤 증기열차는 아직도 다니고 있는데, 여적 증기열차를 굴릴 만큼 가난하기 때문이다.


증기열차.jpg


에리트레아는 2차 대전 중이던 1941년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전후에는 인접국 에티오피아의 관리 하에 들어갔다. 에티오피아는 일방적으로 에리트레아를 자국 연방으로 편입했고, 에리트레아는 1961년 무장항쟁에 들어가 1993년 독립을 쟁취했다. 주변 나라들의 중재를 거친 전쟁 종결이 아니라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까지 진격한 완승이었다. 하지만 에리트레아는 면적이 에리트레아의 10배나 되고 인구는 20배에 가까운 에티오피아를 차지하기 위해서 싸운 게 아니라 독립국의 지위를 얻기 위해 싸웠던 것이라, 전승국이었음에도 국가 재건을 위해 바로 철수했다.


에리트레아가 독립한 1993년은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이 무너진 뒤라 자본주의 체제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생각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오랜 무력 항쟁 끝에 백인 정권을 무너뜨린 넬슨 만델라가 오랫동안 사회주의자로서의 소신을 갖고 있었음에도 백인의 경제적 기득권을 인정한 것도 사회주의는 끝났다는 비관론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무일푼이었던 에리트레아가 외국 자본을 적극 유치하여 빨리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유혹을 느낄 만했다.


아스마라2.jpg

수도 아스마라의 모습


그러나 에리트레아는 철도를 포함하여 나라의 중요한 기간 시설은 모두 국유화했다. 독립운동 중에 에티오피아가 초토화시킨 협궤 열차도 IMF나 세계은행에 기대지 않고 (시간은 걸렸어도) 자력으로 복구했다. 덕분에 에리트레아는 외채가 거의 없다.


거기다 툭하면 기근이 들어 식량값이 폭등하고 아사자가 속출하는 이웃 에티오피아와 달리 에리트레아는 독립 직후부터 곳곳에 작은 저수지를 만드는 등 식량 안보를 최우선으로 삼은 덕분에 배곯는 사람이 없다. 돈이 없어서 학교에 못 가는 아이도 없고 거지도 없다. 길거리엔 먼지 하나 없다. 수도 아스마라는 밤이면 카페에 앉아 오붓하게 가족·친구와 외식을 즐기는 시민들로 바글거린다.


19496130.jpg

아스마라의 카페


물론 에리트레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학교도 더 지어야 하고, 병원도 더 지어야 하고, 천혜의 바다 자원을 이용해 양식장도 더 넓혀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골고루 풍요를 누릴 수 있다. 아름다운 이탈리아풍 건물들도 어서 복원해서 관광 자원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에티오피아의 침공이 에리트레아의 발목을 잡는다.


에티오피아는 수시로 에리트레아의 국경선을 침공하여 도발을 한다. 에티오피아는 전쟁을 벌일 만큼 여유 있는 나라가 아니다. 한 해에 무역적자가 100억 달러가 넘고, 관광과 커피 수출 말고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다.


그래서 에티오피아의 전비는 미국과 서방으로부터 나온다. 에리트레아에는 이렇다 할 자원도 없는데 왜 미국은 에티오피아를 앞세워 무너뜨리려고 기를 쓰는 것일까? 아프리카에 서방에게 빚을 내지 않고 자력으로 독립국으로 번영을 구가하는 나라가 생기면, ‘자본주의 체제 말고 대안은 없다’는 공갈 협박이 먹혀들지 않을까봐 두려워서다. 그래서 인권이 어떻다, 일당 독재의 압제 밑에서 난민이 발생하는 아프리카의 북한 같은 나라다, 하면서 변변한 자원 하나 없는 에리트레아의 경제에 제재를 가한다.


에리트레아 출신 난민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거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에리트레아의 인접국인 수단,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출신 난민이 자신을 에리트레아 출신이라고 속이는 경우다. 에리트레아가 미국의 주적으로 찍힌 상태라 에리트레아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피난을 왔다고 하면 난민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덴마크 이민국은 에리트레아 현지를 조사한 뒤 ‘에리트레아에 경제 난민은 있어도 정치 난민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htm_201310140485140104011.jpg

<중앙일보>


둘째, 에리트레아는 징병제고 복무 기간은 18개월이지만 에티오피아가 자꾸 도발을 하면 상황에 따라 복무 기간이 늘어나기도 한다. 이런 것을 불만스러워하는 젊은이는 어느 나라에나 있고, 에리트레아 젊은이 중에서도 이런 불만을 품은 사람이 많다. 유럽에 가면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데 내가 왜 군대에 끌려가서 썩어야 하나 불만인 것이다. (에리트레아에선 여자도 군 복무를 한다)


에리트레아는 소국이지만 군대에 복무하는 국민의 비율이 북한 다음으로 높은 나라다. 에리트레아가 국가 재건을 위해 할 일이 산적한 상황에서 상비군을 무리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오직 하나, 미국을 등에 업은 에티오피아의 도발 때문이다. 하지만 BBC를 포함해 서방 언론은 이런 배경은 무시한 채 에리트레아를 3류 국가로 몰아간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에티오피아는 자국민을 굶겨가면서 사우디·인도·미국 등 외국에 옥토를 헐값에 팔아넘기는 부패한 정치인과 군인이 축재하는 나라지만, 에리트레아는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이 대통령으로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외국 광산회사는 여러 아프리카 정부에 4%정도의 로열티를 내지만 에리트레아에는 40%의 로열티를 낸다. 에리트레아 대통령은 허름한 집에서 살고 자식들도 모두 군대에 간다. 에티오피아가 국토를 팔아 받은 돈은 부패한 에티오피아 특권층의 호주머니로 가고 에티오피아 다수 국민은 땅에서 쫓겨나 빈민가에서 죽어가지만, 에리트레아 정부는 금광에서 얻은 수익은 고스란히 에리트레아 국민의 미래에 투자한다.


대통려.jpg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에리트레아 대통령


구통령.jpg
무장항쟁 시절의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미국과 서방은 전처럼 촌스럽게 직접 그 나라를 식민지로 통치하며 군림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치·경제·군사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마름 나라’를 곳곳에 두고 이들을 앞세워 마음에 안 드는 나라에 집적거린다. 동아프리카에서는 에티오피아, 중앙아프리카에서는 우간다, 서아프리카에서는 나이지리아, 중남미에서는 콜롬비아가 그런 마름 역할을 한다. 에티오피아는 에리트레아, 우간다는 콩고, 나이지리아는 시에라리온, 콜롬비아는 베네주엘라에 집적거린다. 그러나 서방 언론은 가해자를 피해자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다.


미국의 행동은 한반도에서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시야에 두고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의 정체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은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상상에 맡긴다.







정치독투 어제도술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