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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07. 수요일

독투불패 ParisBoucher







편집부 주


이 글은 문화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지난 기사


[르코르뷔지에 1]


 



유명한 사람이 왜 유명한 지 모르는 것은 참으로 짜증나는 일이다. 일단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게 있는 것 같아서 그렇고, 그의 유명세에 내가 보태준 게 있는 것 같은데 돌아오는 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저번회에 르코르뷔지에를 소개할 때 유명하단 말 말고 다른 수식어를 붙이지 않은 이유는 열분들을 짜증나게 하려고... 는 아니고, 모든 인간이 그렇듯, 많은 건축가가 그렇듯 그도 다양한 면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 평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두겠다. 그럼 오늘은 그가 어떤 건축가였는지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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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명해졌는지 그닥 알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1. 르코르뷔지에가 중요한 건축가인 이유 


르코르뷔지에가 한 세기를 걸쳐 연구되고, 찬양 받고, 씹히는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굳이 꼽아보라고 한다면, 그가 20세기 초중반의 시류를 생산하고 이끌었던 ‘모더니즘’의 가장 중요한 이론 건축가이기 때문이다. 지난 프롤로그에서 설명했듯이 건축가는 ‘공간에 대한 일반적 전문 기술’을 쌓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해야한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대부분 경험(직접 경험이나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일 것이다. 보통의 건축가가 그런 경험에서 필요한 부분을 찾아 꺼내어 건물을 설계한다면, 이론 건축가들은 그런 경험을 사상적으로 구체화시킨다. 건축가인데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입을 터는 것이다. 이론 건축가와 그냥 건축가를 칼같이 나눌 수도 없고, 어떤 건축가던지 어느 정도는 자기의 건축세계를 꾸려 나가기 때문에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않을 뿐 일정부분 이론 건축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머릿속에 건물을 짓는 것보다 실제로 짓는 것이 수만 배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기에 머릿속에서 다양한 건축이론을 쌓아만 놓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들을 ‘이론 건축가’라는 이름으로 통칭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르코르뷔지에 같은 건축가가 대단한 것은, 첫째로 그렇게 많은 작업을 실제로 진행하면서도 세상에 굵직굵직한 이론들을 선보였기 때문이며, 그것을 다시 자신의 작품에 투영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고, 둘째로는 그 이론과 작품들이 당시 시대상황에서 건축을 한 걸음 진보시키는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그의 대단한 점은 그냥 보기에 아름다운 작품이나 뛰어난 이론을 확립하여 책으로 써내서가 아니라, 그걸 둘 다 해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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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주지만 특별함이 조형미에 멈추고 건축 공간 전반으로 뻗어나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아름다워도 적어도 건축사에는 중요한 건축으로 남기 힘들다. 사진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카사밀라(Casa Milla)의 옥상. (사진:Serge Montpetit)


그는 대단한 동시에 유명하다. 이름을 날린다는 것 자체가 능력이 되는 사회에서, 유명세와 함께 뛰어난 능력을 갖기란, 아니 그 능력을 유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우리는 그 밸런스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을 굳이 한 명 찾아서 짤방으로 남기기도 귀찮을 정도로 자주 접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는 둘 다 해냈다. 그는 왜 죽은 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우리 귀얹어리에 남아있을 정도로 유명한 것인가? 그것은 그가 건축가인 동시에 도시 건축가, 혹은 도시 이론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집 한두 채 지으면 많아야 열 명 정도에게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도시 건축을 한다면 한 방에 수만, 수십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프로젝트의 수장들에게 이론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영향을 끼쳐온 인물이라 할 수 있으니 유명한 것이 당연할 것이다.


‘건축가’로서의 르코르뷔지에와 ‘도시 건축가’로서의 르코르뷔지에를 완전히 분리시켜 놓고 보긴 힘들지만, 먼저 ‘건축가’로서의 르코르뷔지에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도시건축가’로서의 그를 좀더 깊이 이해하는 데 편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엔 건축가, 혹은 이론 건축가로서의 그를 먼저 훓어 보기로 하자.


아까 살짝 언급했던 것처럼 그는 모더니스트들의 선두 주자, 아니 대장이다. 모더니즘은 조금 특이한 단어라 할 수 있다. 'Moderne'이란 단어 자체가 의미 하는 것은 ‘현대’, 시제상으론 그냥 ‘지금’을 뜻하는데 거기다 이즘을 붙혀 무슨 주의인 것처럼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후로 현재의 작품들을 지칭하는 형용사로 더이상 이 '지금(모던)'을 못 쓰고 다른 '지금(꽁땅뽀랑 contemporain)'을 써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모더니즘이란 것은 소셜리즘이나 코뮤니즘같은 다른 주의들과는 달리 그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재밌는 것은 이 모더니즘이 시대순으로 보자면 퓨처리즘(Futurisme, 미래주의 정도로 해석하자) 다음에 위치한 다는 것이다. 미래가 지나가고 나서야 현대가 오다니, 뭔가 매우 철학적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냥 그냥 지들끼리 그렇게 이름붙인 것이다.


하지만 그 이름들, 잘 붙였다. 그 둘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작명을 했다는 것은 그들의 이론을 조금만 살펴보면 금방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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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리즘 작품 하나. Velocité d'un motocycle - Giacomo BALLA


퓨처리즘이나 모더니즘이나 사실 다 비슷한 시대상황에서 탄생한 미술적, 문화적, 더 나아가서 사회적인 흐름이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의 유럽은 산업화가 상당부분 진행되어 도시에 사람이 미어 터져나가기 시작했고, 한 번도 그렇게 많은 인구를 품어본 적이 없는 도시는 망가지기 시작했으며,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거의 질서와 관습으로는 도시에서의 삶을 이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런 속에서 과학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고 있었다. 인생의 초반을 말타기나 보면서 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시속 100키로가 넘는 속도의 자동차 경주를 보게 된 것이다. 기술의 급작스러운 진보와 생활의 변화, 이런 상황에서 혈기 넘치는 십대 후반,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모여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살아야 한다, 낡은 것은 모두 버리자!’라고 선언하며 나선 것이 퓨처리즘이다. 심지어 이들은 르피가로(Le Figaro)에 1909년 2월에 실은 '퓨처리즘 선언(Futurisme manifesto)'에서 자신들도 나이가 들면 늙고 진보할 수 없으니 알아서 사라져주마(물론 실제로 사라지진 않았다)라는 패기있는 논리를 펼치며 지금까지 있던 모든 관습에 대한 거부를 선언한다. 


르코르뷔지에는 퓨처리스트는 아니었지만 그의 나이 스물 둘에 나온 이 젊고 매력적인 예술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퓨처리즘은 그가 살던 시대의 산물이었고, 르코르뷔지에 자신이 앞으로 할 건축도 마찬가지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시대적 상황, 퓨처리즘과 같은 새로 들끓기 시작하는 문화시류, 점점 망가져만 가는 유럽 대도시들. 특히 파리에서 르코르뷔지에는 자신의 건축 이론을 만들어 가기 시작한다. 게다가 건설기술은 점점 발전하기만 하여, 상대적으로 잘 부서지는 돌덩어리가 아닌, 철근콘크리트라는 여러가지 면에서 강력한 재료를 건축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르코르뷔지에가 건축을 시작한 시기는 과거의 것들이 너무 부질없어진, 지금 새로 나온 것들을 현재에 적용시키기도 바쁜 시기였던 것이다. 과거가 아닌 ‘현대’의 것을 지금 즉시 적용 시킨다, 이것이 지금은 과거가 되어버린 20세기 초 모더니즘의 기본 마인드였을 것이다. 그것이 건축 이론이건, 생활양식이건, 건설 자재이건  간에.


르코르뷔지에가 당시의 현대를 살면서 이루어 놓은 건축이론을 알고 싶다면 그의 저서 <건축을 향하여(Vers une architecture)>를 읽거나 당시 그의 작품 빌라 사부아(Villa Savoye)나 빌라 라호슈(Villa La Roche)를 훓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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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 une architecture 초판 커버

물론 한글 번역판도 절찬리 판매중이다. 

절찬리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2.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이론과 빌라 사부아


그의 건축개념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순 없지만, 아마도 가장 유명하고 상징적인 문구는 ‘집은 주거하는 기계(Une maison est une machine à habiter:집은 주거하는 기계다)’일 것이다. 얼핏 보면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공간을 기계에 비교해 좀 차갑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이 문구에는, 그가 건축에 대해 생각한 여러가지 것들이 함축적으로 들어있다. 일단 그가 생각한 기계가 무엇인지 한 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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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계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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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계를 예로 들었다.


그가 <건축을 향하여>에서 자주 등장시키는 기계는 컨베이어벨트에서 쉴 틈 없이 일하는 로봇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머쉰이라고 부르는 레이싱 카나 비행기다. 그 이유도 필자 같은 레이싱 팬들이 레이싱 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최대한의 속도를 내기 위해 조각된 차체와 그 안에 빼곡히 들어가 필요한만큼 설계된대로 작동하는 부품들. 그는 건축도 이런 레이싱 카를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 모든 현대적 인간에게는 기계성이 있다. 기계의 느낌은 일상생활로 부터 일어나 존재한다. (...) 기계성은 그 자체로 경제적인 선택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 Dans tout homme moderne, il y a une mécanique. Le sentiment mécanique existe motivé par l’activité quotidienne. … La mécanique porte en soi le facteur d’économie qui sélectionne. Vers une architecture, Le Corbusier, p.100, Edition Flammarion»


그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일상생활에서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크기의 방,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 깨끗한 화장실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런 필요들은 각각의 방에 특정한 기능을 부여한다. 그런 역할들을 가진 방들은, 레이싱 카의 부품들처럼 서로 상호작용하며 잘 작동해야 하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집’의 모양은 그런 방들의 모임을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따라서 외적으로 우리가 볼 때, 집은 인위적인 데코레이션이 되어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매끈한 레이싱 카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처럼,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기능을 하는 ‘공간’만으로 표현되어 있는 물건, 그것이 르코르뷔지에가 생각한 집인 것이다. 


퓨처리즘을 설명할 때 나왔던 시대상황, 즉 사람이 몰려들어 도시가 미어터져 기능이 마비되어버린 파리의 건축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엔 조각 같은 그 건물들을 생각해보면 르코르뷔지에가 정확히 대칭점에 있는 새로운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르코르뷔지에가 말하는 현대적 인간은 결국 ‘도시인’이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기능은 당시의 건축이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하고 있던 것들이다. 상황이 이럼에도 여전히 건물의 파사드에만 매달려있던 건축가들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새로운 건축의 가능성을 기능적, 형태적으로 제시한 작품이 <건축을 향하여>이며 이것이 르코르뷔지에의 가장 중요한 건축이론인 것이다.


이런 건축이론을 확립하여 몇 권의 책을 낸 이후인 1928년, 르코르뷔지에는 아마도 현대건축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 확실한 빌라 사부아(Villa Savoye)의 설계를 시작한다.

 

Villa Savoye, Poissy Photo - Paul Koslowski.jpg

빌라사부아 전경.

파리 상라자르 역에서 기차타고 한 30분이면 가니,

파리를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짬내서 함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진 : Paul Koslowski


대부분의 유명한 건축, 특히 유명한 집들이 그렇듯 유명하긴 하나 실제로는 현실적인 이유(물이 샌다거나, 우풍이 세다거나)로 살기가 매우 힘들었고, 건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으로서의 역할보다는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으로서 남게 되어버린 빌라 사부아는, 흔히 르코르뷔지에가 제창한 ‘현대건축의 5가지 요소’가 처음으로 완벽하게 구현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들을 나열하자면 필로티(실제 건물은 2층부터 시작하고 1층은 기둥만 있는 비어있는 공간이다. 이 기둥과 빈 공간을 합쳐 필로티라고 부른다),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가늘고 긴 창문, 옥상정원인데,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필로티와 자유로운 평면 이 두 가지면 나머지는 모두 설명이 되고, 하나로 굳이 줄이라면 필로티만으로도 모두 설명이 가능한 것 같다. 


물론 다섯 가지 요소 각자가 중요한 역할을 하긴 하지만 필로티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이 모든 것을 필로티라는 건설방식이 아니면 실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런 점은 르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가 그냥 책상머리에 앉아서 되는대로 상상만하는 이론 건축가는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는 당시에 발전하고 있던 철근콘크리트 기술의 가능성에 대해 연구했고, 그 결실로 ‘얇은 기둥 몇개로 건물을 통째로 땅에서 띄워버리는 것이 가능하다’라는 생각에 도달했으며, 그것을 건축에 실현시킨 것이다. 지금도 얼마 간에 한 번씩 한국 티비에도 나오는 파리의 옛 건축, 혹은 유럽의 건축양식을 보면 그게 고딕이건, 네오 클래식이건, 매너리즘이건 뭐던 간에 모두 무거운 돌덩이의 두꺼운(약 80센티에서 1미터가 되는) 벽들로 건물을 쌓아 올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철근콘크리트나 강철을 사용하기 시작한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대부분의 건축들도 두께는 조금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벽으로 건물을 지었다. 이런 점은 20세기 초의 뉴욕의 마천루들을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는데, 건물의 구조는 얇은 강철뼈대인데 지어져 있는 건물을 보면 빈틈없는 벽 이외에 밖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없다. 즉, 벽들이 지탱하는 무게는 상관 없이 그냥 내부를 가리기 위해서 뼈대에 붙어있는 형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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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공사중.

외부마감공사가 끝나지 않은 상단부를 보면 구조체 자체에는 벽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자 미상


르코르뷔지에는 아까 말했듯이 필요에 의한 ‘기능’을 하지 않는 것은 건축에서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르코르뷔지에의 집 1층 공간의 역할은 차고나 하녀방 같은, 부차적인 공간이었기에 1층이 윗층들처럼 벽에 둘려 쌓여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즉, 2층에 있는 건물을 지탱하지도 않고 별다른 기능도 없는 '1층의 벽'은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1층에는 얇은 기둥들만 남았고 나머지 공간은 비어있는 공간이 되었으며, 이것이 필로티가 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밌는 것은 그가 ‘기둥’의 아이디어를 어디서 가져왔을까 하는 것이다. 1편에서 보았듯이 르코르뷔지에는 동방여행에서 기둥사이의 파르테논을 그린 적이 있다. 그 그림은 <건축을 향하여>에 실려 있기도 하다. 한평생 벽의 건축에서 살아왔던 그가 그리스에서 기둥의 건축을 보며 느꼈던 감정이 필로티라는 아이디어에 담겨 있는 것 같지 않나. 사실 우리도 기둥 건축에 상당히 친숙한 민족이다. 한옥을 잘 뜯어보면 르코르뷔지에가 생각했던 현대건축의 많은 요소들이 그 안에 상당히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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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낙선재.

기본 골조인 기둥 사이에 벽이 있는지 없는지, 창문인지 문인지가

공간의 쓰임새와 모양을 결정하는 한옥과 필로티가 중심이 되는 모더니즘 건축은 닮은 점이 많다.


현대건축의 5가지 요소가 만들어지는데 물질적으로 필요한 기술이 필로티라면, 그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요소는 자유로운 평면(Plan libre)이다. 빌라 사부아는 총 3층으로 건설되어 있고 그 중 2층에 대부분의 주거공간이 들어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오직 필로티, 즉 얇은 기둥의 구조체로 지탱되어 있다. 따라서 내부의 벽은 하중에서 완전히 자유로워 질 수 있어서 윗층 벽의 위치와 아랫층 벽의 위치가 전혀 달라도 구조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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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사부아 평면. 

왼쪽이 1층 오른쪽이 2층이다. 

두꺼운 검은 선으로 표현되어 있는 벽이 1층과 2층에서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

기본 골조인 기둥들은 위아래에 거의 반복되서 나타나고 있다.


자유로운 평면에서의 자유는, 단순히 지 꼴리는 대로 평면을 그릴 수 있다는 자유보다는, '벽의 하중에 대한 자유'에서 오는, 지 꼴리는 대로 평면을 그릴 수 있는 자유다. 이런 구조적 가능성을 깨달은 르코르뷔지에는 그 위에 자신의 건축이론, 즉 ‘기능이 형태를 빚는다’는 원리를 적용시켜 빌라 사부아를 건축한 것이다. 거실에는 많은 빛이 들어와야 하므로 최대한 큰 창문을 내야하고(긴 창문), 정원은 거실에 연결된 바깥공간인데 거실이 2층에 위치하므로 정원도 위로 올라와야 하며(옥상정원), 건물의 입면은 내부 공간의 필요에 따라서 열리고 닫힘이 결정되어야 한다(자유로운 입면)는 게 그것들이다.


이외에도 ‘건축적 산책(Promenade architecturale, 건물 내부에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공간적 변화를 체험하는 긴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집 중심부를 가로지르며 올라가는 램프(rampe)를 통해 만들거나, 집안의 작은 인테리어들(가구나 욕조 같은 것들), 필로티로 생긴 공간을 차고로 활용(건축에 ‘자동차’의 중요성을 거의 처음으로 적용시킨 것이다. 오늘날 많은 고층건물들은 주차공간의 크기에 따라 기둥 사이사이의 넓이가 정해진다)하는 것처럼 자잘한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이론들이 전부 적용되어 있기에 빌라사부아가 그렇게나 중요한 건물이 되겠다. 


건물주인 사부아(Savoye) 가족은 정작 이 집을 십여 년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1931년에 완공되었지만, 2차대전이 곧 발발하여 그 이후에는 그냥 부서지지만 않고 남아 있다가, 전쟁 후에 역사적 기념물(Monument historique)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관리되고 있다. 


르코르뷔지에는 이 외에도 많은 실험적인 집들을 남겼고, 아예 실험용 집을 짓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그의 건축 역량을 키워나갔고 건축이론도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도시건축에도 손을 대게 되는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과 ‘도시건축가’로서의 르코르뷔지에는 다음편에 다루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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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리 누보 전시장의 빌라(Pavillon l'Esprit nouveau)

에스프리 누보(새로운 정신)는 르코르뷔지에가 창간한 잡지이름이며

이후 상당기간 동안 르코르뷔지에가 하는 활동들의 주체가 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 빌라는 전시를 위해 지어졌다 철거되는 완전한 이론 작품이다.1928년 작.



3.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아름다움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집은 주거하는 기계’라고 까지 하는 기능주의적인 그의 건축이론과 달리 그의 건축은 상당히 다양한 스팩트럼을 갖고 있고, 기계의 기능미가 아닌 조각품의 시적 아름다움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이런 성질은 그의 글과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건축을 향하여>의 한 문구를 읽고 1부에서 봤던 퓨리스트(puriste, 순수주의) 화가로서의 르코르뷔지에의 그림을 다시 살펴보자.

 

« 명확하게 구성하고, 어떠한 단위를 사용하여 작품에 활기를 불어 넣고, 그 작품에 근본적인 양식과 성격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정신의 순수한 창작이다. : Nettement formuler, animer d’une unité l’oeuvre, lui donner une attitude fondamentale, un caractère: pure création de l’esprit. Vers une architecture, Le Corbusier, p.175, Edition Flammar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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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인 빌라 라호슈(Villa La Roche)의 현관 홀이다.

이 건물은 파리 16구에 있으니 파리를 여행할 기회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쉽게 들릴 수 있다.


빌라 사부아보다 8년 앞서 완공된 이 건물에도 르코르뷔지에가 제창한 현대건축의 5가지 요소 중 몇몇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 사진에서 필자가 보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간의 물질적 아름다움이다. 계단과 복도의 난간, 벽과 높은 천장, 그리고 입구 문 위로 크게 나 있는 큰 창문에 둘러 쌓여 있는 이 공간은, 단순히 현관 홀이라고 하기엔 뛰어난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이 공간은 각 방들을 연결하는 복도, 주방 복도, 서재, 계단 등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다양한 공간에서 보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것은 저 다양한 공간들에서의 시선이 교차되는 공간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빌라 라호슈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방과 부엌이 있는 건물과 집주인이 그림을 수집해 모아놓은 갤러리/서재 건물이 그것들이다. 현관 홀 공간은 이 둘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데, 1층은 현관 홀이지만 2층부터는 복도, 계단, 그리고 두 개의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공간을 연결하는 다리(passage)가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위에서 설명한 ‘여러가지 시선이 교차’하면서도 ‘조형미’가 돋보이는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 지점이 르코르뷔지에를 정말 뛰어난 건축가로 만든 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건축이론을 과학적으로 정립해고 표현할 줄 알았을 뿐 아니라 그 이론을 통해 어떠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까지 성공한 건축가였다. 물론 그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가로 만든 것은 그가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간 여러 건축이론들 이지만, 그가 그 이론들을 ‘건축물’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표현할 때는 자신만의 특수한 감성을 담아 낼 줄 알았던 것이다.


그를 뛰어난 건축가에서 프랑스를 뒤흔든 건축가로까지 불리게 한 요소는 그렇담 무엇일까. 그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그의 퓨리즘 그림을 봐야한다. 이 그림은 1부에서 소개한대로 공간의 깊이를 무시하고 하나의 평면에 다양한 사물을 실제 크기로 그렸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그림은 유화로 그려놓긴 했지만 사실 건축에서 흔히 쓰이는 제도방식인 ‘액소노메트리(Axonométrie)’와 별반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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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소노메트리(는 영어식 발음이고 불어에서는 악소노메트리라고 읽는다. 이런 경우에는 한국 건축가들에게 더 친숙한 발음으로 쓰겠다)는 공간을 평면이나 입면처럼 2D가 아닌 3D로 보여주는 제도방식이다. 액소노메트리의 특징은 모든 선을 치수 그대로 그리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가 눈으로 보는 공간과는 다르게 보이지만,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없는 곳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특이한 형식의 제도방식이다.


그에 비해 투시도(Perspective)는 하나의 점으로 모든 선들이 모이는 방식을 쓰기 때문에 우리의 눈이 보는 것과 상당히 유사하게 공간을 표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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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의 투시도 크로키. 

대충 보이는대로 그린 것 같지만 이런 투시도는 

크로키라도 선 하나하나가 계산되어서 그러져 있는, 일종의 도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건축가는 이를 통해서 실제로 건설하거나 모형을 만들지 않더라도 

도면만 가지고 공간이 어떤 모양으로 생길지 알 수 있다.


이 투시도, 특히 1소점투시도는 한 네덜란드 화가가 르네상스시대에 개발한 기법인데, 그 후 건축에서 아주 중요한 표현방식으로 쓰였고, 건축이나 도시의 구성 자체가 이런 투시도에 따라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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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오페라 대로(Avenue de l'Opéra)

대로를 중심으로 모든 건물들이 테라스 난간선, 지붕선, 대로에 대비한 건물의 위치 등을 이용해

맨 끝의 오페라로 뻗어나가는 축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 Alessio Bragadini

 

이런 건축과 도시의 특징은 관찰자가 하나의 축 위에서 한 방향 만을 바라보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유럽의 건축가들은 이런 투시도식 건축을 해왔다. 그러는 와중에 르코르뷔지에는 자신의 건축에 액소노메트리적 요소를 이용한 것이다. 꼭 한 곳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건축이 아니라,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계속 다른 모습들이 보이는 그런 변화가 있는 건축을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시점’에 따른 풍경의 변화는 우리 한옥에서는 흔히 쓰이는 건축요소이기도 하다.(필자가 괜히 모더니즘 건축이 한옥과 비슷하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요소를 우리는 1부에서 르코르뷔지에의 파르테논 크로키를 통해 이미 보기도 했다.


2부에 걸쳐서 살펴봤듯이 르코르뷔지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건축이론을 쌓고, 그것을 하나의 건축작품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성공한 건축가이며, 또한 구시대의 발상을 뒤엎은 진보적인 건축가이기도 했다. 르코르뷔지에는 이 글에서 설명한 몇 가지 이론 이외에도 인간의 신체를 이용한 치수체계 ‘모듈러(Modulor)’나 재료를 새롭게 분석한 ‘브뤼탈리즘(Brutalisme: Brut은 ‘재료의 있는 그대로의 특성’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국제주의(Internationalisme)등 다양한 이론을 만들었는데, 그 뿌리는 결국 우리가 이번에 훑어 본 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건축가로서의 르코르뷔지에는 방금 말한 것처럼 이런 이론들을 자신의 방식, 즉 엑소노메트리적 방식으로 자신의 특정한 감성과 함께 건축에 녹여 넣었다. 그렇다면 그의 도시건축도 그렇게 성공적이었을까? 3부작 르코르뷔지에의 마지막 편이 될 다음 편에선 그의 도시건축과 그 파장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Ps. 제 글에 관심을 갖고 읽어주시는 여러분, 정말 감사 드립니다. 개인적으로 꽤나 오랫동안 주저했던 글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생소한 용어들과 뛰어나지 않은 저의 글솜씨 때문에 쉽게 읽히지 않는 글이 될까 두렵습니다. 읽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귀찮으시겠지만 피드백을 부탁 드립니다. 앞으로 연재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독투불패 ParisBou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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