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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자위의 역사

2015-01-0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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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06.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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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의 역사 1


졸업 후 나름 밥벌이 하겠다고 선배의 소개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한 곳이 있었다. 사십 명 정도 되는 사원이 있는 꽤 큰 사무실이었다. 이 바닥에서는 큰 규모였지만 내가 들어간 지 일 년 만에 망해버렸다. 사무실에 있는 라꾸라꾸한 침대에서 잠도 자고, 기타 자질구레한 내 모든 세간살이가 있었는데, 직장도 잃고, 집도 잃었다. 설상가상에 일 타 쌍피 당한 똥 같은 기분이었더랬다. 사장이 돈을 잘못 굴렸다더라. 이 새끼가 도박에 빠졌다더라. 그딴 소문이 돌았지만. 그래, 이제 와서 어쩌라고. 이미 똥 위에 자빠진 마당에 누가 날 밀었어 해봤자 뭐 어쩌라고.


나는 그 똥 위에서 꿈을 꾸었더랬다. 집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시간은 라면이나 스팸 쪼가리를 사러 갈 때가 전부였다. 통장 잔액를 확인하기가 발가벗고 밖을 돌아다니는 공포만큼 컸었다. 야동을 내려받고, 자위를 온종일 했었다. 그 와중에도 취향이란 게 있어서 일본 배우 두엇의 팬이 되었더랬다. 나츠메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여름. 나는 그때 여름이 필요했었다. 밖은 이미 가을이었고, 겨울이 오고 있었다.


회사가 망하기 전, 사무실에서 야근할 때면 나는 씨발 내가 노예야 욕을 하면서도 행복했다. 삼선 슬리퍼를 끌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것저것 만들어 볼 때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일 잘한다고 칭찬받는 머슴의 기분이랄까. 여름에 사무실의 에어컨이 고장 났던 적이 있었다. 수십 대의 컴퓨터에서 뿜어내는 열기에 트렁크 팬티를 입고 돌아다닐 때의 기분이란 덜렁거리는 고환을 자랑하는 당당한 수컷의 자신감이랄까. 아버지가 여름이면 집 안에서 트렁크 팬티를 입은 채 돌아다니는 이유를 이해할 수도 있었던 때였다.


'회사가 망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만약에' 이런 단어들을 붙잡고 나는 자위를 했다. 지난여름을 붙잡고 애무를 했고, 키스했고, 사정했다. 밤꽃 냄새가 진동하는 정액이 가득한 크리넥스를 변기에 흘려보내며, 나는 외롭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안마방이라는 곳에 갔었다. 십만 원 정도로 기억한다. 돈을 내고 여자를 기다렸다. 여자는 내가 지목한 여자와 달랐다.


"그 언니가 인기가 많아서요."



여자는 내가 질문하기 전에 대답했다. 살집이 있는 여자는 나를 벗기고, 씻겼다. 내 성기를 빨고, 콘돔을 씌우고, 삽입했다. 나는 순순히 사정했다. 또 다른 자위를 하고 나온 거리는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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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 벨 링. 꺼져버려.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여자 아니야. 그런 이상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 여자친구가 전화를 받았다. 


"왜?"


전 여자친구가 여보세요 대신 물었다.


"잘 지내냐?"


내 입은 자기가 알아서 지껄였다.


"응"


"그냥 궁금해서."

   

"다시 전화하지마."

   

"알았어."

   

전화가 끊겼다. 웃음이 터졌다. 이제 끝이구나. 진짜 끝이구나. 헤어진 지 일 년도 더 됐는데. 나는 울었다. 일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머니."

   

"왜?"

   

"나 회사 잘렸어요. 회사가 망했고. 합병됐는데. 나는 잘렸어."

   

"무슨 말이냐."

   

"나 잘린 지 육 개월 됐어. 그렇다고."

   

"그랴? 돈은 있냐?"

   

"있어.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걱정하지마."

   

"그래. 집에 언제 올래?"

   

"안 가요. 내가 무슨 앱니까?"

   

"그래. 돈 떨어지면 꼭 전화해라."

   

"돈 있다니까요. 거 참. 알았어요. 먼저 끊어요. 건강하시고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면 좀 안 돼?" 헤어지기 전 여자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런 말을 했었다.


나는 그때 이제 다른 방식으로 자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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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의 역사 2


고속버스를 탈 때면 차 시간보다 항상 십분 정도 먼저부터 플랫폼에서 차를 기다린다. 여행의 느낌으로 설레서라기보다는 버스를 한 번 놓쳐본 기억 때문이다.


조근조근한 말투에 하얀 종아리. 연관성이 없는 별개의 특성이 매력으로 보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처럼, 나는 외로워서 내 안에서 분열하고 자가 생식을 하며 미쳐가고 있었다. 회사가 망했고, 정리해고를 당했다. 일 년 가까이 집 안에 틀어박혀 지냈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돌렸고, 기다렸다. 면접이 잡히는 날이면 세상을 다 가진듯이 기뻐했고, 떨어진 날이면 나는 쓸모없는 녀석이라며 술을 마셨고, 자학했고, 야동을 보며 자위를 했었다. 그나마 세상과 닿아있던 끈은 도서대여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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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카운터를 보던 여자는 싹싹했다. 손님을 보며 잘 웃었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고객 응대 방식이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외로운 인간에게 타인의 미소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나는 자위를 하던 중 여자의 미소가 떠올랐다. 더 이상 자위를 할 수 없었다. 대신 여자에게 말을 붙여보고 싶어졌을 뿐이었다.


여자에게 오늘 날씨가 좋네요. 인사를 건넸다. 더위 때문에 땀에 젖은 나는 그 말을 건네고 나서야 내가 왜 면접에서 떨어졌는지 이상하게 납득했다. 여자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렇네요. 하고 말했었다. 나는 여자의 차분한 말투가 초여름 더위에 젖기 시작한 내 겨드랑이에 부는 산들바람처럼 느껴졌다.


"하루키 좋아하시나 봐요?"


여자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별로요."


하루키가 우리나라 90년대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 문체의 영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친구놈이 말해서였을 뿐이었다. 만화도, 무협지도, 판타지도 지겨워 져서였기도 했다. 읽어보았지만, 단순하게 내 취향이 아니었다. 취향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능한 많은 레퍼런스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라기보다는, 그 친구가 그렇게 칭찬하는 것들을 깎아내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전투력은 빈약한 자존감의 결과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내가 왜 이런 이유를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느냐면, 여자의 표정이 그때 딱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여자는 아마도 하루키를 좋아했었나 보다 하고 나는 추정할 뿐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귀는 방법 중 첫 번째 단계는 유사성을 찾는 것이다. 거울을 보며 나도 그런데, 너도 그런데. 하는 그 첫 번째 계단에 걸려 있는 거울을 깨먹어버렸다. 하루키 이 개자슥.


삼 일 후에 책을 반납하러 갔지만, 여자는 카운터에 없었다. 어디가 아픈가, 무슨 일이 있나 하는 걱정에서 혹시 나 때문인가 하고 자신의 존재를 과대평가하는 짝사랑 특유의 망상에 빠지기도 했었다. 카운터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에게 여자의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괜히 내 마음이 들킬까 물어보지도 못하는 특유의 빙시 짓을 하며 마음만 졸였었다. 내 마음을 너무 졸인 나머지, 엿이 되기는커녕 홀라당 다 타버리는 한 달의 시간이 지난 후, 여자가 카운터에 서 있었다. 나는 여자에게 책을 내밀었다.


"많이 늦으셨네요. 연체금 만 오천 원 나오셨어요."


여자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웃음기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이미 마음만 홀라당 다 타버려서, 주인 찾은 강아지 마냥 꼬리를 흔들면서 여자 앞에 섰다.


"하루키 좋아하세요?


여자에게 물었다.


"네?"


"하루키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네에."


"왜 좋으세요?"


여자는 글쎄요. 하며 말끝을 흐렸다. 여자의 표정은 귀찮다고 쓰여있었다.


"저는 어때요?"


여자는 내 말에 뜨악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미쳐가고 있었다. 한 달여간의 고립은 인간을 완전히 미쳐버리게 하는 긴 시간이었다. 나는 카운터 옆에 비죽 튀어나온 여자의 종아리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저를 읽어보고 별로면 별로라고 해주시면 됩니다. 이유는 말해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기회는 한번 주십시오. 좋은 책이라고 과대광고는 하지 않습니다. 읽어 주시고 판단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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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는 면접관에게 나는 여자에게 전하지 못한 개소리를 지껄였다. 내 인턴 기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자는 고향에 내려갔다고 대여점 주인아주머니가 말했다. 왜 이리 남정네들이 찾아 싸는지. 주인아주머니가 말을 덧붙였다. 아주머니에게 혹시 그 여자가 사는 곳 주소나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전화번호도 바꿨는지. 없는 번호라고 그러던데. 고향은 청주래던가."

 

나는 청주행 차표를 끊었었다. 주소도 모르지만, 그냥 가고 싶었다. 그 이유는 여자가 글쎄요 하던 그런 마음. 가끔 바라보는 별 없는 밤하늘에 걸린 달이 여자의 종아리처럼 하얬다. 담배를 끄고 플랫폼으로 들어갔다. 차는 이미 떠났다. 일분밖에 늦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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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나타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