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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30. 화요일

아까이 소라









연말이 다가오면서 프랑스 언론에서는 한 해의 결산과 함께 내년부터 바뀌는 각종 요금체제에 대한 기사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우선 1월 1일자로 적용되는 파리 지역의 대중교통요금. 파리에서는 12월 31일 하루, 새해맞이를 축하하며 모든 대중교통 이용이 무료다. 그리고선 바로 그 다음날 요금이 인상된다. 한국과는 달리 그에 대한 각종 충돌은 적은 편이다. 그저, "또 올랐구만, 나쁜 놈들!"하고 마는 정도랄까. 그런데 파리 지역 대중교통요금 체제는 내년 9월부터 확 달라진다. 현재 체제에 대해서는 "프랑스라는 이름의 파라다이스" 9편에서 다룬 바 있으므로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간다. 파리 및 그 교외 지역은 파리를 기준으로 그 거리 등의 요건에 따라 5존까지 나뉘어져 있으며, 그 존에 따라 대중교통요금이 달라진다. 이 것을 2015년 9월부터 아예 통합하여 어디에서 어디까지 가든 동일한 요금을 받겠다는 것. 파리 안에서만 생활하는 이른바 기존 교통존(1-2존) 이용자들은 약간의 요금 인상을 감수해야 하지만 교외 지역에 사는 이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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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역의 교통존


대중교통 이용 거리가 각기 상이한데도 같은 요금을 적용한다니 빨갱이인가보다. 

나라를 해체시켜야 겠다.


달라지는 것은 또 있다. 최저임금이다. 《르 파리지앵》 12월 18일자 기사에 따르면 2015년 1월 1일자로 시간당 최저임금이 현재의 9.53유로(약 13,800원)에서 0.8% 인상된 9.61유로(약 14,000원)로 변경된다. 프랑스 법정 최고근무시간인 일주일에 35시간을 풀로 일한다 치면, 월급은 대략 1457.52유로(약 2,113,000원)가 된다. 물론 이는 세금을 제하기 전이다. 세금을 떼고 노동자의 통장에 고스란히 들어오는 돈은 1128유로(약 1,635,000원)다. 한국의 2015년 최저임금 시급이 5,580원이고, 법정 최고근무시간인 40시간을 적용하면 약 94만원 정도가 된다. 세금 떼기 전이다. 그나마도 온전케 받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잠시 한숨이 나간다. 게다가 프랑스는 파리지역의 물가가 비싼 것을 감안, 파리 지역의 노동자에 한하여 교통비의 반을 회사가 부담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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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OECD 국가의 최저임금 현황

한국은 시간당 5.30달러로 평균인 6.24달러를 밑돈다


최저임금을 최저생계비(약 216만원)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인상하다니 빨갱이인가보다. 

나라를 해체시켜야 겠다. 


하나 더 있다. 실업자 보조금(사회연대수입 RSA) 역시 지난 9월에 이어 2015년 1월 1일자로 또 한 번 인상된다. 혼자 사는 성인에 대한 보조금은 책임져야 하는 자녀의 수에 따라 무자녀 513.88유로(74만5천 원)/월, 자녀가 1명 있으면 770.82유로(111만 원), 2명 있으면 1079.14유로(156만원)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말씀. 이 실업자 보조금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조택보조금을 준다 그러니까 집세의 일부분을 나라에서 내 주는 것이다. 집세의 얼마만큼을 보조받는가 하면, 2014년 12월 현재, 혼자 사는 무자녀 성인은 448유로(약 65만 원), 자녀 1명인 경우 642유로(약 93만 원), 자녀 2명 765유로(약 110만 원)다. 게다가 대중교통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국가 및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모든 시설 역시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어중간하게 일하는 것보다 차라리 실업자 보조금을 받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물론 그래서 그 돈 받고 그냥 머물러 있는 사람들도 있어 사실 이 보조금은 프랑스 내에서도 말이 많은 제도 중의 하나이기는 하다. 


돈도 안 버는 루저에게 국가의 국고를 낭비하다니 빨갱이인가보다. 나라를 해체시켜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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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Mr Mondialisation 페이스북

우리나라는 어디쯤에 걸쳐 있는 걸까? (번역은 필자가...)


위에 언급한 일련의 정책들에 대해 사람마다 자신이 지닌 시각, 가치관 등에 따라서 각기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프랑스가 이런 제도를 통하여 못 가진 자, 힘 없는 자들의 편을 들어주려고 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물론 일부로 전체를 단언해서는 안 된다) 이런 맥락에 놓인 프랑스의 제도 중 ALUR 법이라는 게 있다. "알뤼르"라고 읽으면 되는 이 법은 프랑스인의 생활비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임대료 관련 항목을 대상으로 하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새로 체결되는 임대 계약에서 임대료는 해당 지역 임대료의 중앙값(가장 높은 월세와 가장 낮은 월세의 중간, 그 지역 임대료의 평균이 아님)을 초과할 수 없으며, 임차인에 대한 정보 공개를 위하여 해당 지역 임대료의 중앙값은 임대 계약서에 표기되어야 한다.


2. 임대기간은 기본적으로 3년이며, 파리 지역과 같이 인구가 밀집된 지역의 세입자는 최소 한 달 전에 계약 취소를 통보할 수 있다.


3. 임대료 연체료는 전체 임대료의 30%로 한정한다.


4. 중개료는 주거지 전체 면적을 기준으로, 지역에 따라 1m2당 최고 12유로 / 10유로 / 8유로를 초과할 수 없다. 프랑스어로 Etat des lieux라고 하는 차가(借家) 현황서(집 상태 점검) 비용은 1m2당 3유로를 초과할 수 없다.


5. 부동산 중개인은 항목(4)의 중개료를 임차인과 임대인으로부터 각각 받을 수 있다.


6. 11월 1일부터 이듬해 3월 31일까지의 동절기에는 임대인이 임의로 세입자를 내쫓을 수 없다.



위의 항목 중 가장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 바로 4,5번 항목. 사실 이 법이 적용되기 이전, 중개료는 보통 한 달치 월세 정도였고, 임차인이 이를 모두 부담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 참고로 파리 시내의 5-6평 원룸의 평균 월세가 740유로(약 107만 원)이다. 100만 원 정도야 있는 이들에게는 껌이겠지만 조그만 집이라도 얻어보려는 이들에게 있어 이 돈은 분명 부담스럽기 짝이 없을 것. 이 중개료 아껴보자고 생긴 것이 임차인과 임대인이 직접 컨택할 수 있는 사이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으며, 그에 따라서 사기꾼도 많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던 중에 정부에서 이와 같은 결단을 내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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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직거래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지만 정부는...


방금 말한 ALUR 법 중 중개료 항목은 이미 2014년 9월 15일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푼 마음으로 프랑스 생활을 준비하는 한국의 유학준비생, 혹은 학업에 집중하느라 프랑스 법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던 한국 유학생들은 이 법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더라. 그리고 또 한 가지, 프랑스의 임대 계약에 있어서 임차인이 정기적인 수입이 없는 경우 집주인은 보증인을 요구한다. 보증인의 자격은 보통 임대료의 3배 이상의 수입을 거두고 있는, 프랑스 정부에 세금을 내는 정규직 직장인이다. 결국 프랑스 내에서 보증인을 쉽사리 찾기 힘든 보통의 한국인 유학생은 보통 그곳에서 더 오래 생활한 한국인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모든 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중개료 혹은 소개비 명목으로 월세 한 달 치를 요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법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몰라서인지 혹은 의도적으로 사기를 치려는 것인지 필자는 모르겠다. 그리고 프랑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이들은 결국 한 달 치 월세를 중개비로 내고, 거기에 또 집 상태 점검 비용을 추가로 내고 집을 계약하고서도 '하늘의 별따기'라는 파리에서 집 찾기 미션을 완료했음에 기뻐하고 안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 다음은 몇몇 사례들.


A는 프랑스 파리에 사는 유학생이다. 지금 사는 곳도 나쁘지 않지만 생활비를 조금 아껴보고자 이사를 결심했다. 보증인을 구하기가 힘들어 결국 프랑스에 오래 전부터 살고 있다는 한국인을 통하여 괜찮은 집을 구했다. 비슷한 조건에 부대비용도 덜 들거니와, 원래 살던 곳과 멀지 않아 이사비용도 많이 들지 않겠다 싶었다. 게다가 월세도 저렴했다. 환상적이었다. 소개를 해 준 한국인은 소개비로 한 달 월세를 요구했다. A는 기쁜 마음으로 알겠다고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ALUR 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A가 중개인에게 프랑스 법대로 해 달라고 하자, 그는 난색을 표하면서 자기들은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했다. 결국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서야 소개비를 어느 정도 할인받을 수 있었다. 계약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라 어쩔 수 없이 동의했지만 생각할 때마다 사람에 대한 불신이 깊어 진다.


 B는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몇 일 있으면 프랑스로 나간다. 꿈에 그리던 프랑스라 두근두근 기대되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유학원을 통해서 꽤 괜찮다는 집을 구했다. 월세도 나쁘지 않고 위치도 파리 중심가라 마음에 썩 든다. 그런데 유학원에서는 중개료로 월세의 1.5배를 요구했고, 보증인이 없다면서 월세 1년치를 선불로 내라고 했다. 모르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결국 8100유로를 다 냈다. 한국 돈으로 치면 1,130만원 정도다. 그런데 알아 보니 이렇게 하는 게 원래 아니란다. 돈도 다 냈고 이제 들어갈 날만 남았는데 하소연 할 데도 없고 속상하다. 프랑스에 닿기도 전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프랑스 생활이 조금 더 걱정된다.

 

C도 역시 프랑스 유학생이다. 친구 집에 얹혀 살다가 눈치가 보여 이제는 나와야 겠다 싶어서 한국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한국인 가족이 사는 아파트에 딸린 방 하나를 구했다. 방도 나쁘지 않고 월세도 괜찮았고, 게다가 주택보조금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들어와 보니 말이 달랐다. 햇빛이 잘 들어온다던 방에는 하루에 20분만 해가 들어와 화분은 다 말라 비틀어져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가구로 가려진 벽에는 곰팡이가 슬어 있었고, 광랜이라는 인터넷 속도는 느리기 그지 없었으며, 그마저도 제때 요금을 안 내서 끊기기 마련이었다. 주택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 줄 알고 기다렸는데 결국 그 집을 나올 때까지 못 받았다. 알고 보니, C가 계약한 형태는 이중 임대였고, 이것은 불법으로 프랑스에서 그 어떤 법적 혜택도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으려고 한 데다가 집세도 항상 현금으로 달라고 했었다. C는 보증금으로 낸 월세 두 달치라도 떼이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외국 나가면 한국인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 있다. 이해한다. 타국 생활은 절대로 녹록치 않다. 비빌 구석이 없다는 사실은 사람을 점차 날카롭게 만든다. 거기에 추가되는 경제력의 부족은 어떻게 해서든 그 상황을 타개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게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쉬운 것은 약자를 이용하는 것인 듯 하다. 결국 상황이 사람을 추하게 만든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추해지는 것은 아니더라. 


결국 "믿을 놈 하나 없네"라는 말 정도로 글을 끝맺어야 한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타국에서 마주치는 같은 나라 사람들의 커뮤니티에서 우리가 그렇게도 외치는, 결국은 허구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정'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일까. 어찌되었든, 이 글이 프랑스를 비롯한 타국에서 생활하는 이들로 하여금 사기 안 당하고 정당하게 자신의 보금자리를 꾸려 나가는 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 자료


<<르 파리지앵>> 2014년 12월 18일, Le Smic augmentera de 0,8% au 1er janvier 2015 

(2014년 12월 20일 검색, http://m.leparisien.fr/economie/votre-argent/le-smic-augmentera-de-0-8-au-1er-janvier-2015-18-12-2014-4384529.php#xtor=AD-1481423552&xtref=http%3A%2F%2Ft.co%2FQ2pMSwzjxX)


Journal du net, 2014년 12월 18일, Smic 2014 et 2015 : montant mensuel et taux horaire 

(2014년 12월 20일 검색, http://www.journaldunet.com/management/remuneration/smic-mensuel-et-smic-horaire.shtml)


<<렉스프레스>> 2014년 2월 5일, 1490 euros par mois, c'est le minimum pour vivre selon les Français (2014년 12월 20일 검색, http://lexpansion.lexpress.fr/actualite-economique/1490-euros-par-mois-c-est-le-minimum-pour-vivre-selon-les-francais_1448284.html#m3pUfRuluU6Lo6Xs.99)


<<르파리지앵>> 2014년 12월 19일, Personnes sans ressources : le RSA «socle» revalorisé de 0,9% au 1er janvier (2014년 12월 20일 검색, http://www.leparisien.fr/economie/personnes-sans-ressources-le-rsa-socle-revalorise-de-0-9-au-1er-janvier-19-12-2014-4387685.php#xtor=AD-1481423552&xtref=https%3A%2F%2Fwww.facebook.com%2F)


OECD 통계 (http://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RMW)


알뤼르 법 관련1 (2014년 12월 27일 검색, http://www.la-loi-alur.org/)


알뤼르 법 관련2 (http://droit-finances.commentcamarche.net/faq/25450-loi-alur-les-nouvelles-mes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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