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5. 08. 31. 금요일

메이비






모두가 한 번쯤 '이 나라의 대통령이 누구였다면...' 하는 생각을 해봤을 거야.


김구 선생이 대통령이었다면... 장준하 선생이, 조봉암 선생이...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씨가 가진 부적격한 과거 행적과 민주주의적이지 않은 권위주의, 사대주의적 모습들, 상황파악 못 하는 병신력 충만함 등을 볼 때 시작부터 삐끗해버린 이 나라의 대통령 자리엔 도덕적 흠결이 크거나 정통성이 없거나 무능력하거나 임기 후 평판이나 도덕성에 문제가 많은 사람들 뿐. 누구나 바라마지 않을 능력 있고 청렴하며 진정 집중해서 나라의 근간이 되는 국민의 복지와 미래 희망을 위해 경주하는 그런 사람은 없었어.


몇몇 깡패 등급에 주제를 모르던 놈도 있고, 모든 여자 연예인을 다 차지하겠다며 성 상납으로 흥청망청하다 머리 빵구 난 사람도 있고, 자신의 명예욕이 강했거나 도덕적이지만 무능하거나 헛된 꿈과 이상을 꿈꾸다가 정적의 손에 걸레가 되어 죽어버린 그런 대통령들뿐이지. 그리고 일관되게 돈만 챙겨 먹고 알까기 전법으로 사건을 나열해 자신까지 이르지 못하게 다가갈수록 부비트랩 전법을 사용하고 있는 쥐 닮은 녀석도 있고.


ㅇㅈ.png


한국 내에서 유난히 그런 사람을 발견할 수가 없는 것은 각 인물별 반대편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서로 지역적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으니 결국 신분별, 지역별, 이념별 파당이 지어지고 수긍하지 못한 반대파의 저항이 발생하기 때문 아닐까?


그러니 이럴 때 흔히 엉뚱한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꺼내 드는 카드는



"니꺼 내꺼 자꾸 편이 갈리니, 바다 건너 외국 것을 수입하자"



이런 게 아닐까 해. 나와 내 주변만 그런 걸까? 아닐껄? 해서 찾아봤어. 일단 가까운 나라들에서 현재 대한민국에 알맞을 사람을, 그들의 역사 속에서.


대충 지도자라면 이런 게 잘못되었다고 욕질들 하는 항목을 뒤집어보니 우리나라의 지도자는 이쯤 기준이면 좋겠다 싶더라고. 해서 이런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을 찾아보고 싶었지.



-업적을 통해 유능함을 증명한 사람 

-일관되고 확고한 정치 철학이 드러난 행적을 기록했던 사람

-청렴함을 임기 이후까지 완성해 이후 타의 모범이 된 사람

-인류에게 의미 있는 자산을 남긴 사람



이런 많은 이들이 리더인 사람을 생각할 때 강조하는 항목들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적합한 사람을 주변국 정치인들 중에서 뽑아 보려고 훑어보는 순간, 별 시간도 들이지 않고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지.


일단 내가 찾은 첫 번째 수입후보야. 이미 요단강 건넌 다른 나라의 대통령 출신인데 이런 사람이 현존한단다고 상상해보자고.


라몬 막사이사이_필리핀정부.jpg

라몬 막사이사이 (Ramon Magsaysay, 1907년 8월 31일 ~ 1957년 3월 17일)

출처 - 필리핀 대통령궁 박물관 도서관 홈페이지


필리핀의 7대 대통령이자 3공화국의 3대 대통령. 그러니깐 미국 식민지와 일제 강점기를 지난 후 세 번째 대통령이란 소리야. 1953년도에 임기 스타트를 했으니 우리나라 전후 지원 서류에 사인한 사람이 이 사람이란 소리고 필리핀이 역사상 가장 빛나던 시절의 대통령이란 소리지. 거의 전승국의 지위를 누렸고 미국의 식민지에서 친구쯤으로 지위가 격상된 시절. 게릴라전으로 일본군을 괴롭혀 미국의 필리핀 재탈환에 필리핀 사람들 스스로의 힘이 상당히 큰 역할을 했으니깐.


그런 게릴라 부대 중 하나를 이끌었던 장군이기도 해(뭐 규모가 장군이라 불릴 만큼 컸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게릴라 부대의 지휘관이었으니 종전 이후 군정시절 자신의 고향을 담당하는 군정장관을 했겠지.


쉽게 말하면 독립군 부대장 출신인 거고 전승국인 미국과 사이가 좋아서 군정 시기의 주요지역을 총괄하는 행정, 군사적 수반이었다는 소리지. 잠발레스 지역이 대충 크기로는 한 도 정도 되려나? 혹은 좀 작으려나. 뭐 그쯤의 필리핀 서해안 지역이거든.


그의 고향이기도 한 지역을 포함한... 아니, 아니다. 그의 장점과 시대적 배경에서의 역할을 설명하자면 이런 서술보단 몇 개의 전화점을 기준으로 그의 삶을 설명하는 게 좋겠어.



1. 성장기 : 가난하지만 정의로운 집안에서 일어서다


그의 고향은 이바라는 작은 마을이고(도시라고 하기엔 상당히 작은) 잠발레스라는 지역에 속해있지. 수도인 마닐라에서 차를 타고 당시엔 6시간 정도 거리였을 테고 요즘이라면 2시간쯤의 거리.


가장 큰 섬인 루손섬에 속한 서해안지역으로 잠발레스는 주로 조개류의 해산물이 잡히고 대구와 대형 어류도 낚시로 잡기에 좋은 지역이야. 지금은 수많은 해안가 해수욕장들과 리조트들이 있는 곳이지.


뭐 당시엔 비탈에 사탕수수 좀 심고 옥수수쯤 재배했을 척박한 산등성이에 조개 캐며 물고기 잡아 유통채널이 없어 싸디싼 가격에 팔든지 말려서 생계를 이었던 동네겠지.


라몬 막사이사이 고향위치.jpg

필리핀 잠발레스 이바 자, 지도상 위치는 이렇고

출처 - 구글지도


그는 호세 리잘대학교라는 전통 있는 학교를 다녔으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한 노동 중 부상으로 졸업까지는 꽤 힘든 여정이었던 모양. 원래 공대를 다녔으나 무리한 노동으로 폐결핵에 걸려 치료 후 다시 경영학과를 다녀 졸업했다고 해.


아버지는 전문학교 기술선생님이었으나 식민지 시절 미국인 교장의 부당한 지시에 불복하다 실직되어 가계 형편이 엉망인 상태에서 자랐다고 해. 그 경험으로 이 세상이 올바른 사람이 존경받고 존중받지 못하는 세상이란 걸 일찌감치 알게 되었다고 하고.


그의 고향은 가난한 어촌을 끼고 있는 지역으로 동쪽으론 산맥을 만나게 되는 마을이니 농토가 별로 없었을 테고 척박했겠지. 그런 가운데서 공부를 제법 잘했던 건 학력으로 증명한바. 성장가의 그는 총명하지만 힘없는 정의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조숙한 녀석쯤이겠다.



2. 청년기 : 목숨을 걸고 자유를 위해 싸우다


학교를 다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알바를 전전하며 어디 자랑할 만한 빽도 없으니 생계를 겨우 감당한 직업을 전전한 건 당연하겠지. 차량 정비 쪽 기술을 가지고 있던 걸로 생각되고, 그런 직업을 쭈욱 유지하며 결혼도 한 걸 보면 유명인사들이 다 가졌다는 성실성을 인정받은 거겠지. 운송회사 지배인을 한 적도 있고, 2차 대전엔 미국계 자동차 관련 회사에 다니다가 게릴라 지도자로 성장했다고 해.


애초 스폰서가 잡화상을 운영하던 미국인 목사부인이었고 일본군에 발각되어 부인은 총살을 당한 걸 보면 초기 게릴라 운동의 시작부터 미국의 지원을 받고 어느 정도 연계된 조직력 중 일부였겠지.


그렇게 지휘관까지 성장하고 미군이 필리핀을 탈환할 시점까지 그는 적어도 일본의 편에서 인생을 쉽게 살려고 했던 많은 필리핀 지식인들보단 훨씬 영악하진 못하더라도 떳떳하게 살아왔겠지. 이런 사람이 이후의 시대를 운전하는 게 당연한 것이니, 대부분 사람들이 수긍하였지. 다만 우리나라에선 이런 사람들이 다 암살당하거나, 사상 때문에 밀려 진짜 빨갱이 세력으로 합류해버렸지.


지휘관에서 미국의 탈환 후 지역의 군정장관. 대충 도지사역할정도를 하다가 정계진출. 하원의원으로 출발. 중심부에 자리 잡지.



3. 장년기 : 자신의 능력과 소신을 증명하다


이런 올바르고 구릴 것 없는 성장 과정을 거쳐 독립에 지대한 기여를 한 사람이 당시 상류층엔 드물었던 순혈 말레이차이나계의 혈통을 가지고 필리핀의 3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업적이 큰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지.


그 업적은 당시 사상의 대립으로 냉전이 촉발된 시점, 모든 자유주의 진영에서 대결구도를 펼치며 근절하고자 했던 공산주의자 무장세력, 반정부 게릴라를 국방장관으로서 당시 다른 지역의 나라에서 무작정 군사적 압박과 소탕작전만을 추진했던 것에 비교해 상당히 효과적인 전략적 전술을 사용했다는 것이야. 뭐냐면, 게릴라의 기반이었던농민계층의 지지를 국가적 지원을 통해 봉쇄하고, 귀순자에 대한 정착 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회유하고 군사적 작전으로 압박하는 양동전술을 사용해 ‘아시아의 아이젠하워’라는 별칭을 얻는 명성을 쌓아가게 된 거지.


이후 자유진영의 대 공산주의 게릴라 전략의 모범 교본이 될 정도였다고 해.


이런 업적으로 국민적 인기와 능력에 대한 인지도 상승은 있었을 테지만, 당시 정적과 경쟁하던 같은 당의 정치인들과 서민층의 지지가 결집되는 것을 싫어한 기득권층의 견제와 방해로 결국 스스로 국방장관을 3년 만에 걷어치우게 돼. 결국 1953년 대권에 도전 3대 대통령에 취임하는 거야.


이제부터 조금 아쉬운 점은 이 양반 군사작전을 사용하는 쪽엔 강했지만 의회권력을 상대하는 것은 조금 약했던 건지 실질적인 개혁정책이 의회를 통해 다 막혀버려. 해서 의회권력의 방해를 뚫고 최선을 다해 서민층의 복지와 농민들의 권익을 위해 다방면의 정책과 행동을 펼치게 되지. 당연히 외로운 정의는 결실을 가지긴 어렵고.


자신과 가족의 이름을 임기 내 공공건물, 시설에 사용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고(이런 류의 명예를 필리핀의 대부분 정치인은 무척 좋아하거든) 각종 대통령만의 특권을 하나둘 없애버리지. 탈권위적인 대통령의 행동력은 우리나라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슷한 측면이 있어.


Ramon-Magsaysay-man-of-the-masses.png

출처 - Presidential Museum and Library


농민을 위한 토지분배에 집중해서 국민적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지만 재벌과 지주계층이 주인 의회에서의 인기야 뭐, 바닥을 쓸었겠지.


빈민가의 빈민들에게서 진정한 사나이라는 호칭을 받으며 대중적인 인기를 확보하고 임기가 4년을 넘길 무렵. 진정한 사나이는 드높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명한 꽃잎처럼 떨어져 그 빛을 잃어.



4. 사후 : 단단한 의지로 살아온 총포 같은 삶


1957년 3월 세부를 돌아보고 한 대학에서 반공연설을 한 후 기상악화로 인한 밀림으로의 추락으로 수행원과 함께 사망하지.


크기변환_1957_Cebu_Douglas_C-47_crash_site.jpg

출처 - Presidential Museum and Library


향년 49세. 남긴 재산이 생명보험 증서와 낡고 낡은, 작은 집 한 채.


그가 죽고 자유를 향한 그의 열정과 빈민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자 했던 행동, 옳은 일을 위한 의지 등을 기리기 위해 ‘막사이사이상’이 제정되었어.


본명은 라몬 막사이사이 이 델 피에로(Ramon Magsaysay y del Fierro). 그의 어머니쪽 패밀리네임인 Fierro를 사전사이트에 가서 검색해 봤어.


Fierro [남성명사]

1.(가축 낙인용의) 쇠

2.[구어] 무기, 화기 총포

3.도구, 연장


ferrar ( 활용형 → fierro ) [타동사]

1.(무엇을) 쇠로 장식하다[덮다, 씌우다]

2.[고어] ( herrar)

3.[고어] 쇠로 표를 하다

- 네이버 스페인어 사전


한평생 살아온 그 인생처럼 쇠이고 총포이고 연장이던 그의 인생은 스카웃 해오고 싶은 정치인 1호로써 어때? 부족함이 없겠지?


내가 필리핀에 머물렀었기에 이 사람을 꼽게 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정작 필리핀의 대중은 이 사람을 기억하지 못해.


마르코스를 그리워하는 노년층과 아로요의 당찬 추진력과 귀여움을 말하는 중년의 여성들과 현재 대통령인 아키노의 부정부패를 성토하는 젊은 층은 있어도 그들의 대통령 중에 마땅히 그리워할 수 있을 멋진 대통령이 있었음을 기억하지 못해. 물론 빈민들의 수리시설 지원을 위해 설치한 공동우물에 붙은 이름이란건 알겠지. 막사이사이 우물이라 부르는 우물이 동부지방엔 많다고 하니깐.


그를 그리워하고 청렴하고 정직한 대통령이 있던 황금시대가 그들의 역사에도 있긴 했음을 기억하는 이는 적어. 좀 안타깝지. 정치는 늘 부패하고 더러우며 국가는 늘 서민과 빈민을 다그칠 뿐 배려하지 않는 시대만을 기억하기에.


스카웃을 해오고 싶은 이 탐나는 정치인이 자국 내에서 기억되지 못하는 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인 것 같아.


31일. 그의 108번째 탄생일에 필리핀 지인들에게 내가 쓴 이글을 보내봐야 엿먹이는걸 테니, 따갈로그 사이트 수집해서 링크라도 걸어줘야 하겠어. 그들에게도 잊혀진 영웅이 있었음을. 아시아를 대표하는 멋진 정치인이 필리핀에도 있던 적이 있음을 .알게 해주고 싶으니깐.


우리에게 이런 사람을 어디선가 모셔올 수 있다면 이 답답하고 희망적은 시대의 공기쯤 신선하게 바뀔 수 있을까?


라몬 막사이사이 필리핀 전 대통령의 탄생 108주년을 기념하며 사진 속의 모습처럼 그가 웃을 수 도록 필리핀에 빈민들의 생활이 한결 나아지는 어느 날을 기대하며...


라몬 막사이사이_웃는모습.jpg




*참고자료


웅진세계위인전기《막사이사이》편(웅진출판주식회사)

공식어록 모음 Ramon Magsaysay on the Official Gazette : http://www.gov.ph/magsaysay/

필리핀 대통령 박물관 도서관, http://malacanang.gov.ph/presidents/third-republic/ramon-magsaysay/






메이비


편집: 딴지일보 cocoa

Profile
오월의 비.


유쾌하게, 즐겁게, 흐뭇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