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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05. 월요일

김현진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몸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나를 스쳐 간 당신의 몸, 

당신의 이마를 한때 어루만졌던 누군가의 손, 

아스팔트 위에서 사정없이 깎여나가던 누군가의 피와 살,

철탑에서 얼거나 타들어 가는 몸들, 

당신이 나를 낚아채 주길 바라면서 

숨죽여 뺨을 대 보았던 당신의 쇄골.


몸은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은밀한 삶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 '몸'에 대한 이야기다.

 






벌써 십 년이나 된 일이다. 그때 나는 아직 어렸고, 창창하게 젊은 간을 가지고 있었다. 간이 언제까지 젊을 줄 알았는지, 나는 고기도 잘 안 먹으면서 이십 대 초반에 콜레스테롤 과다 판정을 받을 만큼 간을 과로시켰다. 과로한 건 간만이 아니었다. 온몸이 과로하고 있었는데, 아르바이트를 일고여덟 개까지 뛰고 나면 공부하러 대학에 온 건지 학비 벌러 대학에 온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덕분에 좋은 술로 간을 혹사하지는 못하고 지금은 불타 버린 종로통의 선술집 <육미>에서 구운 마늘 한 꼬치와 소주 한 병으로 오천 원 이내로 간과 나를 망치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오는 길은 때로가 아니라 항상 너무 길었다. 나만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면 그 돈벌이가 즐거울 수도 있었겠지만, 무직에 순진무구하기만 했던 부모님이 보증 같은 데 걸려드는 바람에 가끔은 집에 쌀도 없을 지경이었다. 학점을 포기하고 시시한 아르바이트를 해서 이삼십 만 원쯤 집에 가져다주어 봤자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표시도 나지 않는 어중간한 돈이었다. 세상만사를 전혀 모르는 부모님의 맑은 얼굴을 보면서, 닳고 닳은 기분에 젖은 나는 피해의식에 시달렸다. 실제로 피해를 봤을 경우 의식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난센스라고 후에 어떤 친구가 말해주었다. 부모님이 그렇게 맑은 얼굴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깊은 신앙 덕분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교회의 목사였던 아버지는 해맑은 얼굴을 하고 나에게 말하곤 했다. 나중에 다 하나님이 갚아주신다. 그러면 뭔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곤 했다. 지금, 지금 갚아줘요! 물론 하나님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나는 술을 마시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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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면 좀 나아질까 하여 상황이 허락하는 한 연애도 열심히 했으나 나의 남자들은 이상하게도 나에게서 어떤 다른 여자를 보는 모양이었다. 애널 섹스부터 소액 무담보 대출까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요구하면서 그들은 꼭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넌 쿨하잖아."


그러면 대꾸할 힘도 없어서 코웃음만 쳤다. 알아? 이 세상에서 제일 쿨하지 못한 여자가 있다면 그게 바로 나야. 나는 구제 불능의 낭만주의자고, 지구 최후의 날까지 혼자 로맨티시스트일 거야. 가끔 그들은 이렇게도 묻곤 했다. 


"술이 좋아, 내가 좋아?"


그러면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만났다고 생각하니? 둘 중 하나만 택해!라고 말하는 남자들은 참 용감했다. 낭만주의자들은 의외로 사랑보단 의리를 택하는 법이니까. 나는 늘 의리를 택했다. 술은 나를 버린 적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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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리




그 날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술에 취해서, 택시를 타는 호사를 부린 날이었다. 꼬불꼬불한 골목을 캄캄한 밤에 찾자니 헷갈려서 기사를 성가시게 했다. 죄송하지만 왔던 길로 한 번 더 가 달라고 하자 기사는 혀를 차더니 낮게 말했다. 


"미친 X이 술은 있는 대로 처마셔가지고...." 


그리고 혀를 찼다. 내가 술을 있는 대로 처마신 미친 X인 거야 부정할 수 없었지만 거기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이유는 없었으므로 


"지금 뭐라고 했어요?"


라고 했더니 곧 다툼이 되었다. 그런 다툼의 전형적인 레퍼토리인 왜 반말이야, 내가 몇 살인지 아냐, 아저씨가 몇 살이건 나랑 무슨 상관이냐, 그럼 미친 X를 미친 X라고 하지 뭐라고 하냐, 나는 승객이지 미친 X이 아니다, 하고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나도 잘 못 하는 욕설을 동원했고 상대가 구사하는 욕설은 더욱 화려해졌다. 나 이따위 욕먹고 요금 못 낸다, 요금 안 내기만 해 봐라. 경찰을 부르겠다. 마침 저기 경찰차가 있다. 빨리 불러라. 이런 대화가 오간 후 기사는 호기롭게 지나가던 경찰차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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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입니까?"


기사가 자신 있게 글쎄 이 아가씨가 요금을... 이라고 경찰에게 말하는 순간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이 아저씨가 욕했어요!"


거짓을 말한 건 아니었다.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았을 뿐. 일부러 울음을 터뜨린 것도 아닌데 딸꾹질까지 해 가며 눈물이 났다. 기사와 나를 한 번씩 쳐다본 경찰은 말했다.


"이 아저씨가 왜 아가씨한테 욕을 하고 그래요!"


"아니 경찰관님 내 말 좀 들어 봐요."


"됐어요! 빨리 가던 길이나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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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봐!



결국, 욕 몇 마디 한 대가로 기사는 2만 원쯤 되는 요금을 못 받고 쓸쓸히 사라졌고, 차에서 내린 나는 경찰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경찰은 혀를 찼다. 


"저 아저씨가, 함부로 욕을 하고 말이야. 괜찮아요? 안 괜찮았다. 아가씨 집이 어디예요?"


"네 바로 여기에요..."


"그럼 들어가십시오."


그가 돌아서려는데 손등으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던 나는 제복 옷자락을 붙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숫제 훌쩍거리다가 엉엉 울었다. 아버지가 백만 원쯤 어디서 가지고 올 수 없느냐고 물었던 날 밤이었다. 경찰관이 얼굴은 강하고 현명해 보여서, 나는 그를 올려다보다가 왈칵 더 크게 울었다.



"있잖아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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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지도 늙지도 않은 경찰관의 얼굴은 몹시 곤란해 보였다. 그는 잠시 캄캄한 하늘을 쳐다봤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서툰 동작으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다 젊어서 그런 거예요. 다 괜찮아질 거예요."


"정말요?"


"그럼요. 다 괜찮아질 거예요."



십 년이 지났는데 아직 괜찮아지지 않았다. 나는 술로 많은 사고를 쳤고, 지금은 예전만큼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 콜레스테롤 과다수치는 고지혈증으로 발전했다. 아마 그때 그 경찰은 지금 경장님쯤 되었으려나. 촛불 들고 길바닥에 나섰을 때 물대포에 정통으로 맞아 날아가면서도 폭력경찰 물러가라, 하는 구호에 동참할 수 없었던 것은 내 어깨를 두드려 주던 그 손길을 잊지 못해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친근하고 지긋지긋한 어두운 감정들이 나를 질질 끌고 어디론가 가려 하면 그 서투른 손길을 떠올린다. 다 괜찮아질 거야, 다 괜찮아질 거예요. 그 믿고 싶은 거짓말 역시 살면서 수없이 떠올렸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속을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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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 나타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