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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9. 01. 화요일

Samuel Seong





지난 기사(네팔 룸비니 가이드)에 대한 친절한 댓글 잘 보았다. 2편에서 불교성지순례 가이드북 저자님 등 질의해 주신 부분에 대한 답변도 드려야 하는데, 일신상의 문제로 글을 전혀 쓸 수 없었다. 조만간 정리되는 대로 2부를 이어가겠다.


이번 글은 지난주에 있었던 네팔 서남부 카이랄리군 폭력사태에 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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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이랄리 폭력사태


카이랄리 폭력사태는 이미 1주일 전에 여러 매체들이 보도한 바 있다. <SBS>는 ‘네팔 헌법 제정안 항의 시위 격화...수십 명 사상’이라는 제목으로 소수민족인 타루족 시위대가 전국을 7개 주로 나누는 내용의 헌법안에 반발하며 자신들의 주를 별도로 만들라고 요구했고, 이 시위로 경찰관 여섯을 포함한 최소 9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는 뉴스를 전했다.


국내 언론들의 기사는 외신들을 요약정리해서 보도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대동소이하다. <연합뉴스>에서 조금 더 자세히 보도하긴 했지만 <SBS>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외신을 직접 읽으면, 아주 작은 사실 하나가 걸린다.


로이터의 사진을 인용한 알자지라는 시위대와 경찰 충돌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기사에 이런 캡션을 달았다.



‘Protesters say the new constitution will discriminate against historically marginalised communities.’


‘시위대는 새 헌법이 역사적으로 무시된 커뮤니티들을 차별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게 뭔 이야기일까? ‘역사적으로 무시된’ 타루족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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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외된 그들, 타루족


소작농과 지주의 관계가 불평등하다는 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총을 들고 봉기해야 할 정도로 불평등이 깊어진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예로부터 곡창지대인 네팔 남부가 그렇다. 전통적으로 전근대적 토지소유관계 아래에 있었던 이 지역인지라 착취가 많았고, 착취는 저항을 불러왔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민족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일어선 마오이스트(Maoist)들의 민중 운동이 여기에 스며들었다. 이들은 인도에서 변형된 마오이즘(인도에선 이들을 Naxalites이라 부른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마오이스트들은 내전을 주도해 왕정 종식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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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이스트

출처 - <asianews)


타루족이 위치한 네팔 서남부 지역에선 이 ‘소작농제’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는데, 이를 ‘카마이야’라고 불렀다. 원래 카마이야는 타루족의 말로 ‘집안일을 돕는 것’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었다. 그런데 이후 땅을 가지지 못한 농부들이 지주가 허용하는 최소한의 식량만 가져갈 수 있도록 허용한 상태(거의 노예 상태의 소작농)를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었다. 최근에는 가난한 소작농이 자신들의 딸을 하녀로 일 년 혹은 다년간 부농에게 파는 행위를 지칭하기도 한다.


특히 지금도 뎅기 모기가 창궐하는 네팔 남부의 떠라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곡창지대 중에서도 알짜였다. 뎅기 모기가 창궐하는데 말라리아는 오죽하겠나. 이곳에서 살고 있었던 타루족들은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성이 커서 곡창지대에 적응하고 살 수 있었다. 그런데 1950년대 WHO가 네팔정부의 말라리아 퇴치 정책을 지원하면서 타지인들도 이 지역에서 살 수 있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 지역의 토지 소유권 자체가 공중에 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이들은 대거 이주해 토지소유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타루족들은 카마이야의 사슬에 얽매이게 된 것이다. 타루는 문맹률이 너무 높아서 자신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 자체도 주장하지 못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토지를 빼앗긴 것만으로도 기가 찰 판이었는데, 이들은 정부로부터 또 한 번 배신을 당하게 된다.


자신들의 터전이 국립공원으로 선포돼 버린 것이다. 네팔의 관광지 중의 하나인 치트원 국립공원은 타루들이 경작하던 토지를 국가에서 강제 수용하면서 이들을 내쫓아 만들어진 곳이다. 네팔군의 총칼에 의해 쫓겨난 이들이 타루인인 것이다.


불가촉천민인 달릿 카스트와 동일한 대우를 받아왔고, 이런 무수한 차별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타루족들은 헌법 개정 초기부터 달릿들을 포함하여 별도의 주를 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시라. 토지 강탈도 모자라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는데 그 국가의 자랑스러운 일원이 되고 싶은 맘이 들겠는가?



3. 그럼에도 네팔 정부는...


네팔 과도정부는 새 헌법을 만들면서 제헌의회를 해산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했다. 대지진 이후 거국연립내각을 구성하기로 합의한 만큼 별도의 선거는 필요치 않다는 이야기였다. 지진 전까지 네팔 국민회의(Nepalese Congress)와 네팔 통합공산당(Unified Marx Lenin Party)이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었고 네팔 마오이스트(Unified Communist Party of Nepal, UCPN(M))가 나머지 30개 군소 야당(여기에 통일교 정당도 하나 있다)의 맏형 노릇을 하면서 야당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런데 지진 직후 여론의 추이를 보아하니, 더 이상 헌법 개정과 관련해서 시간을 끄는 것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마오이스트들이 야당의 형 노릇을 포기하고 개헌안 지지로 돌아서 버렸다. 개헌으로 가자는 압박이 훨씬 더 강한 셈이다.


뉴시스는 시위대에게 피살당한 경찰의 화장식이 카트만두 파쉬파트나트에서 열렸다는 사실을 전했다. 사건 직후 부상자들은 약 70km 떨어져 있는 네팔건즈(Nepalgunj)로 옮겨졌고 사망자들의 시신은 바로 군헬기를 통해 카트만두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뉴시스의 기사(시위대 피살 네팔 경관의 화장식)에서 보듯 성대한 화장식이 열렸다.


사망한 경찰 중 선임이었던 락스만 네우파네(Laxman Neupane) 경찰서장과 케샤브 보하라(Keshav Bohara) 경위의 일대기들이 계속 보도되면서 이들이 얼마나 아까운 인물들이었으며 어떻게 참담하게 죽었는가에 대한 보도도 쏟아졌다. 일종의 영웅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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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he Himalayan Times>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리고 있는 그림. 덕택에 새 헌법은 어렵지 않게 통과될 모양이다.


어느 누가 멍청한 짓을 많이 하는가에 따라 정치적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런 멍청한 짓을 하는 집단이 피해자 집단일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억울한 것을 풀어야 하니까. 그러다가 망하는 것이 어디 네팔만의 이야기겠는가.







국제부 Samuel Seong

트위터 @ravenclaw69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