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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08.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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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3. 중력의 임무 (1)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4. 중력의 임무 (2)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5. 중력의 임무 (3)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6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7. 시간을 여행하는...안내서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8. 소설 '20년 전후'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9. 시간과 평행우주..안내서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0. 나는 대체 뭐냐 (1)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1. 나는 대체 뭐냐 (2)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2. 고대의 실험 (上)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3. 고대의 실험 (下)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4. 고대의 실험 썰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5. 과학은 무엇을...있을까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6. 무신론자를 위한 레퀴엠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7. 위기의 시대, 과학의 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8. 단편 소설 <30초>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9. 단편 소설 <30초>, 썰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0. 영구기관/무한동력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1. 인류의 과학...실상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2. 과학은 감동이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3. 계몽의 임무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4. '계몽의 임무' 해설편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5. 과천과학관 SF2014 전시 이야기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6. 진화에 대한 착각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27. 달 탐사는 마냥 삽질일까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28. Memento Mori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29. 영생, 인류 마지막의 유혹 , Memento Mori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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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카



내 이름은 미야옹. 열두 살 먹은 길고양이다.


고양이 세상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우리는 우아한 척도 하지만 본성이 예민하기 때문에 사고도 많이 일으키고 싸움도 자주 한다. 날렵하기 그지없는 고양이들이 마음먹고 격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우리의 몸집이 두 배만 되었어도 통제 불가능한 맹수가 되었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우리는 높은 곳에 쉽게 올라가고 후미진 곳에 잘 숨기 때문에 많은 것을 본다. 캄캄한 밤에 예리한 시력으로 지붕 위나 뒷골목, 자동차 밑에서 바라보는 인간들의 모습은 그들 스스로 상상하거나 그리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치부와 비밀을 많이 알고 있다. 인간 세상, 지저분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고양이인 처지에 굳이 이렇게 글을 쓴다고 나선 것은 이제 살 날이 길지 않은 만큼, 오래 전에 겪은 이상한 체험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서다. 인간들이 목숨이 9개 있다고 말하는 나, 미야옹의 입장에서도 평생의 의문으로 남을 기괴한 경험. 그래서 주변 고양이들에게조차 발설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머리 좋은 인간들은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운명의 그날에도 나는 여느 때 처럼 주거지로 삼고 있던 슬럼가 작은 빌딩의 지하실에서 나와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겨울의 찬기운이 완전히 가신 공기는 따스했고 여기저기에서 꽃내음이 퍼져 오던, 기분 좋고 여유로운 저녁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을까, 바람을 타고 흘러오는 강렬한 비린내의 유혹에 나는 그만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 내음은 내 평소의 순찰 코스에서 조금 떨어진, 버려진 공사장 구석에 놓여 있는 빛나는 것에서 풍기고 있었다.


‘저런 곳에 멀쩡한 생선이 있다니...?’


당연히 이상하다고 여겼어야 했다. 하지만 신선한 고등어의 유혹을 물리치기에 나는 너무 배가 고팠던 것이다. 살금살금 다가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 통통한 녀석을 물어 낚아 챘다. 이게 웬 떡이냐.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지붕에서부터 덮쳐 온 커다랗고 두꺼운 그물에 걸려들고 말았다. 고양이 한 마리가 부릴 수 있는 최대의 앙탈과 신경질을 부리고 괴성을 지르며 벗어나려 했지만 그럴수록 그물은 엉켜들었고 나는 점점 탈진해 갔다. 급기야 지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려는 찰나, 갑자기 등이 따끔해 왔다.


그리고는 이내 졸음이 쏟아지는 것이다...



2.jpg

미화된 재연 컷

자유를 갈망하는 고양이의 눈빛을 사실적으로 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누운 상태로 슬그머니 눈을 떴다. 머리가 너무 아팠고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예전에 인간들이 마시는 술이란 걸 잘못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보다도 더 멍한 상태였지만, 다행히 사물의 윤곽 정도는 분간할 수 있었다.


내가 누워 있는 작은 공간에는 사방으로 낮은 벽이 있었고 그 한쪽에는 이상한 장치가 붙어 있었다. 열린 천장을 통해서 전등빛이 환하게 눈에 들어왔고, 전등갓 아래에 두 남자가 서서 내가 들어있는 상자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키 큰 남자가 말했다.


“눈을 뜬 것 같은데.”


더 굵은 목소리의 남자가 나즈막히 대답했다.


“아직 정신이 들 때는 아닐 걸세.”


“하지만 혹시 고양이가 움직이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된다네.”


“그럼 주사를 한 번 더 놓아야겠군.”


그 말을 들은 나는 얼른 눈을 감고 정신을 잃은 척 했다. 저 주사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를 이 상태로 만드는 것을 보면 어쩌면 죽게 할 지도 모를 일이다.


...난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못할 것을 봤어. 동네 식료품점 구석에서 타오르던 쓰레기 더미, 트럭에 실려 어둠 속에 반짝이던 H빔도 봤지. 그 모든 순간들이 시간 속으로 사라지겠지. 비속의 고양이 오줌처럼. 아니, 아직은 죽을 시간이 아냐!


“다시 기절했군. 또 주사를 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에르빈.”


“그래, 그럼 실험을 시작하세.”



3.jpg

에르빈 S.


에르빈이라 불린 안경 쓴 남자가 대략 이렇게 말했다.


“이 상자 안쪽 벽에 붙은 작은 장치 속에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들어 있다네. 실험이 진행되는 한 시간 동안 원자핵이 자연적으로 붕괴될 확률은 정확하게 50%라네. 만약 핵분열이 일어난다면 저기 장착된 가이거 계수기가 방사선을 감지해서 이 작은 망치를 작동시킬 걸세. 그러면 그 아래에 있는 청산가스가 든 병이 깨지게 되지.”


한낱 고양이 주제에 어떻게 저런 말을 기억하냐고? 잊지 마시라. 나는 타이핑을 하고 글을 쓰는 천재 고양이라는 사실을.


“그러면 저 고양이는 죽게 되겠지?”


“그렇다네.”


...뭐?


“하지만 역시 50%의 확률로, 만약 한 시간동안 핵분열이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고 고양이는 멀쩡히 살아 있을 것이네. 그때 쯤이면 마취도 깨어 냐옹거리면서 움직일 테지.”


...음.


“자, 이제 준비가 완료됐으니 뚜껑을 닫게.”


...자, 잠깐!


“상자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부에서 절대 알 수 없도록 철저하게 밀봉해야 하네. 잠든 고양이가 한 시간 정도 숨 쉴 공기는 남아 있을걸세.”


이어 두꺼운 금속 상자가 끼익, 소리를 내며 닫혔고, 그렇게 내 하나 뿐인 목숨은 -절대 9개가 아니다!- 저 빌어먹을 방사성 동위원소인지가 50%의 확률로 붕괴될지 말지에 전적으로 좌우되게 됐다. 억울한 마음을 항변하고 싶었지만 눈을 게슴츠레 뜨는 것 외에는 움직일 힘도 없었고, 그러다 괜히 깨어난 티를 내서 다른 주사까지 맞고 허무하게 죽어 버릴까봐 두렵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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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을 위한 설정샷. 모델 고양이의 미모가 돋보인다.

엉성하나마 실제 상황을 비슷하게 그리고 있다.


상자 안에는 한줄기의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제아무리 야간 시야가 좋은 고양이지만 반사되는 빛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는 장님이나 다름 없다. 말로만 듣던 칠흙같은 어둠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제 나는 뭘 해야 할까. 어떻게든 안간힘을 써서 몸을 일으켜 탈출을 시도해볼까? 아니, 그러다가 이 어둠 속에서 자칫 청산가스가 든 병을 깨기라도 하면 큰일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50%의 높은 확률로 다가오고 있는 개죽음(...)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다. 과연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질까. 여전히 몸은 꼼짝도 하지 않는 가운데 이런저런 생각만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덜컹거리는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약 기운에 다시 잠이 들었고 한 시간이 흘러가 버린 거였다. 곧이어 뚜껑이 열리고 밝은 전등빛이 상자를 눈이 부시도록 가득 채웠다. 무시무시한 망치는 아직 제자리에 붙어 있었고 친절하게 해골 그림을 붙여 놓은 청산가스 병도 깨지지 않고 멀쩡했다.


살았구나. 나는 50%의 확률을 극복하고 이렇게 살아남았다!


에르빈이 다가와 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닐스, 보게. 이 고양이는 여전히 살아있네.”


“그렇군. 하지만 ‘여전히’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네.”


“왜지? 우리가 관찰할 수 없던 동안에는 고양이가 죽어 있기라도 했단 말인가.”


닐스가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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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B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관찰되지 않은 한 시간 동안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은 상태였다네. 아니, 살아있거나 혹은 죽어있던 게 아닐세. 둘 다란 말이야.”


...뭐?


이미 마취가 반쯤 풀려 머리를 들고 조금 움직일 수도 있었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어이가 없어 야옹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내가 이 속에서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었다고?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닐스. 그건 지나친 비약일세.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게. 우리가 보지 못했다고 저 고양이가 삶과 죽음을 동시에 겪고 있었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럼 두 개의 구멍을 한꺼번에 통과하는 하나의 전자는? 또 그것을 관찰하는 경우에는 한 개의 구멍만을 통과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우리는 수십 번의 실험을 통해 그것이 사실임을 알고 있네. 전자와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는 관찰이 실행되는 순간 확정되는 걸세. 저 고양이의 생사가 관찰되지 않은 동안 고양이의 삶과 죽음은 ‘중첩’돼 있었던 거지.”


내가 기억하는 건 여기까지다. 마취 때문인지 저 말들 때문인지 머리는 깨어질듯 아팠지만, 팔 다리에는 점점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두 사람이 상자 속의 내 생사 여부를 두고 말싸움을 벌이는 동안 슬쩍 상자에서 뛰어 나왔고, 열린 창틈을 비집고는 뻣뻣한 몸으로 어렵사리 건물을 빠져 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나는 에르빈과 닐스를 다시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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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의 어린 모델을 기용해 

존재의 선험적 의문을 순결하고도 요염한 터치로 표현해 봤다.


문제는 내가 고양이치고는 지나치게 똑똑한 탓에, 그날 이후 이상한 의문에 빠져들었다는 점이다.


나는 그 상자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모른다. 물론 나 자신이 그 속에 있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살아서 깨어났다. 그렇다면 내가 그 속에서 내내 살아 있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허나 따지고보면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약에 취해 잠들어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내가 살아있는 내 자신을 ‘관찰’하게 된 때는 에르빈과 닐스가 상자를 열고 나를 관찰했던 순간과 같다.


그래서, 한편으로 어이없는 맘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나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나를 관찰할 수 없던 그 시간 동안, 혹시 나는 닐스의 말처럼 정말로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 자신이 그 동안의 기억을 갖고 있지 않으니 솔직히 살아 있었다고 확신하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그들은 다른 실험에서는 비슷한 상황들이 얼마든지 벌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더 혼란스러운 것은, 나 미야옹이 실은 그때 죽어 없어진 세상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몇 년 전에 어느 집 창문을 통해 본 TV에서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경우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는 것보다는 오히려 더 그럴듯한 소리란다. 생각해보면 그 상자에서 나온 여친 나비의 태도가 예전에 비해 쌀쌀맞아 진 것도 같다. 내가 다른 우주에서 살게 되어서 그런 걸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영영 얻지 못할 것 같다. 이제 너무 늙어서 몸도 힘들고 생각하기도 귀찮아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때가 이를테고, 그러면 삶과 죽음이 중첩된 상태가 아닌 순수한 죽음이 내게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다. 내가 만약 그 상자 속에서 다시 잠들지만 않았더라도 그들을, 특히 닐스를 한껏 비웃어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하긴 그래도 그들 덕에 유명해지긴 했지. 인간들의 세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절대 잊혀지지 않을 단 한 마리의 고양이가 바로 나, 슈뢰딩거의 고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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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이언티피쿠스가 책으로 나왔다는 말씀. 보다시피 아주 예쁨.

내부에 사진과 일러스트도 많고, 읽기 좋은 책이라는 거.



딴지마켓에서 책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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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