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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01. 14. 수요일

육두불패 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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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잡부의 긴 한숨 1]


 

 

 



 

3.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는 가고, 찐따짓 안하면 일당은 다 받는다. 다만 며칠 공치고 쉬어야 할 뿐이다.

 

현대철학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오늘날 브리콜뢰르(bricoleur)는 아무것이나 주어진 도구를 써서 자기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사람을 장인에 대비해서 가리키는 말이다. 신화적 사고의 특징은 그 구성이 잡다하여 광범위하고 그러면서도 한정된 재료로 스스로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무슨 과제가 주어지든 신화적 사고는 주어진 재료를 활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달리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화적 사고는 일종의 지적인 손재주(브리콜라주) 인 셈이다. 이것으로 기술적 측면과 지적 측면의 양자의 관계가 설명된다."


잡부는 가지고 다니는 연장도 없고, 주어지는 경우도 많지 않다. 익숙한 잡부라면 주위에 널린 반생토막 철근동가리, 타이 벽돌 각재 내자 등을 하는 일에 맞춰 연장으로 쓸 줄 알아야 하고, 그래야한다.


그리고 남이 쓰다 옆에 놓아둔 빠루망치(못을 뽑을 수 있는 일반적인 망치), 시노(긴결철물 갈고리), 갓다(절단용 연장)를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다른 용도로도 쓸 줄 알아야 한다. 아시바(건축공사 때에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 비계라고도 한다.)에 달린 클립은 깔깔이(아시바를 조일 때 사용하는 렌치)나 임팩(아시바 연결용 짧은 쇠봉)으로 풀지만 잡부는 주위를 둘러봐 하부쟈키(수직재의 하중을 바닥에 전달하는 부내로 길다란 쇠 몽둥이 형태)나 망치로도 떼내야하고 철근동가리로 반셍(굵은 철사)도 묵고 풀러야 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같은 책 <야생의 사고>의 역주에선 또 이렇게 설명한다. 


“브리콜뢰르에 정확하게 해당하는 우리말을 찾기는 어렵다. 그는 잡일을 좋아하며 무엇이나 손수 공작하는 일에 다 능통한 사람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좀 다른 의미로서 예를 들면 잡역부라든가 무엇이나 다 잘하는 사람이라고 쓰이고 있다.”


잡부는 브리콜뢰르이며 잡부가 하는 일은 브리콜라주와 유사하다. 선사시대인들의 신화 제작 방식, 즉 신화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시각은 잡부가 일하게 되는 환경 그리고 잡부가 일하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농사를 짓는 이종사촌은 여러 장비와 기구를 사용해 농사를 짓고, 필요할 때마다 무엇이든 사용해 이런저런 것을 만든다. 그도 브리콜뢰르인 셈이다. 목수는 목수일만하고 철근공은 철근일만 한다. 타일공은 다른 일을 다니지 않는다. 허나 잡부는 공사현장내에 모든 공정을 격고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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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브리콜뢰르의 좋은 예 '맥가이버'


위에 장황하게 늘어 놓았지만, 오지랖이 넓다 보니 제대로 아는 것 또한 없기 쉽상이고, 요청하는 쪽에서도 잡부에게 대단한 기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인력이 잡부이고, 이것이 노가다 잡부의 현실이며 비애다.

 

하지만 젊은사람이 세상을 배우며 돈도 벌고 싶다면 이 이상의 일도 없을 것이다. 무전여행을 하고 싶다면 그냥 내일 떠나라! 전국에 인력사무소는 널려있다. 파주에서 제주도까지. 진짜배기 여행은 각 지역의 사람들을 통해, 그 지역의 향토와 정서를 체험하는 것이 아닐까? 집으로 돌아 올때 무일푼으로 떠난 놈이 몫돈을 지니고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본인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부 부상 없도록 조심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게 되니 언행 챙기고)

 

근데 겨울철이라 지방에 일이 어떨지 모르겠다.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고 일도 많으니 여행을 떠나기엔 좋은 계절이다. 

 

그리고 요즘은 일정규모 이상인 현장의 경우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을 받은 사람만 고용하니 3만원내고 4시간 교육을 받고 수령한 이수증을 챙겨야, 일 다니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장갑도 일하는 사람이 챙겨야한다. 적황색 이중코팅된 장갑을 겉에 보통 목장갑을 안에 끼면 손에 잔부상이 거의 없다. 비계 위에서나 개구멍으로 무거운 물건을 아래 위로 받아치기 할 때엔 하나만 끼는게 힘이 덜 든다. 겨울철에도 땀에 쉬 젓다보니 일하다 보면 손이 시렵다.

 

몸으로 하는 일은 담백하다. 한 대가리를 끝내고 나설 땐 몸일이 주는 즐거움도 있다. 때론 “이 일을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껄” 하는 후회를 하게 될 때도 있다.

 

글도 담백한 것이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데, 쓰고나니 번잡하다.





4.


일군의 직군을 나타내는 상징물에 저울이 있는 것은 경찰 법원 등이다. 欲(욕)을 중심 삼아 양 끝에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놓고 무게를 잰다면 어디로 기울까. 지금은 에로스로 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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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금 저울이 '삐꾸'일 때가 있다.


오전 9시 MBC 라디오에 양희은 강석우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여성시대)이 있다. 코너 중 사연을 보내 뽑히면 그 사람의 일터에 삼겹살을 보내주는 코너였다. 타워크레인기사 굴삭기기사의 사연도 기억나고, 군산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인력사무소 여소장이 사연을 보냈다. 기억나는데로 소개하면


"처음 시작해서는 몇백원 가지고 따지고 드는 거친 인부들로해서 울기도 많이 울어 울보여소장으로 소문나고, 현장에 사람을 보내면 가지 않는 사람들과 거래처 사이에서 고생했던 일, 자판기커피를 팔지 않고 무료로 제공하는데 배가 고파 커피를 죽처럼 타먹는 인부들... 지금은 50명의 정예인력을 보유한 인력사무소가 되었고 이들과 함께 삼결살파티를 하고 싶다." 


는 내용이었다.

 

보통 이런 내용이 소개되면 강석우씨가 멘트를 이끌어 가는데, 이 날의 멘트는 편지내용 중 일부를 몇 번 되풀이해 읽기만 하곤 물음표로 끝나는 멘트만 있었다. 인력사무소가 어떤 곳인지 그곳에 나가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강석우씨하면 영화 <겨울 나그네>가 생각난다. 최인호 원작에, 곽지균 감독, 이미숙 안성기 이혜영 동반출연으로 기억되는데 슈베르트의 음악보다 엔딩 씬의 강석우씨가 나오는 장면 배경음악으로 나온 Rare Bird의 Sympathy가 기억난다.(들을 때는 Volume Up하고 들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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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80년대 띄엄띄엄 최인호씨의 소설을 읽으며, 그의 영화를 거의 다 보며 성장했다. 70년대의 해외유학파 영화감독 1세대로 요절한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 고등학교 동기동창이었던 이장호감독의 <별들의 고향>도 최인호의의 작품이며, 80년대 들어서는 주로 배창호감독과 작업했다.

 

그의 원작이거나 시나리오일 경우 영화계에선 흥행을 보증하는 수표로 통했다. 고등학교시절 이미 문재(文才)를 보였고, 한 때 ‘호스테스문학’ 이라 비난 받기도 했으나 작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술집에서 “여자들 옷 벗기는 글 그만 쓰라” 는 지인의 비난에 “네 옆에 앉은 호스테스가, 바로 네가 말하는 민중” 이라고 응대 했다고 한다.

 

<겨울 나그네>는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연유한 작가 최인호의 내밀한 실존고백이거나 변명일 수도 있겠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부친의 죽음이 분기점이 된다. 최인호씨의 부친도 일찍 돌아가셨고 모친이 하숙을 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그는 돈이 없어 신혼집을 얻지 못하고 여관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도시민의 분열증적 내면을 보인 <적도의 꽃> 그리고 <깊고 푸른 밤>도 생각난다. 이후 일련의 역사소설을 썻으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임에도 禪문집을 냈고 한때 승복을 입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가수인 조영남씨가 “글을 어떻게 써야하냐?” 고 묻자 “솔직하게 써야 한다” 고 답했다고 한다. 암으로 돌아가시기전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미처 많은 것들을 깨닷지 못했을 거라며 감사하셨다.

 

필부가 이제야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인의 영전에 누가 될까 저어대나, 당시 그의 작품을 접하며 느꼈던 인상을 적었다. 그것은 내 청춘의 일부일 수도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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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최인호(1945~2013)


강석우씨 처럼 나도 몰랐다. 인력사무소에 다니기 전에는.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지하도를 지나, 사거리 대로변을 걸어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간판을 보니 S인력이었다.

 

한 달 쯤 뒤인 12월 초 작업복이 든 배낭을 매고 나갔고, 가게 된 곳은 제기동에 있는 중학교 급식실공사였다. 같이 간 사람은 그 사무실 고참이었다. 제기동역에 내려 현장으로 향하는 길에 고참이 말했다.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일 맡기고 확인하러 이따금 오는데 사람들도 좋고 이만하면 괜찮은 현장이예요.”

“네.”

“여기가 일 할 곳이예요” 라고 말하고는 지나쳐 계속가기에 따라갔다.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현장소장도 왔다. 고참과 소장이 인사를 주고 받았고, 같이 인사를 했다.


“전 식사를 했습니다.”

“… … … .”


고참이 말했다.


“이런 일 처음이죠”

“어느 현장에 가게 될지 몰라 식사를 하고 왔습니다.” 

라고 얼버무렸지만 두 사람은 나름데로 짐작하는 눈빛이었다. 소장은 눈길을 돌려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냥 식당을 나서는게 어색해져 식사를 또 했다.

 

그날 한 일은 쓰미데모도(나무로 만든 상자 같은 걸 메고 벽돌을 나르는 일, 매우 높은 일당을 자랑하나 잘못하면 허리가 나갈 수가 있다.)였다. 세멘벽돌과 사모래 물(시멘트에 모래를 섞고 개기 위한 물)을 날랐다. 나중에 알게 됬지만 일대일로 붙었으니 일은 널널한 거였다. 고참은 하스리(할석 : 돌을 가공하는)를 했다. 하스리도 편한 일이었다. 참시간이 되어 남들은 다들 먹는데 그냥 있으려니 뻘쭘했다. 주위에 손수레나 밀바(우리가 장볼 때 쓰는 손수레의 공업용 버전이라 보면 되겠다.)를 찾아 볼 생각을 못했다. 손으로 한참을 날랐고 나중엔 고참의 충고에 따라 손수레로 날랐다.


4시 반경 고참이 쓰미에게 다가와


“사장님 저희 시간 됬는데 들어가 보겠습니다.” 라고 했고


옷을 갈아 입고 현장을 나섰다.

 


 






육두불패 잡부


편집 : 너클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