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5. 01. 16. 금요일

SamuelSeong










조건 1. 인도 전통 악기 하르모니움 vs 마오쩌둥을 따르는 공산주의자, 마오바디


본 기자가 인도와 네팔을 처음 갔던 게 2006년이었다. 그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그리고 본 기자의 지인들은 십 수년 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인도인들이 꽤 있다. 그 중에 한 명이 인도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도시인 바라나시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있다.


바라나시의 명문대인 Banaras Hindu University 철학과 졸업생인 데다 BHU가 힌두 문화를 보존하는 데 꽤나 열성적인 곳이라 여기 학생들이 그 친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부정기적으로 전통문화 공연을 하고 있다.


 20130516_144755-1024x768.jpg

타악기가 타블라, 풍금처럼 연주하는 게 하르모니움이다

 

 

델리에서 꽤 빡센 일정을 끝내고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 전에 이 친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며칠 쉬면서 매상이나 열심히 올려주고 있던 차였다. 뭐 이런 공연을 300 INR(한화 약 5,200원)에 볼 수 있으면 그것도 나쁘진 않은지라 보러갔던 건데, 그 자리에서 듣던 라가(rāga : 인도 음악의 선율 전개 방식 - 편집자 주)가 몇 년 전 생각을 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2011년 여름부터 2012년 여름까지 본 기자가 했던 것은 농사였다. 네팔의 남서부인 Dang지역에서 10ha로 시작한 밭농사를 약 1년 사이에 총 140ha로 확대시켰다. 뭐 그 와중에 장출혈로 한 번 실려나오기도 했으니 고생한 이야기는 더 쓸 필요도 없을게다.


사실 본 기자가 힘들었던 것은 직접적으로 농사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현지의 관습이었다. 어디나 농촌으로 갈 수록 그 전통이나 관습이 현대사회의 가치보다 훨씬 더 강하게 작동하는 법. 네팔의 곡창지대인 떠라이 평원을 나눠먹는 대지주 가문의 방계 머시깽이가 본 기자네 회사의 파트너였고, 본 기자가 숙박을 해결했던 곳은 그의 집이었다.

 

 

_IGP2388.JPG

 2007년 메이데이의 마오바디 청년. 카트만두

 

 

2006 년 4월, 네팔의 마오주의 반군(마오바디)이 네팔 전국을 장악하고 수도 카트만두로 진격하고 있던 즈음에 자기들이 살던 집에서 쫓겨났던 것이 트라우마가 되었던지 이들이 새로 만들었던 집은 바로 군 부대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걸론 '모자라다'고 약 5미터가 넘는 벽으로 두르고 그 위에 군용 철조망으로 돌려놓고 살고 있었다. 뭐 그래봐야 포크레인으로 한 방 내려치면 다 무너지겠더만.


울 회사 파트너는 정치해야 한다고 카트만두로 돌아가고 그 집 마름과 잡일하는 얼라 하나, 그리고 파트너의 부모만 남고나서부터 분위기가 심각하게 싸늘해졌다. 영감님과 할머님의 입장에서 '농사'란 '소작민들을 부려서 종자를 뿌려 수확하고 그 소출의 80%를 갖는 것'이지 '작황을 높이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었거든. 본인들은 브라만이라서 신을 찬미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들 밑의 카스트들은 자신들을 먹여 살려야 하고.


거기다 원래 외국인은 카스트가 없는 아웃카스트. 그래서 본 기자에 대한 파트너 부모의 대우는 '한국에서 파견된 자기네 집의, 그것도 불가촉 천민인 마름'인데 자기네 말은 죽어라고 안 듣는 넘이 되어버렸다. 방문 닫고 나가면 방문을 자기 조카 손주들에게 열어줘서 값 나가는 거 털어가게 만드는 일이 예사였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들었던 라가는 하필이면 그 영감님이 매일 새벽 4시면 부르던 라가였다. 본 기자를 한국에서 파견된 자기네 집 마름 취급 하던 영감님이 '동창이 밝았는데 종 놈은 안 일어나고 뭐하냐'고 부르던 그 라가를 델리에서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바라나시에서 퍼져 지내다가 듣다니. 쩝.


작목 특성상 논이나 밭보다는 모래가 많이 섞인 땅에서 잘 컸던지라 약간 황무지 비슷한 상태의 땅이 좋았는데, 파트너라는 인간이 낼름 빌려 준 땅은 마오바디 7사단 주둔지 바로 코앞이었다. 2006년부터 2008년 1차 제헌의회가 성립되기 전까지 마오바디들이 하고 다니던 것은 '인민혁명군'이 무서워서 도망간 '부재지주'의 땅을 경작한 농민들 손모가지를 쿠크리 칼로 날리던 것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면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하실까.


kukri.JPG

그 자식 땅 갈아준 놈 나와라


1965년부터 차루 마진달이 썼던 8개의 역사적 문건(혹시 궁금한 독자들은 이 링크 따라가시면 그 전문을 보실 수 있다. 물론 영어다. 링크)에 기반한 인도 낙샬바리(인도 동북부 지방을 기반으로 하는 마오쩌둥주의 무장 게릴라 집단 - 편집자 주)들의 입장은 졸라 간단하다.

 

 

"지주, (외국인)사업가, 대학교수, 경찰간부, 좌우파 막론하고 

고위급 정치인은 '인민의 적'으로 개별적으로 처단해야 한다"

 

 

네팔 마오바디들의 아빠가 인도 낙샬바리인데, 지주는 물론 외국인 자본가까지 '인민의 적'이라고 발표했던 적이 있는 걸 빤히 아는 본기자였다. 총 든 양반들 코 앞에서 현지 농민들에게 일당 주면서 농사 짓는 것은 까딱하다간 '인민의 적'으로 지명될 수 있는 거고, 그렇게 지명되는 즉시 한 덩어리 상태로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었던 거다.


물론 네팔 마오바디들은 자기들이 정권 잡자마자 '외국인 투자 졸라 환영'으로 입장 바꿨지만 내가 있었던 곳은 말 그대로 촌 동네. 문맹률 장난 아닌 촌동네에선 뭐가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아는가. 할 수 있었던 거라곤 조금 친하게 지냈던 전임 수상 프라찬다 비서의 전화번호를 갖고 다니는 것이었다.


네팔 남부의 이 갈등상황은 인도 북부의 많은 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인간들 생긴 것도 비슷하고. 물론 이 갈등이 모든 갈등의 총합인 것은 아니지만 일단 알아둘 필요는 있다.


인도 네팔을 이야기하면서 전통과 현대가 상생하는 어쩌구 하는 개드립들이 꽤 되는데, 그건 지들이 별 생각없이 돌아다니는 관광객들이라 그런 것일 뿐이다. 소작농을 부리며 전통 음악을 흥얼거리는 역설과 외국인 투자 졸라 환영이지만 정작 외국인들이 뭔가 하려고 인도에 들어가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 되는 현실에서도 볼 수 있듯 지구상 어디든 전통적 관습과 현대문명이 충돌하지 않는 곳이 없다.




조건 2. 28살의 인도인 교수 vs 대한민국의 인종 차별


본 기자 주변에는 힌두교도이면서도 한국에 오면 '인도의 소가 아니기 때문'에 쇠고기는 물론 대창까지 즐기는 넘도 있고, 열심히 이슬람 사원에 다니면서도 '한국의 돼지고기는 자기네 나라 돼지고기'가 아니기 때문에 돼지고기 즐기는 무슬림도 있지만 세계적으로는 종교에 따른 식습관들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힌두교의 영향을 꽤 받은 불교도인 아내님만 하더라도 쇠고기 안 먹는다.


그런데 이걸 '음식을 가린다'고 '한국에 왔으면 한국 문화를 따라야한다'며 참견 놓는 영감쟁이들을 꽤 만나게 되는데, 그 때마다 졸라 깬다. 힌두교 문화권의 사람들은 시신을 화장할 때도 '정화'되라고 소똥을 시신 위에 한 덩이 올려놓는다. 그렇게 그들이 신성하게 취급하는 소를 안 먹는 게 한국 문화 무시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면 대략 멍때릴 수밖에 없다.


아니 한국인의 식단에 쇠고기가 일상으로 오르기 시작한 게 뭐 얼마나 되었다고? 전임가카가 '값싸고 질 좋은'이라는 형용모순의 수식어를 붙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던 것도 고기 제대로 못 먹던 그 시절 그 사람들의 정서가 밑에 깔려 있기 때문 아닌가.


이건 기본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된다.


2009 년 한겨레21에 두 번에 걸쳐 한 외국인의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다. 보노짓 후세인(Bonojit Hussain), 당시 스물 여덟살이었던 그는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와 있었는데, 용감 무쌍한 30대 초반의 양복쟁이 하나가 '더러운 XX'라며 지랄을 했던 것. 


han21.JPG

후세인이라는 이름을 듣고 '아랍'이라고만 생각하는 것만도 얼마나 무식한 넘인가 싶다만.

기사 원문 - 한겨레21


이 용감무쌍한 30대 양복쟁이는 약식기소된 후에야 아주 공손해졌었단다. 


h21_2.JPG

기사 원문 - 한겨레21


이 사건은 한국의 인종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 위키피디아까지 올라가 있다. (Wikipedia - Racism in South Korea) 특히 위키에선 대한민국 경찰의 수준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에서인지 경찰이 '어떻게 스물 여덟살이 대학 교수이냐'고 물었다는 부분이 아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여튼 이 문제에 대해 정치권이 어떻게 대응했는가는 두 번째 기사에 나온다. 당시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겠다고 했었는데, 사실 그거 좀 역사가 기구하다. 차별금지법과 관련된 논의가 처음 시작되었던 것은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출발한다.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어떠한 이유로든 불합리한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었고 이에 대한 논의는 2007년에야 법무부로 넘어가 입법예고된다.


하지만 바로 그러자마자 결사반대를 외치고 나온 두 곳이 있으니... 하나는 성추행과 관련된 법이 기업활동을 훼방놓는다는 꼰대들이었고 또 하나는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 금지(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등 성 소수자를 사회적으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상 동성애 합법화라고 우기는 꼰대들이었다.


압권은 2010년 12월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에서 동성애 차별금지법을 적극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 이 덕에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성명은 어쩌다가 한 번 나오는 정도가 되어버렸다.


이 현실이 앞서의 갈등상황과 만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수출하고 경제 살리겠다는 대통령, 그러나 조건 1과 조건 2가 만나면?


보노짓 후세인의 아버지는 무슬림이며 언론인이다. 그 덕택에 저 사건은 터지자 마자 바로 인도 매체를 달구기 시작했었다. 앞서 인도 대학 순위를 이야기했던 인도 주간지 India Today는 보노짓 후세인이 한국에서 인종차별이 나쁜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는 기사를 바로 그때 내보냈었다. 


indiatoday.JPG

기사 원문 - IndiaToday


꽤 많은 뉴스미디어와의 인터뷰도 실렸다.

 

 

보노짓 후세인의 인도 미디어 인터뷰


그 후 그는 돌아와서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종차별이 얼마나 좆같은 일인지에 대해, 인도인들도 무심결에 하게 되는 그런 행동들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활동에 매진중이다. 


kafila.JPG

기사 원문 - KAFILA


뭐 더불어 인도 사회의 엄숙주의에 대해 조까라는 활동도 같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스크린샷 2015-01-15 오후 4.07.16.png

 공공장소에서 키스하기. 인도 극우조직인 RSS 사무실 앞에서


지금은 전국을 장악한 여당이 된 BJP의 일부 국회의원들이 2007년에 리처드 기어가 인도 여배우를 끌어안고 키스했다는 것을 '공공장소에서의 음란행위'이며 인도인을 무시하는 행위를 한 것이라고 출입금지 시켜야 한다고 날뛴 적이 있는데, 그런 엄숙함이 우선인 이들에게 가운데 손가락 날려주고 있는 것.


그런데 문제는 그가 활동하고 있는 곳이 유럽의 어느 나라가 아니라 전통과 현대가 항상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인도라는 것이다.


우선 2009년 그가 했던 인도 매체와의 인터뷰는 꽤나 많은 인도인들을 빡돌게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아웃 카스트'인 한국넘들이 인도인을 인종차별했다는 것이었다. (한국 공관들이 한류 바람을 뭐 어떻게 해보겠다고 한국 드라마를 외교통상부에서 일괄적으로 판권을 구매해서 그걸 외국에서 공짜로 틀어주는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데 그래봤자 이런 인터뷰 몇 개면 무효화된다. 특정국에 대한 호감이란 건 이토록 무너지기 쉬운 거다.)


그리고 그가 주로 할동하고 있는 모교인 델리대와 네루대 정외과 학부생의 상당수는 낙샬바리 지지자들이다. 정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무지렁이 농민들을 조직하기 위해 수많은 상징들을 이용해 사회 갈등을 간단하게 외울 수 있도록 하는 이데올로기 선전물 만들어내는데 거의 4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곳 되겠다.


이미 꽤나 많은 한국 회사들이 인도에서 사건 사고들을 치고 있는 와중에 '한국 넘들은 당신들을 사람취급 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만큼 간단한 선전선동용 구호가 더 있을까. (지금은 일단 인도에 제철소 건설을 계획 중인 포스코 혼자서 조뙈고 있는 상태지만 한국식 노사문화의 수출에 여념이 없는 모 구루마 업체, 너네도 입에서 단내나게 될 날이 얼마 안남은 것 같더라.)


사실 앞서 조건 1에서 설명했던 것만 하더라도 이 지역에서 뭔 일을 하는 건 절라 위험한 장애물 경주를 달리는 상황과 비슷함을 알 수 있을 거다. 허들에 날카로운 칼날이 꼽혀 있고, 트랙에는 미끄러운 기름칠이 되어있거나 맹수포획용 함정이 파져 있는데 그걸 가벼운 프로텍터 하나 믿고 졸라 달리고 있는게 이 지역에서 장사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현실이거든?


그리고 서민들의 호주머니가 불룩해지면 사특한 생각을 하게 되어 정권 타도 투쟁에 나서게 될 것이라 학습하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왕전하 덕택에 한국의 내수시장이 어떻게 좋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구매력이 있어야 뭔 시장이 돌아가지. 그런 상황에서 경제를 버팅기는 건 수출이라는 거, 말해 무엇하리.


soochool.JPG


그런데 투자활성화를 위한 특수목적 수트까지 갖춰 입고 24번 넘게 얘기하는 대통령을 찬양하면서도 우리나라가 가진 조건 2를 어떻게 좀 해볼 생각 않는 인간들을 보면 졸라 고마울 뿐이다. 그 수출 좀 어떻게 해보자고 있는 사람들이 넘고 있는 장애물들의 상태가 너무 부실해서 쉬운 경주가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것 아닌가.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고 외국인들 상대로 창조 경제 좀 해보려는 사람들이 똥꼬털이 곤두설 만큼 아찔한 레이스를 연출한 끝에 목표를 달성해야 그림이 좋을 테니까...


는 개뿔! 누가 외국인을 떠받들라고 하냐? 사람 대접 좀 하라고 하는 거지? 그런데도 사람이 사람 대접하지 않아서 벌어지는 갈등을 이제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확대해주시면 그렇게들 뿌뜻하신가? 응?







SamuelSeong

트위터 : @ravenclaw69


편집 : 딴지일보 꾸물,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