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1. 21. 수요일
김현진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몸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나를 스쳐 간 당신의 몸, 당신의 이마를 한때 어루만졌던 누군가의 손, 아스팔트 위에서 사정없이 깎여나가던 누군가의 피와 살, 철탑에서 얼거나 타들어 가는 몸들, 당신이 나를 낚아채 주길 바라면서 숨죽여 뺨을 대 보았던 당신의 쇄골. 몸은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은밀한 삶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 '몸'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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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아무 대책 없이 안부가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페이스북이니 트위터 같은 걸로 찾아볼 도리가 없는데도, 궁금한 사람들. 내게도 그런 사람이 몇 사람 있는데, 어떤 중년 남자로 나를 발로 뻥뻥 찼던 남자다. 연애 이야기가 아니고, 물리적으로 찼단 이야기다. 아는 남자에게야 아버지라든가, 분노한 연인이라든가, 안 걷어채여 본 건 아니지만 생판 남에게 축구공처럼 걷어채여 본 적은 처음이었다.
때는 광우병 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회사가 끝나면 광화문으로 출근하다시피 해 열렬히 가두시위를 하던 시절이었다. 쇠고기를 별로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명박이 아주 싫었고, 퇴근하고 나면 너무 외로웠다. 시위에 참여하기에 순결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들하고라도 함께 있고 싶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하고라도 함께 있고 싶었다."
중구 경찰서장이 해산하라고 마이크로 협박할 때 즈음이 되면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니 집에 가야 했다. 그때 나는 누가 봐도 우범지대처럼 보이는 곳에 혼자 살고 있었는데, 주로 노인들이 살던 골목이라 밤 열 시만 되어도 무덤처럼 고요했다. 헉헉대며 자취집이 있는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골목을 지나치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퍽, 퍽.
어라, 이상하다. 꽤 맞아 본 입장에서 듣기로 저런 둔중한 타격음은 분명 사람 살이 맞아서 으깨지는 소리였다. 더 확인할 필요도 없이 욕설이 쏟아졌다.
"야 이 시발년아 거기 안 서?"
골목과 이어진 야트막한 뒷산에 놓인 조그마한 층계에서 40대나 됐을까, 여자 하나가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비슷한 연령대로 보이는 남자가 식식대며 층계를 바람처럼 내려와 여자의 허리께를 걷어찼다. 발도 바빴지만 입도 멈추지 않았다. 죽어라, 죽어, 이 시발년아. 여자는 머리만은 보호하겠다는 듯이 팔로 머리를 감싼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매를 받아내고 있었다. 발길질이 연속되었다. 나는 휴대전화 버튼에 얼른 112라고 찍은 후 다다다 달려갔다. 하도 매가 모질어서 겁을 낼 틈이 없었다. 저러단 누가 죽겠다 싶었다. <과이언맨>을 들으시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그 옹알대는 목소리로 꽥 소리쳐봤지만 원래 목소리가 크지도 않아서 개미도 아마 거기에는 겁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뭐하'시'긴 뭘 해. 사람 패'시'고 있지. 그 와중에 뭐 하시냐고 높임말을 쓴 내가 한심했다.
남자는 날 돌아봤다.
"넌 또 뭐야?"
내가 뭐지. 지나가는 과객이오만, 할 수도 없고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 동네 사는 김현진입니다, 하고 인사를 청할 수도 없고 잠깐 난감했다가 할 수 있는 한 앙칼지게 소리쳤다.
"아저씨 사람을 왜 때려요!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좀전까지 중구와 종로구 경찰서장에게 구박을 받고 물대포를 얻어맞고 했는데 경찰이 과연 내 편일까, 하는 음울한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지금 기댈 데라곤 경찰밖에 없는지라 나는 전기충격기라도 된 양 휴대폰을 흔들어 보였다. 남자는 혀를 찼다.
"그래? 경찰? 불러라 불러!"
그러더니 다시 베컴같은 기세로 강스파이크를 날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두들겨 맞았는지 여자는 비명도 못 지르고 아이구, 아이구 하는 작은 신음밖에 내지 못하고 있었다. 별 수 없이 나도 모르게 몸을 날려 여자의 몸을 덮었다. 더 맞았다간 죽을 것 같았다. 당연히 발길질은 내 등짝으로 날아왔다. 퍽, 퍽. 내가 여기서 맞고 있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뭐야? 몇 대 맞으면서 생각해 보니 굉장히 억울했다. 여자를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뒤로 숨겨 놓고 벌떡 일어났다. 여차하면 바닥에 있는 벽돌이라도 집어서 찍어버릴 테다, 하는 각오였다. 왜 때리냐, 당신이 뭔데 어디다 손찌검이야, 경찰에 신고하겠다, 뭐 이런 말들이 머릿속에 한가득인데 희한하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이랬다.
"야, 너 같은 새끼 때문에 민주주의가 안 되는 거야!"
격했던 골목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풀벌레가 찍찍 울었다. 얻어맞은 데는 아프고 내가 왜 이딴 말을 했을까. 수습을 고민하고 있는데 민주주의의 주적으로 몰린 남자가 입을 열었다. 흥분이 좀 가신 목소리였다.
"아가씨, 내 이야기 좀 들어 봐요."
잠시 후, 나는 좀전까지 나를 패던 남자와 나란히 앉아 그의 이야기인지 하소연인지를 듣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야기인즉슨, 그 남자는 보일러 기사로 공고에서부터 보일러 기술을 배워 이제는 어느 정도 인정받는 기술자로 지사에서 직접 출장 나갈 지역을 정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갔다. 수입도 주말에 특근을 하지 않아도 아내와 딸을 고생시키지 않을 정도로 벌고 있다. 그 모든 건 아내를 위한 거였다. 아내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 때였다. 군대를 가서 남들 다 가 보는 사창가도 그는 고참들에게 갈굼을 당하면서 가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인생에 유일한 여자였다. 제대하고 한 사람 몫의 기술자를 할 수 있게 되자마자 청혼했고, 둘은 가정을 꾸렸다. 그가 보다 기술이 뛰어난 보일러 기술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모두 가정을 위해서였다. 외박 없이 반드시 집에 돌아온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었기 때문에, 당일에 돌아올 수 있는 지역을 선택할 수 있도록 누구보다 뛰어난 기술자가 되려고 노력했고, 주말에 특근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수입을 올릴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서 외박 없이 주말을 가족과 보낼 수 있는 가장이 되었다. 월급 받은 날이면 기술자들끼리 아가씨 나오는 그리 비싸지 않은 술집에 가곤 하는데, 거기도 단 한 번도 낀 적이 없다. 보너스 나오는 날에도 백 원 한 장 건드리지 않고 아내에게 가져다 주었고, 월급은 물론이었다. 어느새 그는 좀전에 입술을 꽉 깨물고 여자를 둘이나 패던 남자 같지 않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고 있었다. 술냄새 같은 건 나지 않았다.
"내가요, 이 여자 진짜 사랑했어요. 그런데 다른 데로 출장 넘어가다가, 옷 갈아 입으려고 집에 와 보니까..."
남자는 주먹으로 시멘트 바닥을 쾅쾅 쳤다. 얼굴이 온통 눈물로 젖어 있었다.
"집에 와 보니까. 저년이 어떤 새끼랑 붙어 먹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그 새끼는 순식간에 튀고. 난 진짜 이런 거 상상도 못 해 봤어요."
주먹에 피가 맺혔다. 저러다 크게 다칠 텐데.
"그렇게 사랑했어요. 근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인간이?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요?"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더듬더듬 말했다.
"그래도, 뭐 법적이나 대화로 해결을 보셔야지. 그렇게 때리셨다가 사람 죽거나 크게 다치고 그러면, 상황이 더 안 좋아지시죠."
남자는 무릎 사이에 고개를 완전히 묻었다. 어깨가 파도처럼 흔들렸다. 손가락 사이로 울음과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누가 도와 줄 수 없는 슬픔이 골목길에 뚝뚝 흘렀다.
"진짜 사랑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어요?"
여전히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풀벌레는 찍찍 울고 달은 밝았다. 그러게요, 사랑했죠.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나도 나를 사랑한 사람들 조져 버린 적이 있었고,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나를 조졌죠. 그러게요,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을까요? 뭐, 조지는 게 인생 아니겠어요? 인간이니까 그렇죠. 사람이니까. 사람이니까 다칠 줄 알면서도 사랑하고, 사랑하는데 그렇게 차마 말 못하기도 하고.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던 데다 나도 엉엉 울 것 같아서 흐느끼는 남자 옆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걷어채인 데가 욱신거렸다. 그 때 갑자기 누가 내 무릎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막고 보니 아까 내가 주차되어 있는 차 뒤에 밀어 넣은 여자였다. 그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면서 내 귀에 속삭였다.
"아가씨, 고마워요. 진짜 너무 고마워요."
그러더니 비척비척 몸을 움직여 어디론가 걸어갔다. 남자는 무릎에 고개를 묻은 채 엉엉 우느라 그걸 몰랐다.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골목길을 침묵을 잡아 찢었다. 자동차가 급출발하는 소리였다. 남자가 번개처럼 일어나서 달려나갔다. 외마디 소리만 남긴 채였다.
"저 시발년이!"
좁은 골목을 승용차가 F1이라도 하는 기세로 빠져나갔다. 성실한 보일러 기술자이자 방금 소박맞은 남자는 생판 모르는 아가씨를 패던 결단력으로 자동차 뒤쪽 트렁크에 몸을 던졌다.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자동차 뒤꽁무니에 매달렸다. 이런 건 액션 영화에서나 봤는데, 싶어 나는 입을 쩍 벌리고 그 광경을 쳐다봤고, 여자는 핸들을 이리저리 난폭하게 꺾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한 여자를 사랑했던 끈질긴 남자답게 그는 승용차에 찰싹 달라붙은 채였다. 그들은 그렇게 사라졌고, 나만 풀벌레와 골목에 남았다. 이거 진짜 있었던 일 맞아? 의심하기에는 구둣발로 채인 등짝이 너무 아팠다. 비틀비틀 집에 가서 김 빠진 맥주를 찾아 소주를 부어 마셨다. 안 마시고 넘어가기에는 누군가에게 예의가 아닌 것만 같았다. 그 남자든, 그 여자든, 중구 경찰서장이든, 나든. 사실 그 남자의 울음 섞인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어서 나도 울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시지 않으면 울 것만 같아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러게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대답해 버리긴 너무 슬퍼요. 나 때린 건 용서해줄게요. 어차피 그렇게 귀하신 몸도 아니니까 난 괜찮아요. 두 사람, 잘 지내요? 차에서 떨어져서 다치지는 않았나요? 벌써 몇 년 전 일인데도, 이따금 그 세찬 울음이 생각나서, 아직도 같이 울고 싶어진다. 요즘 들어 아픈 갈비뼈를 보니, 그 때 걷어채였던 곳이다. 내 갈비뼈도 그동안 울음을 참았나보다. 울지 말아요, 다들.
김현진
편집: 딴지일보 나타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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