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1. 22. 목요일
육두불패 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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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은 사무실 부장이 내어준 안전화를 신고 현장으로 향했다. 고려대 공사현장으로, 토건업체였고 터파기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고 오후가 어느 정도 지나서야 그쳤다. 송출이 늦은데다 사무실 운전기사가 현장을 잘 몰라 더 늦어졌다. 아침식사도 하지 못하고 간단히 안전교육을 받은 후 일을 시작했다. 교육 중 “무거운 물건을 들라고 하면 하지 마세요. 몇 키로 이상은 규정상 안 됩니다. 시키면 저에게 말하세요.” 라고 했다.
세 사람이 함께였다. 30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은 다른 인력에 다니는데 일요일에도 S인력에 일이 많아 나왔다고 했고 손위로 보이는 김씨는 다른 곳을 다니다 연달아 삼일간 데마를 맞고 오늘 처음으로 나왔다고 했다.
김씨는 바닥에 고인 물을 양수기로 퍼내느라 내려갔고 둘은 직영 한 명과 함께 조그만 화약 보관창고를 철거해 한 쪽 바퀴에 바람이 빠진 리어카로 실어 야적장으로 날랐다. 오전동안 비를 맞으며 내내 하였다. 속까지 다 젖었다.
오전에도 쉬운 일은 아니였지만 모아둔 것을 차 있는 곳까지 들고 가 싣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손대지 않는 것을 들자 무거웠다. 물러서기 싫었다. 끝낸 후 담배를 피려니 젖어서 불이 붙지 않았다.
계속해 신호(상차를 위한 덤프차의 위치지정 및 주위 인원 통제)를 보았다. 덤프가 오면 신호를 보고, 사이엔 컨테이너에서 차가 들어 오는지 지켜 보았다. 잠깐 자리를 비웠던 관리자가 들어와 냉장고에 넣어둔 참을 꺼내 먹었는지 확인했다. 마지막 덤프차가 나간 후 고압살수기로 청소 후 일찍 현장을 나섰다.
젊은이는 그 후로 보지 못했고 김씨는 함께 일을 몇 번 더 나갔으나 몇 달 후 부터 보지 못하다 2년 후 한 번 만나게 되었다. 당시 S인력과 D인력을 번갈아 다니며 벌이와 일이 나은 현장이 배정 되는 곳을 나가던 때였다.
세종로에 있는 신축호텔현장 안전업체로, 새벽에 사무실(D인력)을 들르지 않고, 바로 다니며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추가로 온 사람이 김 씨였다. 업체소장이 돌려 보내려고 하였으나 '싸인지에 김 씨 맞죠'라며 끼어들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스타드볼트를 잡고 빔 위로 올라가 데크(철골 구조물에 슬라브를 콘크리트로 타설하기 위한 바닥재) 위를 걸어 다니며 난간대를 치는 모습을 보더니 '고소공포증이 있어 못한다'고 하여 그 날 내내 등록필증 스티커를 붙이는 일을 하였다. 점심을 먹으며 같이 일 다니던 얘기를 하였다. 주로 청소일을 다니는 듯했고 그 후로 보지 못했다.
날일을 다니며 혼자 일을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게 동료와 함께 가게 된다. 날일을 다니며 어제 일한 동료도 언제 또 함께 하게 될지 기약이 없다.
태릉에 있는 육사 교육관 공사현장이었다. 한여름이었다. 처음이었고 동료는 자주 다닌 현장인 듯했다. 둘이었다. 세 번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해서는 경비실에 신분증을 맡기고 10분 정도 걸어 도착했다. 교육을 받는데 방수팀으로 온 한 분이 혈압이 200이 나왔다. 시차를 두고 재니 떨어져 그 분도 일을 했다. 방학이라 생도들은 보이지 않았고 직원들도 휴가인 모양이었다.
600짜리 폼(거푸집용 자재)을 약간의 계단을 타고 옮겨 쌓아야 했는데
“허리가 안 좋아서 그런데 대신 해줘요”
라고 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그런 말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옮기고 쌓았다. 잠시 후 그 사람이 쌓기 시작했다.
일을 하는 동안 성격이 있어 보이는 반장과 동료 사이에, 주고 받는 말에 간혹 긴장이 감돌곤 했다.
급한 일을 마무리하고 오후 참 대신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달랬다. 동료가 말했다.
“그동안 일을 하며 여기저기 참 많이도 다녔는데, 청와대에서 일하기도 했어요.”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일해 봤는데 거기는 보안이 더 까다롭죠.”
“담배 피러 가거나 화장실 갈 때도 따라 다녀요”
다른 얘기도 나누었으나 무거운 어깨와 힘겨운 등이 비치던 뒷모습이었다.
그 날 일을 끝내고 샤워를 한 후 반장이 가는 길이라며 전철역에서 내려줘 인사를 주고 받고 헤어졌다. 전철에서 내려 일당을 받기 위해 사무실로 향하는 길, 전철역 출구 계단을 오르며 동료가 말했다.
“일을 끝내고 난 후 이 계단을 오르기가 힘들어요. 계단이 왜 이리 높은지...”
그 말을 들으며 계단을 올려다 보았다.
일당을 받고 사무실을 나와 갈림길에서 인사를 주고 받고 헤어졌다.
그날 처음 함께 일했고, 그 후론 새벽에 사무실에서도 보지 못했다.
그 분의 삶에 즐거움과 행복이 함께 하길 이 순간 기원한다.
철거일이 주종인 W인력에선 등록증을 발급해, 아침에 온 인부가 제출하면 그것으로 현장별로 배치해 인력송출을 끝낸 후, 모아 놓으면 저녁에 일당을 받아갈 때 챙겨가는 방식인데, 1037번이 내 등록번호이다. 하루에 대략 50명 정도 나오는데 꾸준히 나오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늘 바뀌는 것이다. 지금은 등록번호가 더 늘었겠으니 등록인원이 나오는 사람의 20배가 넘을 것이다. 다른 인력도 비슷하며, 오래된 사무실일수록 더 차이가 클 것이다.
이러다보니 하루 송출인원이 백 명을 훌쩍 넘는 곳에선 서로간의 인연에 기약이 없다.
붙임성이 좋고, 살집이 있어 땀을 많이 흘리던 한 친구는 호프집을 하다 어려워져 이 일을 시작했고 행정학과를 졸업한 후 개인사업을 하다 어려워져 한 달만 해볼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지금껏 하게 되었다는 친구는 그동안 빚도 다 갚았다고 한다. 성실한 사람이다.
흑석동에 있는 아파트 공사현장이었는데 여름이었다. 세 사람이 갔는데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가 한창 개봉중이던 때였고 오후 2시경 '보이지 않는데 가서 쉬다가, 시간되면 오라' 고 하기에 그늘을 찾아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앉아 있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사람은 어제 처음 나왔고 오늘이 이틀째라 했다. 어젠 처음이고 해서 일당을 받고 사람들에게
“오늘 제가 머리 푼 날인데 한 잔 살테니 마시고 갑시다.”
라고 했더니 사람들이 '다 비슷한 처지와 형편'이라며 추렴해 마시고, 남은 사람들과 2차를 갔다고 했다.
이틀째인 그 사람은 청량리에서 아가씨장사를 했었고 588(사창가)이 철거된 후, 대리점을 해보려고 J막걸리 사장을 따라 다니다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나머지 한 사람은 조경업체를 운영했었고 여의도 광장을 공원화하는 공사를 맡아서 했다고 한다. 여의도 공사는 조경업체 몫이 거의 전부인데 당시 ‘무슨 형님’ 하는 건달이 찾아와 지분을 요구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어 두사람이 ‘무슨 형님’ 해가며 그 ‘형님의 동생’ 누구해가며 건달들 족보를 얘기해가며 촌수를 맞춰가는데, 둘이 그렇게 한참을 얘기한 후, 조경을 했다는 이가 '한화그룹 회장이 족보에도 없는 건달을 이용해 그 사단이 난거' 라며 결론을 내렸고 어제 처음 머리를 풀었다는 이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이 조진웅과 직접 쇼부를 보려 했던 것에 대한 하정우의 보복은 당연한 거'라며 역시 결론을 내렸다.
다음날 전부 일을 가기 위해 나왔으나 조경이 안면을 틀었다. 푼머린 당황하는 낮빛이었고 다른인 기분이 나빴다. 그 후로 몇 번 같이 일을 나가기도 했으나, 함께 했던 그날은 서로의 기억에서 애초에 없었던 것이었고 서로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날일을 다니며 노임도 일당으로 받다 보면, 서로가 인연을 하루치로 끝낼 때도 태반이다.
하던 일이 어려워져 인력사무소에 다니게 된 이들이 대부분이고, 착실하게 한 달에 20일 이상을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말밥 주러 주말을 경마장에서 보내는 이들도 있고, 더러는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술에 의지하는 이들도 있다.
친절한 댓글러 '현장소장'의 친절한 용어 설명(원문 그대로 옮김니다. -편집부 주)
신호: 정확하게는 신호수를 말하는데...한 일은 신호수와 차량유도원 일을 다 하셨네요.
스타드볼트 : 스터드 볼트, 철골과 콘크리트의 부착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철골(보나 기둥 등)에 설치하는 금속재
데크 : 철골구조물에서 슬라브를 구성하는 금속물, 골데크와 평데크(수퍼데크)가 있고, 현장의 상황을 보건데, 평데크인 것 같습니다.
안전 : 본 공사 업체에서 위탁받은 안전관리업체를 말합니다. 안전관리를 현장에서 직영처리 하거나 하도급업체에 넘기지 않고, 안전관리전문업체에 위탁하여 관리하는 것입니다.
등록필증스티커 : 대한민국 건설 안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입니다. 안전들록 스티커란. 각종 안전물품의 내구연한 등이 안전물품으로 사용가능한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인데...재사용하는 경우 내구 연한과 강도 등을 확인하고 사용하는 것이 원칙...인데... 스티커만 교체하여 사용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법적으로 규정된 안전관리비 라면 충분히 관련용품을 규정에 맞도로 구입 혹은 임대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데...안전관리비 자체를 불필요한 또 충분히 남겨야 하는 여윳돈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뭐 사고만 안 나면 되니깐....
600짜이 폼 : 유로폼 : 거푸집자재의 일종 재 사용이 가능하고, 규격화된 자재. 폭 600, 높이 1200 짜리 유로폼을 말합니다. 폭이 200에 높이 1200 이면 2012 라고도 합니다. 아파트 등에서 높이를 특화하여 (예를 들어 내부 슬라브 높이가 2600이면, 메모드 50, 1200*2=2400, 슬라브 거푸집(장선받이) 50 합이 2500으로 100 미리가 부족하게 되고 이 경우 , 높이 1300짜리 폼을 제작하여 사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고 일도 편하게 됩니다. 이경우 6013+6012 폼을 작업을 하게 되지요...)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부속물로는 플랫타이, 웨지핀 등이 있다.
똥값 : 일반적으로 소개소의 알선비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10%를 떼는데...요거이 쫌 문제가 있다.
편집자 주
독투불패의 글이 3회 이상 메인 기사로 채택된 '잡부' 님께는 가카의 귓구녕을 뚫어 드리기 위한 본지의 소수정예 이비인후과 블로그인 '300'의 개설권한이 생성되었습니다. 조만간 필진 전용 삼겹살 테러식장에서 뵙겠습니다. 아울러, '잡부'님께서는 본지 대표 메일 ddanzi.master@gmail.com으로 연락가능한 개인 연락처를 보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육두불패 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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