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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9. 07. 월요일

벨테브레






1. 중국의 전승절, 그리고 열병식


박근혜 대통령은 9월 2일부터 4일까지 2박 3일 동안 중국을 방문했다. 방중 일정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것은, 박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 기념 열병식을 참관하는지 여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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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로이터>


Q : 중국에서 2차 대전 승전을 이렇게 요란하게 기념했던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뜬금없이 열병식까지 열며 기념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A : 좋은 지적이다. 원래 중국은 정부 수립(10월 1일)이나 당 창건(7월 1일)을 더 쳐주는 편이고 2차 대전 전승 같은 건 특별히 기념하지 않았었다. 여기엔 전승의 주체가 공산당이 아니라, 타이완으로 쫓겨 간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였다는 배경도 빼놓을 수 없다. 상대방의 정통성을 인정해 줘야 하는 기념행사를 거행하기가 껄끄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압도적인 국력차로 인해 양안간의 체제경쟁이 무의미해진 오늘날 대륙의 공산당 정부는, 국민당 정부의 업적마저 자신의 역사로 받아들이는데 인색하지 않은 편이다. 심지어는 타이완의 롄잔 전 국민당 주석이 중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가했을 정도.



Q : 그러면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퍼포먼스로 보면 되는 건가?


A : 그런 측면도 있지만 대내적으로는 시진핑 주석이 군권을 완전히 장악했음을 보여주려는 목적이 더 큰 것 같고, 대외적으로는 지난날 소위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로 대표되던 소극적인 정책에서, ‘유소작위(有所作爲: 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한다)’ 내지 ‘대국굴기(大国崛起: 큰 나라로 우뚝 선다)’로 표현할 수 있는 적극적인 기조를 취하겠다는 일종의 무력시위가 아닌가 싶다.



Q : 이번 전승절 열병식과 관련 중국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공을 많이 들인 것 같은데, 무슨 의도인지?


A : 중국 대륙에 강한 정부가 들어서면 곧잘 패권주의 정책을 취하곤 했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주변 국가들로선 열병식을 가장한 중국 정부의 무력시위를 곱게 볼 수만은 없는 게 사실이다. 한미일 동맹을 축으로 태평양의 헤게모니를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 또한 중국의 팽창정책이 마땅치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해 이번 열병식에 참가한 정상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체코, 남아공, 수단, 에티오피아, 이집트, 콩고민주공화국, 베네수엘라와 같이 구 공산권 국가 또는 남미와 아프리카의 제3세계 국가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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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절 열병식 지도자급 참석 30개국 명단


사실상 유일한 아시아의 주변 국가이며, 자유세계에 속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귀빈 중의 귀빈일 수밖에 없는 것. 아울러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방해하는 한미일 동맹의 가장 약한 고리는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열병식은 한미일 동맹을 흔들어 보겠다는 노림수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Q : 듣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중국에 호구 잡히는 거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이 든다. 박 대통령도 그런 위험성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굳이 열병식에 참가한 이유는?


A :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그 분의 성격상 몰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니면 패션쇼 차원에서 방문했을지도. 굳이 고상한 명분을 찾자면, 경제적인 문제도 없지 않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북한 때문 아닐까. 장성택 처형 등으로 많이 감퇴하긴 했으나 그래도 북한에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는 중국일 수밖에 없다. 작게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이후로 경색된 대북관계의 실마리를 중국을 통해 모색하고, 크게는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북한의 급변사태와 관련 중국 정부의 원활한 협조를 얻기 위한 제스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Q : 꿈보다 해몽인 것 같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A :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국가 대 국가라기보다는, 혈맹과도 같은 동지적 관계라는 점에서 좀 회의적이다. 더욱이 중국 입장에서 대한민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은, 완충지대 없이 미군과 맞닥뜨려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는 점에서도 다소 껄끄럽게 여길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한 일종의 대책으로 제시되었던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이었는데 과연 박근혜 대통령이 그와 같은 비전을 갖고 있을지, 갖고 있다 해도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실천할만한 뚝심이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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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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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선고유예


‘고승덕 후보가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다’는 취지의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1심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은 그는, 9월 4일 항소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아 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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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Q : 집행유예는 많이 들어봤어도 선고유예는 좀 낯선 것 같다. 어떤 의미인가?


A : 집행유예가 유죄 판결을 선고하되 형의 집행만을 유예하는 거라면, 선고유예는 (혐의는 인정되지만) 유죄라는 선고 자체를 유예하는 것이다. 2년간 별 탈 없이 지낼 경우 해당 사건에 대해선 ‘면소’ 판결이 내려진 것으로 간주한다. 즉, 사면받은 것과 같이 취급하는 것이다. 집행유예의 경우 교도소에 안 가는 걸 빼면 유죄 판결에 따른 신분상 불이익은 전부 입게 되지만, 선고유예의 경우 판결 자체로 불이익을 입게 되는 건 별로 없다.



Q : 그러고 보니 기소유예와 입건유예도 들어본 것 같다. 어떻게 다른가?


A : 집행유예와 선고유예가 법원에서 내려지는 판결이라면, 기소유예와 입건유예는 검찰 단계에서 행해지는 처분이라고 할 수 있다. 기소유예는 혐의가 인정되지만 기소하지 않고 선처하는 것이므로 불기소 처분에 속하며, 입건유예는 아예 수사조차 하지 않고 덮어버리는 것으로 형사소송법 제195조(검사는 범죄의 혐의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 문언과도 배치되기 때문에 실무상 거의 행해지지 않는다.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입장에선 입건유예 > 기소유예 > 선고유예 > 집행유예 순으로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5.18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 전두환과 노태우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기소유예 되었고, 걸그룹 2NE1 멤버인 박봄이 암페타민을 들여오려다 적발되었지만 입건유예 된 사례가 있다.



Q : 이러한 판결의 배경은 어떤 것인가?


A :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죄’는 법정형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규정되어 있어, 혐의가 인정될 경우 무조건 당선무효(벌금 100만 원 이상)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해야만 한다. 비록 고승덕 후보의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에 대한 문제 제기가 결과적으로 허위사실로 밝혀지긴 했지만, 선거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후보자 검증의 과정으로 악의적이지 않았으며 선거 결과에 미친 영향도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 직선으로 선출된 교육감 직을 박탈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고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Q : 판결에 대해 논평하자면?


A :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죄’는 악의적인 비방과 무책임한 흑색선전을 막기 위한 긍정적인 취지에도 불구하고, 선거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후보자 검증 목적의 문제 제기를 차단하고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조항이다. 이 조항의 폐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관련 의혹을 제기했던 정봉주 전 의원이 이 조항에 엮여 징역 1년의 실형과 10년간의 피선거권 박탈이라는 제재를 받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정법상 이 조항이 폐지되지 않은 이상, 법관으로서는 해당 조항을 적용해 재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조희연 교육감의 발언은 결과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으며, 사실이라고 볼 만한 근거도 부족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었기에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조차 유죄판결을 면할 수 없었다. 결국 실정법을 존중하면서도 판사의 재량을 최대한 활용하여, 시민이 선출한 교육감의 직을 유지할 수 있는 ‘솔로몬의 판결’을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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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땅.땅.



Q : 갈수록 비루해져 가는 사법부에 보기 드물게 훌륭한 판사가 아닐 수 없다. 그 분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A : 서울고법 형사6부 김상환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0기)다. 올해 김어준 총수와 주진우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해 법정구속했으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해 석방하는 등 소신 돋는 판결로 주목받았다. 권력은 물론 여론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헌법재판소 파견연구관을 역임할 정도로 법리에 밝아 판결에 시비 걸기도 쉽지 않다.



Q : 검찰은 이해할 수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했는데.


A : 나로서는 상고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다. 선고유예는 판사 재량이기 때문에 법에서 정한 요건을 갖춘 이상 상고 이유가 되질 않는다. 따라서 검찰에서는 일부 무죄가 선고된 최초의 의혹 제기, 즉 2014년 5월 25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 부분에 대해 법리를 오해했다는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다.


당시 조희연 교육감은 뉴스타파 최경영 기자의 트윗 등을 토대로 "고승덕 후보는 자신과 두 자녀의 미 영주권 보유 문제를 사실대로 밝히라"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에 대해 1심에서는 "고승덕 후보가 미국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허위사실을 밝힌 것"이라고 판단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제보" "의혹" 등 표현만으로는 '사실'이 아닌 '의혹 제기'에 해당한다며 애초에 허위사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당시 조희연 후보의 기자회견 영상


이에 대해 대법원에서 어떻게 판결할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이나, 대법원이 명예훼손과 관련 공공적·사회적 사안의 경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거나 정치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일정 부분 과장도 용인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보여준 점을 감안한다면 검찰이 상고해봤자 별반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물론 원세훈 사건에서 그랬듯이 일단 아무 트집이나 잡아서 파기환송 시킨 다음, 사건이 다른 재판부에 배당되도록 할 여지도 없지는 않다. 이 경우 눈치 빠른 판사라면 아마도 선고유예는 하기 힘들 테고, 기존에 인정되었던 유죄 부분만으로도 당선무효형을 선고하기엔 충분하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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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