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1. 26. 월요일
춘심애비
1.
‘세금'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국가 또는 지방 공공 단체가 필요한 경비로 사용하기 위하여 국민이나 주민으로부터 강제로 거두어들이는 금전’이라는 정의가 나온다. 글타. 세금은 강제다. 안내면 혼난다. 혼나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는 대부분 잠자코 달라는 대로 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금에 대한 규정이나 원칙은 우리 모두에게 졸라게 중요한 사안이다. 납세의 의무를 지니는 국민으로서 말이다.
이 세금은 무조건 많을 수록 좋다든가, 적을 수록 좋을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한 나라의 경기, 국민들이 누릴 삶의 질, 여당의 정치적 자산이 되는 지지율, 정치경제학적 이상, 정의라는 가치에 대한 시각 등 조또 많은 요소들이 영향을 끼친다. 그러다보면 누군가는 더 많이 내기도 하고 더 적게 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찌보면 ‘이상적인 조세'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세금에 대한 불만은 사실 대부분 ‘자기 입장’에서의 불만일 확률이 높다. 월급쟁이 입장에선 법인세 올라가고 내 소득세가 내려가는게 좋은 조세정책인거고, 영세업체 사장 입장에서는 도대체 내가 내는 법인세는 나에게 무슨 혜택을 주는건지 조또 모르겠는데 법인세 올리자는 월급쟁이가 미울 수 있는 거고, 그 와중에 재벌들은 세금 전문가들 스카웃해서 백억 천억 단위로 세금 덜낼 방법 연구하는 거고 말이다.
담배 판매상에서 쓰이는 로고.
그런 와중에, 2015년들어 전격 담뱃값 2000원 인상이 시행됐다. 이 중 출고가와 유통마진 인상은 232원으로 24%정도, 나머지 1,768원은 세금만으로 이뤄진 인상폭이다. 4,500원짜리 담배 하나 사면 세금이 3,308원이다. 이에 대한 흡연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정부에 삥뜯기는 기분'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한편, 작년 말부터 논의되던 담배 가격에 대한 각종 루머 및 기사들을 보면서,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매번 이렇게 담뱃값 엄청 올릴 거 처럼 분위기 만들어놓고 실제로는 한 500원 올려서 심리적 저항감은 줄이고, 결국 총 판매량은 유지시키면서 총 세금의 합만 올리는 치사한 꼴 한번 더 보겠다고. 근데 시발 진짜 2000원을 올려버리는 바람에, 이와 관련해서는 닥치고 버로우를 탈 수 밖에 없었다. 3000원된 담배가격을 보면서 비웃어주리라 마음먹었건만. 시비 붙어 말싸움 하다가 ‘쳐봐, 쳐봐'했더니 진짜 친 거 같은 이 황당함.
그 황당함 속에서 나는 트위터에서든 실생활에서든, 이 올라버린 담뱃값에 대놓고 지랄을 할 수가 없었더랬다. 이유는, 과거에 ‘차라리 그냥 한 5천 원으로 올려버리는게 낫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 그런데 그 근거로 생각했던 ‘실질적인 흡연인구 감소효과'가, 시행 초기이긴 하지만 체감적으로도 눈에 드러나는지라, 사실 이 가격 인상 자체에 대해 딱히 지랄할 마음이 없기도 했다. 일찌기 전자담배로 옮겨탄 변절자로서는 미안하다만, 암튼 이기적이게도 내 입장에 딱히 이 가격 자체가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이런 마음으로, 역시 미안하게도 작년에 저렴한 가격에 미리 쟁여둔 외산 전자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며 회사의 연말정산 공지를 보게된다.
국세청 연말정산간소화 서비스 홈페이지 스크린샷.
공지는 봤지만 뭐 아직까지 벌이와 씀씀이가 뻔한 미혼이고 소비의 90%가 신용카드인지라, 간소화 서비스로 자료 뽑고 물어물어 엑셀 채워서 제출하면 끝이겠지 생각했건만, 올해는 뭐가 바뀌어도 졸라게 바뀌었다는 느낌이 팍팍 들게 되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직장에서도, SNS에서도, 뉴스에서도 여론은 심상치 않다.
세금문제라는 게 워낙에 복잡하다보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바뀌어서 이 난리가 난건지 이해라도 좀 해보려고 각종 기사와 자료들을 찾아보기에 이른다. 이건 뭐 봐도 딱히 감이 오질 않는다.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변화, 간이세액표 변경, 2014년 1월1일 졸속 입법, 근로소득공제, 다자녀 및 출산 입양 관련 공제 통합 등등.
별 수 없이 안돌아가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관련 글들을 찾아보고 있을 때 쯤, 뉴스에서 갑자기 김무성이 나오기 시작하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기자회견을 한댄다. 이건 또 뭐야 싶어할 때 쯤, 때마침 밀려들어온 일거리와 한바탕 씨름을 하고 다시 기사들을 보니 5월 소급적용 얘기가 나온다. 아직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해도 안된 상태에서 정부가 사과를 하고, 여당이 나서서 정부 탓을 하고, 국무총리는 바뀐대고, 마치 졸라 불친절하게 편집한 서스펜스 영화를 보는 것 마냥 나는 그저 웹의 한가운데 외로이 서서 난 누구 여긴 어디를 외칠 뿐이었더랬다.
혼신의 힘을 다해 결국 사태를 대략 파악해보니 스토리 라인이 이렇다.
2.
2014년도 벽두에 이미, 이 나라는 소득세를 더 많이 받을 궁리를 이미 마쳐놨다. 일단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하면서 같은 소득인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하는 기틀을 마련한다. 아직 이 둘의 차이조차 모르는 분덜을 위해 잠깐 설명하고 넘어간다. 사실과는 거리가 멀게 단순 무식한 예를 들어서 연소득이 3천만 원 이상이면 소득세가 10%고 3천만 원 미만이면 소득세가 5%라고 쳐보자. 기존 소득공제 방식은 연소득 3천만 원 중 일정 소비를 소득이 아닌 것으로 공제해주는 거다. 즉, 연봉 3천에서 소득공제가 10원이라도 일어나면 소득세를 5% 내게 된다. 반면 세액공제는 일단 연소득이 3천이면 소득세를 10%로 떼어놓고, 그 10% 중에 일부를 공제해주는 방식이다. 즉, 소득세율이 변경되는 구간에 걸쳐있는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보다 많은 세금을 내게 되는 거고, 그렇다고 변경 구간에서 멀찍이 떨어져있는 사람에게 딱히 혜택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이 뿐만 아니라 깨알 같은 디테일로 다양한 공제항목을 최대한 티 덜나게 줄여서, 디스크 조각모음하는 마음으로 한점 한점 세금 늘릴 항목을 쥐어 짜냈다. 예를 들어 자녀 관련 공제가 통합되는데 기존에는 자녀가 총 3명이고 그 중 한명을 그 해 출산한 경우, 각각 중복해서 따로따로 100만 원씩 200만 원씩 양육비에 대한 소득공제가 적용된 후, 그렇게 공제받은 소득으로 소득세를 다시 계산해서 정산하는 셈이었다. 개정 이후에는 총 명수에 따르는 세액 공제를 받는다. 언뜻 봐서는 양쪽에서 어느쪽이 더 이익인지 손해인지 직관적으로 알기 어렵고 계산기를 두드려봐야 결론이 나기 때문에, 단순히 ‘자녀 관련 공제의 세액공제 방식 통합'이라는 타이틀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나, 앞서 설명한 소득구간 문제와 결부되면 분명 누군가는 훨씬 많은 세금을 내게 되는 반면 딱히 혜택을 보는 사람도 없어진다. 이런식으로 곳곳에 다양한 공제항목 축소를 숨겨둔다.
아... 꼼꼼하다.
이에 더불어 이 정부의 최대 장기 중 하나인, 욕 먹을 사실은 절대 티나게 발표 안한다는 자세로 1년 동안 잘도 가려뒀다가, 이제는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최후의 순간에 그냥 그 사실이 드러난 게다. 분명 1년 전에 결정된 내용이지만, 별다르게 보도도 안나오고 보도가 나온다 한들 계산해보기 전에는 직관적으로 알 수 없는 어려운 그림 속에, 결론적으로 세수는 늘리는 계산식이 녹아들어있던 셈.
이 개정안을 졸속으로 처리했던 여당은, 지들이 통과시킨 그게 자기들 지지층에게도 세금 폭탄을 안겨주리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는 능력이 애초에 없었으므로, 급속도로 악화되는 여론을 보고 나서야 ‘아 내가 했던 그 짓이 개짓이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겠다. 그래서 일단 ‘이건 정부탓. 내탓 아님' 해놓고, 먹고는 살아야겠으니 소급적용 카드라도 들이밀자는 딜을 걸었던 거겠다. 1년 동안 쉬쉬해온 서프라이즈 토탈 패키지 당정 연합 개 삽질의 파티파티였던 셈. 무한도전 장기 프로젝트도 이렇게 빵 터뜨리긴 힘들었을 것 같은 아찔한 느낌.
회사에서도 연말정산 공지를 일단 회수하고 재공지하겠다기에 아직까지 계산을 해보진 않았다만, 대충 자료들을 보니 이번 변경사항들은 결국 연봉 3천~6천대의 직장인들, 특히나 기존의 공제팁에 익숙했던 기혼자들에게 폭탄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쯤되니, 아직은 미혼이다만 나도 대략 올해는 용돈 받는 연말정산이 아니라, 뱉어내는 연말정산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우려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던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기존의 소득공제 ‘팁'이란 건, 결국 예쁘게 꾸며서 ‘팁'이지 결국 세금을 덜 내겠다는 의지의 발로이고, 그 팁에 밝았던 사람들은 결국 비슷한 소득의 다른 사람에 비해 세금을 덜 냈던 사람들인 거 아닌가. 그리고 좀 헷갈려졌다. 연봉 3천~6천이면 과연 세금을 내서 더 못버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돌려줘야하는 계층에 가까운가, 아니면 세금을 덜내고 더 많이 버는 사람들의 세금으로부터 혜택을 입어야 하는 계층에 가까운가.
결론적으로, 혹시 이번 연말정산 소동이, 나름 잘 버는 인간들이 세금 더 내는 걸 아까워하는 아우성은 아닌가. 과연 이건 옳은 아우성일까 싶은 의구심이 든 거다.
담뱃값도, 연말정산도, 그냥 정부에 대한 불만이 혹시나 욕먹을 일이 아닌 걸 욕하게 만든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게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그 결과.
아니다. 이건 정부 잘못이 맞다.
3.
Qualified 라고 쓰인 자격 인증 도장 그림.
세금이라는 것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로 돌아가보자. 세금이라는 건 시각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겠다만, 가장 기본적인 경제관점을 대입해본다면 결국 공공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가격이다. 국민들은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가격을 지불하는 거고, 국가나 지방정부는 그 세금을 받아서 예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공공의 활동에 대한 자원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는 세금의 총 합은, 우리가 누리는 공공 서비스 가치의 총 합과 대략 비례해야 정상이다.
모든 ‘비싼' 것은 ‘더 싼' 것에 비해 비싸야 할 이유라는 게 존재해야한다. 비싼 음식이 싼 음식보다는 더 맛있거나, 더 편리하게 먹을 수 있거나, 더 희소하거나, 더 몸에 좋아야 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가격과 가치의 대응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는 그걸 사기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떤 것의 가치라는 게 그렇게 한눈에 바로 파악되는 것은 아니다보니, 가격이 비싼 것들은 보통 그 이유를 설명하곤 한다. 동네 짜장면 가격이 오르면 보통 ‘재료 값 인상으로 부득이 가격을 올린다'는 류의 안내문이 붙고, 유기농 재료로 만든 음식은 보통 그게 ‘유기농'임을 강조하는 표시를 한다. 즉, 가격에 대한 신뢰를 얻는 노력을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세금을 더 많이 걷을 때에도 그 세금에 대한 신뢰를 얻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가막힌 치안을 자랑한다든가, 은퇴하고 나서도 먹고사는데 걱정 없게 해준다든가, 일부 유럽 국가들 처럼 애가 하나 태어나서 교육받고 사람구실 할 때 까지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다 충당해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물며 ‘강제'인 세금은, 다른 대안이 많은 동네 짜장면집 보다 더 많은 신뢰가 필요하고, 그걸 얻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정부는 최소한 내가 알기로 아무 노력을 한 게 없다. 담뱃값 4500원으로 올려서 세수가 몇 조씩 늘어난다 한들, 그 몇 조가 강바닥으로 가는지 창조과학으로 가는지 알 길이 없고, 소득격차를 줄일 수 있는 정책이라고 한들 그게 재벌가와 나의 격차를 줄이는 건지, 나와 나보다 못사는 이들이 둘다 못사는 방향으로 격차가 줄어드는 건지 알 수 없다.
조세의 소득 불평등 개선 효과 비교 표. (출처 : MK News)
한국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1/10 수준의 효과를 보임.
2014년 자료에 따르면 OECD국가 중 한국이 세금을 통한 소득격차 해소 부문에서 당당히 꼴찌다. 이런 나라가 세금을 늘리겠다면, 그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는 건지, 세금을 더 내는 사람들은 어떤 가치를 돌려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신뢰 획득이 기본이다. 이미 유통기한 지난 재료로 영업정지를 당한 전력이 있는 식당이라면, 확실한 신뢰를 주고서야 손님들이 믿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하물며 그 식당이 짜장면 한그릇에 만 오천 원을 받겠다면, 남들보다 훨씬 친절한 설명과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
그 와중에 이 정부는, 나중에 소급해준단다. 음식 가격 중 너무 과한 것 같은 액수를 나중에 계산해서 돌려줄테니, 일단 만 오천 원을 내긴 내란다.
나는 담뱃값 4500원에도, 세액공제 방식의 연말정산에도 별다른 반감은 없다만, 이 정부에 대해서는 담뱃값에서 세금 3308원을 받을 자격이나, 내 소득세를 늘려받을 자격이 확실히 없다고 생각한다.
졸라.
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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