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5. 01. 28. 수요일

잡부 


 





 


지난 기사보기


[어느 잡부의 긴 한숨 1]

[어느 잡부의 긴 한숨 2]

[어느 잡부의 긴 한숨 3]


 

 






 

 

6. 일의 종류


일의 종류도 인력사무소 마다 차이가 있다. 2편에서 적은 W인력 같이 철거가 주종인 경우도 있고 P인력과 같이 조경이 주종인 경우도 있다. 조경의 경우 공사 끝물이라 수금에 애를 먹일 때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서울 변두리쪽의 인력사무소엔 농사일 오더도 종종 들어온다.

 

S인력의 경우 지방일이 80%이고 개인현장일도 다른 사무소에 비해 많은 편이다. 지방일이 많다보니 고용보험료와 소개료 외에 봉고차 이용료로 5천원을 떼게 되면, 예전 같이 팔만 원짜리라고 할 경우 실제로 받는 돈은 66,000원이 된다. 이곳은 소장이 여성이지만 오래되어 다른 곳에 비해 기공일이 많고 업체일도 많은 편이다.


이곳에서 일 다니던 사람이 로또 1등에 당첨되기도 했다. 당첨이 되고 친한 사람들에게 얼마씩 돈을 나누어주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낚시로 소일을 한다고 한다.

 

SR인력의 경우 골프장 일이 많다고 하며 천호동에 있는 H인력이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팀별로 운영된다고 한다. 구로동의 N인력도 일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SG인력의 경우 이사업체도 같이 운영하고 있으며 다른 이사업체의 오더도 받는데 가정이사와 사무실 이사일이 꾸준하게 있다. 이사일의 경우 끝나는 시간이 퇴근시간이며 물론 늦게까지 할 경우 노임을 추가로 받는다고 한다. DD인력의 경우 이벤트일이 많고 대학교 행사나 세트일이 많다고 하는데 일을 나가 보지는 못했다.

 

영등포쪽의 경우 해체와 정리팀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곳들이 있으며 빠루에서부터 스킬(원형톱)까지 가지고 다닌다. SH인력의 경우 빌라(다세대주택) 현장이 대부분이며 개구멍으로 폼을 아래에서 위로 받아치기 해야하는 경우도 종종있다.


1.jpg

 

D인력(B인력으로 상호 변경됨)의 경우 청소일(원청직영)이 다른 곳에 비해 많고 다닌 현장 중 가고 싶은 현장이 있을 경우, 왠만하면 보내준다. 대부분의 인력사무소에서 일비와 함께 고용보험료(400∼1000원)를 제하고 지급하는데 일 다닌 곳 중 30%정도 올라가면 많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1편에서 적은 J인력 같이 다른 인력사무소에 인력을 대주는 것이 주종인 곳도 있다. 신설동에 있는 G인력은 일도 많고 단가가 십만원 이하일 경우 고용보험료를 떼지 않아 소개료만 제하고 지급한다.



7. 현장 함바집



예전의 함바집은 푸짐하고 얼큰했다. 요즈음 다녀본 함바집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은 판교였다. 함바집이 있는 빌딩 주위가 전부 대규모 공사현장이었고, 주위의 현장사람들 대부분이 거기서 식사를 하는 거 같았다. 현장 내에 있는 함바집에는 보통 상호가 없는데 그곳은 상호가 ‘머거 볼까’ 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반찬이 10가지가 넘어 식성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었고 맛도 좋았다. 매월 1일에는 과일과 떡이 나왔다. 밥이 좋으니 멀어도 다닐만 했다.

 

재작년 겨울인가 일산의 모 레저단지를 짓는 현장이었는데, 함바집 안에 있는 화장실마다 낙서가 넘쳐 났다. 'X같아서 못먹겠다', '니가 직접 먹어봐라 X탱아', '그것도 음식이라고 만드냐' 등등.

 

조경업체일이라 한겨울에 밖에서 일해야 하는데다, 건물 옥상에 워터파크 눈썰매장이 들어설 곳에서 일하다 보면 허허벌판이나 다름 없다. 바람은 왜 그렇게 부는지 일이 힘든 건 없는데, 추위를 견뎌내는 게 일이었다. 그래도 겨울철에 일을 다니다 보면 영하 12∼3도로 내려가도 해뜨기전까지가 발하고 손이 시려워 가장 춥지만, 오전만 지내면 그래도 할만 했다. 근데 그곳은 밥도 그런데다 한겨울에 조경일을 다니려니 완전 병맛이었다.

 

빌라일을 다니게 되면 전날 일 끝내고 갈 때, 위층 창문을 모두 닫아 놓고, 맨 아래 지하층에 녹색통에 담겨 있는 알콜에 불을 붙여 놓고 가는데 냄새나 재도 없고 다음날 와보면 따뜻하다. 아침에 도착해 불가 연장통에 둘러 앉아 커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며 담배를 한 대 사르고 나면 나름 우아하게 하루가 시작 되는 것이다. 영하 16도로 내려가던 때도 조금 일하다 보면 이마에서 송글송글 땀이 날 정도. 사우나까진 아니더라도 후끈후끈 했다.


요즘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잠실 제2롯데월드현장은 함바집이 3곳-산성식당, 월드식당, 타워식당-이었다. 이 3곳은 저층부 지하에 몰려 있었고 이 3곳 중 한곳에서 고층부(123층 공사장)에 있는 식당도 운영했다. 그러니까 입맛대로 골라 먹으면 되는 거다. 근데 경쟁효과를 염두에 두고 그런 거 같은데 일반 함바집과 별 차이 없이 하향평준화 되버린 느낌이다. 지금 저층부는 개장해서 영업중이니까, 고층부 타워동에만 함바집이 있을라나? 모르겠다. 가본 지가 좀 되서.

 

얼마전 에비뉴엘관 출입문 같이 마무리 설치 부분에서 몇 번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것들이 사람 손끝에서 마무리 지어지는 거라 근로자들의 심리상태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함바집 음식으로 발주처와 원청의 관계, 원청에서 이 공사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를 조금은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2.jpg

 

얼마전 있었던, 모 건설업체가 자사의 사옥을 짓는 공사는 함바집 음식부터 달랐다. 일반 삼성 현장은 한식과 중식(짬뽕, 짜장면, 볶음밥이 번갈아 나옴)이 나오는데 일반 함바집과 질에서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한 곳은 달랐다. 한식 중식에 양식도 추가 되고 3가지 모두 질이 업그레이드 되어있었다. 글고 식사를 안해 식권이 남았을 경우 매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었고 매점의 판매상품도 다양했다.

 

1987년 여름 충청남도 지역에 수해 피해가 컷고 그로인해 공사가 많아져, 이듬해인 1988년 공주에 내려가 봄과 여름철 동안 처음으로 막노동일을 했다. 토건쪽일로 다리 보 농로확장 포장 같은 일이었다. 유구면 신영리에 다리공사현장은 신영교, 정안면(?) 보물리에 보공사현장은 보물보 이런식으로 불렀었다.

 

이렇게 작은 현장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외진 곳이다 보니 그 마을의 한집을 골라 식사도 하고 잠도 자는 식이었는데, 여기저기 현장을 다니며 먹어 보면 그냥 한마디로 푸짐하고 얼큰했다. 물론 먹기에 좋았다.

 

그렇게 두 철을 보냈다. 당시 느낌으로 공주는 서울의 2∼3개 동을 합친 넓이로 보였고 깐깐한 실향민 할머니가 운영하던 평양여관에서 묶으며 일을 다녔고 일이 끝나면 으례히 코리아나 타임 산성호텔 같은 공주 시내에 유일한 아니, 유삼한 나이트클럽에 몰려 다니곤 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거푸집을 유로폼으로 만들지 않고 합판에 다루끼(한치각재)를 대어 사용했고 반네루라고 부르기도 했다. 비계도 생목으로 엮어 사용했다. 강관비계나 시스템비계를 사용하는 지금도 사고가 가장 많은 곳이 비계(비가 조금만 와도 비계일은 하지 않는다)인데 당시에는 사고가 빈번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이야 형틀 철근 공구리등이 팀별로 나뉘어 작업하지만 그때에는 목수가 많은 일을 했다. 어느해던가, 겨울 한 철 내내 냉동/냉장창고의 단열재인 우레탄 발포일로 전국을 돌아다녔었다. 팀마다 원료와 기계를 실은 2.5톤 화물차를 끌고 2~3명이 함께 다녔는데, 한 현장이 대개 일주일을 넘지 않았고 식사는 일반 식당에서 사먹거나 함바집에서 먹었는데 그때 먹은 함바집 음식도 푸짐하고 얼큰했다. 한 번은 포천인가 일을 갔는데, 젊은 부부가 식사를 정성껏 마련해 주었고 말하지 않아도 일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원료를 써가며 더 해드렸다.

 

그 때는 일이 아니라 여행을 다니는 듯했고 그맛에 일을 다닌 듯도 하다. 남원에서 일하고 거창으로 가 일하다 마치고, 수원이나 서울 경동시장으로 일하러 오면 오히려 도시가 낮설곤 했다.

 

눈 쌓인 88고속도로(국도였나?)를 한밤중에 넘는데 휴게소에 들렸더니 싸늘하고 조용했다. 불은 모두 꺼져 있었고 인적은 보이지 않았다. 시동이 꺼진 채 주차된 차들은 많았으나 사람들은 일체 보이지 않았다. 어떤 차들은 커버가 쒸어져 있었다. 적설량이 많아 통제된 도로에 스노우타이어나 체인도 끼지 않은 채 들어선 것이다.

 

고개를 오르기전 바리케이트가 보이긴 했으나 통제 인원이 없어 지그재그로 통과를 했었다. 오르며 왜 이렇게 차들이 없지? 지나가는 의심을 품기도 했으나 휴게소에 들르고 나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오를 땐 모르고 올랐으나 내려가는 길은 알고 나니 두려워졌다.

 

내려가다 미끄러져 몇 번 차가 살짝 돌기도 했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개를 돌아가며 내려가다 보니 도시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고개가 끝나고 얼마를 달려 인파로 북적거리는 도시에 들어섰다. 도시가 반가웠다.



쉼표하나

 

3.png


지난 달 중순부터 몸을 추스르며 일을 쉬는 김에 틈틈이 이 글을 썻습니다. 몸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마음도 지쳐있었나 봅니다. 이제 마음도 추슬러야겠습니다.


이맘 때가 저희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힘든 기간입니다. 1월은 일 년 중 일이 가장 적은 때이고 2월은 일감도 적은데 구정이 낀데다 28일이라 일용직 일당으로 생활하는 분들은 다들 어려울 겁니다.

 

2편에서 언급했던 프로그램인 여성시대의 오프닝 고정멘트를 좋아합니다. 


'삶의 무게 앞에 당당한 사람들'


자신의 삶의 무게 앞에서 당당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여기서 쉼표를 찍고 다음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육두불패 잡부


편집 : 딴지일보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