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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계백을 위하여’ 연재를 끝내고 내게는 꽤 많은 부침이 있었다.


“네 ‘개인적 사정’은 아는데, 그걸 고려하고 봐도 넌 ‘개새끼’야.”


이 정도면 ‘꽤’ 건전한 비평이었다. 이 보다 더 매섭게 날 비난하는 지인도 있었다.


“대중을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할지 너무 잘 아네. 글을 쓸 줄 아는 놈이 작정하고 쓴 글이라 더 화가 나.”


고백하건데, 이 말을 듣고 반박할 엄두를 못 냈다. 어지간하면 글을 보내고 난 뒤, 뒤도 안 돌아보고, 더더구나 기사에 달린 리플은 아예 보지도 않는 나였지만, 하도 문제가(?) 많다고 해서 오랜만에 리플을 읽었다. 실소를 터트리기도 했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며 즐겁게 기사를 읽었고, 반박 기사들도 꼼꼼하게 챙겨서 읽었다.


계백 시리즈에 등장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사실이고, 그들의 감정 역시 진실이다. 그러나 이 글의 전달 방법이 문제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계백시리즈는 메스미디어를 활용한 대중 선동의 가장 기본적인 문법으로 만들어진 글이다. 바로 ‘공포와 분노’이다.


감성적인 선동 글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계백 시리즈의 근간에 흐르는 ‘글 줄기’의 핵심은,


“내가 ‘계백이’ 될지도 모르는 공포”


“남자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계백이들의 참상”


이었다. 많은 독자들이 감정이입을 한 모습을 보면서, 시리즈를 내놓은 ‘타이밍’과 대한민국의 현 세태를 확인했다고 아주 ‘평범하게’ 말할 수도 있지만, 달리 말하면 우리 사회에 ‘공포와 분노’가 만연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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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주제는 작가의 세계관'이라는 전제 하에서 말하자면, ‘계백 시리즈’는 내가 바라본 30~50대 유부남, 이혼남, 싱글남 들의 참상(?)이었고, 그들의 분노에 동감하고, 그들의 사정에 같이 절망했던 글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공포의 근원과 분노의 대상을 ‘여자’로 단정 지었다는 점이다. 미필적 고의라는 표현은 쓰고 싶지 않지만, 미필적 고의의 혐의가 농후한 글이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였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하나의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혹은 사회의 문제로 개별적으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는 없다. 악의적이라고 해야 할까? 악질적이라고 해야 할까? 명시적이고, 확실한 표현은 배제했고, 뉘앙스만 풍겼다. 본능적으로 ‘피해야 할 부분’, ‘안전한 수위’를 생각했던 것 같다.


다시 봐도 사악한 대목이다. 아는 놈이 그러니 더 나쁜 것이다. ‘계백 시리즈’가 불편했다면, 사과하겠다. 다시 말하지만, 계백시리즈는 작가의 명백한 ‘의도’가 있었던 글이다(그럼에도 애정이 가는 글이다. 적어도 30~50대 남성들의 날것 그대로의 심정을 보여줬다는 점에선 말이다).


똑같은 사안이라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글은 달라진다.


“바라보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다르다.”


이건 비단 인생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전업주부를 위하여>는 계백시리즈의 보정(補正)판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으로 바라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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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BS


솔직히 말하자면, 이 시리즈의 출발은 ‘맘충’에서부터였다. 맘충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키득거리는 날 보면서, 지인들이 내게 붙여준 ‘여성 혐오자’란 꼬리표가 근거 없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게 됐다. 나도 그걸 ‘소비’하고 있었다.


내 생각을 더듬어 올라간 건 그때부터였다.


“내가 생각하는 여성, 내가 바라보는 ‘전업주부’는 어떤 존재인가?”


여기에 ‘행운’이 더해졌다. 41살의 커리어 우먼과 인터뷰할 기회가 주어졌다. 제법 알려진 대기업에서 과장으로 활동하던 이 여성은 그녀 스스로 ‘육아’에서 소외된 여인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아이를 기를 수 없기에 아이를 시댁에 맡겨 놨다. 그러다 6년 전 이혼을 하게 됐고, 아이는 한 달에 2번 만나는 정도였다.


그러던 찰나 ‘ex-시댁’에 문제가 생겼다. 집안 어르신 중 중병을 앓는 분이 생겼고, 아들은 부랴부랴 그녀에게로 거처를 옮겼다. 육아에서 소외됐던 그녀는 황망한 상황에서도 아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육아 휴직을 신청했고, 아이가 새로운 학교와 집에서 적응 할 수 있는 기간 동안은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흉내’ 내보겠다고 결심(?) 한 것이다.


그녀와의 인터뷰와 그 이전 내가 접하고, 바라봤던 전업주부들의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이 시대의 ‘전업주부’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1. 남자들이 바라보는 ‘전업주부’


-에피소드 1


대기업 팀장으로 근무하는 B의 연봉은 1억이 넘는다. 그런 그가 심심풀이로 말하는 한 마디가 있다.


“나도 전업주부 하고 싶다니까. 얼마나 편해?”


그도 6년 전쯤에 이혼 위기를 한 번 겪었다. 그가 이혼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부부가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한 게 아니라 ‘딸에 대한 애정이 아내에 대한 증오’를 넘어섰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전업주부는 쉬운지 아세요? 삼시세끼 준비하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니에요.”


부하 여직원의 반박 앞에서 그는 태연스럽게 말한다.


“내 마누라는 음식 못해. 거의 안 해먹어.”


그의 부인에 한정된 문제일까? 그는, 아니 적지 않은 수의 남편들 시선에서 ‘전업주부’는 집에서 노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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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2


사업을 하는 내 친구 L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하나 있다.


“난 전업주부 체질이라니까. 집에서 살림하고, 애 보는 게 너무 좋아. 애들도 애 엄마 보다 내가 더 좋다고 해.”


그의 아내는 어른들이 말하는 ‘부잣집 맏며느리’의 전형이다. 사람 좋은 미소와 서글서글한 성격이 매력적인 여인이지만, 친구에게는 ‘돌부처’였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출근할 때까지 자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아침밥? 물 한 잔 내온 적이 없어. 물도 필요 없어. 남편이 돈 벌러 나가는데 얼굴이라도 한 번 내비치는 게 예의 아니냐? 평소에는 곰인데, 생활비 받을 때쯤 되면 생글거리며 웃어. 그러다가 생활비 받고 며칠 지나면 언제 웃었냐는 듯이 퉁퉁 불어있어.”


“애 셋 보려면 힘드니까 그러지.”


“애 보는 게 힘들다는 거 알지. 그런데 그거뿐이야. 밥은 장모님이 해주지? 청소? 요즘 청소기 있잖아. 빨래나 살림도 장모님이 같이 돌리니까 집안일 하는 거도 없어. 그냥 퍼질러 자.”


그가 바라보는 아내는 ‘퍼질러 자는 존재’이다. 한 번은 그녀가 작정을 하고, 일주일간 집을 나간 적이 있다. 그때 L은 자신의 기질(?)을 발견했다.


“전업주부? 별 거 아니던데? 애들은 날 더 좋아해. 빨래야 세탁기 돌리면 되고, 청소? 청소기가 해주잖아. 음식. 내 음식 솜씨 너도 알지? 애들이 애 엄마보다 날 더 좋아해.”


그는 그 일주일을 보낸 다음부터 아내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난 집에서 살림하는 게 체질인거 같아. 당신이 나가서 돈 벌면 안 돼? 나랑 역할 바꾸자.”


진심인지, 아니면 빈정거림인지는 모르겠다(L의 말만 들었으니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얼마 뒤부터 L의 아내는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L이 아내에게 슬슬 역할을 바꿀 생각이냐고 물어보자 L의 아내는,


“나도 돈이 필요해! 나도 사고 싶은 게 있어!”


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L이 보기에 ‘전업주부’는 한 없이 편해 보이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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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매일경제, 2011년



-에피소드 3


5년 전 한 선배가 말한 ‘주부상’이 있다. 그때쯤이면, 이건 남자들의 ‘상식’ 혹은 ‘워너비’였다.


“결혼을 해서 맞벌이를 하든가.”

 

“그게 안 된다면, 집에서 재테크를 잘 하든가.”

 

“(체념) 아니라면, 집구석에서 애라도 잘 키워야지.”


가장 혼자 벌어서 가정경제를 유지하기 힘든 세상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남자들은 ‘은근히’ 맞벌이를 원했지만, 이제는 ‘상식’이 됐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전업주부’는 이기적인 존재, 집에서 퍼질러 앉아 남편이 벌어온 돈을 빨아먹는 존재가 됐다.


맞벌이로 돈을 벌어오든가, 재테크를 해서 살림을 불리지 않는다면, 애라도 잘 키워야 한다. 지금 시대의 ‘주부’에게 원하는 모습이다. 이 세 가지 기준 중 최하는 ‘애라도 잘 키우는 존재’들이다. 그 근저에는 주부란 곧 ‘생산력 제로에 소비만 하는 존재’이고, 현대에서 생산은 없고, 소비만 하는 존재는 ‘민폐’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주부란 존재는, 전업주부란 존재는 ‘남자’들에게 아니,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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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모양처(賢母良妻) 신화의 시작


자상한 어머니, 사랑스런 아내를 말할 때 우리는 하나의 관용구를 말한다.


'현모양처(賢母良妻)'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현모양처를 말한다. 슬기롭고 현명한 어머니, 품성이 올바른 좋은 아내. 남자들은, 아니 우리 사회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성에게 ‘현모양처’의 굴레를 덧 씌웠다. 마치 조선시대 때부터 대대로 내려온 우리나라의 ‘어머니상’처럼 회자되고 있다.


과연 맞는 말일까?


현모양처는 조선시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이다. 물론, 조선시대에 좋은 어머니상을 말할 때 어진 어머니, 순종적이고 착한 아내를 말하긴 했다. 대표적으로 인수대비가 쓴 '내훈(內訓)‘을 볼 수 있다.


제(齊)나라의 의계모(義繼母)는 제나라에 살던 두 아들의 어머니였다.


선왕(宣王)때 어떤 사람이 싸우다가 길에서 죽었는데, 이 두 아들이 그 곁에 서 있었다.


관리가 와서 누가 죽였느냐고 묻자 형이 대답하기를 “내가 이 사람을 죽였소.” 했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 아우가 말하기를 “형이 죽인 것이 아니고 내가 죽였소.”하여 1년 동안 조사해도 판결이 나지 않았다.


이에 이 사실을 왕에게 보고하자 왕은 말하기를 “시험삼아 그 어머니에게 물어보도록 하라. 어머니는 자식의 착하고 악한 것을 아는 것이니, 그가 누구를 살리려 하고 누구를 죽이려 하는지 들어보도록 해라. ” 했다.


그러나 그 어미는 울면서 대답하기를 “작은 아들을 죽이시옵소서.” 하는 것이었다. 왕이 다시 묻기를 “대체로 작은 자식을 사람들이 더 사랑하는 법인데 이제 그대는 작은 자식을 죽이려 하니 무슨 까닭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작은 아들은 내가 낳은 자식이며 큰 아들은 전처(前妻)의 아들입니다. 그 아버지가 병으로 죽을 때 저에게 부탁하기를 잘 양육해 보살피라고 하기에 저는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했습니다. 하온데 이제 남의 부탁을 받고 그에게 승낙까지 하고서, 어찌 그 부탁을 잊고 그 승낙한 것을 실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형을 죽이고 아우를 살리면 이는 사사로운 사랑 때문에 공정한 의리를 폐하는 것입니다. 말을 배반하고 신의를 저버린다면 이는 죽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니, 대체로 이미 말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이미 승낙한 것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세상을 살아 갈 수가 있겠습니까? 자식의 일이 비록 마음이 아프지만 유독 저 자신이 행한 일이라고 하니 어쩌겠습니까?” 하고는 흐느껴 울며 옷깃을 적셨다.


이에 왕은 그 의리를 아름답게 여기고 그 행실을 높이 여겨 모두 용서해주고, 그 어머니를 높여서 ‘의모(義母)’라 불렀다.


- 내훈(內訓) 중 발췌



자기 배로 낳은 자식보다, 남편과의 의리와 ‘예법’을 챙기는 아내의 모습이다. 이런 여인이 ‘유교사회’에서는 아름답고, 옳은 여성상이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 봐야 할 것이 인수대비가 ‘내훈’을 쓴 까닭이다.


인수대비는 성종의 어머니로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두 아들을 키운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중전은 되지 못했지만, 대비의 자리에 올라 조선시대 여인으로서 누려야 할 영예를 다 누린 사람이다. 이런 인수대비가 내훈을 쓴 까닭은 책 서문에 잘 나와 있는데,


“성인(聖人)의 학문을 보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갑자기 귀하게 되면 이는 원숭이에게 의관을 갖추어준 것과 같다.”


여기서 성인의 학문은 바로 성리학이다. 그녀의 아들 성종이 왕위에 오른 시절은 성리학이 조선의 기본 철학으로 완연하게 자리 잡던 시절이다. 이미 불교는 아녀자들이나 믿는 삿된 종교로 취급받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당시 왕실과 왕실 여인들이었다. 이들은 불교를 믿었고, 불교를 기반으로 한 종교세계를 인정하던 시절이었다.


인수대비는 '조선사회가 성리학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고, 이 상황에서 여성들이 계속해 불교를 맹신한다면 사회 발전 속도에 뒤처지는 부족한 여성이 될 것이라 판단'하고, 사회 논리(남성논리)에 편입될 수 있는 여성을 만들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 결과 여성들은 유교가 원하는 순종적이고, 착한 여성상을 강요받게 된다.


이렇게 보면 현모양처와 비슷한 것 같지만, 현모양처란 말은 조선시대 내내 찾아볼 수 없다(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 비슷한 말은 있지만). 이 말이 본격적으로 나오게 된 것은 1906년. 즉, 20세기 초반이다. 아울러 그 어원도 조선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를 향해 달려가는 일본사회에서 남성 노동력 수요는 폭발하게 된다. 이때 일본 사회에서 등장한 말이 ‘양모현처(良母賢妻)’란 말이다. 강도 높은 노동에 지쳐서 들어온 남편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게 하면서, 남편의 비위를 맞춰주고, 가정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여성. 이런 여성이 일본 발전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여성상이라는 논리였다.


즉, 남자 말 잘 듣고, 남자가 요구하는 건 다 들어주는 말 잘 듣는 여자가 좋은 여자란 의미였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현모양처’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걸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다.


지금 남자들이 전업주부에게 원하는 아내상은 20세기 초반의 그것에서 한 발자국도 빗겨나지 않은 모습이다. 아니,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됐다.


현모양처 +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아내' = 좋은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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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에게 더 많은 것들이 요구되는 시절이 됐다.




 

 

 



참고 기사 - 이 시대의 계백을 위하여


1. 여자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

2. 돈을 벌어도 보람이 없다

3. 가족을 빼니 갈 곳이 없다

4. 결혼과 성욕의 충돌 1

5. 결혼과 성욕의 충돌 2

6. 사랑과 멍에

7. 결혼해선 안 될 놈이 있다



 




펜더


편집 : 딴지일보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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