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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 05. 목요일

ParisBou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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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 1]

[르 코르뷔지에 2]

[르 코르뷔지에 3]










필자가 한국에서 건축을 배울 당시, 그러니까 2000년대 초중반 즈음에, 많은 선배들은 ‘이제 스타 건축가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고들 했다. 당시 뭣도 모르던 신입생이었던 필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역시 세상엔 내가 모르는 세계가 아직 널리고 널렸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글쎄. 그런 말을 내게 했던 그들이 모르는 세계도 널리고 널렸던 것 같다. 이전 회에서 다루었던 르 코르뷔지에나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여러 유명 건축가들, 미스 반 데 로헤(Mies Van Der Rohe)나 루이스칸(Louis Kahn 이 형은 코르뷔지에보단 조금 어리다)같은 사람들을 ‘스타 건축가’라고 부르는 거라면, 오늘날에도 그정도 건축가들은 많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몇몇 건축가들이 저렇게 한탄하는 이유는, 당시에 비해 너무 넓어진 건축가 풀에서 한 명의 건축가로 살아남기도 힘든데 그중 스타 건축가가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고, 좀 이름이 알려진다 해도 곧 잊혀지리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언젠가 이 시리즈에서 다룰지도 모르는 한국의 건축가 ‘김수근’처럼 카리스마를 갖고 당대의 정치인들과 친하게 지내며 한 나라의 중요한 프로젝트란 프로젝트는 혼자 다 해먹는 사람은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정상적인 사회구조가 드디어 자리잡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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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거장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중 하나인 남영동 대공분실.
여러 민주화 투쟁 열사들을 효율적으로 고문하기 위한 설계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현재 경찰 인권센터 무슨 전시관인가로 쓰이고 있다.
출처:엔하위키

그러나 스타 건축가를 말그대로 '메날두 + 몇몇 인간계 대장'(메날두: 축구 선수 메시와 호날두의 이름을 묶은 것 -편집부 주)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으로 본다면, 오늘 우리 건축계에도 충분히 빛이나는 업적을 쌓으며 활동을 하고 있는, 펠마(마찬가지로 축구 선수 펠레와 마라도나의 이름을 묶은 것 -편집부 주)를 뛰어넘은 것 같은데 진짜 넘었다고 하자니 그 토론만을 위한 게시판을 따로 하나 만들어주고 싶은 메날두 정도의 세계적인 스타들은 언제나 존재해 왔다. 설령 우리가 별로 신경도 안 쓰고 딱히 이름이라도 한 번 불러주는 매채가 없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오늘은 필자 뿐 아니라 전세계의 수도 없이 많은 건축가들이 가히 우러러 보는 건축가, 지난 3주간 다뤘던 르 코르뷔지에형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중요한 건축가, 게다가 우리와 함께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인물인 렘 쿨하스(Rem Koolhaas)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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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Dominik Gigler / 출처: http://www.oma.eu

그의 건축을 파해치기 전에 그의 약력을 소개를 잠깐 하고 넘어가자면, 이 대머리 아저씨(옛날에는 머리가 분명히 있었다. 80년대에는)는 1944년 생으로 이제는 고희를 넘겨버렸지만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네덜란드사람이다. 렘 쿨하스는 지난 11월 끝난, 한국관이 역대 최초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2014'의 총 디렉터이기도 했으며, 2008년 프리츠커 수상자이기도 하다. 동년에는 타임지 선정 올해의 중요한 100인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쯤되면 건축계에서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뤘다고 할 만 하겠다.

필자는 르 코르뷔지에 편에서 ‘앞으로 다른 건축가를 소개할 때는 그의 인생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왜냐면 코르뷔 형 이후로는 그가 건축가로서 건물을 짓는 것 이외에 해야했던 많은 활동들, 즉 여행, 독서, 그림, 등등의 것들을 학교에서 교육과정에 집어 넣어 버렸기 때문에 정규과정을 나온 대부분의 건축가라면 정말 특별한 경우라도 학교에서 비슷비슷하게 배우고 있으므로'라고 말한 바 있으나, 쿨하스 형의 경우에는 그가 졸업한 학교에 대해서 살짝 이야기 하고 넘어가야겠다.

렘 쿨하스가 나온 학교는 영국에 있는 AA School(Architectural Association School of Architecture)으로, 이 학교는 전 세계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은 다 알만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학교라고 할 수 있겠다. 필자도 가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서 꿈도 못 꿨던 학교이기도 한 이 곳을 졸업한 건축가들로는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gers), 데이빗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 그리고 디디피를 설계해 한국에서도 이제는 꽤 알려진 자하 하디드(Zaha Hadid) 등 세계 만방으로 영향을 끼치는 여러 건축가들이 있는데, 이중 리처드 로저스, 자하 하디드, 렘 쿨하스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를 받은 건축가들이다. 렘 쿨하스가 만든 건축 사무실인 OMA에서도 자하 하디드나 Elia Zenghelis 같은 AA스쿨을 나온 건축가들이 초반에 같이 일했으니 이 학교와 렘 쿨하스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Elia Zenghelis는 렘 쿨하스가 학교를 다닐 당시 교수 중 한 명이었고 자하 하디드는 렘 쿨하스가 가르칠 때 제자 중 한 명이었다.
 
오늘날 건축가에게 학교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명하는 중요한 라벨 중 하나이다. 그것이 학벌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렇다기 보단, 그만큼 다양한 커리큘럼이 있고 다양한 교육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AA스쿨은 다양한 시도와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이론의 산실로 유명하다. 학교에서 출판하는 잡지가 따로 있어 그런 이론에 관한 글, 건축에 관한 글들을 전세계로 출판하기도 한다. 선생과 제자로서의 교류, 즉 가르침 만이 있는 학교가 아니라, 학생들이 모여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 그 성과를 알리는 데 큰 중점을 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위에 교수-제자로 표기하긴 했지만 그 관계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선생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라 instructor와 연구생 정도의 관계로 생각해야 한다.

archi gram walking city.png
AA 스쿨출신의 건축가 그룹, Archigram이 창시한 움직이는 도시, Walking City 그림이다.
이정도면 본격 이론 도시건축이라 할만하다. 우스워 보이지만 건축계에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

그리고 그 학교를 졸업한 이후 미국의 코넬에서도 수학한 쿨하스는 1975년 그의 사무실 OMA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건축이론에 대해 좀 디벼보자.

일단 OMA가 무슨 뜻인지 부터 알아보자. OMA는 '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의 줄임말이다. 대도시적 건축을 위한 사무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Metropolitan’, 즉 대도시다. 렘 쿨하스는 아예 사무실을 열 때부터 ‘나는 대도시를 위한 건축을 하겠소’라고 이름에 천명하고 나선 격이니, 대도시라는 것이 렘 쿨하스의 건축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겠는가. 그렇다면 대도시란 무엇이고 렘 쿨하스가 본 대도시는 또 어떤 것일까.

대도시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독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위키백과에서는 대도시를 ‘중소도시의 상대적 개념으로, 중소도시보다 인구가 많은 큰 도시를 말한다’라며 ‘대한민국의 대도시는 인구 50만이 넘는 특정도시’라고 하였으나 렘 쿨하스가 생각한 대도시, 메트로폴리스는 그정도 규모는 훨씬 뛰어넘는, 인구 수백만 이상의 도시이다. 한국에서는 인천 경기권이 포함되어 있는 서울, 그리고 어쩌면 부산 정도를 대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렘 쿨하스가 생각한 대도시와 그에 딸려오는 그의 건축이론을 살펴보려면 그의 저서 <Delirious New York, 한국어판 제목은 정신착란증의 뉴욕>을 좀 디벼보면 된다. 이 책에서 그는 뉴욕 맨하탄의 역사와 생성과정을 분석하며 대도시의 필수요소인 ‘마천루’에 대한 자신만의 특별한 관점에서 나온 정의들을 내리는데, 그가 전세계에 처음 이름을 알린 것도 이 책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겠다. 메트로폴리스에 관한 그의 관점과 해석이 당시 많은 이들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대도시의 ‘현상’으로서의 건축, 즉 마천루를 그 독자와 건축가들, 평론가들에게 ‘이론’적으로 이해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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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문고 인터넷 사이트 도서정보. 한글판은 읽어보진 않았지만 도서정보를 보니 읽기가 싫어진다.
책 자체는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건축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읽을 수 있는 꽤 재밌는 책이니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듯 하지만 번역이 이런 식으로 되어 있다면 굳이 권하고 싶지는 않다.

렘 쿨하스와 OMA는 이 책에서 맨하탄에 본격적로 들어가기에 앞서 코니 아일랜드(Coney Island)라는 뉴욕주의 작은 섬에 대한 역사를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맨하탄 섬과 코니 아일랜드의 건축에는 닮은 점이 있고 그것이 맨하탄의 마천루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다. 코니 아일랜드는 우리나라로 치면 롯데월드의 매직 아일랜드 정도를 상상하면 되는, 다양한 놀 것이 있었던 섬이다.
 
"Même si c'est sur la Lune, Thompson a créé là la première ville de tours, dépourvue de toute fonction autre que celle de surexciter les imaginations et de chasser toutes apparence de réalité terrestre." 
"그것이 달(코니아일랜드의 놀이동산 이름이 Luna/역주)에서 일지라도, 톰슨은 처음으로, 빌딩으로 이루어진 도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도시의 빌딩들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상상을 자극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기능도 하지 않는다." 
New york Délire, p.41, édition paranthèses)

롯데월드를 보면 중심부에 독일식(?) 성을 본따 만든 성이 하나 있다. 우리는 그 누구도 그 성이 진짜 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 놀 것이 있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그 외관을 바라보며 그 곳으로 간다. 실상 그 내부에는 그 건물을 성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요소가 아무 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 건물을 성이라 부른다. 내부의 구조나 기능과는 상관없이 외관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즉 외관와 내부의 관계가 전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뚜렷하지 않은 것이다.

 롯데월드 엔하위키.jpg
사진 출처: 엔하위키
이제보니 우측에는 터키식 성이, 좌측에는 프랑스식 성인 던전도 있었다.

렘 쿨하스는 바로 이 점에 일단 주목한다. 뉴욕 맨하탄의 고층빌딩들은 겉으로 보면 하나의 거대한 물체다. 건물이라고 하기도 뭐 할 정도로 우리 신체가 감당할 수 없는 백 층이 넘어가는 거대한 빌딩들은, 겉에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이지만, 그 안에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각 층 마다 다채롭게 펼쳐진다. 50층짜리 건물이라면 50가지 다른 이야기가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며, 밖에서 보이는 건물로는 그 이야기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마천루의 파사드(입면, 건축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는, 롯데월드의 성처럼 그냥 하나의 껍데기 일 뿐인 것이다.
 
globe tower newyork delire.jpg
Coney island에 지어질 뻔 했던Globe tower
출처: Delirious New York, Rem Koolhaas
결국 뉴욕 맨하탄의 마천루들도 저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거다.
개인적으론 이게 멋진 것 같기도.

그렇다면 그 껍데기는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수십 수백 가지의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 공간은 어쨌건 간에 네모건 세모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 바닥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닥은 바로 1층 바닥, 그 모양이다. 보다 더 많은 면적을 건물에 넣고 싶었던 당시의 부동산 업자와 건물주들은 주어진 땅에서 최대한 더 크게, 더 높게 건물을 짓기를 원했는데, 이런 욕망은 결국 끝없이 올라가는 마천루를 낳았고, 이런 거대한 건물들은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 수많은 건물과 사람들의 일조권을 침해하기에 이른다. 이에 뉴욕시는 타인의 일조권을 최소한로 침해하는 범위의 부피, 크기, 높이를 정해주기에 이르렀다. 첫 몇십 층은 그냥 통으로 올라가되 최상층부의 1/3정도는 점점 면적이 줄어들어 햇빛이 통과할 수 있는 면적을 조금이라도 넓히자는 생각이 이러한 볼륨으로써의 한계를 만들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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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에 제정된 새로운 법이 맨하튼 스카이라인에 미칠 영향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실제 건물이 아니라 볼륨으로서 최대로 지어질 수 있는 한계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물론 저기에 지어질 건물들은 저 모양 그대로 꽉꽉 채워서 설계된다.
출처: Delirious New York, Rem Koolhaas
이미지 : Hugh Ferriss

그리고 부동산 업자와 건물주들은, 물론 두 말할 것 없이 이 한계 볼륨을 가득 채워서 건물을 짓게 된다. 어차피 땅모양 그대로 올라가는 건물은 각 층 마다 똑같은 모양과 똑같은 면적의 평면을 갖고 수직으로 쌓게 된다. 다층 건물을 뛰어넘어 구름에 닿을 때까지 올라가는 마천루 숲의 탄생이다.

렘 쿨하스는 이러한 마천루들이 이전의 다층 건물들과 다른 요소는 이것 뿐이 아니라고 말한다. 바로 각 층들이 이전처럼 계단이 아닌 '엘리베이터'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몇 층 안되는 건물에서의 계단은, 여러 층들을 이어주는 하나의 연결된 공간으로 만들기도 하고, 서로 다른 높이의 두 공간 사이에서 완충작용을 하기도 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이런 백여 층의 마천루에서 계단은 비상통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공간을 이어주는 것은 오직 몇 평방미터의 엘리베이터다. 그리고 각 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우리는 서로 전혀 연관성이 없는 다른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3층은 사무실, 25층은 피트니스 클럽, 50층은 레스토랑, 80층은 펜트하우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런 공간 구조는 정령 '구성'이랄 것이 없는 것이다. 건축가가 그 안에 필요한 기능을 위해서 먼저 구성해 놓을 수 있는 것은, 이런 경우엔, 아무것도 없다. 그냥 그 층을 빌리는 사람이 자기가 필요한데로 집기들을 사다 놓고 공간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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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wntown Athletic club에서 한바탕 복싱레슬링을 하고 글러브를 낀 채로 굴을 먹는 독신 뉴요커들.
멀쩡한 뉴욕 마천루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출처: Delirious New York, Rem Koolhaas

내부의 공간을 통해 외부의 형태를 만들어나가던 모더니즘 건축가들에게는 '건축'이라고 부르기도 싫은 그런 건물들이 맨하탄에만 수십 수백 개가 건설되기 시작하면서, 마천루는 하나의 현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렘 쿨하스는 이런 건축을 '디자인'이 아닌 '형성(génération)'으로써 생겨난 건축이라고 말한다. 즉, 건축가가 디자인해서 짜여진 공간을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땅의 모양과 햇빛을 위한 도시의 규제, 그리고 최대치의 면적에대한 욕망과 필요와 엘리베이터라는 기술이 자연스럽게 빚어낸 건물들이 마천루라는 것이다. 그리고 쿨하스 형에게는 이 마천루야 말로 '대도시의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형태인 것이다.

렘쿨하스는 뉴욕과 마천루에서 '하나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축'과 '그 안에 공존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프로그램)'이야 말로 대도시의 건축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깨닫고 이후 그의 저서, 전시회, 그리고 건축 등을 통해 그 이론을 발전시켜나간다. 이런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그의 대표작인 시애틀 중앙 도서관(Seattle central library)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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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A, Seattle Central Library, 2004년 작.
가보진 않았지만 중앙 도서관이라니 시내에 있을 것 같다.
코베인 형 벤치를 이미 찍었다면 여기도 함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사진 출처: Wikipedia.org, user id : dvd r w

렘 쿨하스와 오마(OMA)는 이 건물을 설계함에 있어 도서관이란 곳은 더 이상 책만 보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정보가 서로 교류하는 공간이라고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그런 생각을 건축으로 표현하기 위해 여러 블록안에 각 블록별로 다양한 종류의 기능과 정보들을 필요에 따라 뭉쳐서 집어넣고, 그 블록들을 층층히 쌓아놓은 다음, 겉을 마름모꼴의 격자로 이루어진 단일한 모티프의 유리창으로 덮어버리는 방식을 택했다. 각 블록들은 필요에 따라 모양과 면적이 결정되기 때문에 마천루처럼 동일한 모양의 면적이 쭉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건물을 설계한 아이디어 자체는 그가 뉴욕과 마천루를 연구하면서 터득한 것을 적용시키며 또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특정한 모양으로 어떠한 질서를 추구하며 공간을 배치 하고, 그것을 외관과 결부시키며 '건물으로써의 물질'과 '기능으로써의 공간'을 일체화시킨 어떤 형태를 만드는 방식의 건축이 아니라, 다양한 기능이 각각의 덩어리를 형성하고 그 덩어리들이 모여 다시 거대한 하나의 물건이 되는, 기능은 기능이고 건물은 건물인 마천루식의 건축이 기본이 된다. 그리고 마름모꼴 격자무늬의 동일한 표피안에서 각 블록들이 각자 필요한 햇빛과 뷰(view, 경관)을 찾아 조금씩 자유롭게 움직이며 마천루가 갖고 있던 모든 층의 동일한 면적과 모양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마천루를 발명한 것이다. 기존의 마천루가 오직 최대치의 면적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위해 태어난 건축이었다면, 렘 쿨하스는 그것에 '햇빛'과 '도시에 대한 적응(뷰를 찾아 간다던가 하는)'을 더했다고 할 수 있겠다.

"The articulation of the Seattle Public Library can also be seen as the extreme outcome of the form of the Manhattan skyscraper once it had been freed of the logic of maximum property exploitation, (...), by the pursuit of new views and urban alignementsm and by symbolic impulses.
시애틀 중앙도서관의 각 블록간의 움직임은, 맨하탄의 마천루들이 최대한의 면적에 대한 요구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망과 주변 건물에 대한 맞춤, 그리고 심볼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려 할 때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Rem Koolhaas/OMA The construction of Merveilles, Roberto Gargiani, p.287, EPA Press

그는 마천루가 아무리 많은 기능을 담고 있고, 그 존재 자체가 어떤 미적 퀄리티나 멋진 공간 구성이 아니라 그 '거대함'으로써 현실적인 임팩트로 도시에 큰 영향을 끼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의 도시 역할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대도시의 건축인 마천루는 다양한 기능을 하나의 건물에 담고 있지만, 그것 또한 도시의 영향 하에 있는 건축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마천루라는 매력적인 건축 양식을 그대로 사용하기를 거부하고, 다양한 땅이 품고 있는 다양한 문화와 사회적 문제점들을 풀어내는 건축을 하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정신착란증의 뉴욕>이라는 책이 뉴욕의 건축가들 뿐 아니라 전세계의 모든 건축가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어디든 존재할 수 있는 마천루라는 건축 양식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뉴욕' 이라는 도시에 대한 통렬한 연구로부터 마천루의 기원과 형성원리를 찾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렘 쿨하스는 그리고 당연하게도, 책을 쓸 때 뿐 아니라 건축을 할 때도 이런 도시/사회/문화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 디자인을 해왔다. 그의 건축에는 항상 그것이 지어질 땅에 대한 분석이 수반되는 것이다.

렘 쿨하스가 분석해서 그에 맞는 건물을 설계한 대도시 중에는 서울도 있다. 그가 서울에 설계한 몇몇 프로젝트중 여기서 소개할 것은, 건설되지 못하고 프로젝트로만 남은 'Togok Towers 프로젝트', 오늘날의 이름으로는 '타워팰리스'다.

togok towers.jpg
1층이 모두 합쳐져 거대한 공용 공간이 되어 있고, 
중간지점에선 마천루들이 서로 만나서 또다른 공용공간을 만들게 되어 있다.
출처 : http://www.oma.eu

렘 쿨하스는 하나의 마천루는, 다양한 기능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너무 거대한 건물 속에 너무 다양한 기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도시 안에 녹아있는 건축이 아니라 홀로 기능하는 형태의 건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형태의 마천루는 이미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개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도시들과 서울의 빌딩들은 이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더 높이, 더 크게'만을 지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형태의 마천루를 만들어 도시에 더 융화되는 건축을 해야한 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그는 이런 아이디어를 시애틀 중앙도서관에서 그랬던 것처럼, 도곡 타워스 프로젝트에 적용시켰다. 물론 그 때와는 다른,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나온 방식으로. 지금 건설되어 있는, 여러 빌딩으로 이루어진 보편적 형태의 마천루로 이루어진 타워팰리스 같은 건축이 아니라, 여러 빌딩들이 서로에게 몸을 숙여 한 점 또는 여러 지점에서 만나는 형태의 건축을 제안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하면 마천루가 더이상 독야청청 홀로 존재하는 건물이 아니라, 다양한 주거형태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1층 도시공간에서부터 연결점까지 서로 만남으로 이어지는, 보다 도시적인 건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시공간이라는 것은 결국 다양한 건축들이 서로 부딪치며 만나는 것이 그 주변을 걷는 도시민들에게 보이는 공간인데 마천루의 스케일에서는 1층에서 서로 접점을 찾는 다는 것이 불가능하고, 설령 찾아도 별 의미가 없으니, 여러 건물의 1층 공간을 아예 하나로 통합시켜버리고 상공에서도 물리적으로 건물들을 접합시키자는 생각이다.

koolhaasbangkok.jpg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형식으로 설계된 또 하나의 프로젝트 작품, 하이퍼빌딩.
여기선 강을 넘는 건물도 있고, 중간의 공용공간이 거대한 플랫폼으로 더 잘 구현되어 있어
그의 생각을 이해하기 더 쉬울 것 같다.
출처 : http://www.oma.eu

필자는 동네방네 부자들을 모아서 자기들끼리 잘먹고 잘살아 보자는 타워팰리스 식 도시건축은 이 사회에서 지탄받아야 하는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도시는 결코 한 계층의 사람만으로 굴러갈 수 없고, '다양성'이 없는 도시건축은 도시의 형성이유에 반하는 파괴적인 요소다. 7개의 마천루가 군집을 이루고 있는 이 거대한 공간이, 일부 부유층만을 위한 서비스+주거 공간만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반 도시적인가? 렘 쿨하스는 1층의 공간과 여러 마천루의 접점이 되는 공간을 입주민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공공을 위한 공간으로 생각하고 설계했다고 밝혔다.

꼭 타워팰리스 자리에 렘 쿨하스의 건물이 있었으면 지금보다 더 나은 강남구가 되었을 거란 말이 아니다. 그렇게 많은 사회적 비용과 사적 재산을 들여 쌓아가고 있는 서울의 다양한 마천루들 중 몇몇이라도 이런 진보적인 생각을 담아 설계될 순 없는 것인가라는 거다. 이런 고민이 몇몇 건축가들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져 도면과 모형으로나마 남았다. 이런 고민이 우리 도시민들 머릿속에서도 이루어져 사회적 토론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만 우리도 150년 전의 마천루가 아닌, 서울의 문제점을 풀어나가는 형태의 건축을 땅에 세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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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쿨하스는 병상에 누워있는 회장님의 '높이와 크기'에 대한 열망으로 지어지고 있는 이런 마천루를 깐 것이다. 이런 건물이 오늘날 서울 땅에 어떤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언제까지 이런것만 보고 살 것인가.
출처: 엔하위키

서울에는 사실 이렇게 큰 규모는 아니지만 렘 쿨하스가 설계한 건축물이 두 개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둘다 상당히 좋은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서울대 MOA(Museum of art: 서울대 미술관이라고 해도 되는데 뭐 굳이 영어로 쓰고싶다면 말리진 않겠다만)는 산지가 대부분인 서울 땅에 지어지는 작은 박물관이 어떤 식으로 지어질 수 있는 지를 꽤 깊이 고민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열분들도 시간날 때 여친있음 여친과, 없음 혼자라도 한 번씩 구경 가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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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MOA
출처: www,snumoa.org

두 번째 작품은 삼성의 미술관인 리움이다. 3명의 초대형 건축가들, 즉 마리오 보타, 렘 쿨하스, 장 누벨을 초청해 지은 (건축가 네임벨류로는)초호화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긴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꽤 괜찮은 건물을 해놨으니 여기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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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미술관 '리움'
 

렘 쿨하스는 이 글에서 소개한 것 말고도 상당히 다양한 이론을 다양한 도시에 뛰어난 퀄리티로 구현해 놓기도 하고 글로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건물'로 구현되지 않은 그의 건축들은, 실제로 지어진 건축들보다 오히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많이 연구되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지어지지 않은 그의 프로젝트들 중 중요한 것 몇 개를 짚어보며 '프로젝트'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 해 보겠다.

PS. 이번 편을 보시면 아실 수 있겠지만, 제가 현재 구할 수 있는 책의 대부분이 불어로 쓰여진 책들인 관계로 대부분의 레퍼런스들이 불어판입니다. <Delirious New York> 같은 책은 영문으로 먼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래서 넣을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넣습니다.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있다면 한국어판을 항상 같이 달아놓도록 하겠습니다. 양해해 주시길.






ParisBou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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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