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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 04.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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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995년 출판된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이 있다. 내가 접해본 것 중에는 한국인으로 외국에서 택시 운전을 한 사람의 유일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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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씨의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내가 시드니의 택시운전사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 책에서 망명객인 홍세화 씨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갈 수 있는 여권을 발급 받았다고 했다. 나도 미국 쯤은 무비자로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호주 여권을 받았지만 반대로 내가 꿈꾸는 여권은 한국 밖에 갈 곳이 없는, 그런 것이었다. 


홍세화 씨는 국가의 형편 때문에 돌아가지 못했었지만 나는 나의 개인적 형편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국을 떠난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한국에 돌아가 보았자 먹고 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책에서 홍세화 씨는 한국은 어둡게 프랑스는 밝게 그렸던 것 같다. 아마 그것은 20 년 전 당시의 한국의 상황과 망명객으로서 그 자신의 형편이 그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시드니에서 15년간 택시 운전을 하면서 호주 사회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던 눈으로 서구 사회의 밑바닥을 헤집어 보려고 한다. 


(어느 집단에서나 개인 차이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느 집단을 평가 할 때는 그 차이를 무시하고 도매금으로 평가 할 수밖에 없다. 두 집단의 차이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은 없을 때는 그저 양 쪽 사회를 살아보고 피부로 느껴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피부도 사람마다 다르니 결국은 그저 제가 꼴리는 대로 판단할 수밖에. 혹시 읽다가 내용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택시기사가 쓴 글이 그렇지 뭐!'하고 넘겨주기를 바란다.) 




호주 정착과 구직


호주에 와서 처음에는 교도관이 되어 보려고 몇 달 동안 지역 도서관에서 감옥에 관한 책들을 모두 빌려다 보면서 준비를 했다. 수리 테스트, 영어 테스트, 범죄 심리 테스트를 받았는데 수리 테스트는 한 번 떨어져서 주 1회 1개월 과정의 연수를 거친 후에 재수를 해서 붙었는데 정작 어려웠던 일이 범죄 심리 테스트였다.


점심 먹고 시작해서 소변도 뛰어 갔다 보고 오면서 5시간 동안 꼼짝 않고 앉은 자리에서 치르는 시험은 내 생전에 처음이었다. 내가 영어가 짧아서 그런가했더니 백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비슷비슷한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묻고 또 묻고 하는 문제라서 도저히 내숭을 떨래야 떨 수 없는 테스트였다. 한국에 살 때 경찰서에서 형사들에게 밤샘 취조를 당할 때도 그렇게 긴장하지는 않았었다. 하여간 이 테스트 하나만 해보면 사람의 본색을 완전히 파악 할 수 있는 내용이었기에 결혼하기 전에 신랑 신부가 같이 해본다면 이혼율이 뚝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교도관 지원자 중에 백인들은 경찰을 하고 싶었는데 못 되어서 지원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민자들도 많이 응시하는데 나이 제한이 없어 나이 먹은 사람이 많기도 했다. 그 중에는 같은 지원자인 내가 보기에도 '저 사람이 뽑히면 과연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도 다른 사람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교도소를 직접 가보고 나서야 나는 나이, 영어, 체격 등등 모든 것을 볼 때 도저히 안 되겠다는 판단을 했고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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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관이 될 것을 포기하고 내가 택시를 하겠다고 하자 식구들이 염려를 많이 했다. 나는 영어가 걱정이었는데 식구들은 한국에 있을 때 운전면허 시험에 10 번을 떨어져서 운전면허도 못 땄던 내 운전 실력을 걱정했다. 고집을 부려 택시 운전을 하겠다고 했지만 택시 운전사가 되는 것이 쉬운 일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풀타임으로 5주간 교육을 받고도 지리, 거리 이름, 운행 코스, 호텔, 병원 공공시설 등등을 1,000개 가까이 외워야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제일 택시기사가 되기 어려운 곳이 런던이란다. 보통 런던출신이라도 택시운전 자격을 따려면 1년은 걸려서 오토바이를 타고 런던 시내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녀서 지리를 익혀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이민자는 아예 생각도 말아야 한단다. 그 이유는 런던은 워낙 오랜 된 도시라서 길이 복잡해서란다. 시드니의 경우는 그런 정도는 아니지만 산 설고 물 설은 남의 나라에서 운전을 하자니 어려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마도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되는 한국말도 잘 못하는 외국 사람이 서울에서 택시운전을 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지를 상상하시면 될 듯 하다.




택시운전사가 되는 호주 이민자들


막상 면허를 따고 거리로 차를 몰고 나간 후에도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랐다. 처음 몇 달은 그야말로 매일 매일이 '고난의 행군'이었다. 이민자인 택시 운전사가 오래 살아서 지리를 잘 아는 현지인을 태우고 한 번 가보기는 커녕 들어 보지도 못한 곳을 가야하니 어찌 문제가 생기지 않겠나? 멜번에는 인도인 택시운전사가 많은데 얼마나 길을 못 찾으면 '택시 운전은 인도인들이 길을 잘 모를 때 하는 직업'이라는 조크가 다 생겼다고 할까?


내 경우에는 차를 운전하다가 가끔 길을 헷갈려서 헤맬 때 같이 탄 사람이 "택시 운전사가 왜 그러냐?"고 하면 "돈을 안 받으면 헤맨다."응수를 하며 웃고 넘어가곤 했지만 처음에는 지리를 익히기 위해서 1년 정도 낮 운전을 해야만 했다. 아침에 새벽 3시나 4시에 일어나서 공항으로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차례대로 손님을 태우는 것이다. 3, 400대의 택시가 보통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을 기다린다. 택시 운전사 중에 제일 많은 인종이 아랍계이고 다음이 중국인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보통 자기 나라 운전사들끼리 모여서 떠드는데 나는 항상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는 버릇 때문에 낭패를 당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책을 보고 있다가 태워서는 안 될 놈을 태워서 곤욕을 치룰 때가 많았던 것이다. 책을 보지 않고 앞을 보고 있으면 수상한 인간이 택시로 다가오면 출발을 해 버려서 위기를 모면할 수가 있을 터인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택시운전사들처럼 마냥 언제 올지 모를 손님을 기다리고 앞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비록 먹고 살기 위해서 택시운전을 하기는 하지만 나는 택시운전만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역사적 사명을 타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디오라도 듣고 있으면 되는데 영어 듣기 실력이 좋지 않아 신경을 집중하고 들어야 하므로 오래 듣고 있으면 피곤해진다. (어쩌든지 나는 책을 보다가 망하든가 흥하든가 해야 할 팔자인 것 같다.)


공항에 가면 호주 백인들은 거의 없는 이민자들 판인 택시 기사들이 각 인종별로 모여서 수다를 떨게 된다. 역시 제일 시끄러운 것은 아랍인들이다. 각 인종별로 모여서 떠들고 있는 택시 기사들을 보면 마르크스가 했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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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황량한 공항 주차장에서 아랍인들이 구석에서 기도 담요를 깔고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는 거룩한 모습을 매일 본다. 기도를 하고 난 그들에게 무엇을 기도했느냐고 물었더니 거의가 기복주의 기도였다. 그런가 하면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아와서 종교성이란 것을 찾아보기 어려운 중국인들에게는 기복주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들은 오직 돈 뿐이다. 그걸 포장 없이 겉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대단히 종교적인 아랍인들이나 대체로 유물론적인 중국인이나 시동을 걸고 나면 똑 같다. 불티나는 경쟁일 뿐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불평등은 항상 존재해왔다. 아마 평등한 세상이 있다면 그 곳은 죽어서야 갈 수 있다는 천국일 것이다. 택시 업계도 마찬가지이다. 밑바닥에서는 이민자들이 택시를 굴리고 그 기사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면서 뜯어 먹고 사는 놈들은 앵글로 섹슨들이며 정점에는 유대인들이 있다. 택시 업계의 시스템을 움직이는 그들 앞에서 우리는 약자로서 조련을 당하고 감시를 당하면서 각종 명목으로 돈을 바치는 와중에 약간의 돈을 버는 것이다. 


시드니의 택시기사들의 세계는 서울의 택시기사 세계 보다 훨씬 살벌하다. 왜냐하면 운전사들이 각기 서로 상관이 전혀 없는 다른 국가와 문화권에서 온 이민자들이기 때문에 피차간에 눈치 볼 일이 전혀 없는 것이다. 법규가 까다로워서 손님에게는 절대로 그럴 수 없지만 운전사들 사이에서는 각박함, 야비함, 억지, 무례, 몰상식이 판을 친다.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아예 다른 운전사들과 다툴 생각을 하지 않고 무조건 양보해 버린다. 무슨 관용으로 똘똘 뭉친 인격 때문이 아니라 '내가 너희들과 사소한 것을 가지고 다툴 사람이냐'라는 나 혼자만의 고고함(?) 때문이다. 


가끔 운전사들 사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일도 벌어지는데 예를 들면 이런 일이다. 공항이 가까운 곳에 사는 나는 공항으로 직접 오지만 대부분의 택시 기사들은 새벽 3시부터 나가서 공항에서 먼 곳으로 가서 공항으로 가는 콜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콜이 나와서 손님을 태우러 가면 택시를 부른 적이 없다는 일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그 택시는 다시 뒤에 와서 줄을 서야 하지만 그 때는 이미 기다리는 택시의 줄이 길어져서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그날 수입은 0이 될 수밖에 없고 그야말로 죽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런데 아무래도 수상해서 조사를 해보니 뒤에 있던 택시 운전사가 앞에 차를 보내버리기 위해서 자기 휴대폰으로 공항으로 가는 콜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감히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인면수심의 운전사들은 인도인, 중국인들이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이런 야비한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일이든 불미스러운 일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를 못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핸들을 잡고 나가면 하루가 전쟁이다. 12시간을 엉덩이에 땀띠나게 운전만 해도 힘이 드는데 다른 택시들과의 경쟁 해야지, 손님들과 신경전 벌여야지,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을까 하고 끝임 없이 머리를 굴려야지, 틈틈이 경찰에게도 신경 좀 써 주지 않으면 섭섭하다고 딱지 떼지, 이렇게 힘들여서 몇 푼 벌어 겨우 생존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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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민자인 택시운전사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도 언어 소통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심심하면 매스컴에 택시 운전사들이 손님들이 하는 말을 잘못 알아들어 문제가 생긴다고 보도가 되곤 한다. 실제로 나는 지금도 손님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 허둥댈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시드니에서 제일 영어 못하는 운전사'라는 긍지(?)를 갖기로 했다. 택시 안에서 영어로 고생 시키는 것이 미안해서 될 수 있으면 'Yes' 아니면 'No'로 대답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과묵한 사람 동양인이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진 면도 있다. 그런데 영어 교육이라고는 받아 보았을 리가 없는 중국 본토에서 온 중국인들 가운데도 나보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번은 시드니의 유명한 환락가인 킹스 크로스의 택시 정류소에서 3번째 차로 서 있었는데 어떤 여자가 첫번째 차 운전사에게 가서 이야기를 하더니 그 차를 안 타고 두 번째 차의 운전사와 다시 무슨 이야기를 하더니 그 차를 타고 떠나 버렸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이 되어서 첫째 차 운전사에게 가서 "너 왜 저 여자 안태웠냐?"고 물었더니 아랍인으로 보이는 늙은 운전사가 시큰둥하게 "돈이 없으니 자기 집에 데려다 주고 대신 섹스를 하자고 하잖아?"라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럼 두 번째 운전사는 왜 태웠을까?"라고 했더니 심드렁하게 "영어를 잘 못 알아들었겠지!"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여자의 집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사태를 파악했을 그 중국인 운전사의 황당한 얼굴을 생각하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마터면 내가 당했을 뻔 한 일이기도 했으니...


백인들을 태우고 다니다 보면 전혀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에 부딪치게 될 때가 많다. 어떤 때는 황당하고 기가 막히거나 화가 나서 순간적으로 머리 뒤 골이 뻣뻣해지고 심장을 멎을 것 같이 흥분이 되어 숨을 쉬기 어려울만큼 힘들 때도 있었다. 그런 경험은 젊었을 때 전쟁터인 월남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니 전쟁터에서는 생명이 걸렸지만 택시 운전에서는 돈이 걸려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심지어는 일을 나가기 전에 동전 클립에 동전을 끼어 넣을 때마다 월남에서 작전을 나가기 전에 탄창에 M16 탄알을 장전하던 느낌이 들었다. 작전을 나갈 때는 이번 작전에서 부상을 당하지 않고 무사히 돌아 올 수 있을까를 생각했지만 일을 나갈 때는 수입을 걱정한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하여 시간과 사람들의 흐름 교통량 등을 계산하면서 긴장 속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항과 기차역의 차이 


공항뿐만 아니라 때로는 중앙역에서 손님을 기다릴 때도 있다. 그런데 공항과 역의 분위기는 단적으로 말해서 여행용 가방을 든 사람과 비닐봉지를 든 사람의 차이라고 하겠다. 서울역 주변에 어설픈 인생이 많듯이 시드니의 중앙역도 마찬가지여서 역구내에는 항상 부랑인들이 어슬렁거리고 아예 역 구내에 이부자리 펴놓은 사람도 있다. 그래서 공항에서 손님을 태울 때보다 기차역에서 손님을 태울 때는 훨씬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공항에서는 안심해도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공항에서 손님을 기다리다 태울 때 백인이 아닌 이상한 인종(이 말 자체가 이상한 말이지만-색깔이 있는)이 타면 순간적으로 마음이 불안해 진다. 왜냐하면 내 차례가 올 때까지 최소한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백인이 타면 멀리 갈 가능성이 많지만 이상한 인종이 타면 이상한 곳(공항 가까운 곳)으로 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민자들은 집값이 비교적 싼 공항과 가까운 (당연히 시끄러운) 곳에 많이 산다. 


승객 중 최악의 승객은 단연코 에보리진(호주 원주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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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보리진은 택시에 타면 도망을 가는 것도 아니고 아주 태연하게 돈을 안 내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돈을 달라는 종자도 있다. 백인들이 과거에 에보리진들에게 얼마나 나쁜 짓을 했든지 간에 택시 운전사 입장에서는 에보리진은 가장 기피하고 싶은 종족이다. 택시 운전사 입장에서는 원주민 보다는 이민자가 낫고 이민자보다는 백인이 낫다.


내가 처음으로 에보리진에게 당하고 나서 흑인 동료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는 택시 운전의 첫 승객이 에보리진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호기심이 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자 "녀석이 돈도 안내고 유유히 내려서 걸어가더라고. 그래서 나는 '에보리진들은 원래 택시비도 무료인가 보다. 그러면 나는 돈을 어디다 신청하지? 왜 택시 학원에서 그런 것을 안 가르쳐 주었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해서 박장대소를 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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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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