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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 06. 금요일 

산하






산하의 가전사


"가끔하는 전쟁 이야기 사랑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왜 전쟁과 사랑이냐... 둘 다 목숨 걸고 해야 뭘 얻는 거라 그런지

인간사의 미추, 희비극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얘깃거리가 많을 거 같아서요."


from 산하







좋은 습관 들이기는 어렵고 버리기는 쉽다. 실감하는 바다. 어쨌건 몇 년 동안 2-3일에 한 번은 뭔가를 옛날 일을 검색해서 끄적이는 습관을 들였는데 그게 요 한 달만에 봄눈 녹듯 사라졌구나. 답사를 다녀오는 차 안에서 내 신경은 온통 아시안컵 축구 경기에 가 있었다. 한 골 먹은 전반전을 식당에서 보다가 차에 탄 터라 더 그랬겠지. 결과는 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킨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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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야 별 관심이 없겠지만 사람들이 특히 남자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누군가는 전쟁과 가장 비슷한 형태의 스포츠기 때문이라지. 기실 내가 봐도 그런 측면이 존재해. 몸싸움이 적당히 허용되는 경기이고 기술과 체력과 전술로 상대방을 압도할 수도 있고 나라와 나라, 클럽과 클럽간의 경쟁심과 호승심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스포츠이며 등등. 그런 의미에서 전쟁과 사랑 이야기를 하는 가전사지만 전쟁을 닮았다는 핑계로 축구 이야기를 한 번 해 볼까 해.


아시안컵의 향방은 가려졌지만 각 대륙마다 대륙의 최강자를 꼽는 국가대항전이 있어. ‘유로20XX'에서는 유럽 국가들이 피를 튀기고 코파 아메리카 대회에서는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이 죽을 쑤기로 유명하다. 아프리카에도 당연히 그런 대회가 있다. 바로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이야. 그 대회 얘기를 잠깐 해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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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88 올림픽에서 한국은 자동 출전했고 메달을 따니 마니 했지만 예선에서 탈락해 버렸어. 그래서 축구는 관심 밖으로 소멸했는데 그때 축구 강국 중의 하나가 매우 큰 망신을 당했어 이탈리아 팀이었지. 프로 선수들의 참가가 제한된 올림픽 축구가 아무리 월드컵 류와는 위상이 다르다고는 해도 이름 생소한 아프리카 팀에 4대0으로 패대기쳐질 줄은 몰랐거든. 그 아프리카팀이 잠비아였어.


이 잠비아팀은 상당히 오랫 동안 호흡을 맞춰 왔고 그야말로 잠비아 축구의 ‘골드 제너레이션’이라 불러 마땅한 팀이었다고 하는구나. 74년부터 줄기차게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에 출전하긴 했지만 별 볼일 있는 성적을 내지 못했던 잠비아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을만한. 이들은 94년 미국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에서 ‘구리 탄환’ (잠비아가 유명한 구리수출국인 건 알지?) 이라는 별명으로 승승장구를 했다고 해. 기세등등의 잠비아팀은 세네갈과의 원정경기를 치르고자 군용기를 얻어 탔어. (민항기 탈 돈이 없었다고 해. 54년 스위스 월드컵 때 우리가 그랬듯) 그런데 그들이 탄 군용기는 경유지 리브레빌(가봉의 수도)을 날아오른지 얼마 안돼 땅에 곤두박질치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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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난 군용기는 각종 불량으로 이륙해서는 안되는 상황이었다.


이 사고로 선수단 전원이 사망했지. 잠비아 수도 루사카 시민들 거의 모두가 참석했다는 장례식이 이어졌고 그들의 공동 묘지는 루사카의 스터디움 밖에 마련됐어. 잠비아 국민들은 실의에 잠겼지. 이제 또 언제 잠비아의 구리 탄환들을 마련하여 세상의 축구장을 향해 쏘아댈 수 있단 말이냐. 세계 축구계의 애도와 지원이 잇따랐지만 무덤 속의 스타들이 다시 돌아올 수는 없었지.


한참 뒤 월드컵 예선이 재개됐고 잠비아는 홈에서 북아프리카의 강호 모로코와 상대하게 돼. 모로코는 원숙한 경기 운영으로 초보 국가 대표 잠비아 팀을 압도하며 1대 0으로 앞서 나갔지. 그러자 관중석에서는 뜻밖의 외침이 울려 나왔다고 해. 몇몇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라운드를 향해서가 아니라 뒤로 돌아서서 경기장 바깥을 쳐다보며 소리를 지른 거야. “도와 주시오.” “당신들이 필요하오.” “제발! 당신들이 필요할 때 당신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그 외침은 경기장 밖에 잠들어 있는 그들의 불운한 영웅들을 향한 것이었고 곧 관중석 전체로 퍼져 나갔다고 해. (한겨레신문 1993.11.3)


골키퍼가 주술사의 기도를 받는다거나 닭 피를 뿌렸다거나 하는 해외토픽을 종종 양산하는 아프리카 축구팀이었지만 그 외침은 단순한 미신이라고 하기엔 너무 절박하고 슬펐어. 그 외침을 듣는 선수들 또한 그랬을 거야. 이를 악물고 젖먹던 힘까지 짜내 뛴 그들은 마침내 모로코를 2대1로 물리치는 쾌거를 이룬다. 아마 관중이고 선수들이고 모두 하늘을 바라보며 또 경기장 바깥을 응시하며 엉엉 울었을 거야. 모로코 선수들도 공공연히 “이건 저 담장 밖의 영혼들이 도와 준 거야!”라며 투덜거렸다니 아마 잠비아 사람들의 가슴은 터져 나갈 것 같았겠지. “고맙소!” 뒤이어 세네갈도 대파하면서 월드컵 진출의 기대를 높였지만 모로코와의 어웨이 경기에서 패하면서 잠비아 축구는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지.


2012년 또 다시 잠비아의 독수리들이 비상할 기회가 왔어.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2012가 열린 거지. 개최지는 적도 기니와 가봉의 공동개최. 그런데 결승전은 리브레빌에서 치러져야 했지. 리브레빌. 잠비아 선수들의 머리에 불이 번쩍 들어오게 하는 글자였지. 19년 전의 악몽을 떠올리고 너무도 어이없이 죽어간 구리 탄환들의 기억을 일깨우는. 선수들은 사고 해역에 가서 꽃다발을 던지며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어.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킬리만자로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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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지역을 방문한 잠비아 대표팀


월드컵 8강 가나는 꺾었지만 결승전의 코트디브와르는 정말 암담했어. 잠비아 팀 선수들의 연봉을 다 합치면 130억 정도였지만 코트디브와르 선수들의 총연봉은 1억6천 8백만 유로, 즉 2520억을 넘었어. 피파 랭킹은 71위대 18위. 여러 모로 상대가 안되는 조합이었지. 무엇보다 코트디브와르에는 전쟁을 멈추게 한 축구의 신 드로그바가 버티고 있었어.

 

 

하지만 잠비아 축구팀은 악착같은 투혼과 몸을 날린 수비로 코트디브와르의 날카로운 공격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하지만 그 방패를 뚫지도 못했지. 0대0. 연장전도 0대0 승부차기만 남았지. 승부차기 규정은 일단 5명까지는 차서 점수를 가리지만 그게 5대5가 되면 그때부터는 한 명씩 러시안 룰렛이야. 한 명이 넣고 한 명이 못넣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결국 승부차기도 양팀 다섯 명이 모두 성공시키면서 그 러시안 룰렛이 펼쳐지게 됐지. 그런데 코트디브와르 8번째 선수가 먼저 실축을 했어. 잠비아가 넣으면 끝이었지.


아 그때 잠비아 선수들 무릎을 꿇었어.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더군. 손가락은 하늘로 향하고.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고 국가(國歌)라고 하기엔 너무 민요스러운 구석이 있었지만 그들은 아프리카인들의 구성진 목청으로 입을 모았어. 그 모습 뭉클하더군. 역시 그날의 영령들이 잠비아를 도와 주는구나 싶었지. 그런데 아! 잠비아 선수가 실축을 하지 뭐야. 내가 다 악 소리를 질렀으니 잠비아 선수들의 가슴에는 바윗돌 하나씩이 쿵쿵 내려앉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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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브와르의 8번째 키커로 나와 실축하고 주저앉은 콜로 투레. 


실축한 선수는 잔디에 엎어져 질식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말이지. 일부 잠비아 선수들은 더 이상 서 있지 못하더라. 무릎을 꿇고 뭔가에 기도하며 입술을 달싹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참 눈물겨울 정도였지. 물론 코트디브와르도 우승에 대한 열망이 가벼웠겠냐마는 나 역시 잠비아 선수들의 기도에 손을 모으게 되는 걸 어쩔 수 없더라. 코트디브와르의 아홉 번째 키커가 또 실축했을 때 나도 모르게 아싸 소리가 튀어나오는 것도.


이어 잠비아의 아홉 번째 키커가 코트디브와르의 네트를 갈랐을 때 나는 일순 잠비아인이 된 듯 뭉클해졌어. 비행기 사고와 그 뒤의 간절한 소망들, 리브레빌 해안가에서 당신들의 뜻을 이루겠노라 다짐했다는 잠비아 선수들, 경기장 바깥의 무덤들을 향해 제발 도와 달라고 외치던 잠비아 국민들, 승부가 결정난 뒤 그 자리에 엎어져 울음을 터뜨리는 잠비아 사람들의 모습이 영화 예고편처럼 커트 커트로 눈 앞을 스쳐 가지 뭐야.


자신의 열과 성, 힘과 뜻을 모두 끌어내고 쥐어 짜고 그러모아 목표를 향해 달리는 인간의 모습은 그 목표가 사악하지 않는 한 아름답다. 전쟁을 닮았다는 말까지 듣는 축구는 때로 그 아름다움의 극한을 보여 줘. 우리 대표팀이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경기가 그 아름다움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는 극찬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아릅답게 어필했던 건 사실인 것 같네. 나이 서른 다섯 차두리의 감동적인 돌파와 떠오르는 샛별 손흥민의 콤비는 더욱 그랬고.


축구를 전쟁에 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축구하는 양상이 그 나라 국민들의 기질이나 상황 등과 극히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는 거야. 그러고보면 우리나라 축구 팀도 참 우리나라 정치와 비슷한 면이 있어. 아니 많아. 이번 경우는 이런 거겠지. 


'극심한 절망, 그러나 희망은 사라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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