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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호구는 무럭무럭 자라서 주니어 호구가 됩니다.


17살 때 <네 멋대로 해라>라는 책을 썼어요. 뭔 재주가 있어서 그런 걸 쓴 건 아니고 어쩌다 운 때가 맞았죠. 이 책을 기억하시는 분이 혹시 계시다면 출세를 못 해서 죄송하게 됐다는 말씀밖에 못 드리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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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시네키드


어쨌든 그 책이 아주 살짝 팔리면서 우리 집에 수입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모락모락 피어올랐습니다. 물론 제가 아니고 부모님께 말이죠. 어느 날, 밤에 화장실에 다녀오다 안방에서 두런두런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런 얘기더군요.


“현진이가 돈을 벌어오면 그건 어디에 이렇게 쓰고 저렇게 쓰고... ”


나한테는 요만큼의 의논도 없이 이루어지는 가계 계획을 들으니 버럭 화가 치밀어 문을 열었어요. ‘아니, 나한테 돈 들어오는데 왜 자기네가 예산을 짜요?’라고 항의했지만 야단만 실컷 맞았죠.


“능력에 따라 벌고 필요에 따라 쓰는 거 아니야!”


나는 ‘아니, 우리 집에 공산주의자들이 있었잖아’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통장을 내놓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내놓긴 했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부모님 통장으로 전액 이체, 이런 건 도저히 차마 할 수가 없었거든요.


이제 좀 커서, 나는 또 새롭게 호구를 잡혔어요. 이번엔 좀 컸다고 남자에게 호구를 잡힌 거 있죠. 아주 별짓을 다 해요.


저는 그때 모 신문의 CF모델 제의를 받았고 당연히 모델료도 제시받았죠. 부모님은 당장 내놓으라고 펄펄 뛰실 테니 모델료에 대해 말을 안 했고 당시 사귀던 열 살쯤 많은 남자친구에게만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그의 눈이 수상하게 번쩍이더군요. 그 빛이 지나치게 번들거렸다는 걸 내가 알았어야 했는데, 열여덟 살이던 나는 그게 탐욕의 빛깔이었다는 걸, 남의 거 공짜로 먹으려는 표정이었다는 걸 알지 못했어요.


무사히 촬영이 끝나고 돈이 입금되자 그는 여전히 광채가 번쩍이는 눈으로 말했어요.


“오빠 돈 좀 빌려줘. 두 달만 쓰고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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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손만 잡고 잔다고 해라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어딘가 꺼림칙했거든요.


“나 이사 가야 되는 거 알잖아. 내가 어디서 돈을 빌려. 너 오빠 못 믿어? 너 내가 안 갚을까봐 그러냐?”


당연히 못 믿었죠. 갚을 능력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어요. 돈이 왔다갔다하는 것도 싫었어요. 친한 사이끼리 돈거래 하는 거 아니라고 말했더니 그는 버럭 역정을 냈어요. 그와 나는 같은 수업을 들어서 학교에서 매일 봤는데, 사람들이 다 보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돈을 빌려 주겠다고 말할 때까지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더군요. 결국 지친 내가 돈 빌려 줄게, 라고 말했을 때 그 얼굴에 어찌나 화색이 돌던지, 살면서 누가 그렇게 환한 얼굴을 하는 건 몇 번 보지 못했어요.


그때 출금 카드로는 한 번에 60만 원인가밖에 뽑을 수 없었거든요? 그가 옆에서 지켜보는 동안 돈을 뽑고 또 뽑았는데, 열여덟 살짜리 여자 친구가 한참 동안 현금인출기에 60만 원씩, 총 천만 원을 뽑는 동안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옆에서 생기 도는 얼굴로 지폐를 받아 차곡차곡 세가면서 말이죠. 모르긴 몰라도 얘한텐 필요 없는 돈 내가 귀하게 써준다고 생각했을 것 같았어요. 그 증거로 내가 두 달 지난 후 돈 갚으라고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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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 돈 있어 봤자 뭐할 건데? 옷이나 사고 신발이나 살 거잖아?”


옷을 사든 신발을 사든 내 돈이잖아요? 그런데 너무 당당한 그 태도에 차마 뭐라 말할 수가 없더군요.


차용증도 안 쓰고 이자 같은 것도 안 받는 대가로 그에게 당시 부모님이 키우지 못하게 하던 개를 부탁했었어요. ‘이자 같은 거 안 받을 테니 대신 얘 좀 맡아줘’ 간절하게 부탁했지만 이미 현금다발을 받아든 그는 얼굴을 찌푸리더군요. 그러더니 얼마 후 자기 친한 친구네 집에서 맡아 주기로 했다며 환한 얼굴을 했어요. “걱정 마, 네가 돌려달라고 할 때 언제든지 돌려줄 거야.” 몇 달 후 부모님을 설득해 개를 도로 데려오기로 한 나는 그에게 개를 돌려달라고 연락을 했어요. 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랬어요.


“너 어차피 개 책임 못 져. 개를 잘 돌볼 수도 없으면서 귀여움 받는 집에서 사랑받게 놔 둬.”


아니, 그걸 결정하는 건 나잖아요? 책임 지든 못 지든 내 돈 주고 산, 내 개잖아요. 개를 ‘맡아’ 준다는 사람에게 연락했더니 그녀의 대답은 이랬어요.


“걔가 우리 가지라고 했어. 완전히 주는 거라고 해서 데려왔는데? 지금 우리 엄마가 얼마나 정들었는데, 못 줘. 우리 가지라고 했다니까? 걔랑 해결해.”


하지만 ‘걔’는 해결하려는 의지 자체가 없었어요. 나는 다시 그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졌지만 그는 쏙 빠지고 개 위탁인과 나 사이의 문제로 만들더군요.


“야, 넌 어차피 개 못 키운다니까?”


그게 그의 대답이었어요. 그거 하나면 이유가 다 되는 모양이었어요. 결국 나는 개를 돌려달라고 소송까지 걸었지만 재판 결과 해당 견종에 상당하는 값을 보상받는 것으로 그쳤죠. 18살 나이에 향기 묻은 군사우편을 써도 모자랄 판에 소장이나 쓰고 있어야 하다니. 그 사이에 그는 같은 과 학우들 사이에 나를 완전히 이상한 계집애로 만들어 놓았고, 원래도 성격 원만치 못한 나는 더더욱 ‘아싸’가 되었답니다.


돈을 준다던 두 달은 지난 지 오래였고, 봄에 꿔간 돈은 겨울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돈 달라고 말할 때마다 똑같은 말을 하더군요.


“나 지금 돈 없어. 그리고 네가 돈 있어봤자 뭐할 거야, 옷이나 사고 신발이나 사지.”


드디어 나는 ‘내가 옷을 사건 땅을 사건 신발을 사건 길에 뿌리건 내 돈이다’라고 폭발했어요. 그리고 당장 내놓지 않으면 교수님에게 보고하겠다고 통고도 했어요.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수십 번 반복되던 그 돈은 바로 다음날 도깨비 방망이라도 뚝딱 한 듯 곧장 튀어나오더군요. 교수님이라는 단어가 세긴 셌나 봐요. 교수님한텐 어지간히 알려지기 싫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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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 은행, 마술사였어


그 돈으로 뭘 하고 계셨나 했더니 내가 옷 사고 신발 살까봐 ‘적금’을 들고 계시더군요. 물론 본인 명의로요. 당연히 저 주려고 모은 건 아니었겠죠. 그 돈 잘 모아 꿀꺽 삼키고 싶었을 텐데 그 사람 입장에선 참 아쉬웠을 거예요. 그 사이에 그분은 바람까지 피우고 있었거든요. 가지가지 해요, 정말.


이후 그가 사회를 고발하는 영화를 만들어 사람들이 그를 정의로운 사람처럼 여길 때 나는 배를 잡고 깔깔 웃었어요. 야, 그 기업보다 네가 더 나빠. 어린 맘에 상처랑 충격도 컸고, 차마 15년을 쪽팔려서 어디 가서 말 못했는데 이제야 입 밖에 내 보는군요.


“야, 한참이나 어린애 등치니까 신나고 좋디? 어차피 내 구두 사고 내 옷 살 돈이니까 꼭 내가 네 돈 쓰는 것처럼 살 깎듯 아까우셨쎄요? 어차피 진상은 호구가 만든다고 다 호구 노릇한 내 잘못이다마는, 내가 돈 빌려준다고 할 때까지 다들 보는 앞에서 나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꿋꿋하게 침묵시위 한 거,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진짜 더럽고 치사하고 유치했어. 하긴 남의 돈 먹으려면 그 정도 각오는 있어야겠지.”


그 시절 호구 노릇 하면서 하던 생각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지만, 사람은 시련이 왔을 때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 것 같아요. 누구 등을 치든 엿을 먹이든 나 살고 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어떻게 해서든 홀로 버텨내려고 애쓰는 사람. 웬만하면 후자로 살아오려고 지금까지 애썼지만, 잘 살아왔는지는 자신이 없어요. 이것 말고도 내 호구의 역사는 길고도 장대하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더 못 쓰겠군요. 오늘은 이 정도까지만 해 두겠어요.


어린 여학생 여러분, ‘오빠 못 믿느냐’고 말하는 오빠는 절대로 믿지 마세요. 아우, 호구짓 하느라 고생했다. 오빠가 나 싫어할까봐 기어코 돈 빌려줬던 멍청이, 어리고 바보같이 순진했던 이 계집애야. 그럼 딴지스 여러분, 고구마 서너 개를 한 번에 먹은 듯 목이 캑캑 답답한 사연 읽느라 고생하셨어요. 그럼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






살면서 호구 아니었던 사람 있으면 한번 나와봐라.
아니, 도로 들어가세요. 별로 보기 싫으니까.


세상 살다 보면 복 받았구나,

정말 귀티 나네, 싶은 사람이 가끔은 있다.

내가 마음이 덜컥, 하고 불편해질 때는

그 사람들이 동그랗고 천진한 눈을 뜨고 불행이란 것을 믿지 않을 때.

돈 때문에 사람이 어디까지 끝없이 떨어질 수도 있고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 어디까지 천해질 수 있으며

가장 잔혹한 폭력은 흔히 가족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사실.


누구의 벽장에도 해골이 들어 있다는 사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 해골에 대해서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그 해골들은 풍화된 후

가끔 재미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통에 시간이 더해지면, 코미디가 된다.

우리 모두에게 시간의 축복이 있기를. 특별히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의 해골에게도.  

 





지난 기사


프롤로그: 나는 박복한 년이다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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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는 

<벙커깊수키 통합10호 : 호구 특집1(15년 7월호)>에 실린 

김현진의 <남자 복 지지리 없는 년>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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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입니다


편집 :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