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2. 11. 수요일
펜더
J
J는 사업을 한다. 고졸 출신이지만, 일찍 사회에 뛰어들어 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제법 탄탄한 유통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를 운영하다 직원으로 만난(J 회사의 경리였다) 아내와 결혼해 슬하에 3명의 딸을 두고 있다.
그는 아내와 딸들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J의 경우는 건강상의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는 간경화를 앓고 있다. 비활성이라 진행을 늦추는 건 가능해도 완치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20대 때 이미 간경화 판정을 받아 ‘내일’을 걱정하며 살았다.
그는 미친 듯이 돈을 벌었고, 자신이 번 돈을 모두 아내와 자식의 이름으로 돌려놨다.
“나 죽고 나서 내 새끼랑, 마누라가 남들 눈치 보며 사는 꼴은 못 보겠다.
딴 놈이랑 붙어먹더라도 돈을 움켜쥐고 있으면, 무시는 받지 않을 거 아냐.”
미친놈이다.
최근 경쟁업체 때문에 뜬눈으로 날밤을 새며 고민하고 있는 J지만, 집에서 이를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우리들 앞에서는 회사 미래의 불투명함, 아니 상당히 위험한 상황까지 다 말하지만 아내에게만은 말을 하지 않는다. 제수씨가 지금 회사의 상황을 알면, 꽤 당혹스러울 것이다. 내가 보기엔 말을 하고, 상황을 설명하는 게 옳을 것 같은데, 녀석은 끝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남자가 밖의 일을 집안까지 끌고 오면 안 돼.”
“그래봤자 걔가 걱정밖에 더 하겠니? 걱정은 나 혼자로 족해.”
“내가 힘든 만큼 가족들은 행복하잖아. 내가 좀 더 힘들지 뭐.”
내 주변의 여러 남자들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가장(家長)을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녀석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포스터 컷.
경기도 인근에 40평 대 아파트 한 채, 사업채 하나(신축 부지를 구입해 지금 제2의 공장을 짓고 있다), 부인 명의의 땅과 자동차 2대, 부인을 수취인으로 한 몇 개의 보험과 적금, 약간의 주식과 일반가정의 수준을 넘어선 현금 보유량. 이게 그 녀석이 일궈 놓은 재산이다(특히나 부인 명의로 사놓은 땅은 압권이다. 조만간 고속화 도로가 뚫리는데 ‘대박’을 칠 것이 확실하다).
딸 셋을 키우는데 부족함이 없고, 제수씨도 헛바람만 들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먹고 살 만큼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J가 죽는다고 해서 J의 가정은 파탄나지 않을 것이다. 대놓고 물어봤다.
“야, 넌 돈 벌어 뭣 하냐?”
“돈 벌어 뭐하다니? 우리 가정 꾸리지.”
“아니, 꾸리고 남은 돈 말야.”
“꾸리고 남은 돈?”
이 질문을 던진 게 한 1년 됐을 것이다. 그의 차는 ‘모닝’이다. 경차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그의 회사에서 사용하는 탑차 2대와 트럭 1대, 그리고 J의 차인 모닝. 제수씨가 몰고 다니는 꽤 ‘큰’ SUV를 보기 전까지는 이런 의문 자체가 없었다.
경차에 대한 편견이나 비하의 의도는 없다. 다만, J 스스로도 자신의 경차에 대한 ‘불편함’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의 차를 탈 때마다 그는 농담 삼아,
“안전벨트 하지 마! 이 차 사고 나면 어차피 다 죽어.”
(실제로 그는 안전벨트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조수석에 앉은 나에게도 안전벨트를 하지 말라고 권한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한 두 번 경험이 쌓이다 보니 진심인 걸 확인했다)
신기했다. 그는 내가 본 몇 안 되는 ‘가시고기’였다. 자신의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자신을 위해 쓰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후줄근한 작업복에 경차, 5천 원짜리 백반으로 삶을 꾸려나간다. 제수씨가 악처이거나 자기만 생각하는 못난 여자가 아니다. J를 위해 언제나 옷을 사다주지만,
“어차피 일하면 다 버릴 옷. 뭐하러 비싼 거 사 입어?”
라며 이를 거절하는 게 J다. J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노력도 하고, 제발 자기 앞에서 죽는다는 말을 하지 말자고, 이제껏 이뤄놨으니 그걸 가지고 가족들과 함께 살 생각을 하라고 타박하는 게 제수씨다. 내가 보기엔 J의 궁상이다.
J는 일반인들에게 없는 게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자신의 ‘미래’다.
“난 어차피 죽을텐데...”
3년 전 일일 것이다. 그에게 ‘인문학’을 소개했고, 최근의 철학동향(강신주의 책을 몇 권 소개해줬다)을 알려줬다. 그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의 차 안에서 1시간 넘게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나 이틀 동안 차 안에서 멍 때렸어.”
무슨 소리일까? 그가 거래처 때문에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실은 그가 가야 할 사안은 아니었지만, 무작정 집을 나선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차 안에서 전화로 업무를 정리하고는 그대로 멈춰 섰다는 것이다. 보통의 J라면 그대로 차를 돌려 집으로 갔거나 회사로 돌아갔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차를 어느 이름 모를 다리 밑에 갖다 대고는 ‘멍때리기’에 들어간 것이다.
이적 <고독의 의미> 앨범 표지
“OO아 나 왜 사는 거지?”
“뭐?”
“그게 이틀 동안 차 안에 있었는데, 문득 생각해 보니까 갈 데가 없어.”
“......”
중년의 위기일까? 아니면 갑작스런 여유에 어찌할 줄 모르는 것일까?
“...그냥 울었어. 눈물이 나더라.”
(그때 J의 표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캔맥주 깡통을 우그리며, J는 그때 당시의 자신의 감정을 담담히 토해냈다. 그가 ‘술’을 마시는 건 상당한 감정적 고양이 필요한 행동이다. 그는 일반인과 달리 술을 마시는 게 ‘위험한 상황’이다. 그런 그가 1시간 30분 차를 몰고 달려와 내 작업실에서 술을 마셨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줄을 몰라 했다. 그러나 그거 중언부언 토해내는 단어들과 문장들은 정확힌 한 방향을 찔렀다.
“내 삶이 뭐지?”
충동적으로 핸들을 꺾었고, 이틀 정도 자유를 누려보자는 ‘희열’이 몇 분간 지나갔지만, 채 10분도 되지 않아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고, 1시간이 지나자 정말 갈 데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초조했고(당시 난 외국에 나가있었던 상황이었다. 어느 순간 내 작업실은 이런 불우한 중년들의 사랑방이 됐다), 2시간이 지나자 자기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는 것이다.
그에게 자기 가족을 빼니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는 것이다. 물어봤다. 왜 그렇게 가족에 집착하는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잖아(J의 아버지는 J가 20살 때 돌아가셨다. 역시 간 쪽의 문제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얼마 뒤 J도 간경화 판정을 받았다). 우리 아버지. 죽기 전까지 우리 먹여 살린다고 고생했잖아. 난 결혼하면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알았지. 그래도 난 사랑하는 여자랑 결혼했고, 그 여자 책임져야 하고, 우리 딸들 챙기는 게 내 책임이라 생각했어.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해.”
“근데 왜 울어?”
“...내가 갈 곳이 없다는 걸 알게 됐어.”
몇 년 전 일이다. 내 부랄친구가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나왔다. 평소에 별 문제 없어 보이는(아니, 너무 잘사는 부부로 보였다) 부부였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그는 인생에 정말 큰 결단(?)을 내렸다. 2주간 집을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 그 친구도 갈 곳이 없어 이리저리 숙박시설을 전전하다가 내게 연락이 왔다.
“나 술 한 잔 사줘라.”
그 녀석이 마주했던 그 감정을 J도 맞닥뜨려야 했던 것이다.
“그냥 내 가족, 내 새끼를 위해서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있을 곳이 없더라. 가족이 소중하지. 그런데 지칠 때도 있잖아. 가족에게 말 못하는 이야기도 있고.”
“죽으면 잘 살라고 재산 돌린 새끼가 뭔 소리야?”
“글치...근데, 그러면 난 뭐냐란 생각이 들었어.”
“미친놈. 그 생각이 지금 드냐?”
“어... 내 인생 뭐지?”
자기의 존재의의를 ‘가장(家長)’에 맞췄고, 당연하단 듯 자신의 목표를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일하는 것’에 맞췄던 J. 그런데 그 뒤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가면 아내랑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한정적이고, 자식들은 엄마를 중심으로 ‘모계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자기가 떠나고 나면, 그렇게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럼 그때까지 자기의 삶은 뭘까? 단순히 돈 벌어다 주는 ‘현금지급기’?
이건 J가 자처한 일이다. 그는 돈을 벌었고, 자신의 생명에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닫고 이 모든 걸 자신의 아내와 가족들에게 돌렸다. 그는 그게 당연한 행위라고 믿었다.
'난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들을 사랑한다. 내가 그들에게 남겨줄 건 이것밖에 없다'
예전 보험광고가 생각이 났다.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해 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그것도 ‘어느 수준’ 이상의 보험을 들어야지만 ‘진짜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이라는 뉘앙스의 광고. 그때 한 선배가 욕하던 기억이 난다.
“씨팔, 뒈져도 돈 갖다 바치라는 거야?”
마포의 허름한 고기집이었을 것이다. 괄괄한 목소리로 TV를 향해 삿대질 하는 선배는 잠시 후 그 고기집의 영웅이 됐다. 이리저리 고기를 뒤집던 넥타이 부대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고, 고기집 사장은 얼른 TV 채널을 돌려야 했다.
J에게 난 <N을 위하여>
“나가는 건 너희들이야. 오늘부터 나는 저 애와 같이 살 거니까. 오늘부터 내가 번 돈은 내가 원하는대로 쓰기로 했어.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고,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살고 싶은 집에 같이 살 거다. 나는 17년 간 계속 자신의 욕망을 억누른 채, 가족을 위해 죽기 살기로 일했다. 우리 집안의 남자는 모두 단명해서 50살까지 산 사람이 없어. 50살까지 나도 3년 남았어. 지금까지 노예처럼 일한 만큼 남은 3년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거라고.”
노조미의 아버지는 젊은 여자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아내와 딸, 아들을 다 쫓아냈다(매달 생활비 10만 엔을 보내준다).
일본 드라마 <N을 위하여>
극중에서 노조미의 아버지는 ‘나쁜놈’으로 그려진다. 그가 번 돈은 오로지 그의 노력으로 번 돈(그가 데릴사위로 들어왔다지만, 기업을 살린 건 그의 노력이다). 그 돈을 받아쓰는 아내와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에게 감사를 해야 하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의 이런 노력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아버지는 계속 착취(?)를 당했다.
이게 당연한 것일까?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집안 건사하려면, 남자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지.”
아버지의 삶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J는 자신의 번 돈 거의 대부분을 아내에게 가져다 준다. 그걸 자신의 ‘의무’라 말한다. 가장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묵시적인 압력과 교육을 받아왔다. 아니면, ‘나쁜 남자’가 된다. 노조미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왜 이런 일을 벌리는지, 왜 우리를 버리는지, 아버지의 대사가 이어진다.
“축제의 계절이 올 때마다 생각했어. 내 인생의 축제는 준비와 정리였어. 정작 축제는 없었지. 노동과 책임만 있고 즐거움은 없었다고. 나의 즐거움은 하나도 말이야. 건더기 하나없는 샌드위치 같은 인생을 보내는 건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나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가. 불필요한 건 버리자. 그렇게 결정했다.”
언제부터인가, 가장들에게 ‘축제’는 없었다. 건더기 하나 없는 샌드위치 같은 인생. 그게 지금의 4~50대 가장의 모습이 아닌가.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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