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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 11. 수요일

sydney






-그들과 우리, 어떻게 다른가?- 


이 글은 시드니에서 15년간 택시 운전을 하며 얻은

문화인류학적 느낌을 정리한 글입니다.






노름꾼과 수도사


무소유의 자유함! 물질이 없어야 자유로워진다는 것! 이거 순전히 구라다. 오히려 내가 자유로워야 물질이 필요 없어진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무소유의 자유와는 정반대로 탐욕의 콜로세움이라고 할 수 있는 카지노를 한 번 생각해 보자. 아시다시피 카지노에 돈 잃으러 가는 사람은 없다. 모두 돈 따러 간다. 처음부터 물질에 사로잡혀 가니 자유가 있을 리가 없다. 아마도 사람의 자제력이 가장 발휘되기 어려운 경기가 있다면 도박일 것이다. 도박판에서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 조금이라도 땄을 때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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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기와의 싸움인 것이다. 자기를 잃어버리고 돈을 따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 도박장인 것이다. 이미 자기를 잃었는데 누가 돈을 딸 수 있겠는가? 돈이 돈을 따려니 돈을 잃을 수밖에 없다. 돈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돈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호주는 도박 천국이라고 할 만큼 어디나 포커 머신이 많다. 본격적인 카지노가 아니라도 동네 마다 있는 클럽에 가보면 노인들이 포커 머신에 붙어 앉아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됐다. 노인들이 수입도 없을 터인데 왜 그렇게 도박을 많이 하는가 싶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클럽에서 문을 닫는 시각인 밤 12시에 한국 할머니 한 분을 태웠다.그 늦은 시간에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새벽 4시까지 영업을 하는 다른 클럽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세상에 할망구가 도박에 미친 꼴은 처음 보네'하는 생각에서 "피곤하지 않으세요? 집에 가셔 쉬셔야죠" 했다. 할머니가 한숨을 내 쉬면서 "영감이 죽고 나서 밤에 잠이 안 온다오. 그래서 이렇게 밤을 새우기 위해서 포커머신을 하는 거라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가슴이 찡해져서 "자녀분들은 없으세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애들도 모두 먹고 살기 힘든데 어떻게 그런 사정까지 일일이 이야기 하겠수?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지." 


할머니의 깊은 마음에 완전히 감동 먹고 내릴 때 "돈 많이 따세요"하니까 "흉이나 보지 말우"했다. 그 후에야 노인들이 도박하는 것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클럽에 2센트, 5센트 짜리 포커 머신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렇듯 노인분들을 겨냥한 저비용의 포커 머신 얘기를 하려고 도박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카지노가 많은 호주에서 택시 기사를 하다보면 아무래도 도박으로 돈을 잃은 손님을 태우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카지노에서 손님을 태울 때, 일단 손님의 안색을 살펴야 할 것 같았다. 돈 잃어버린 사람의 신경 건드리면 좋을 것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신경 쓸 것 하나도 없었다. 왜? 돈 딴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돈 잃은 사람뿐이니까. 오히려 돈을 모두 털리고 없어서 택시비 안 내고 도망갈 가능성에 신경 써야할 것인데 이것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다른 곳에 비해서 카지노에서 탄 인간이 택시비 안 내고 도망간 예는 매우 드물다. 왜냐? 카지노에서 택시 타는 사람 중에 구경하러 온 관광객이나 카지노에 업무 보러온 이를 제외한, 순수 카지노 손님은 대부분은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호주의 카지노는 중국인들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래서 중국 명절이 되면 카지노가 완전히 중국처럼 장식을 한다. 이 중국인들은 택시비를 안 내고 도망가는 일이 없는 편이다. (그들이 정직해서 그러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경험상 일반적으로 택시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인간들은 대부분 호주 백인들이다. 중국인을 포함해서 동양인 이민자들이 택시에서 사고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것은 동양인이 서양인 보다 질이 좋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 아니고 아무래도 남의 나라에 산다는 생각 때문에 조심하느라고 그러는 것일 게다.)


한 번은 초라한 차림의 중국 여자가 타더니 바퀴 한 번 굴러 갈 때 마다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어서 엔진 꺼질까봐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하도 딱해 보여 얼마나 잃었느냐니까 5시간 만에 2,000불을 잃었단다. 택시비나 있을까 싶어 걱정했는데 차를 허름한 집 앞에 세워놓고 들어가더니 그래도 50불 짜리 지폐를 가지고 나왔다. 참 알 수 없는 중국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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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들 가운데도 도박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람이 어찌 없겠나? 카지노가 차지하는 비중이 호주 경제의 2%에 해당하고 관련 산업 종사자가 76,000 명이라니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호주인 한 사람당 1 주일에 도박에 지출한 금액이 자동차 기름값과 수리비보다 많단다. 1년에 국민 1인당 1,000불을 손해보고 도박 산업은 이익을 본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다보니 대한민국에서 담배 팔아 번 돈으로 흡연의 피해에 대하여 캠페인을 하는 것처럼 카지노도 수입금 중의 얼마를 카지노 피해 캠페인에 쓰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완전히 병 주고 약 주는 정책이다. 카지노의 후원을 받아 벌리는 도박 피해 캠페인의 일환으로 각 소수 민족을 상대로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한다. 물론 주제는 도박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건전하게 도박을 잘 할까하는 것이다. 건전하게 도박을 하다니 좀 웃기는 주제이기는 하지만 알아둘 필요는 있을 듯 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건전하게 도박을 하는 것일까?


서구인들의 세계에서는 자신이 도박을 하다는 것에 대하여 죄의식을 느끼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비록 자신이 도박을 할지라도 소문날까봐 쉬쉬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도박은 나쁜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건 또 왜 그럴까? 엄밀하게 말하자면 도박도 공을 가지고 탁구나 테니스를 하는 것처럼 돈을 가지고 노는 놀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다른 게임처럼 단순히 도박을 즐기려고 하는 사람들은 건전하게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고 돈을 따려고 도박을 하려는 사람은 건전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논리다. 말은 그럴 듯한데 실제로는 이거 아주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 사람을 유혹해 놓고서 참으라는 것과 똑 같다. 이 부분은 에덴동산 이래 인간이 항상 실패했던 부분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카지노에서의 경계선은 마치 에덴동산의 선악과 같은 것이다.


나도 한인들을 상대로 하는 도박 피해 세미나에 유학생의 도박문제에 대하여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이 아니고서는 본인이 힘들게 번 돈을 가지고 도박을 하는 사람은 없다. 도박이 생활화 되어 있는 중국인을 제외하고 카지노에 자주 출입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자기 손으로 힘들게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다.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생각지 않게 들어온 돈이나 쉽게 손에 들어왔기 때문에 쉽게 나가도 별로 아깝지 않은 돈이 없이는 도박에 손을 대지 않는 법이다. (물론, 한국사람 가운데도 한 주간 내내 힘들게 노동을 해서 번 돈을 일요일에 카지노에 몽땅 헌금할 정도로 믿음이 좋은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부모가 송금해 주는 돈으로 생활하는 유학생 중에 가끔 카지노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 부모와 함께 사는 교민 자녀들은 은행계좌가 필요가 없지만 유학생들은 정기적으로 한국에서 송금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은행 계좌가 필수적이다. 유학생들은 현금을 본인이 관리하기 때문에 교민 자녀들에 비하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서 도박의 위험에 빠질 우려가 많다. 한국 유학생들 중에서 도박에 빠져 몸 버리고 신세 망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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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가다가 한국에서 아는 사람이 와서 카지노에 가면 자기가 게임하는 동안 나도 해보라고 돈을 줄 때가 있다. 나는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카지노에서 나올 때 성경의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요령 없는 종처럼 그대로 반납한다. 왜냐하면 카지노는 예수가 비유한 천국과 같이 '뿌린대로 거두는' 이치가 통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딱지치기, 구슬 따먹기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니 몇 번 하기는 했는데 따지는 못하고 잃기만 하니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아마 남의 것 따먹는 것은 내 사주팔자에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여담이지만 최근 이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는 경험도 하나 했다. 카지노에서 나이든 신사를 태워주다 생긴 일이었다. 택시 요금이 14불이 나왔는데 50불짜리를 내미는 것이었다. 잔돈이 공교롭게 5불 밖에 없었고 주변에 돈을 바꿀만한 주유소나 가게도 없어서 일이 난감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손님이 의외의 제의를 했다.


"내가 이 돈을 다 줄 수도 없고 네가 돈을 받지 않을 수도 없으니 내기를 하자. 1달러짜리 동전을 던져서 여왕이 나오면 네가 먹고 숫자가 나오면 내가 먹는 것으로 하자. 어떠냐?"


알고 보니 이 신사는 전문 도박꾼이었다. 역시 프로는 프로답게 노는 모양이다. 재빨리 계산을 해 보니까 손님이 지면 36불을 손해를 보는 것이고 내가 지면 14불을 손해를 보는 것이니까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또 다른 방법도 없어서 그러자고 했다.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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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나와서 역시나 패배. (역시 따 먹는 팔자가 아닌 거다.)


손님이 "미안하다"고 하며 돈을 도로 지갑에 집어넣지만 나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비록 손해는 보았지만 즐거운 순간이었다. 손님이 기분 좋게 내리려는 순간에 "잠깐만! 당신 내일도 카지노에 갈 거냐?"라고 물었다.


"갈 거다."


"그럼 한 번 더 내기를 하자. 내일 도박에서 당신이 이기면 나에게 50불을 주고 지면 그만둬라."


신사는 쾌히 약속을 하고 내 휴대폰번호를 적어갔지만 다음 날 연락은 없었다. 돈을 따고도 연락을 하지 않을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돈을 잃었나보다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진짜로 프로패셔날 겜블러였기 때문이다.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겠다. 종종 카지노에서 태운 사람들이 나보고 "당신은 도박을 안 하느냐?"고 물을 때가 있다. 내가 "안 한다"고 하면 모두가 '잘하는 일'이라고 대답하지 '그렇게 좋은 것을 왜 안 하나'고 따져 묻는 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이렇듯 카지노 손님을 많이 접하며 도박에 폐해에 대하여 고민하던 차에 답은 의외의 경험으로부터 얻어졌다. 


보슬비가 슬금슬금 내리는 어느 날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주위가 어둠침침 새벽 6시 쯤 신문을 사기 위해서 NEWS AGENCY(신문 잡지 등등 파는 구멍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호주는 신문을 집으로 배달해주지 않고 사람들이 가게로 사러 가는 게 일반적이다. 신문을 사러 동네의 가게에 가는 것도 하루 일과 중에 한 가지이고 또 그것을 조금도 귀찮게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즐긴다. 집에서 할 일이 별로 없는 노인들은 신문과 우유를 사러 가는 일이 유일한 외출이요 운동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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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신문 값인 2불 짜리 동전만 들고 아무 생각 없이 가게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눈앞에 웬 놈이 떡 막아서더니 내 가슴에 식칼을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이건 뭐야?'하는 생각에서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영화에서나 보던 눈구멍 뚫린 모자를 뒤집어 쓴 녀석이 날카로운 잭나이프도 아니고 무식하게 생긴 식칼을 들고 나를 위협하는 것이다. 정신을 가다듬어 자세히 가게 안을 살펴보니 주인여자는 카운터 뒤에 서서 몸을 웅크리고 부들부들 떨며 마치 겁에 질린 어린애처럼 "I'm scared! I'm scared!"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울고 있었다. 또 한 놈은 가게 안쪽에서 정신없이 이것저것을 보따리에 주워 담기에 분주했다. 문 앞에서 망을 보던 놈이 내가 들어서자 내게 칼을 들이댄 것이었다.


그 놈은 낮은 소리로 나에게 "Give me wallet! wallet!"이라고만 했다. 나는 어째서였는지 신문을 마저 계산하기 위해 동전을 카운터에 놓으면서 "Sorry! I haven't got a wallet."이라 답하기만 했다. 강도는 왼손으로 내 옷을 급하게 더듬어 보고서 진짜로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난 다음 재빨리 밖으로 튀어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놀랄 시간도 없었던 거 같다.


나는 놈들의 차 넘버라도 기억해두려고 얼른 가게를 나서 두 놈을 몇 발짝 따라갔다. 그런데 어럽쇼? 놈들은 두건을 벗더니 차를 타지도 않고 뛰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유유히 걸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가게 앞 큰 길에 차를 세워두면 눈에 띌까봐 뒷골목에 세워 둔 모양이었다. 가게로 도로 들어가자니 경찰이 곧 올 것이고 그러면 꼼짝없이 증인이 되어야할 판이어서 난처한 일이라서 조금은 비겁하지만 그냥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이쯤해서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손해를 덜 보는 장사가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울고 있는 여인을 뒤로 한 채 그냥 말없이 새벽안개를 헤치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왔던, 내 생애 딱 한 번 약간 비겁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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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와서 가만히 사건을 다시 생각해 보니 조금 전에 벌어진 사건이 진짜로 벌어졌던 사건인지 꿈을 꾼 것인지 판단이 잘 안설 지경이었다. 시간이 흘러서 그날 칼을 든 강도 앞에서 내가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여러모로 생각해보았지만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물론 나는 성격상 '겁'이라는 것이 조금 모자란 반면에 모험심이 과한 성격이기는 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소위 '겁대가리'가 조금 부족해서 무모한 일을 저지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피할 수 없이 나와 함께 살아야 하는 종신형에 처해진 아내는 늘 '겁'을 먹어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중세기의 기독교의 가장 위대했던 신비주의자인 마이스타 에크하르트의 글을 읽다가 그날 그 사건의 정답을 찾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내가 전혀 겁이 나지 않았던 것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빼앗길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틀림없이 내가 돈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빼앗길까 보아 불안했을 것이고 많이 가졌으면 많이 가졌을수록 더 많이 불안했었을 것이다. 


'비울수록 평안하다'는 말이 깨달아지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강도가 가슴팍에 칼을 들이대는데 겁먹지 않을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 순간 나는 용감한 인간이 아니고 칼이 아니라 기관총을 들이대도 빼앗길 것이 땡전 한 푼 없는 무일푼이었던 것이다.


아아! 그런 것이었다. 바로 무소유의 자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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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도 득도를 한 것이었다.


이번 화는 이 자유함의 사례들을 소개하며 맺어볼까 한다. 


공항에서 손님을 태우는데 행색이 남루한 노인이 30년은 되었을 듯한 구닥다리 가방을 들고 탔다. 택시에 타서 보통 백인들은 운전사에게 말을 걸지 않는데 노인은 친절하게 말을 걸고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내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까 다윈이라는 호주 북부에 있는 주의 수도에서 왔다기에 호기심이 생겨서 거기서 뭐 하느냐고 물었더니 호주에서 30명밖에 없는 가톨릭의 고위 성직자인 주교란다. 그러고 보니 그의 남루한 행색이나 고물 가방이 오히려 돋보였다. 호주에서는 수녀들도 평상복을 입고 다녀서 누가 수녀인지 알 수가 없다. 아직 젊은 수녀는 못 보았지만 가끔 화장을 하지 않고 검소한 복장을 한 고상한 할머니들을 보면 대부분이 수녀들이었다. 


내가 한국에서부터 알고 있는 호주인 성공회 수사가 있다. 한국에서 성 프란시스코 수도회를 운영하는 크리스토퍼라고 하는 사람인데 가끔 고향인 호주에 오기 때문에 인연이 쭉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한국이 아닌 호주에서 처음 만났을 때에도 한국에서처럼 그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헤어지고서야 내가 지금은 한국에서와는 달리 돈을 버는 사람이라는 것이 생각나 돈을 주지 못한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종교적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수사를 만나면 많든 적든 반드시 돈을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나를 만나러 올 차비는 있어도 돌아갈 차비가 없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의 말대로 '청빈'의 원리를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다. 


물론, 수도사가 아니면서도 그렇게 산 사람이 있었다. 미국 명문 대학의 경제학 교수 출신의 스콧 니어링은 경제적 은둔 생활에 들어가서 자본주의 사회를 극복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거의 100살까지 '나물 먹고 물 마시는 생활'을 살았는데 이것은 '나물과 물'로서 어떻게 자본주의에 대항할 것인가를 몸소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소한의 소비로 최대의 자유'를 누리는 삶을 실천한 것이다.


니어링 부부는 현대문명이 만드는 선택들을 뿌리치고 '전근대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고행을 기꺼이 택했다. 많은 현대인들은 신체의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토너들의 역주를 보며 본능적으로 감명을 받는 것과 같이 그들의 삶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아직 그의 자서전을 아직도 읽어 보지 못한 엄청나게 불행한 운명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든 구해서 일독하시기를 권한다. 아니, 두 번 세 번 읽으셔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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