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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 12. 목요일

춘심애비














아무도 기억 못하겠지만, 지난 6.4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서 필자는 이런 기사(6.4 지방선거, 참아온 말들)를 썼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김한길, 안철수 둘을 깠고, 대구라는 곳의 정치적 특성에 나름 걸맞는 전략을 취하려고 했던 김부겸을 깠고, 조희연 교육감을 당선시켜야한다는 일념에 보수진영 후보들에 대한 네가티브 여론을 조성한 지지자들을 깠다. 이에 앞서서는 과거 안철수 당시 대통령 선거 출마 유력자(라고 표현하련다. 2012년 9월 기준이니)가 이승만, 박정희 전대통령 묘역 참배에 대해서는, 기사는 안썼지만 트위터로 깠다. 깐 이유는 단순하다. 각각 모두가 나의 정치적 지향점과는 모순되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문재인 신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그리고 나는 이 행위에 대해서는 까지 않으련다. 왜일까. 내가 문빠라서? 문재인이 하는 행동은 어느 하나라도 깔 수 없어서?



아니다.


까지 않는 이유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더이상 지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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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이라는 건 기본전제의 공유를 바탕으로 한다. 예컨데 기독교 신자가 한국의 전통 제사 의식에 대해 ‘우상숭배'라고 하는 건 비판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냥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한국의 전통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유일신 이외에 누구에게도 숭상하지 말라'는 기독교의 전제가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사이비종교가 요즘 시대에 한국에서 14살 소녀를 산 재물로 바치려 한다면, 이건 비판받는다. 그 종교 신자들도 대한민국의 형법이 적용되는 사회를 살고 있고, 살인을 금지하는 건 한국 국민 전체에게 공유된 전제이기 때문이다.


‘정당'은 정치적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그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여 권력을 잡기 위해 모인 집단이다. 그러므로 한 정당의 당원들이나 지지자들은 같은 정치적 이상을 공유하게 된다. 그 공유된 이상에 모순되는 행동이 발생할 경우, 그 행동에 대해 내부적인 비판이 가능하다. 그 이외의 상황에서 비판이 가능하려면, 어떤 행동이 정당 차원이 아니라 한 국가나 인류 보편관점에서 공유된 전제와 모순되어야 한다.


과거 안철수가 같은 행동을 했을 때 내가 그걸 깐 것은, 안철수가 표방하는 정치 이념과 이승만, 박정희 묘역 참배는 모순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가 표방하는 정치적 이상은 마치 내가 지지하는 정치적 이상과 유사하게 알려졌으나, 그 이상과 이승만, 박정희 묘역 참배는 서로 모순됐다고 생각한 게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당시 이해했던 안철수 진영의 정치적 지향점은 ‘기존 새누리당 지지세력은 잘못됐다'는 평가를 포함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기존 새누리당 지지세력과 화합하자는 액션이 모순이라고 본 거다. 당시의 이런 내 판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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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례가 있는 상태에서 문재인 대표가 같은 행동을 한 후, 직접적으로 ‘국민 통합'을 언급하고, 그 두 독재자의 ‘공'을 언급했다. 나름대로 그의 발언을 해석해보자면, ‘이 참배는 이승만 박정희 2명을 긍정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그 둘의 공을 인정하는 국민들에게 손을 내민 의미이다' 정도겠다. 본인의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 말은 결국 ‘이승만 박정희 묘역 참배를 극렬 반대할 사람들은 어찌되든, 일단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줄 사람들에게 다가가겠다.’는 말이 된다.


이 발언과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 발언을 결합하자면 이렇다. 야당 대표가 이승만 박정희 묘역을 참배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볼 사람들 중 다수는 새누리당 지지자다. 한편 수적으로 볼 때 그들 중 또한 절대 다수는 중산층과 서민층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은 이들의 이익에 위배된다. 결국 문재인 대표는 이러한 중산층과 서민층 모두를 아울러 통합하여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세력으로 만들겠다는 지향점과, 이들의 행복추구에 위배되는 국정운영을 하는 박근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겠다는 방향성을 밝힌 셈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새누리당을 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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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이건, 민주당 그 자체다. 민주당의 역사가 총체적으로 압축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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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역사적 명분은 ‘반독재'이다. 독재정권 하에서는 이 명분이 민주주의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그 독재정권이 실권한 이후,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된 정부가 국정을 맡은 상태에서라면 이러한 안티테제는 사실상 정치적 이념이 아니어야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헌법에서 민주주의를 규정한 상태로, 실질적인 국민들의 정치참여가 민주주의에 합당하게 이뤄지고 있다면, 더이상 ‘민주주의'는 그 나라 안에서 정치적 이념의 한 종류가 될 수 없다. 그건 그냥 공유된 전제다. 그러므로 ‘우리 당은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말은, 실질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아야 정상이다. 그와 다른 이념이, 정당의 존재 근거가 돼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단 하나, 새누리당의 존재 때문이다. 이 당은 사실상 민주주의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말은 ‘새누리당과는 다르다, 새누리당과는!!’이라는 뜻이된다. 결국 민주당은 문민정부 이후, 현실적으로 ‘반신한국당', ‘반한나라당', ‘반새누리당'으로서 존재한다. 모든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싫다면 나를 뽑아라'는 슬로건이 현실적 핵심 슬로건이 된다.


그러므로 이상적으로라면,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지고, 계속해서 이런식으로 보다 구체적인 정치적 이념에 따라 당이 나뉘었어야 한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이념에 따라 다양한 정책과 법안들이 시도되고, 그 과정이 민주적으로 이뤄짐에 따라 다수의 국민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라가 발전해 나갔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나라의 국민 자체의 거의 절반 가량이 민주주의에 대해 무지했고, 그래서 새누리당은 계속 건재했으며, 독재가 끝난 이후에도 민주당은 ‘민주주의인듯 민주주의 아닌 민주주의 같은 나라'에서 민주주의 정당으로 살아남기 위해, 통합과 연대를 유지한다. 그나마도 분리됐던 열린우리당도 없어지고, 추가로 시도됐던 다양한 세력들이 결국 대부분 녹아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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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때문에, ‘민주주의'는 기본이요 더 구체적인 진보적 정치이념을 가진 나 같은 인간들은, 민주당의 역사에 무작정 반대하지도 지지하지도 못하는 애매한 관계성을 지니게 된다. 흔히 말하는 ‘비판적 지지' 또는 ‘전략적 지지' 말이다. 때때로, 전혀 맘에 안드는 사람임에도 뽑아줘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끼고, 또 어떤 경우는 전혀 안어울리는 두 정치인이 연대하는 걸 보기도 한다. 어쩌다 그냥 내 구체적 정치 이념에 따르는 투표를 하면, 남 좋은 일 시켰다고 욕을 먹기도 한다.


이런 비판적 지지, 또는 전략적 지지는 도대체 어느 범위까지 가능한 것인가.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해 얼마만큼의 개인적 정치이념 추구를 양보해야하는가. 그 양보가 십수 년간 이어지면서, 결국 이 나라의 정치인들 대부분은 정책과 법안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보다는, 정치공학적 전략 탐구에 치우치게 된 것은 아닌가.


지난 2월 10일 정부 발표를 보면, 2014년도 예산대비 세수 부족분은 10조 9천 억이라는데, 이런 심각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어떤 정책을 어떻게 펴야한다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는 정치인이 이 나라에 있긴 있을까. 현 정부의 어떤 문제가 이런 펑크를 내버렸다는 비판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지식을 이미 지니고 있는 정치인이 있긴 할까. 특히, 과연 새정치 민주연합은 새누리당에 비해 이 문제에 더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을 수립할 능력이 있긴 있는가.


한 명의 유권자인 나에게 필요한 건,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다. 어떤 정당이든, 어떤 정치인이든 나에게 표를 받으려면 민주주의는 기본탑재에, 내 개인적인 정치이념에도 부합하면서, 저런 심각한 현실적 국가차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적인 능력을 갖췄음을 증명해야한다. 욕심이 너무 많다고? 시바, 유권자인 내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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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판국에 국민의 대통합과 화해가 정말 중요한 건지 의문이다. 박정희와 노무현으로 상징될 수 있는 국민의 정치적 양분이 정말 반드시 화합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대상인건지, 혹시 애초에 민주주의란 이렇게 분열되어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인지, 무엇보다도 그러한 화합이 애당초 가능하긴 한 건지 매우 의문이다.


어지간히 치열해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우리는 매일 10시간 가까이 일하기를 강요받고, 그 와중에 남는 시간에는 끊임없이 자기계발하기를 강요받으며, 그러면서도 가정에는 충실하고 도덕적으로도 무결하길 요구받는다. 붕어빵 하나를 만들어도 맛있으면서, 살 안찌면서, 위생적이길 강요받고, 사무직으로 쥐꼬리만한 월급이라도 받으려면 호감형 외모에, 외국어는 기본에, 주인의식을 갖고 성과를 만들어내길 강요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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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미친미친


그렇다면, 도대체 이 나라의 정치인들, 특히 1위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소속 정치인들은 어떤 강요를 받는가. 도대체 그들이 사는 치열한 삶은 어떤 요구를 기반으로 하는가.


나는 그 요구가 ‘선거에서 이기라'는 요구가 아닌 사회를 원한다. 그 요구는 ‘이 문제를 해결하라', ‘이 문제도 해결하라',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쏟으라'는 요구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요구를 수행하기 위해 한 정치인이 표를 부탁할 때, 같은 요구를 한 유권자가 많을 수록, 그리고 그 정치인이 그 요구를 더 잘 들어줄 능력이 증명됐을 수록 더 많은 표를 받길 원한다.


그런의미에서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열분덜에게 함 물어보자.


정치인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그리고 내가, 열분덜이 지지하는 정당은, 그 요구를 들어줄 능력이 있긴 있는가. 당신은 왜 그들을 지지하는가.

 

 

 




춘심애비

트위터: @miiruu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