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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사위


왕의 사위를 부마라 한다. 온 나라가 임금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봉건사회에서 왕의 사위는 각별한 대우를 받으며 편안한 인생을 살았던 경우가 많다. 그 지위가 지위인 만큼 명문가의 자제 중에서 혼사를 맺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드물게는 평강공주의 남편 온달처럼 벼락출세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공주의 남자’에게도 나름의 고충은 있었으니, 일생동안 처가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것은 물론 김일성의 사위인 장성택처럼 권력투쟁에 휘말려 불귀의 객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첩을 둘 수도 없고 아내가 일찍 세상을 떠난다 해도 재혼조차 할 수 없어 죽을 때까지 수절해야 했다. 이런 홀아비 부마들의 고통은 남성중심 사회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부마인 박영효는 12세 때 철종의 딸 영혜옹주와 결혼하여 금릉위에 봉해졌으나, 영혜옹주가 결혼 석 달 만에 요절하는 바람에 10대 초반에 평생 돌싱라이프를 예약하였다. 이를 딱하게 여긴 고종이 소실을 들일 것을 허락했으나, 공식적으로 재혼할 수는 없었기에 그의 자녀들은 모두 서자로 살아야 했다능)



대통령의 사위


대통령의 사위들은 어떨까? 후사를 남기지 못한 이승만을 패스하면, 박정희의 사위(전처 소생 딸 박재옥의 남편) 한병기가 눈에 뜨인다. UN대사와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박정희 시절 설악관광(현 설악케이블카)을 설립해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 사업을 따냈다. 최근 허가된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과 관련 다시금 주목받게 된 설악케이블카는 현재 한병기의 아들인 한태준·한태현 형제가 지분의 88%를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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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박재옥과 한병기

(아래) 박근령과 신동욱


박정희의 또 다른 사위로는 박근령의 남편인 신동욱이 있다. 현재 공화당 총재를 맡고 있는 그는 허경영을 방불케 하는 아스트랄한 행보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중이다.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 해임의 배후에는 박근혜가 있다”라는 글을 썼다가 명예훼손으로 잡혀가거나, 세월호와 관련 유가족들의 단식시위를 중단시키기 위한 실험단식 및 삭발식,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을 사과하는 의미의 석고대죄 단식 등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해왔다. 그와 결혼한 박근령 역시 일본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에 위안부 문제 사과를 계속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라는 등의 발언으로 '부창부수'라는 성어의 의미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두환의 사위였던 윤상현은 현재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다. 그러나 그는 전두환의 딸과 이혼하는 패기를 보여준 뒤, 신준호 푸르밀 회장의 사위가 되었다. 신준호는 신격호의 동생으로, 푸르밀(구 롯데햄. 롯데우유) 역시 2007년까지 롯데그룹의 일원이었다. 어떻게 이런 집안만 골라서 결혼할 수 있는지 실로 대단한 능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현재 대통령 정무특보로도 활약 중인 윤상현은 사석에선 박근혜를 ‘누나’라고 부른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로 그 분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공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탁월한 능력으로 봤을 때, 왕조시대에 태어났다면 훌륭한 부마가 되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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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아는 누나와의 선거유세


노태우의 사위 최태원은 SK그룹 회장이다. 노태우 정부의 마지막 해인 1992년, 경제계 최대 관심사였던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경그룹(현 SK그룹, 당시 총수는 최태원의 부친 최종현)이 선정되자 사돈에 대한 특혜라며 말이 많았다. 결국 선경그룹은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반납하는 대신,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여 SK텔레콤으로 개편하였다. 몇 년 뒤, SK텔레콤은 제2이동통신 사업자가 된 신세기통신을 흡수하며 통신업계의 공룡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한편 최태원은 2003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건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고, 2013년에는 회사 돈 수백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다. 재벌총수로서는 유례없이 긴 2년 7개월간 영어의 몸이 되었던 그는 올해 8월 14일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재벌총수로선 유일하게 사면 받은 사례였는데, 같은 ‘전직 대통령의 딸’로서 남편은 감옥에, 딸은 군대에 보내 (게다가 부친은 투병 중) 고통 받고 있을 노소영에게 박근혜가 갖는 연민과 노태우 시절 대통령 의전수석을 지낸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김영삼의 사위 이병로는 한전 해외 투자나 PCS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구설수에 올랐었다. 김대중은 딸이 없어서 사위를 보지 못했으나, 노무현의 사위 곽상언은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이명박의 맏사위 이상주도 변호사인데, 현재는 삼성전자 전무로 재직 중이다. 한편 이명박의 둘째 사위 최의근은 서울대 병원 내과 전문의이며, 셋째 사위 조현범은 한국타이어 사장이다. 역시 세 딸을 각각 법조인, 의사, 재벌에게 시집 보낸 MB의 꼼꼼함이 돋보인다.



사위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왕조시대도 아닌 오늘날, 대통령의 사위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딸 바보’ 아버지의 입장에서, 사위는 딸을 빼앗아간 도둑놈이기도 하지만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아낌없이 베풀어야 할 또 하나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인지상정일지는 모르겠으나 사위를 위해 자신이 가진 권력을 부당하게 활용했던 사례도 있다. 예컨대 사위에게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허가해준 박정희나 사돈 회사를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한 노태우의 경우 이러한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즉,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장인의 성공=사위의 성공’이므로, 장인과 사위를 운명공동체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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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이처럼 장인을 따라가면 흥하고, 장인을 거스르면 망한다는 진리는 왕이나 대통령 뿐 아니라 정치·사회 전반, 심지어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체육계에까지 영향을 미쳐왔다. 가령 장인 박태준 자민련 총재에게 빅엿을 안기며 한나라당에 입당했던 고승덕 변호사는 15년 뒤 '미안하다!'를 외쳐야 했다(자세한 이야기는 필자의 전작 <고승덕발 나비효과>를 참조하시라). 반면 프로배구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을 장인으로 둔 박철우 선수는 소속팀 현대캐피탈에서 장인의 팀 삼성화재로 이적하면서 프로배구 최고연봉 신기록을 갱신(3년간 연봉 3억 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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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에게 미안하다!


때문에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뀐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권력자의 사위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물론 사위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선엔, 어찌할 수 없는 혈통과 달리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남아 있는 결혼을 통해 명문가에 편입되고 싶은 욕망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싶다. 세간에는 그 꿈을 이룬 사나이 중 한 명이 ‘약한’ 남자였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그 소문의 주인공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사위라는 게 밝혀지면서 논란은 마약 그 자체보다는 처벌의 적정성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약한 남자, 약한 처벌


김무성 대표의 사위 이상균 신라개발 대표는 2011년 12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5차례에 걸쳐 코카인과 필로폰 등 각종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검찰은 그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고, 1심 법원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검찰과 피고인 모두 항소하지 않아 형이 확정되었다.


마약사범의 경우, 초범은 일반적으로 집행유예로 나오고, 재범 이상이 되어야 비로소 실형을 선고하는 최근의 경향을 감안했을 때, 이상균 씨에 대한 처벌도 특별히 약하다고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의심을 거두기 어려운 건 초범이라고 해도 종류를 바꿔가며 15번이나 마약을 투약했음에도 집행유예의 상한선인 ‘징역 3년’에 딱 맞춘 것처럼 보이는 구형량과 선고형량 때문이다. ‘집행유예’라는 결론에 맞추어 의도적으로 양형기준을 무시한 기교적인 판결이 아니었나 싶다. 심지어 집행유예 기간마저 4년을 택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공식을 적용받는 재벌회장들보다 유리한 결과를 얻은 셈이다. 피고인이 항소하지 않은 것만 봐도 얼마나 만족스러운 판결이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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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검찰이 항소하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없다. 물론 구형량과 같은 징역 3년이 선고되었으니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을 수 있다. 그러나 올해 초 징역 3년이 구형되었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1심 판사가 미친 척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면(실제로는 징역 1년이 선고되어 검찰과 피고인이 모두 항소했다. 2심에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어 검찰만 상고), 검찰이 항소하지 않았을까? 구속 피고인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면 그 자리에서 석방되지만 단기간이라도 실형이 선고되면 다시 구치소로 끌려간다. 그런데 검찰이 징역 1년이나 1년 6월의 실형에는 항소하면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에는 항소하지 않았다는 건 넌센스다.


게다가 2년 반 가까운 기간에 15차례에 걸쳐 종류별로 다양한 마약을 섭렵했다면 '중독'을 의심해 봐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 집행유예를 선고하더라도 검사의 청구에 따라 ‘치료감호’를 병과(倂科. 동시에 둘 이상의 형벌에 처하는 일)할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남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이 치료감호의 혜택을 입은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상균 씨에게는 160시간의 사회봉사와 40시간의 약물치료 강의 수강명령만이 아울러 매겨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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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위, 아, 아닙니다.



김무성 일가의 비밀


이와 관련 특별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김무성 일가의 형사처벌 전력이다. 험난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답게 최근까지도 곧잘 법의 심판대에 오르내렸지만 희한하게도 치명적인 판결은 피하고 있다. 가문에 유력한 법조인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름 특출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1998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던 김무성 대표는 김영삼 정부 시절 주파수공용통신(TRS) 사업과 관련 업체로부터 2천만 원을 받았다는,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1심에서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던 그는, 2심에서 벌금 1천만 원에 추징금 2천만 원으로 감형되면서 정치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한편 2000년에는 총선에서 맞붙은 상대 후보에게 현금 500만 원이 담긴 돈 봉투를 건넸다는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매수 혐의로 기소돼 벌금 80만 원을 선고받았다. 역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100만 원을 절묘하게 비켜간 형량이다.


2013년에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했다는 의혹과 관련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으나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는 등 법의 심판은 김무성에게 늘 관대하고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김무성 대표의 누나이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어머니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에 대한 형사처벌이 논란이었다. 김 이사장은 자신의 넷째 딸을 학교 건물 관리인으로 등재한 후 그에 대한 임금 명목으로 3억 7천만 원 상당의 교비를 업무상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검찰은 김 이사장을 벌금 2천만 원에 약식 기소하는 파격적인 관용을 베풀었다. 보다 못한 법원에서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했지만, 최종 형량 또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비슷한 사건들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었다.


이처럼 김무성 일가에 대해 줄곧 관대했던 법원과 검찰의 태도를 보노라면, 사위에게 선고된 집행유예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내려진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이 정도일진대, 혹시라도 대통령이 된다면 아무도 못 건드리는 로열패밀리가 되는 게 아닐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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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헷. 그럴 리가 없다능


유력 정치인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선 안 되겠지만 법 적용에 있어 특권을 누려서도 안 될 것이다. 파리는 걸리지만 참새는 빠져나가는 거미줄 같은 법 집행은 사법 불신을 가중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김무성 대표 입장에서는 사위에 대한 비난이 가혹하게 느껴지겠지만, 이는 단지 개인 이상균의 문제를 넘어 공정한 법질서 확립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보다 엄격한 검증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마가 되려는 자여, 그 무게를 견딜지어다.







벨테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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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