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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 23. 월요일

김현진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몸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나를 스쳐 간 당신의 몸, 

당신의 이마를 한때 어루만졌던 누군가의 손, 

아스팔트 위에서 사정없이 깎여나가던 누군가의 피와 살,

철탑에서 얼거나 타들어 가는 몸들, 

당신이 나를 낚아채 주길 바라면서 

숨죽여 뺨을 대 보았던 당신의 쇄골.


몸은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은밀한 삶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 '몸'에 대한 이야기다.

 








이 시대의 계백들이라. 딴지일보를 달궜던 글을 보면서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는 '계백'이라는 표현이었던 것 같아요. '이거나 저거나 제 식구 몽땅 죽인 건 똑같지 뭐가 다르냐' 하신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계백은 우리에게 '훌륭한 사람' 그런 거잖아요. 백제가 망하고 산 채로 붙잡혀 봤자 극형을 당하거나 노비로 전락하겠지만,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거랑 서초동 사건 범인을 제 식구 몰살한 가장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묶어 버리면 안중근이나 IS나 테러리스트. 이런 불편함이 생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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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드라마 '계백'의 '계백')



얼마 전, 방송에서 우연히 만난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시작한 주현우 씨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초등학교 때 IMF가 터진 이후, 자기 세대는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말만 들었고 좋은 전망을 품어 본 적이 없다고요. 그래도 그는 명문대생이니 전통적인 가장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에게는 골수 빨릴 능력이 있는 가장들도, 골수 빨 수 있는 가원들도 소위 ‘그들만의 리그’로 느껴지겠죠.

그 글을 쓰신 분과 친구들이 아마도 짐을 진 한국의 마지막 가장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를 포함한 이후 세대 중에 가정을 꾸릴 능력이나 운이 되는 사람들 두 부류가 아닐까 싶어요. 전 세대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거나, 한창 때의 혈기로 생긴 자녀를 가진 젊은 부모들 말이죠. 사람에게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고, 월요일 오전의 브런치 카페나 백화점에 얼마나 여자들이 많은 줄 아느냐는 지적도 물론 진실이겠지만, 제 눈에는 다른 게 보여요. 죽도록 일하는 남편의 수입으로 한가롭게 카드를 긋는 전업주부들보다 먼저, 백화점의 어둠이. 녹즙배달을 하던 시절, 어느 백화점 판매사원들을 저의 고객으로 두고 있었어요. 그들을 위해 녹즙을 새벽에 가져다 놓고는 했는데, 창문 하나 없는 백화점의 새벽이 무시무시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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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처럼 서 있는 마네킹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당장 송장처럼 몸이 굳고, 조명이 없으니 비상등의 초록 불빛만을 의지하면서 녹색 주머니를 찾아 녹즙을 집어넣죠. 꾸벅꾸벅 졸고 계시는 경비아저씨와 백화점을 나설 때면 마주치는 청소하시는 분들. 그 다음은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판매원과 요즘 툭하면 무릎 꿇린다는 주차관리 요원들이 와요. 그리고 세일 안내판 등 POP 광고판을 만드는 디자이너 같은 분들도 오시고, 푸드코트에서 서빙하는 분들도 오세요. 직원용 엘리베이터 쪽을 이용하다 보면 가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답니다.

'우리 백화점이 4대 보험 등을 안 해 줬다고,

다음 카페에 글을 올린 ○○○씨에 대해 정식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하겠다. 

단기 근무 직원들이 구직 카페 이용 시 

악성 게시물을 올리지 않도록 주의 깊게 보고 있으니, 허튼짓하지 마시라.'


로 요약할 수 있는 안내, 는 무슨 그냥 협박장이죠. 어쨌거나 우아하게 쇼핑하고 있는 여성들과 여성들을 둘러싼 죽어라 일하는 수많은 여성 노동자 역시 넘쳐나는 곳이 백화점이란 곳이더라고요. 어쨌거나 그 쇼핑객들을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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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을 해도 보람이 없다.' 하는 처연함과 외로움은 이해합니다. 남자니까 무조건 제 식구는 먹여 살려야 한다는 무거운 어깨까지는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요. 저는 소녀가장까지는 아니었지만 십대 이후 생활력 없는 부모님께 부지런히 송금을 했었죠. 일하거나 돈 보내는 게 힘든 게 아니에요. 진짜 힘든 건 고맙다는 말 한 번 못 듣는 거, 그게 제일 서럽죠. 항상 고맙다는 말 한 번 않고 '너 이거 다 하나님이 갚아 주실 거다. 천국에 네 복 쌓는 거야.' 라고만 말씀하시던 아버지. 지금은 아마 미안하고 민망해서 그랬거니 생각은 하지만 그때는 정말 분통이 터졌죠. 갚아 주려면 10부 이자로 갚아주지. 아니, 원금상환이라도 해주지. 하면서요. 그냥 고맙다는 말,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면 됐는데. 그 두 번째 글에 등장하는 견디다 못해 이혼을 생각한단 선배도 '당신 덕분에 우리가 지붕 밑에 먹고 산다. 고맙고 미안해서 어쩌냐.' 하는 말만 주기적으로 들었어도 상황이 조금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다음에 걸렸던 건 '부엌이라는 여자의 공간'이라는 구절이었어요. 물론, 전업주부의 일터라는 맥락이겠죠. 남편은 소파 말고는 자기 자리가 없는데 그래도 여자는 부엌이라는 자기 공간이 있다…. 잘 설명을 할 수가 없어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볼게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저와 어머니는 부엌과 기를 쓰고 쪼갠 것 같은 방이 두 개 있는 월세집으로 이사를 갔어요. 원룸보다 조금 큰 평수였죠. 주인 할아버지는 좀이 아니고 많이 별난 사람이었어요. 다세대 주택에서 번호 키를 해 주면 좋을 텐데, 죽어도 현관문을 구식 열쇠로 잠그는데다 10시만 넘으면 그 문을 잠가 버려서 혹시라도 열쇠를 빼먹은 날에는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어요. 게다가 별로 할 일이 없으시다 보니 골목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온 동네에 참견하고 다니는 게 일인 분이었죠. 술이라도 먹고 들어오는 날에는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는지 몰라요. '인생 그렇게 살아서 되겠어? 홀어머니 생각해서 똑바로 살아라.' 이 정도로 끝나면 좋은데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까지 이어지는 훈계에 화가 치밀면서도 그냥 세 사는 죄로 얼굴 붉히지 말자 싶어 네, 네, 하고 그냥 넘어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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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경제)


그때 제 목표는 지극히 보통의 삶이었어요. 글 같은 건 잘 쓰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혼자 되신 어머니 잘 모시기 위해서 어떻게든 살아 보자. 궁리를 거듭하다가 서울시 관할의 공기업 공채에 합격했어요. 연로한 나이에다 경쟁률도 높아서 기대도 안했는데 운이 엄청 좋았던 거죠. 뭐, 일이 꼬여서 지금은 사표를 냈지만요. 지극히 보통의 삶 같은 것도 아무나 사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땐 몰랐어요. 그래도 당시엔 나도 사람 구실 좀 해 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새벽에도 일찍 일어나는 할아버지는 웬일로 일찌감치 나가는 저를 보고 어디 가냐고 묻더군요. 이리저리 됐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날부터 무진장 사근사근해지는 거예요. 자기를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어떤 의논이라도 하라면서. 그럼 아버지, ‘'공용 현관에 번호키 좀 달아 주시죠.' 라고는 못 그랬지만요. 


사기업은 꽤 다녀 봤지만, 서류정리로 하루가 다 가는 공무는 처음이라 엄청 헤매고 있던 날이었어요. 집에 가고 있는 저를 보더니 할아버지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군요. 할 얘기가 있대요. 어디 가서 식사를 하거나 차나 한잔 하자고 하시기에 그냥 여기서 말씀하시라도 했더니, 당신에게 장가 안 간 둘째 아들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저는 그대로 붙잡혀서 그 집의 온갖 사정을 다 들었어요. 사고만 쳐서 계속 돈을 해 먹고, 아이를 둘이나 떠맡은 채 이혼해서 부모에게 갓난쟁이 때부터 손자 수발을 시키는 첫째 아들 한탄을 시작으로요. 그냥 총각 아들 소개시켜 주마, 하는 거면 흥미로웠을 텐데. 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들을 그냥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노래방을 차려 줬는데, 아가씨도 부르고 2차도 가고 그래야 장사가 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고, 단속에 걸려서 벌금을 엄청 냈다. 그래도 아가씨를 안 두고 술을 안 팔고 해서는 안 돼서 걱정이다. 둘째는 숫기가 너무 없다. 알고 보니 마흔 넘은 아들을 나이도 네 살이나 깎아서 이야기하셨더군요. 너무너무 괜찮은 앤데 숫기가 없어서 여태 연애를 못했다. 정말 착하다고 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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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글도 애는 착하다고 하던데...



여기까지였으면 나를 좋게 봐서 귀한 아들한테 선이라도 보이고 싶으신가보다고 좋게 넘어갔을 텐데, 할아버지의 구상은 원대했어요. 그 아드님은 기술고등학교에서 제빵을 배워 바로 취업해 지금 제과 기술자를 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남의 밑에 일하겠느냐 곧 이 동네에 빵집을 내가 하나 차려 줄 예정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혼자 꾸려가긴 힘들지 않겠냐. 처자는 보아하니 공기업이라 하면 그래도 정시퇴근은 시켜 주지 않겠냐. 그러면 퇴근 후와 주말에는 빵집 일을 돕고, 이 근처에 40평쯤 되는 아파트 전세를 얻어 줄 테니 홀어머니 모시고 살아라. 그러면 어머니가 살림도 봐 주시고 애 낳으면 봐 주면 될 것 아니냐. 요즘 처가살이 하려는 남자 절대 없다. 이런 자리가 어디 있냐. 정말이지 성은을 베푸는 얼굴이었어요. 노래방 매매춘 불법 영업을 해서 두 번이나 벌금을 낸 아주버님이 생기는 건 그렇다 치고, 주중에는 칼퇴근하고 나서 빵집에서 일하고, 주말에도 빵집에서 일하고, 그 와중에 신랑 나이가 많으니 얼른 애를 낳고, 둘 다 맞벌이로 바쁘니까 살림은 우리 엄마가 해 주고, 애는 우리 엄마가 키우라굽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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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하면 빵집이 제 2의 일터가 됐을 수도...



제가 대혼란에 빠져 있는 사이 할아버지는 너희 엄마도 딸이랑 같이 살면 얼마나 좋으시겠냐고, 애 보고 살림하면 심심하지도 않고 괜찮지 않으냐고 했어요. 40평대면 셋이 살기 넓고 참 좋다고. 네, 그걸 쓸고 닦는 건 우리 엄마란 말이죠? 아이고, 참 고마워 죽겠네요. 저한테는 과분한 혼처라서 말이죠. 게다가 빵도 싫어하고. 아, 그렇지만 그 '고마워 죽겠지?' 하는 표정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어쨌거나, 그게 제 인생에 최초로 들어온 선 비슷한 거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거절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듯 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도저히 미래의 시아버지가 원하는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어서 어영부영 피했죠. 물론 '계백'글을 쓰신 딴지 필진 펜더님과 그 친구 분들은 그 할아버지보다야 훨씬 양식 있는 분들이라 거라 믿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 결혼이 성사됐더라면, 저희 엄마나 저에게 그 잘난 40평대 아파트의 부엌이 나만의 ‘공간’처럼 느껴졌을까요. 그걸 영역 혹은 공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영향력과 소유권보다는 의무와 노동이 존재하는 곳은 '일터'가 아닐까 합니다. 파티션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사무실의 책상을 '여긴 그래도 당신만의 공간이잖아.'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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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고마워 할 지도 모르죠. 40평을.



'몸'과는 어째 다른 글 같지만, 그때 집주인 할아버지는 분명히 저에게 '몸값'을 매기고 있었으니 아주 상관없진 않겠죠. 아버지도 없는 모녀한테 이 정도 값이면 희희낙락할 거야, 그런 얼굴이 아주 명백했거든요. 후하게 쳐준 건지, 후려친 건지는 아직도 아리송합니다. 어쨌거나 퇴근해서 빵 팔고, 주말에 빵 팔고, 애 낳아서 엄마한테 살림과 동시에 떠맡기는 삶과 40평대 아파트 전세를 흔쾌히 거래했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그대로 살았어도 그 아파트 베란다 한 켠이라도 내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요. 어쨌거나 그분, 지금은 장가가서 잘 사나 모르겠어요. 문제의 40평대 아파트에서 살림과 육아를 전담해 주시는 장모님 모시고, 주중 퇴근 후 빵집 출근하고, 주말 퇴근 후 빵집 출근하는 맞벌이하는 열 살 어린 아내는 과연 만나셨을지. 아니면 아직도 골목길 간이의자에 앉아서 다음 사람을 열심히 물색하고 계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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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식구의 밥줄이 나한테만 달려 있다는 무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맙단 말 한 마디 못 듣는 고독. 이런 걸 이해 못 하는 바가 아닙니다만, 서초동 범인 같은 사람을 부디 '계백'이라고 표현하지는 말아 주셨으면 해요. 부엌이 여자의 숨통 트이는 '공간'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평일 오전에 쇼핑을 하는 부러운 분들의 시중을 들어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동동거리는 그림자 같은 노동자들을 기억해 주시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기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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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