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5. 02. 23. 월요일

sydney






-그들과 우리, 어떻게 다른가?- 


이 글은 시드니에서 15년간 택시 운전을 하며 얻은

문화인류학적 느낌을 정리한 글입니다.






한국인의 똥폼과 거드름


한국에 있을 때는 전혀 관상에 관심이 없었지만 호주에서 택시 운전을 하게 된 다음부터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다. 아니 가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손님이 일단 택시에 타면 30초 안에 그 인간의 됨됨이를 파악해서 만약에 발생할 수도 있는 사고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나름대로 Facialogy(사전 찾지 마라. 내가 만든 말이다.)의 전문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비록 아직 논문으로 발표한 바는 없으나 인고의 15년 세월 동안 집중도가 높은 연구를 통하여 정리한 이론이니 만큼 심오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겠다.


관상_nasquid.jpg


즉, 쩨쩨하게 생긴 놈은 쩨쩨하고, 

치사하게 생긴 놈은 치사하고, 

유치하게 생긴 놈은 유치하고 

짜게 생긴 놈은 짜더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오해하진 마시라. 이 심오한 이론에도 변수가 있다. 가방 끈에 따라서 정확도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즉, 덜 배운 사람들은 얼굴에 비교적 솔직하게 나타나서 쉽게 판독이 가능한데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판독이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 인격, 체면, 교양, 신앙 등으로 덕지덕지 화장이 되어서 좀처럼 본색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이 점은 동서양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의 관상력이 그런 것까지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아직 그 정도는 안 된다. 왜냐하면 내 관상은 어디까지나 영업상 필요한, 백인들에 한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내 고객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립해온 나의 Facialogy로는 설명이 안 되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런데 백인들은 대게가 겉이 이상하면 어김없이 속도 이상하다는 점에서는 아직 순진한(?) 구석이 남아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한국인은 겉은 멀쩡해도 속이 이상한 경우가 많아서 겉만 보아서는 도무지 어떤 인간인지 종류를 짐작할 수가 없다. 


다음은 세계적인 관광 도시인 시드니에서 온 세계 만민을 골고루 태우고 다니는, 구를 대로 굴러본 택시 운전사로서 나름대로 터득한 나의 나라별, 인종별 사람 분류법이다. 나라도 많고 인종도 많지만 그 중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한, 중, 일 삼국의 사람들과 백인들만 비교해 보도록 하겠다. 


조바심에 덧붙이자면 섣부르게 인종에 대하여 일반론을 펴는 것은 인종적 편견을 가져올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여기서 언급된 특징들은 일반화하여 이해하시기 보다 순전히 나의 경험과 감정에 기초한 사례를 소개한 것으로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blindness1.jpeg


호주에서 택시운전을 하다보면 그러지 않으려해도 태우는 인종에 따라 달리 대처하는 법을 몸에 익히게 된다. 인도인이 타면 여차하면 기분 나쁜 일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야 하고 (개인적으로 천국에 보내준다고 하더라도 인도인이 있다고 하면 사양을 할 마음이다. 반대로 인도인이 없다면, 지옥행도 한 번쯤 고려해 볼 문제라고 생각될 정도로 인도인들에게 시달렸던 기억이 많다.) 중국인이 타면 무시를 당하는 것이 아니고 무시를 할 준비를 해야 하지만 일본인이 타면 일체 신경을 안 써도 된다. 그러나 무리가 없고 반듯한 일본인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수백 년간 절절히 일본에 당해 온 역사를 지닌 민족의 후손인 탓이기도 하지만 양국 사이에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긴다면 냉정하게 생각해서 축구 빼놓고 어느 모로 보아도 일본인들을 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일장기만 보면 가슴이 서늘해지는 세대라서 그런지 일본인들이 무섭다. 이것은 개인적인 감정만이 아닐 것이다. 만들어내는 물건만 봐도 일제가 어느모로 보나 국산품 보다 반듯하다. 이런 사람들과 유사시에 어떤 경쟁이 벌어지면 상대가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나의 이런 생각이 철저히 기우였으면 좋겠다.)


역사적으로 백인들의 수많은 탐험과 개척의 사례를 보면 그들이 진취적이고 개척 정신이 넘치는 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마 동양인 중에서 가장 진취적인 민족을 들라고 하면 유감스럽게도 일본을 들어야 할 것 같다. 호주에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현상은 어느 시골구석을 가도 일본 젊은이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젊은이들은 농장에서 일하지 않는 한 대부분이 여행을 다녀도 도시주변에서만 맴도는 편이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일본 관광객들이 가끔 엉뚱한 곳에서 희생을 당하기도 한다. 옷차림이나 하고 다니는 것을 보아도 일본인은 개성이 있는데 한국인들은 같은 공장에서 나온 제품 마냥 다 똑같다.


길거리에 서 있는 동양인은 먼데서 한 눈에 척 보아도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알아 볼 수가 있다. 허긴 요즘 많이 달려져서 점점 분간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중국 사람은 옷을 입느라고 애를 많이 쓴 거 같은데도 어쩐지 보람 없이 허무해 보이고 일본인들은 자유롭게 제멋대로 옷을 몸에 걸쳤는데도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감에 넘치는 태도로 다녀서인지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옷을 잘 입어 보려고 밤잠 안자고 노력한 모습이 역력하다. 


덕분에 호주에 돌아다니는 동양인들 중, 누가 한국인인지는 언제 어디서나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우선 여자 분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멋을 내느라고 애를 쓰신 것이 단 번에 표가 나고. 남자 분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체형과 상관이 없이 항상 나름대로의 폼을, 속칭 똥폼을 잡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꼬나 물고 서있는 경우 어김없이 손을 허리에 올린다든지, 뒷짐을 진다든지, 한 쪽 다리에만 힘을 실고 헐렁하게 서있다든지, 공연히 빈약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든지 하여간에 어떤 폼이던 잡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체로 서양인들은 자기 체형 생긴 대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한국인들은 그런 자연스러운 느낌이 없었다. 주변을 의식하는 심리가 은연중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백인들은 대개 친절하게 행동하는 편이었다. 아마도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기는 한국 사람들이 단연코 영예의 금메달감일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다.) 나 어렸을 적에는 단순히 '쳐다봤다'는 것만으로도 싸움이 벌어지는 일이 많았으니 말이다. 보통 "왜 째려?"로 시비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잘 모르는 동네나 장소에 가면 새색시처럼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다녀야 했다. 함부로 두리번거리다간 대번 시비가 붙었었다.


그러나 백인들은 보통 '땡큐'를 입에 달고 산다. 보통 택시에서 내릴 때 크레디트 카드를 내주면서 '땡큐', 청구서 받으면서 '땡큐', 청구서에 사인을 한 후 돌려주면서 '땡큐', 영수증 받으면서 ‘땡큐‘, 내리면서 '땡큐' 최소한 다섯 번은 '땡큐'를 한다. 증세가 심한 사람은 방향지시를 할 때마다 '땡큐'를 붙인다. 예를 들면 "좌회전, 땡큐", "우회전, 땡큐", 이런 식이다.


극단적으로 이런 예도 있었다. 한 번은 한적한 시골 길을 가다가 조그만 가게에 들렀다. 우리 일행이 들어서니까 주인이 가게 안에서 늘어지게 누워 있던 개에게 나가라고 했다. 개가 나가니까 주인이 개에게 '땡큐' 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winking-dog.jpg


백인들에게 '땡큐'는 감사하다는 표시가 아니라 말의 끝에 붙는 감사접미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땡큐'를 아무리 남발한다 하더라도 아예 안 하는 것 보다는 백배는 나을 것이다. 


하지만 맞는 한이 있어도 '땡큐'를 안 하고 버티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본토 출신 중국인들이다. 택시에서 내릴 때 싸우고 가는 사람 마냥 아무 소리 없이 문을 꽝하고 닫고 내린다. 서구 사회에서는 아무리 막 되먹은 종자라도 이런 사람은 없다. 처음에는 너무 이상 했는데 지금은 나도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중국인이 문을 꽝 닫는 순간 조그맣게 "Fucking Chinese!"라고 자동적으로 내 뱉고야 만다. 나만 기분 나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나오는 욕이다.


그런데 공교롭게 내가 태운 중국인들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어쩌면 그렇게 나쁜 쪽으로 행동이 통일되었다는 인상을 주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내 생각에는 전통적인 가치는 무너지고 오랫동안 왜곡된 사회주의를 지향해온 나라에서 살다보니 남에게 감사할 일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백인들은 개성이 뚜렷해 인종별 특징이 있다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종자들이다. 등급을 매긴다면 한, 중, 일, 삼국 사람들보다 나은 등급의 인간이 존재하는 반면, 그을에 못미치는 아래쪽 등급 하나씩 더 추가해야 할 것이다. 마치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지만 불량품이 많이 나오는 공장과도 같다 생각하시면 된다. 즉, 사회 체제가 철저히 제멋대로 개인주의여서 QC(Quality Control 품질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공장이라는 얘기다. 똑같은 비유를 적용해본다면 한국은 전체적으로 제품의 질은 좀 떨어지지만 불량품이 비교적 적은 생산라인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어느 쪽이 좋다고는 하기 힘들겠지만 택시운전을 하며 다양한 인종을 태우면 이런 출신 국가별 특징은 두드러져 보이게 마련이다. 하루 빨리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나갔을 때 두드러질 특징이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유머는 생명이다


한 번은 점잖은 신사 한 분이 택시에 탔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너무 낯익은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12.jpg


출발을 하고 나서 다시 한 번 얼굴을 훑어보고 조심스럽게 "당신 클린턴 닮았다는 소리 많이 듣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신사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씩 웃기만 했다. 상대방이 아무 말을 안 하기에 더 말을 붙이는 것도 실례가 되는 일이라서 더 이상 말 없이 그저 운전만 했다. 그렇게 한 참을 침묵하더니 신사가 "당신 내가 클린턴 재직 시에 왜 미국에 가지 못한 줄 알아?"하고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왜?"라고 물었더니 "암살 당할까봐."라고 해서 너무 웃겨서 하마터면 운전대를 놓칠 뻔 했다. 그 다음부터는 그의 클린턴 시리즈가 줄줄 흘러나오는데 천연덕스럽게 꾸며대는 유머가 많이 해 본 솜씨였다. 실제로는 클린턴 말기에 클린턴의 딸 첼시와 비슷한 나이의 자기 외동딸과 아내를 데리고 미국을 가서 백악관 관광을 갔었단다. 때 마침 시골에서 백악관 견학을 왔던 학생들이 자기를 발견하고 놀래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해서 줄을 서서 클린턴 대신 사진을 찍어 주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머물고 있는 호텔에서 무슨 컨퍼런스가 열렸는데 당시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가 오기로 되어 있었단다. 자기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니까 고어의 경호원들이 깜짝 놀라서 순식간에 자기에게 몰려오더란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과장인지는 몰라도 그의 클린턴 시리즈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 까지 계속되었다. 택시를 내릴 때 내가 "당신 미국인이 아니고 호주인인 것이 천만다행이다"라고 했더니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확실히, 팁을 한 푼도 안주는 것을 보니 그는 호주인이었다. 


서구사회에서는 유머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주차해 있을 때는 책을 읽지만 운전 중에는 라디오를 듣는데 주로 교양프로 전문방송을 주로 듣는다. 방송을 듣다 보면 어떤 주제에도 강의 도중에 웃음이 안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다.


심지어는 목사의 설교도 마찬가지여서 일단 유머가 없으면 실패한 설교로 보일 정도다. 실제로 호주 목사들은 설교 준비를 다 해놓고 마지막으로 적당한 유머를 찾는 일에 제일 시간을 많이 쓴다고 한다. 적당한 것을 끝까지 못 찾으면 설교 주제와 아무 상관이 없는 유머라고 한 가지 하고 넘어가야 한단다. 사람을 평가 할 때도 가장 점수를 많이 주는 대목이 유머감각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장례식이 아닌 한 모든 행사에는 유머가 생명이다. 마주보고 삿대질 하는 국회 토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TV 의회 중계방송에서 의원들이 발언하는 것을 보면 가끔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진다. 상대방을 조롱해서 자기 당 의원들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상대당 의원들은 당연히 기분 나쁘겠지만. 영국 의회에서 있었다는 에피소드이다.

 

한 야당의원이 장관에게 물었다. 


"아버지 수의사이었다면요?"


"그렇습니다만, 왜요? 어디 편찮으십니까?"


상대를 한 순간에 짐승으로 만드는 순발력, 보통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231117_a2e9_1024x2000.jpg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어떤가? 한국 사람들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재미없게 만드는데 타고 났다. 어떤 행사를 가보아도 재미가 없고 딱딱하고 지루하고 졸리고 공연히 화장실에 가고 싶게 만든다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헐레벌떡거리고 시간 맞추어 왔는데 높은 사람이 도착하지 않았다든지 준비가 조금 덜 되었다고 대책 없이 지루하게 기다리게 하는 일들이 다반사인 것.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행사의 주인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당연히 참가한 대중들이다. 그런데 한국의 주최측은 단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주인인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거 순전히 전통적으로 내려온 유교문화 탓이다. 별로 대단한 행사도 아닌 일들에 왜 그렇게 격식을 많이 찾는지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나는 죄 중에서 '사람들 모아 놓고 재미없게 만드는 죄'를 가장 큰 죄로 꼽고 싶다. 


한 번은 호주인들이 150명, 한국인들이 200명 정도 참석하는 '한국전, 월남전 참전 전우들의 우호증진의 밤' 행사가 있었다. 나는 이 행사에 사회를 맡게 되어 고민을 많이 했었다. 문제는 유머였다. 어떻게 하면 두 나라 사람을 모두 웃길 수 있는 유머를 찾느냐 하는 것이다. 아들과 둘이서 머리를 짜서 유머를 골랐는데도 당일 행사에서 막상 써보니 먹히지가 않아서 매우 당황했다. 그런데 행사 중에 갑자기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한국 측을 대표해서 총영사가 인사를 하려는 순간에 갑자기 행사장의 비상벨이 오작동을 해서 정신없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황급하게 호텔 관리자가 와서 벨 소리를 끄기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나는 이 총체적 난국(?)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를 순간적으로 고민해야만 했다. 그러다 다시 총영사의 연설이 시작되기 전에 "원래 한국에서는 귀빈이 연설을 할 때는 비상벨이 울리게 되어 있다"고 간단한 멘트를 던졌고 순간 회의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2444256-8233831785-78793.gif


시기적절하게 유머를 한다는 것, 이거 정말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택시에서는 유머를 하고 싶어도 영어가 안 되어서 못할 때가 많다.


어느 날, 머리가 하얀 블루 컬러 영감 셋이 타서 이야기를 하는데 모든 단어에 'fucking'이 붙었다. 예를 들면 "fucking taxi, fucking airport" 하는 식이었다. 시드니에 출장을 왔다가 가는 모양인데 젊은 애들도 아니고 영감들이 어떻게 그렇게 말 끝마다가 아니고 모든 단어에 정확하게 fucking을 접미사로 사용할 수가 있는지 정말 신기할 지경이었다. 공항에서 도착해서 "What's the damage?" 하길레 나도 장난삼아 큰 소리로 "Fucking fifty dollar!"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어이 없는 표정을 짓더니 금방 웃음이 터졌다.


여기서 사용된 damage라는 말은 우리 말로 하자면 '얼마 깨졌냐?'라는 뜻의 슬랭이다. 한국에서는 혼잣말로 '얼마 깨졌다'라고 하는 수는 있지만 돈을 지불하면서 무례하게 상대방을 향해 '내가 얼마 깨졌냐?'고 묻지는 않는데 확실히 백인들은 불량품이 많다. 


처음에 이런 표현을 들었을 때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해서 '승객이 가지고 온 뭐가 깨졌나?'고 택시 안을 두리번거리고 나서 "깨진 것 없는데?"라고 했을 정도였다. 설마 그게 돈 얼마 나왔냐고 내게 묻는 것인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겐 운전을 하면서 지랄 맞은 백인들을 만날 때 마다 나쁜 기분을 상쇄하기 위하여 떠올리는 백인 아줌마가 있다. 이해하기 쉽게 서울 지명으로 바꿔 이야기하자면 은평구 역촌동의 택시정류장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30분 쯤 기다린 다음에 컴퓨터에 콜이 떴다. 가까운 거리로 가는 콜일 경우 내가 안 잡으면 뒤에 있는 차로 가게 되어있다. 목적지가 '신사동'이라서 나오길레 강남구 신사동이겠거니 생각하고 '올커니,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싶어서 선택을 하고 차를 몰아 주소를 찾아 손님을 태우러 갔다.


점잖게 생긴 아주머니가 타서 몇 킬로 안 가더니 목적지에 다왔다는 것이다. 아차! 강남구 신사동이 아닌 같은 이름의 바로 옆 동네인 은평구 신사동이었다. 강남구 신사동을 가면 50불은 나왔을 터인데 은평구 신사동이니 요금이 7불 밖에 안 나올 수밖에! 호주 아줌마는 10불을 내고 거스름돈은 팁 하라고 했다. 호주는 팁 문화가 없기 때문에 사실 이런 경우도 별로 없지만 나는 기가 막혀서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냐하면 다시 택시정류장에 돌아가서 내 차례를 기다리려면 30분 이상은 걸릴 터이고, 그렇다면 한 시간에 7불을 번 셈이니 나는 오늘 초상을 치른 거나 다름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내 사정을 알 리가 없는 아줌마는 입으로는 힘없이 "땡큐!"를 하면서도 지구 최후의 날을 맞은 것 같은 내 인상을 보더니 이해가 안 되는 표정으로 "왜 그러느냐? 뭐가 잘못 됐냐?"고 물었다. 할 수없이 나는 비참한 마음 그대로 내 사정을 설명을 했다. 내 설명을 들은 아줌마가 "그러면 10불을 도로 다오"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적으로 판단이 안서서 '이건 또 무슨 뜻인가?' 싶었는데, 이 아줌마 지갑에서 50불짜리를 꺼내더니 내미는 것이 아닌가. 


Depositphotos_5152155_s-620x400.jpg


그러니까 그 아줌마는 팁으로 택시 요금 7불의 6 배인 43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아줌마의 진의를 뒤늦게 파악하고 나서 당황스럽게 "아,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했더니 "아니다. 네 얼굴을 보니 내 마음이 편치 못하다"라고 해서 이번에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또 한 번 기가 막혔다. 


택시 운전 15년 동안 딱 한 번 있었던 일이지만 그 후 손님 때문에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아줌마를 생각하고 '그런 사람도 있었지'하고 생각하면서 기분을 돌리곤 한다. 그 아줌마가 무슨 유머를 구사한 것은 아니지만 새삼 이런 너그러움을 가진 사람이 많다면 한국 사람들도 유머를 생활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진 경험이었다.





지난 기사


1. 택시 기사가 되다

2. 카지노 손님과 소유에 대해





sydney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