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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 24. 화요일

영구읍따









서민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청년 백수도 많고 물가가 별로 오르지 않는 대신, 경제성장률도 바닥을 기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더 답답한 것은 이런 상황이 좋아질 기미가 없다는 것이다. 연초에 담뱃값이 두 배 가까이 오르는 바람에 담배를 아예 끊는 사람도 있고, 조금이나마 돈을 아껴보고자 말아서 피우는 사람도 많아진 듯하다.

피우든 안 피우든 고생스럽게 하는 담배 말고, 역시 기호품이라 할 수 있는 커피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단순히 커피에 대해 말해보자는 게 아니라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는 방법’에 대해 말이다. 참고로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면 맛은 물론, 가격도 저렴하다. 참고로 본인은 바리스타도 아닐뿐더러 자격증에는 관심도 없다. 그냥 야매로 개드립, 아니 드립커피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서 차근차근 따라 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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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생두를 사는 게 첫 단계. 인터넷 쇼핑으로 검색해 보면 여러 나라의 다양한 생두를 구할 수 있다. 산지 및 등급에 따라 다양한 가격대의 생두가 있지만, 1kg에 1~2만원이면 구할 수 있다. 참고로 원두와 생두의 가격을 검색해 본 결과, 볶지 않은 생두와 볶은 원두의 가격 차이는 약 2.5배 정도였다. 단지 볶기만 했을 뿐인데, 가격이 두 배 이상 비싸진다. (물론 로스팅의 가치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사진은 케냐 커피로 가격은 1kg에 18,000원 정도. 생두 구매는 마눌님 몫이라 본인은 신경을 쓰지 않는데, 무료 배송 혜택을 받기 위해서 보통 서너 가지를 한꺼번에 주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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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생두를 볶아 보자. 버너를 준비하고 쥐틀처럼 생긴(정확한 이름을 몰랐는데 나중에 검색해 본 결과 ‘수망 로스터’라고 한다.) 틀 안에 생두 1~200g을 넣어 준다. 아차, 작업은 꼭 싱크대에서 하자.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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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너에 불을 붙이고 생두가 담긴 틀을 잽싼 손놀림으로 앞뒤좌우로 흔든다. 불이 세면 좀 멀찍이서, 불이 약하면 좀 가까이서. 센 불에 직접 닿으면 커피콩이 타버릴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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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센 불에서 볶다가 색깔이 점점 짙어지면, 불을 약하게 하고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제 색깔이 나도록 볶아 준다. 흔들다가 힘들면 왼손 오른손 바꿔가면서 한다. (평소 딸근 단련을 해 두면 도움이 될 수 도 있겠다.) 힘들어하진 마라.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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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두를 볶는 와중에 콩 껍질이 벗겨지면서 비듬 떨어지듯 떨어진다. 지금은 양이 얼마 안 되지만 계속 늘어날 거다. 그래서 작업은 꼭 싱크대에서 하라고 앞에서 얘기한 거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식탁이나 거실 바닥에서 하게 된다면 반드시 신문지 같은 걸 깔고 하자. 나중에 청소하기가 정말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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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색깔이 되면 연기가 풀풀 나면서 팝콘 튀겨지듯 탁! 탁! 타닥! 하는 소리가 연이어 난다. 콩 볶는 구수한 냄새도 나고. 연기가 너무 심하게 난다면 불을 줄이든지, 멀리서 볶든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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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색깔이 제법 난다. 불을 약하게 줄이고, 밥 뜸들이 듯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색깔을 낸다. 갈색이 아닌 구두약에 가까운 수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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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볶아졌다. 콩들의 색깔이 얼룩덜룩해 보이는 것은 착시현상이라고 생각하자. 어차피 섞이면 평균 색깔이 나오니까. 거의 타기 직전까지 볶아야 완성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 정도. 이렇게 커피를 볶고 나면 집 전체에 구수한 커피향이 나게 되며,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하루 정도는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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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업의 흔적. 여~러분 이게 다 콩 껍질입니다. 처음과 비교해서 양이 엄청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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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너에서 털어낸 콩 껍질 모음. 수도를 틀어 싱크대로 흘려보내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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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아진 원두는 식을 때까지 놔뒀다가 이런 통에 담아서 보관하면 좋다. 맛과 향을 보존하기 위해 반드시 밀폐해야 한다. 안에 든 것은 계량컵인데, 비커나 다른 거 살 때 묻어온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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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물을 끓여 보자. 전기주전자 등장. 왠지 누워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다. 보통의 주전자를 가스 불에 올려서 물을 끓여도 되지만 전기주전자가 더 빨리 끓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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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끓이는 사이에 원두를 갈아 보자. 계량스푼으로 한 숟갈이면 두 사람 먹기 딱 좋은 양이 나온다. 진하게 마시고 싶으면 원두를 더 넣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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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렇게 생긴 그라인더에 넣고 갈아준다. 한 스푼이면 대략 50번 정도 돌려주면 다 갈아진다. 원두가 덜 볶이면, 원두를 갈 때 뻑뻑하고 턱턱 걸리는 느낌이 난다. (충분히 볶아진 원두는 부드럽게 갈린다.) 그리고 원두가 좀 덜 볶아지면 신 맛이 많이 난다 좀 떫기도 하고. 반대로 너무 과하게 볶아지면 탄 냄새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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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원두 분쇄 완료. 그라인더의 세팅을 조정해서 갈리는 입자 크기를 조절할 수도 있는 것 같은데 아직 방법을 모른다. 그리고 몰라도 불편은 없다. (어차피 야매 드립이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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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선수로 드립용 주전자 되시겠다. 그냥 전기주전자로 부어도 안 될 건 없지만 얘는 주둥이가 길고 가늘어 드립 하기에 편하다. 전부터 집에 있던 건데, 이게 드립용 주전자라는 걸 예전엔 몰랐었다. 전문가들 말로는 끓인 물을 80~85도 정도로 식혀서 부어야 된다고 하는 거 같은데, 우리는 그런 거 없고 어영부영 대충 식혀라. (절대 온도계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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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식는 사이에 비커? 플라스크? (전문용어로는 드리퍼라고 하는 모양이더라.) 뭐, 아무튼 이런 놈들을 세팅한다. 얘는 밑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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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놈은 윗짝. 깔때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건 작은 거고 2인용에 적합하다. 큰 놈은 4인용 정도.

아, 여담이지만 담뱃값 올라서 담배를 직접 재배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던데, 커피 값이 올라도 커피를 직접 재배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고 싶다. 우리나라하고는 기후도 맞지 않지만, 저 작은 생두 알갱이를 일일이 손으로 따야 되는데, 이거 할 짓이 아니다. 커피 생산 국가들이 대부분 못 사는 나라들이라, 커피 따는 대가로 받는 급여가 하루 1천 원 남짓에 공정무역이라고 해도 2천원 수준이라더라.

그러니까 우리가 커피를 싼 값에 즐길 수 있는 것은 무지막지한 노동착취의 결과물이라는 것. 괜히 그거 따라서 해 봤자 본전도 못 건진다는 말씀. 점당 백 원짜리 고스톱 쳐봤자 무르팍 값도 안 나온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설령 커피 재배가 가능하다 해도 인건비를 감안하면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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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퍼가 준비되었으면 이렇게 종이필터를 올려준다. 커피콩과 함께 이 종이필터가 유이한 소모품 되시겠다. 이것도 여러 가격대가 있지만 싼 것은 100매에 2천 원 정도 하는 듯하다. 작은 종이가 다 떨어져서 할 수 없이 큰 종이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야매드립이다. 그까짓 거 뭐, 그냥 대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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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 안에 갈아 놓은 원두를 투척한다. 종이가 커서 커피가 적어 보인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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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톱워치를 가동하고 물을 몇 방울 뿌려준 다음, 30초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냥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고 따라하는 거다.) 커피가 잘 볶아졌다면, 빵 반죽처럼 부푼다. 이걸 ‘커피빵’이라고 부르는 듯…? 충분히 잘 볶아졌다면 탐스럽게 부풀 것이다. (덜 볶아지면 제대로 부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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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 후, 물을 몇 방울 더 뿌려주고 충분히 부풀 때까지 기다려준다.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총 1분. 거품이 약간 생기기 시작하면서, 밑으로 한 방울 두 방울 이슬이 맺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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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이 지나면 본격적으로 물을 뿌려준다. 물줄기가 끊이지 않게 그렇지만 한꺼번에 쏟아지지 않게, 그 정도는 70대 할아버지의 오줌줄기 정도라고나 할까? 부드럽게 원을 그리면서 (성감대를 애무하듯 부드럽게) 잘 볶아진 커피라면 거품이 풍부하게 일고 (이걸 크레마라고 하던가?) 드립도 잘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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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이 아름답군. 이제 거의 드립이 끝나간다. 드립에 걸리는 시간은 총 3분 이내. 불리는데 1분, 그리고 내리는데 1분~1분 30초. 그리고 물이 전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면, 총 3분 정도 걸린다. (2분 30초 이내에 모든 과정을 끝내야 한다고 하던데.) 그 이상 시간이 지나면 커피 맛이 묽어지고 알갱이가 불어서 물이 제대로 내려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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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이 완성되었다. 이건 2인분. 그렇지만 세 사람까지도 마실 수 있는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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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이 끝난 필터는 이런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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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잔을 꺼내서 나누어 따른다. 이건 마눌님이 아끼는 웻X우드 커피잔. 나는 이런 거 알지도 못했는데 알고 보니 더럽게 비싸더군. 거 왜 어느 집이나 ‘냉장고에 먹다 남은 푸아그라 정도는 있지 않아요?’ 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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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옆에서 본 모습. 꽃무늬가 아름답다. 여담이지만 본차이나가 왜 그리 비싼 가격인가 했는데, 컵 닦다가 실수로 싸구려 머그컵하고 박치기를 시켰더니 머그컵은 박살이 나고 본차이는 멀쩡. 비싼 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납득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갓 볶은 커피의 향을 음미하면서 우아한 포즈로 마시기만 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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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펼쳐서 열을 식힌 커피는 아까 보았던 보관 통에 담아 두고 먹으면 되겠다.


커피를 직접 볶아먹는 장점이 무엇이 있을까. 일단 싸다. 생두 1kg 사면 다섯 번은 볶을 수 있고, 한번 볶아서 하루 다섯 잔 정도 마실 때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가는 거 같다. 대충 50잔 나온다고 보고, 곱하기 5 하면 250잔. 생두 가격이 18,000원이었으니까 원가는 100원 미만이다. 물 값, 전기료, 부탄가스, 종이필터 다 합쳐도 한 잔에 100원이면 충분할 듯. 요새 커피믹스도 100원은 넘는 세상이니까 봉다리 커피보다 싼 가격에 원두커피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때그때 직접 볶아서 먹으니까 항상 신선하고 향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물론 볶을 때마다 품질이 들쑥날쑥하겠지만, 그건 자신이 감당할 몫이고. 사실 이 또한 몇 번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그리고 맛없게 볶아졌어도 어쩌겠는가? 내가 만든 거니까 참고 꾸역꾸역 먹을 수밖에….

예전에는 봉지커피를 먹거나 더 그전에는 커피 2스푼, 설탕 2스푼, 프림 2스푼 해서 2:2:2로 마셨는데, 설탕도 몸에 안 좋고 결정적으로 프림이 속에 안 좋다. 커피믹스 하루에 세 잔 이상 먹으면 속이 메슥메슥하고 소화도 잘 안 된다. 그렇지만 원두커피는 그런 거 없으니까 당연히 속도 편하다. 어쨌든 이상, 바리스타와는 전혀 상관없는 야매드립 소개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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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장비(도구)에 대한 욕심은 내지 말기로 하자. 한꺼번에 장만할 필요도 없고, 비싼 걸 살 필요도 없다. 드립용 주전자가 없으면 그냥 전기주전자로 물을 부으면 되고, 그라인더가 없으면 맷돌로 갈면 된다. 처음엔 그냥 대충 하다가 필요할 때 하나씩 사서 라인업을 갖추면 되겠다.









영구읍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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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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