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2. 25. 수요일
스케치북
얼마 전 독일 일간지 <디 차이트>는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한 새로운 소식을 하나 전했습니다. 2020년까지 지금의 리튬 이온 배터리 보다 훨씬 더 가볍고 작으며, 더 많은 전기를 담을 수 있는 배터리를 내놓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진=보쉬
아시다시피 전기차 성공은 배터리 능력에 달려 있죠. 한 번 충전으로 얼마나 멀리 달릴 수 있는지, 그리고 배터리 가격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가 성공의 열쇠입니다. 전기차 활성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목소리의 상당 부분도 이 배터리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기차를 성공시켜야 하는 입장에 있는 각국 정부와 관련 기업들, 그리고 학계 등에선 꾸준히 배터리 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 중 유럽 쪽에선 보쉬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고 하겠는데요. 이번 독일 일간지에 실린 기사를 보면 보쉬라는 기업 혼자서 일을 벌이는(?) 게 아니라 좀 더 복잡한 계산이 그 아래에 깔려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보쉬의 영업망과 기술 + 일본의 자본과 기술
전기차 배터리 용량이 25kWh인 경우 한 번 충전으로 평균 160km 정도의 거리를 달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편차가 있지만 평균 이렇습니다. 현재 한 번 충전으로 가장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는 전기차를 만드는 회사는 테슬라인데요. 60kWh짜리 테슬라 배터리팩의 경우 시속 90km/h로 정속주행 시 최대 400km의 거리를 달릴 수 있는 수준입니다. 물론 테슬라 주장이긴 하지만 실제로 테슬라 모델 S의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를 당해낼 전기차가 현재까지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죠.
앨런 형과 테슬라 모델 S. 사진= Maurizio Pesce(flickr)
비교적 최근에 나온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E-골프를 보면, 배터리팩의 무게가 318kg에 배터리 용량은 24.2kWh, 부피는 약 200리터 수준인데 200km 이하의 주행거리 능력을 보입니다. 테슬라 모델 S의 60kWh 짜리 500kg 배터리팩 무게보단 덜 나가지만 그만큼 용량이 작아 주행거리가 짧은 것이죠. 그런데 보쉬가 5년 후에 내놓을 신형 배터리는 무게 225kg에 용량은 50kWh, 부피는 120리터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더 작고 가벼운데 주행 거리는 배 이상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격이 현재 수준의 절반까지 떨어지는 게 장점이라 하겠습니다.
이 배터리 개발에는 보쉬 외에 눈여겨 봐야 할 합작 회사가 있습니다. 일본의 축전지 전문 기업 GS 유아사(GS Yuasa)라는 곳인데요. 설립된 지 100년이 넘는 이 배터리 전문기업은 보쉬와 지분 50 대 50의 조건으로 자동차용 배터리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GS 유아사의 지분 50% 안에는 다시 일본 미쓰비시의 지분이 절반 포함돼 있습니다. 삼성 SDI와 결별한 보쉬가 일본 GS 유아사, 그리고 미쓰비시 이렇게 3 회사가 구체적 배터리 생산 계획을 짠 것인데, 말 그대로 합종연횡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쉬의 또 다른 시도 퀀트 E 스포츠리무진
퀀트 E 스포츠리무진 전기 컨셉카. 사진=nanoflowcell
보쉬라는 자동차 부품업체(라고만 알고 있지만 가정용 가전, 공구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기업. 매출은 현대차에 맞먹는 수준)는 리튬이온 배터리팩 합작 개발 사업 외에도 또 다른 도전을 벌이고 있음을 이미 공개한 바 있습니다. 바로 퀀트 E 스포츠리무진이라는 컨셉카가 그 것이죠.
독일의 나노플로우셀AG라는 회사와 함께 괴물 전기차를 내놓았는데 그 수준이 테슬라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라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컨셉카는 제로백 2.8초에 최고속도 379km/h입니다. 출력이 920마력이니 수퍼카 수준이죠? 또 한가지 엄청난 사실은 1회 충전 시 최고 600km까지 달릴 수 있는 배터리 기술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수소연료전지차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나노플로우셀이라는 방식이 이런 장거리 주행을 가능케 했는데, 배터리팩과 전해질 용액을 함께 이용한 새로운 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노가 플로우하는 셀이다. 아마.
주유소 주유기를 차 안에 싣고 계속 주유를 하면서 달리는 그런 자동차를 상상하면 좀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싶네요. 실제로 양산까지 염두에 두었다고 하니까 자동차 제조사들 당황 좀 했을 거 같네요.
테슬라의 2017년 GM의 2020년, 그리고 또 다른 도전들
보쉬라는 업체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예를 들었습니다만, 현재 자동차 회사들, 그리고 그런 회사들과 함께 전기차 사업에 뛰어든 배터리 업체들은 그야말로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 테슬라가 2017년까지 현재 자신들이 판매하는 전기차의 반값 수준의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발표를 했죠. 미국에 거대한 '기가팩토리'라는 배터리 생산 공장이 완공되는 시점에 맞춘 '반값 전기차' 발표였습니다.
또 테슬라 대표 엘론 머스크가 애플 CEO 팀 쿡과 만나 배터리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을 거라고 예상한 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애플 역시 테슬라의 배터리 급속 충전 기술이 필요한 상황인데요. 스마트폰과 노트북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최근 밝혀진 애플 전기차 프로젝트와도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예상이 됩니다.
애플 자동차라면 이런 모습? 사진=iDownloadBlog
이 와중에 애플 인력들이 테슬라로 여럿 스카웃 되기도 했고, 애플은 미국의 배터리 전문 업체로부터 핵심 인력들을 빼간 혐의로 고소를 당한 상태에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보쉬는 전기차 관련 전문 엔지니어만 8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또 애플은 LG 화학이나 삼성 SDI 인력들도 스카웃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전기차 배터리 관련한 인력들의 글로벌 대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테슬라는 일반 기름 주유시간 보다 짧은 배터리팩 교체 시스템을 만들어 이를 테스트 중에 있습니다. 배터리로 인한 부담을 최소화 하겠다는 행보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보쉬와 테슬라만 이렇게 분주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1위를 차지 하고 있는 회사는 한국의 LG화학입니다. LG화학 역시 앞으로 3년 안에 현재보다 훨씬 저렴한 배터리가 양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추격자인 삼성 SDI도 최근 배터리팩 전문 회사 지분을 전량 인수하면서 새로운 주인이 됐습니다. 배터리팩은 노트북 등에 들어가는 배터리셀을 여러 개 모은 모듈과 배터리 관리 시스템, 그리고 냉각 장치가 합쳐진 걸 말합니다. 그리고 이 배터리팩 기술에 있어선 삼성이 인수한 마그나슈타이어 배터리팩 사업파트가 시장 1위를 달리고 있죠. 역시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시간 절약엔 기술을 통째로 사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 아닌가 싶네요.
일본 배터리 업체들과 한국의 업체들이 자동차 제조사들과 다양한 제휴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늘리려고 하는 가운데 학계나 기술력을 앞세운 전문기업들의 약진도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미국 MIT공대의 교수들이 현재 배터리 보다 3배 이상 더 달릴 수 있는 배터리 기술을 개발해 이 내용이 언론에 소개가 됐죠. 가격까지 저렴해 이 기술이 상용화 되면 전기차 시장은 큰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또 여러 언론에 소개된 사크티라는 작은 벤체 회사도 화제인데요. 고체 전해질을 이용한 전고체 배터리 '사크티3'은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 보다 최대 5배까지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GM이 이 회사의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는데 몇 년 안에 (2020년까지) 이 기술을 상용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크티 대표는 자신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배터리가 전기차 발목을 잡진 않을 것
BMW i3 바닥에 깔려 있는 배터리 팩 모습. 사진=BMW
최근 카이스트에서도 전기차 배터리 관련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훨씬 현재 방식보다 더 멀리 달릴 수 있는 축전지 기술이라고 하죠. 지금까지 자동차 배터리와 관련한 몇몇 소식들을 전해 드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하지 못한 많은 학교와 기업들이 또한 배터리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멀리 가고, 가볍고, 저렴한 배터리 시장이 멀지 않은 시간 안에 만들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10년 이상 30만 킬로미터 이상을 보증하면서 가격까지 저렴해진 배터리들이 속속 등장하겠죠. 날씨나 계절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배터리가 될 것이라고 보쉬 측은 이야기했습니다. 이쯤되면 배터리로 인해 전기차 성장이 발목을 잡히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기차가 대중화 되기 위해서는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배터리에만 머물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충전 인프라 확충, 소비자들의 인식의 전환, 그리고 엄청난 전기 소비 시대를 어떻게 문제 없이 맞을지 그 생산 방식에 대한 고민 등이 해결돼야 합니다. 현재는 각 국 정부나 업계에서 이런 문제들까지 모두 보듬고 투자와 연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은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통해 전기 생산량을 상당 부분 해결하려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죠. 배터리 충전 방식도 태양 에너지 등을 이용해서 바로 바로 충전되도록 하는 기술 등도 구체화 됐습니다. 어찌 보면 남은 건 소비자들의 전기차에 대한 관심일 텐데요. 이 역시 시간의 문제일 뿐, 조금씩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네, 기술이 모든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 없겠죠. 하지만 적어도 한 방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달려간다면 그곳엔 분명새로운 길이 열릴 것입니다. 배터리 기술 전쟁은 이 길을 닦는 아주 중요한 다지기 작업이라 보여집니다. 몇 년 후의 전기차 시장,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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