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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09.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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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QuickTime의 가치



1997년, 애플로 돌아온 잡스는 97년 이전에 나왔던 기술들을 재검토 하였고 대부분 폐기하였다. QuickTime과 1993년 개발 된 AppleScript, 이 두 개의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빼고. 


폐기한 기술 중 대표적인 것이 세계 최초의 필기인식 PDA였던 뉴튼(Newton)이었다. 당시 애플에게 상징적인 상품이었지만, 잡스는 자신을 내쫓은 전 CEO 존 스컬리 작품이라 기분이 나빠서였는지, 많이 팔리지 않아서였는지, 뉴턴 프로젝트를 폐기했다. 물론 당시 애플은 선택과 집중을 할 수 밖에 없었을 때라 돈이 되지 않는 프린터 등 외부기기 상품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뉴턴 개발자들은 잡스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맥 입문자용 노트북 iBook에 전진 배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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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잡스는 애플의 내세웠던 Newton MessagePad를 과감히 폐기하였다.



잡스는 NeXT가 구현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을 애플에 이식하기 원했다. 물론 당시 애플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NeXT에 비해 떨어지기도 했었기 때문에, 기존 맥 프로그램과의 호환성을 위한 기술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중지하였다. 그래도 QuickTime만은 살려놓았다. 아니, 살려놓은 수준이 아니라 되려 전략상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로 내세운다.


돌아 온 잡스는 소위 '비밀주의'로 애플을 통제하였다. 내부에서 직원들을 통제하여, 현재 개발 중인 기술을 언론에 누설하지 못하게 했다. 외부 언론에 기술을 누설한 직원을 해고하기도 했다. 잡스의 비밀주의는 상품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 술수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구현이 완전하지 않은, 즉, 아이디어에 머물러 있는 기술을 대중에게 공개하면 프로젝트가 어그러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잡스 이전의 애플은 기술 유출이 심각하여 프로젝트를 제대로 완료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을 본 잡스가 내린 특별 조치일 수도 있겠다. 잡스는 애플이 개발 중인 기술이 외부에 새는 것을 꺼렸고, 개발 기술 뿐 아니라 사업 및 신제품 전략마저 외부에 퍼지는 것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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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 30일 스티브는 새로 만든 광고(Think different)를 축하하기 위해 애플 직원들과 파티를 열었다. 


(중략)

"애플은 현재 광고비로 1년에 1억 달러를 쓰면서도 효과는 별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티브는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1년에 1억달러 이상을 광고비로 쓰겠지만, 이제는 그 돈을 헛되이 낭비하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껏 우리가 추구해온 가장 가치있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애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는 케이트 애덤스라는 젊은 여직원이 있었다. 스티브를 가까이에서 처음 본 그녀는 매우 흥분했다. 그래서 그녀는 친구에게 이렇게 적은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것은 훌륭한, 아니 대단한 연설이었어. '이것이 생각뿐인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말하는 것을 확신한다'는 말투였지."

(중략)

다음날 케이티는 음성 메시지 한통을 받았다. 

"안녕하시오, 스티브 잡스요, 우리 만나서 얘기 좀 할까요?"

(중략)

"여기 적힌 1억 달러라는 숫자가 비밀이어야 한다는 거 몰랐어요?”"

그(스티브)는 계속했다. 그의 목소리는 심각하고 공격적이었지만 그렇게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

방문을 나서는 그녀에게 그(스티브)가 물었다. 

"그런데 퀵타임(QuickTime)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죠?"
"엔지니어링 팀에 있어요."
"알았어요."

그녀는 겨우 벗어났다. 마케팅 팀이라고 했다면 해고당했으리라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있었다.


앨런 도이치먼 - 스티브 잡스의 재림 중


이 일화에서 잡스의 비밀주의를 알 수 있지만, 잡스가 QuickTime 기술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컨텐츠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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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스토리는 디즈니와 협업을 통하여 완성하였다.


잡스는 애플에 돌아오기 전, 픽사(Pixar 3D)애니메이션을 거치며, 미디어 컨텐츠의 생태에 대해 알게 되었다. 픽사는 전세계 배급을 위해 디즈니와 협업하였는데, 잡스는 디즈니를 통하여 새로운 상품 가치를 배운다. 디즈니의 미키마우스 같은 컨텐츠는 세월에 상관없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새겨짐을 알았다. 하드웨어는 1년만 지나면 유행이 바뀌는 것은 물론, 경쟁자들이 유사상품을 만든다. 그러나 컨텐츠는 달랐다. 한번 만들어진 컨텐츠는 확대와 변경을 통해 재생산이 가능했다. 디즈니가 창조한 만화 캐릭터의 경우, 저작권의 절대적인 보호(1928년에 태어난 미키마우스의 저작권은 디즈니사의 엄청난 로비로 만료기간이 2003년에서 2028년까지 연장되었다. 다른 회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몇 십 년 동안.


잡스는 1985년 애플에서 (쫓겨) 나온 후, NeXT사를 설립했고, NeXTCube를 만들었다. 이 NeXTCube를 보더라도 90년대까지 그가 얼마나 하드웨어 광였는지 알 수 있다. NeXTCube는 정육각형 마그네슘 소재 외형과 광자기 드라이브(MO disc)를 지원하는 등 기존의 워크스테이션 컴퓨터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급이 다른 하드웨어를 갖고 있었다. 전문가들의 찬사와는 반대로 NeXT는 너무 비싸서였는지 수요예측 실패로, 하드웨어 판매를 중단한다. NeXT의 대실패로 잡스는 더이상 언론에 등장하지 않았다.


10년 동안 잡스에게 은행 빚만 왕창 안겨 주었던 픽사가 1995년 말, 토이스토리의 대성공으로 엄청난 보상을 안겨주었다. 이 성공으로 잡스는 IT계에 재진입 할 수 있었다. 아니 IT계 뿐 아니라 디즈니가 속해있는 문화계까지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1995년 애플은 차세대 OS의 실패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고, 외부에서 OS를 구매하기로 결정한다. 가장 물망에 올랐던 OS는 애플 전직 엔지니어였던 장루이 가세의 BeOS와 애플 창업자인 잡스의 NeXTSTeP이었다. 경쟁 입찰에서 애플은 NeXT OS를 선택하고, 그 결과 NeXT의 진정한 핵심 기술인 OS(OS X과 iOS의 친아버지)와 Web Object(Online Store의 친아버지)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는 하드웨어로 세상을 놀라게 하려 했지만, 폭망하여 완전히 잊혀졌다가, 픽사의 컨텐츠와 NeXT의 소프트웨어로 메인스트림으로 다시 진출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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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NeXTCube (우) Pixar image Computer는 외형이 매우 비슷하다.


돌아온 잡스의 애플이 iTunes를 통하여 컨텐츠 플랫폼을 완성한 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픽사를 조지 루카스에게서 구매할 당시만 하더라도, 하드웨어 광이었던 잡스는 '픽사 이미지 컴퓨터'의 인체 스캔 기술을 눈여겨 보고, 대형 병원에 팔길 원했으나 그마저 실패하고 만다.


3D애니메이션 컨텐츠를 제작하는 픽사와 컨텐츠를총괄하고 배급하는 디즈니와의 협업을 통하여, 잡스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고정관념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아마 컨텐츠에 대한 가치를 보다 명확히 이해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였는지 애플에 돌아와서, 애플이 제작했던 하드웨어를 대부분 폐기하고, 그의 친 자식과도 같은 맥마저도 4개 모델(Power Mac, PowerBook, iMac, iBook)로 재편했다. 수십 종이었던 맥 모델을 모두 폐기한 것이다. 또, 그가 없었을 때 진행했던 소프트웨어 프로젝트 대부분을 폐기해 버리거나, 분사시켰다. 그러나 QuickTime 만큼은 살아 있었다. 퀵타임은 그의 친자식이 아니었지만, 애플에 반드시 필요한 미디어 컨텐츠를 만들고 배포할 수 있는 기술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3. 퀵타임 탄생


오늘날 HD영상은 스마트폰으로 쉽게 볼 수 있지만, QuickTime 기술이 나오기 이전까지는 불가능했다. 1990년대 초반 가정용 컴퓨터에서는 동영상 재생을 할 수 없었다. 동영상을 보기 위해서 고가의 그래픽 하드웨어가 별도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1991년 5월 WWDC(애플 세계 개발자 회의)에서 브루스 릭(Bruce Leak)은 QuickTime으로 우표크기의 작은 동영상을 시연해 보였다. 그 유명한 1984년 매킨토시 광고를 틀었는데, 별도의 장비 도움 없이 컴퓨터에서 동영상을 재생하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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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ckScan 개발자 스티브 펄만 (Steve Perlman. 좌)
QuickTime 1.0 제작자 브루스 릭 (Bruce Leak. 우)


QuickTime의 기반기술은 애플의 엔지니어 스티브 펄만(Steve Perlman)이 1980년대 중반에 개발한 QuickScan이었다. 당시 애플 CEO 스컬리는 퀵스캔 기술을 눈여겨 보았고, 그 주재 하에 맥 화면에서 말들이 달려가는 동영상을 공개 시연하였다. 영상을 지켜본 관객들은 환호하였다. 이는 가정용 컴퓨터가 최초로 부드러운 동영상을 재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퀵스캔은 그래픽 애니메이션과 동영상 압축을 위한 별도의 그래픽 하드웨어가 필요했다. 동영상을 재생하기 위해서 별도의 그래픽 하드웨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고가인 맥에 별도의 금액을 추가해야 한다는 말인데, 이는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퀵스캔 기술을 기존 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프로젝트는 더 이상 중단 되었고, 결국 애플은 관련 프로젝트를 폐기한다. 


몇 년 후, 브루스 릭 주도 하에 퀵타임 팀은 동영상 재생을 소프트웨어로 해결한다. 기존에 펄만이 개발한 퀵스캔이 별도의 하드웨어를 필요로 했던 것과 달리, 동영상 재생을 소프트웨어 하나로 가능하게 한 것이다. 


퀵타임은 1991년 WWDC 시연 후 12월 2일 1.0 버전을 정식으로 선보였다. 1992년 1월, 스컬리는 맥월드 엑스포에서 퀵타임을 공식적으로 알렸고, 1992년 11월에 1.5버전을 내놓았다. 맥 용 1.5버전을 공개하며, 윈도우즈용 퀵타임도 함께 선보였다. 당시 MS는 Windows 3.1로 막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로, 애플이 윈도우즈용 퀵타임을 개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후 MS는 윈도우즈를 지원하는 퀵타임을 견제하고자 'Video for Windows'를 급하게 내놓는다. (MS는 Intel의 방조하에 퀵타임 기술을 침해한 사건은 下편 Video for Windows에서 다룰 예정이다.



4. 퀵타임 핵심 기술, 컨테이너


퀵타임의 역사와 가정용 컴퓨터 미디어 역사는 궤를 같이 한다. 퀵타임은 단순히 동영상 플레이어가 아니다. 퀵타임은 설계 당시부터 미디어 제작이 가능하도록 했다. 멀티미디어를 제작하는 프로그램들은 퀵타임 기술로 비디오, 오디오, 효과, 자막 등을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다. 이는 가변폭을 할 수 있는 WISIWYG(What I See It, What You Get. "보이는대로 얻는다.")을 지원하는 탁상출판과 비견할만한 성과였다. 화면에 보이는 대로 출력한다는 것은 컴퓨터에서 그림이든 글자든 문서 제작자가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워드프로세서에서 글자 폰트를 바꾸고 도형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것은 보이는 그대로 출력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퀵타임은 멀티미디어를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도록 설계 되었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한 대표 기술이 바로 '컨테이너'다. 퀵타임에서 mov 확장자는 컨테이너 파일이다. 컨테이너는 엄밀히 말해 동영상 파일이 아니다. 컨테이너 파일은 여러 속성 파일들을 한대 묶어 놓은 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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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와 코덱의 차이(좌) / mkv 파일은 컨테이너 파일이고 영상(h. 264), 음성(AC-3)이다.(우)


보통 동영상이나 음성 미디어 파일은 codec에 따라 속성이 정해진다.(갑자기 어려워졌다. 금방 지나가겠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음성 코덱은 mp3 파일이다. 이는 mpeg layer 3 코덱으로, 저장된 음성 파일을 가리킨다. 최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동영상 코덱은 H.264으로 MPEG-4 동영상 코덱의 일종이다. 만약 가지고 있는 동영상 파일이 mov, avi, mkv, mp4로 되어 있으면, 이는 동영상 코덱과 음성 코덱 파일이 포함된 컨테이너 파일이다. (위 그림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컨테이너 안에 코덱 파일들이 들어가 있다.)


퀵타임은 독특한 컨테이너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동영상 코덱 파일이 반드시 mov 파일 안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외부 데이터를 참조할 수 있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런 독특한 컨테이너 방식으로, 퀵타임은 미디어 편집에 있어서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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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ckTime mov 파일은 독특한 컨테이너 구조를 가지고 있다.


퀵타임이 가진 독특한 컨테이너 설계는 미디어 파일 제작에 있어서 일대 혁신을 이뤘다. 바로 비선형(nonlinear) 편집이 가능해 진 것이다. 선형과 비선형은 수동식 타자기와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이해할 수 있다. 수동식 타자기는 종이를 넣고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는 클립보드를 통하여 작성한 글들을 어디든 가져다 붙여 놓을 수 있다. 애플은 독특한 컨테이너 설계로 비선형 편집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이다. 미디어 제작자는 mov 컨테이너 파일을 생성하여 외부 동영상을 원하는 위치에 삽입하고 편집할 수 있으며, 컨테이너 파일에서는 연결된(혹은 컨테이너에 포함된) 파일들을 구조화하여 시간(Timecode) 등을 지정하여 만들 수 있다.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으로 퀵타임 컨테이너 파일을 이용하여 손쉽게 비선형 편집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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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 nonlinear 대표적인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 Final Cut Pro



5. 퀵타임 발전사


퀵타임은 1991년 애플 전성기 때 태어났지만, 웹이 활성화 된 1990년대 중후반에는 모기업 애플이 곤경에 처함에 따라 많은 부침을 겪는다. 그래도 고유의 기술은 계속 발전해 21세기를 맞을 수 있었다. 퀵타임이 최고의 기업인 애플의 기반이라고 해도 지나친 비약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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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타임 1.0



(1) 1.X 버전


1991년에 나온 1.0 버전은 Classic OS 6.0 이상에서 오로지 소프트웨어로 동영상을 재생하였다. 물론 지금 보면 우표만한 크기로, 장난 수준이었지만 하드웨어 가속 없이 동영상을 재생하는 최초의 프로그램이었다. 1992년 1.5버전에서는 수퍼맥(SuperMac)사에서 개발한 Cinepak 코덱을 추가하였다. 시네팩은 320X240 해상도, 초당 30프레임을 지원하였고, 컨테이너 파일에 자막(혹은 가사)을 삽입할 수 있었다. 지금 보면 형편 없는 해상도 이지만, 1.0이 재생할 수 있었던 우표 크기에서 비해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동시에 캐넌사를 통하여 Windows용 퀵타임 1.0 버전을 발표한다.


(2) 2.X 버전


1994년 2월 나온 2.0버전은 유료 프로그램으로, MIDI 기능을 추가하였다. 그 해 11월, 윈도우즈용 퀵타임 2.0을발표한다. 2.1과 2.5에서 다시 공짜가 되고, 음악 재생 기능 개선, 고속 연속 재생 기능 등을 추가한다. 2.5 버전에서는 가상현실 3D 이미지를 생성하고 시연하는 QuickTime VR 기능을 추가하였다. Adobe Flash가 출현하기 전까지 웹브라우저에서 멀티미디어 구현은 퀵타임이 하였다.


(3) 3.X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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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ckTime 3.0

1995년, 애플이 시장에서 힘을 못쓰자 QuickTime 개발도 지지부진해졌다. 잡스가 복귀한 지 8개월이 지난 1998년 3월, 퀵타임 3.0을 발표한다. 유료버전은 'Pro'라고 하여 추가 기능을 넣었고, 무료 버전은 2.5버전과 동일했다. 퀵타임은 1.5에서 도입한 동영상 코덱 씨네팩에서 소렌슨(Sorenson)으로 이전한다. 3.0버전에서 많은 기능 추가한다. 그림 파일(GIF, JPEG, TIFF 등) 지원했고, Firewire를 이용하여 캠코더에서 영상을 바로 출력할 수 있었다. (표준 DV 파일 변환)


성과도 좋았다. 1998년 ISO는 MPEG-4 표준 선정에 있어서 MS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포맷인 ASF를 밀어붙였지만, 기술 우위에 있었던 퀵타임을 표준포맷으로 지정하였다.

(4) 4.X ~ 5.X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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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ckTime 4 in Mac OS 9(좌) / QuickTime 5 in Mac OS X (우)


퀵타임 4.0은 1999년 6월에 발표했다. iTunes과 Final Cut Pro 핵심 기술을 다수 포함했고, mp3 음성 코덱을 지원했다. 또, 인터넷을 위한 스트리밍 기술을 도입하였다. 


2001년 4월에는 5.0버전을 냈다. (생명이 가장 짧은 버전이다.) DV파일을 실시간 변환 할 수 있게 되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애플이 모바일 환경에서 내쫓았던 어도비 Flash 4 파일을 정식 지원하였다.


(5) 6.X 버전


2002년 7월 15일 6.0버전은 매우 의미있는 퀵타임 버전이다. iTunes Music Store에서 판매할 음원 AAC(DRM적용 포함)을 지원할 뿐 아니라 Mpeg-4, Flash 5, JPEG 2000, 3GPP, Pixar Codec(Apple Pixlet codec), Apple Lossless Audio Codec(무손실 음원 코덱) 등 다수의 코덱을 지원하였다. 버전 6.0부터 컨테이너 기술이 획기적으로 보완되어 미디어 편집이 훨씬 용이해졌다.


(6) 7.X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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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즈용 QuickTime 지원은 7.7.6버전이 마지막이다.

2005년 4월 29일, 7.0 버전을 세상에 내놓는다. 애플 오디오 인터페이스 CoreAudio를 지원하였다. 2006년 1월 10일 7.0.4버전에서는 인텔 맥을 지원하였고, 7.2버전에서는 공짜 버전에서 전체화면을 지원하였다.(기존 Pro에서만 지원) 그리고 7.3에서 Flash 지원을 끊는다. 7.X 버전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은 H.264/MPEG-4 AVC다. 이 코덱은 기본적으로 HD를 지원하여 Blu-ray 뿐아니라 Youtube 등 인터넷 스트리밍, 아이튠즈 스토어 그리고 무엇보다 모바일에 최적화된 코덱이었다.


7.7.6 버전을 마지막으로 애플은 더이상 윈도우즈 지원을 하지 않는다. 이는 HTML5를 지원하는 브라우저에서 QuickTime Component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7) X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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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ckTime X는 OS X만 지원한다.



애플은 퀵타임을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 한다. 7.X 까지 퀵타임 기술은 OS X에 최적화하여 설계된 기술이 아니었다. iPhone이 2007년에 나오고, 애플은 퀵타임 기술을 OS X와 iOS에 최적화 할 필요가 있었다. OS X의 최적화, 64bit 지원 등 혁신적인 기술을 포함한 것처럼 보이지만 2009년 발표한 퀵타임 X 버전 프로그램은 기능적으로 완전히 퇴보한 프로그램이었다. QuickTime 7.X까지 지원했던 편집기능 및 MIDI, QTVR 등 포맷지원을 다수 누락하는 등 매우 허술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그 속은 조금 다르다. 보기와 달리 애플이 미디어 환경에서 MS를 상대로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하편에서 다룰 주 내용이다.)


미디어 제작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QuickTime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에서 벗어나 OS 차원에서 완전히 재편한다. (이 부분은 기술적인 내용이다. 간단히 말해 기존 QuickTime API는 X버전에서 QTKit를 거쳐 2013년에 이르러, OS 기반 API인 AV Foundation으로 통합한다. 그 결과 퀵타임은 미디어 편집 기능 등 제작 기능을 담당하는 API를 OS로 완전히 넘겨준다. 애플은 이로써 더이상 X 버전에서는 윈도우즈 지원은 하지 않는다. 이는 Final Cut Pro의 성공으로 가능했던 일이었다.)


10.1에 이르러 7.X에서 지원하는 파일 통합 기능을 살려놓았고, Audio 파일을 출력한다. 이제 QuickTime은 더이상 QuickTime이 아니다. 미디어 제작에 대한 모든 기능은 OS 안으로 들어왔다.




6. 퀵타임으로 구원 받은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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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ckTime API는 Apple OS의 AV Foundation으로 대체되었다. (좌) / iOS, (우) OS X



QuickTime이 없었다면 지금의 애플이 가능했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잡스가 애플을 재건함에 있어서 퀵타임은 매우 효자 노릇을 했다. 아마 퀵타임이 없었다면 상당히 곤욕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잡스 자신이 만든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이상을 가장 잘 담은 프로젝트가 QuickTime 이었다. QuickTime은 iTunes 기반 기술이 되었고, iPod에 이어 iPhone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미디어 제작 프로그램인 프로용 Final Cut Pro와 초보자용 iMovie는 QuickTime 기술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었을 것이다.


QuickTime의 25년 동안 애플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넘어 컨텐츠 플랫폼을 구축했다. QuickTime은 가정용 컴퓨터에서 동영상을 재생하고 편집하는 단순한 기능에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결과는 실로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미디어 표준으로 MPEG-4가 퀵타임 포맷으로 정해진 이후, 애플은 그 기세를 몰아 미디어 재생 및 제작 표준 전쟁에서 승리한다. 또한 iTunes 핵심 기술은 QuickTime이 있었기에 가능하였고, 새로운 음성 코덱 AAC(Advanced Audio Codec, MPEG-4 오디오)을 지원을 통하여 iTunes Store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 H.254의 적극적인 적용으로 iTunes Store 뿐 아니라 iPhone 등 모바일 기기에 최적화된 동영상 파일을 지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코덱을 모두 이용 할 수 있도록 산업 표준화 하였다.


애플은 미디어 포맷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중추적인 역할을 한 기술이 바로 QuickTime이다. 그리고 이제는 독자적인 미디어 플랫폼 자리에서 내려와 OS 기본 기능으로 혼연일체가 되었다.

다음 시간에는 MS의 Video for Windows에 대해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지난 기사


[1편 : 90년대 MS Windows와 1984년 Apple Macintosh System Software ]

[2편 : 1979년 Sony Walkman과 2001년 Apple iPod]

[3편(上) : 1977년 Apple II와 1981년 IBM PC]

[3편(下) : 1977년 Apple II와 1981년 IBM PC]

[4편 : 2004년 Facebook과 2006년 Twitter]

[5편 : 90년대 MS Excel과 1983년도 Lotus 123]

[6편(上) : 90년대 MS Word와 1989년도 한/글]

[6편(下) : 90년대 MS Word와 1989년도 한/글]

[7편(上) : 1981년 MS-DOS와 1974년 CP/M]

[7편() : 1981년 MS-DOS와 1974년 CP/M]

[8편 : 2001년 Apple Store와 성공 못한 경쟁자들]

[9(上) : 2001년 iTunes와 Windows Media Center]

[9편(下) : 2001년 iTunes와 Windows Media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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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