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5. 03. 05. 목요일

홍준호







1.jpg

27일 토요일 밤. 이송희일 감독의 극영화인 <야간비행>을 보러 온 관객들이 대기하는 모습

 


 

1. 동성아트홀과의 첫 만남

 


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금수저를 쥐고 태어났으면 싶을 때가 있다. 단순히 내 삶에 대한 비참함 때문이라면, 그건 점점 사람이 커가는 과정에서 무뎌지는 법이다. 그러나 내가 다른 누군가나, 혹은 다른 것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때, 여전히 그런 생각들이 든다. 닥쳐오는 불행 앞에서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예술이 위안이 될 수 있다고 누가 그랬던가. 그것도 결국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얘기인 거 아닐까. 불가항력에 봉착하면 정말 세상 더럽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올해 설 연휴 첫 날, 동네 미술관에 가려고 자전거를 타고 낑낑대며 비탈길을 오르고 있었다. 진동이 울렸다. 까까오똑이었다. 까까오똑 메시지를 보는 순간 힘이 빠졌다. 흔히 만화나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발 헛디디기'는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가야 할 내 자전거가 뒤로 내려가는 체험을 했다.

 

메시지에는 동성아트홀 극장이 225일로 완전히 문을 닫는다고 적혀있었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실 테니, 대구 동성아트홀은 영화를 상영하는 소극장이다. 1992년에 문을 열었으며, 당연히 최신작 개봉관으로 시작했다. 당시 대구 동성로에는 15개의 소극장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시설이 좋고 스크린이 컸던 곳, 많은 좌석을 가졌던 곳(204)이 동성아트홀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소극장들은 하나둘 폐업했고, 동성아트홀 역시 재개봉관이 됐다. 이후, 성인영화전용관으로 전환해 극장을 유지하다, 곧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작품들을 전용으로 상영하는 제한상영관이 됐다. (지금도 영상물 등급에는 제한 상영가 판정이 있다. 그러나 제한 상영가 작품을 상영하는 극장이 현재 한 군데도 없다. 그래서 지금 그 등급은 곧 '상영 불가' 판정과 같은 의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에서 '예술 영화', '독립 영화' 라고 부르는 작품들을 전담하여 상영하는 '예술·독립영화 전용관'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확립한다. 내가 동성아트홀을 찾아갔던 때가 예술·독립영화 전용관이었던 시기다. 2008년이었고, 일본영화인 신도 카제 감독의 <달려라! 타마코>가 보고 싶어 갔었다.

 

내 고향이자, 현재 살고 있는 곳은 포항이다. 포항에 살면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결핍' 이다. 좋아하는 것, 보고 싶은 것들이 포항에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름의 긴 역사를 만들던 가게들은 내가 커 가면서 하나둘 폐업했다. 이를테면 음악 감상실이나 레코드점, 지역 서점, 지역 제과점. 제과점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것들은 부재 상태 그대로 몇 년을 가기도 했었다.

 

영화 역시 나에겐 결핍의 대상 중 하나다. 사실 이건 포항만의 문제가 아닐 거다.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내려올수록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친히 '필터링'을 해 주시니까.

 

"우리가 보기에 이 영화는 재미없을 거야. 이거도 재미없고, 저거도 재미없어. 우리가 만들고 고른 것만 보렴."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애초에 없다.

 


2.jpg

이 영화도 못 보고 저 영화도 못 보니 뭐.

 


포항에 있는 어느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2005년과 2008년에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과 조엘 코엔, 에단 코엔 감독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상영한 적이 있다. 아예 관 하나를 온전히 할애해서. 그 때 그 극장이 상영관 앞과 포스터 앞에 이런 식의 글을 붙여놨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들을 상영해서 걸어놓는데 큰 결단이 필요했다. 포항 시민들이 좀 더 나은 문화, 좀 더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뉘예 뉘예 알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때 포항은 정말 그랬다. 정말 그런 걸 붙이고 작품들을 상영해야 할 정도였다. 지금도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그렇다. 운하니, 아웃도어 거리니 뭐 쓰잘데기 없는 건 많이 만들었는데. 하여튼 대구에 있는 동성아트홀이라는 극장을 찾아간 건 어찌 보면 내게 있어 예정된 일이었던 셈이다. 포항에서 볼 수 없는 영화들을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서 상영해주는 영화관이었으니까.

 


3.jpg

동성아트홀의 로비로 가는 복도의 모습

 

4.jpg

동성아트홀의 내부 상영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재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인 <탐욕의 제국>을 만든,

홍리경 감독과의 대화 현장을 찍은 것이다.

 

 

첫 방문 당시 동성아트홀이란 극장을 무척 찾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길 가는 대구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다들 알지 못하는 곳이거나, 설사 안다고 해도 그 극장을 무슨 도시 전설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라. 겨우겨우 찾았다. 그 때문인지 돈 내고 봤던 <달려라! 타마코> 보다 동성아트홀의 첫 인상이 더 기억에 남았다. 말로만 듣던 예술영화관을 처음 보기도 했었으니.

 

그 때 느꼈다. 한국에서 '예술·독립영화관'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미완성'과 같은 의미구나 하고, 어렴풋이 말이다. 7년 전의 일이다. 그 때의 나는 스물이었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당연히 예측할 수 없었고,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때는 언젠가 이 미완성처럼 보이는 예술·독립영화관이 언젠가 완성을 향해 가겠거니 생각했더랬다. 건물 보수도 좀 하고 스크린 크기도 키우고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올해 들어서 55석의 좌석을 갖춘 '독립영화관'이자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측에서 세운 오오극장이 생기긴 했다. 그러나 그 때 대구에는 그런 류의 극장이라곤 동성아트홀이 유일했고, 또 꾸준했다. (가끔 대구 만경관 극장이 분투하기는 했다.) 보기 힘든 고전영화들을 상영해 주는 곳, 더불어 예술·독립영화들을 상영해 주는 곳. 대학 진학 후 포항을 벗어나면서, 동성아트홀에 가기가 좀 더 용이해 졌다.

 



2. 멀티플렉스, 영진위

 


아마


"세상에 문 닫는 거 천지인데 극장 하나 사라지는 걸로 뭐가 그렇게 슬프대? 요즘 멀티플렉스에서도 아트하우스(혹은 '무비꼴라주')니 아르떼니 뭐니, 그런 작품들을 상영하잖아?"


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멀티플렉스는 '한 관'일 뿐, 동성아트홀처럼 '극장'이라 하기 힘들다. 심지어 그런 관이 있는 지역도 적다.

 

동성아트홀도 관이 하나 뿐인 지역 단관 극장이지만, 요일 별로 시간표를 짜서 여러 편의 예술·독립영화를 상영했다. 반면 CGV, 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는 그런 상영관을 신설하지 않는 경우, 이런 류의 작품들에 박한 편이다. 전용 상영관은커녕 상영만 해 줘도, 상영하는 시간이 아침 910분에 한 번, 새벽 125분에 한 번인 경우가 다반사라고 해도 고마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기업형 멀티플렉스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자사 제작·배급 영화, 혹은 한창 흥행 중인 영화에 상영관 몰아주기'는 나아지지 않았으며, 그 와중에 딱 한 관 있었던 예술·독립영화들에 대해서는 대개 (돈이 된다 싶은) 한두 작품의 상영에 머무를 때가 많았다. 간간히 한 관일지라도 한 번 상영으로 여러 작품들을 상영하는 프로그램이 나오기도 했지만, 사실 그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다. 상영관이 열 개가 넘는데, 그 중 일곱, 여덟 개를 한 영화로 채우고 나머지 한두 관에 다른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현재의 멀티플렉스 시스템이다.

 


5.jpg

강한섭 평론가의 '전 영화진흥위원장의 멀티플렉스 독과점'에 관한 인터뷰

(출처- MBC <PD 수첩 - 스크린을 훔치는 완벽한 방법>, 2/17 방송)

 


그러다 보니 지극히 상업적으로 흥행성공을 하리라고 생각하거나, 계획한 작품들도 '예술·독립영화 행세'를 하며 호소를 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솔직히 '다양한 예술·독립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에게는 멀티플렉스의 예술 영화 전용 상영관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말이 다양성 영화이지, 거기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램을 나름대로 짜지 않는 한 '다양하게' 보기는 힘드니 말이다.

 

대규모 제작사의 작품들을 상영할 일이 거의 없는 동성아트홀이 장사가 잘 됐는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 '유일한' 예술·독립영화 전용 극장이라며? 희소성이 있잖아? 사람들이 많이 오겠지.

 

글쎄. 그렇게 많이 와서 돈을 벌었다면, 더 멀끔하게 시설들도 보수하고 건물 규모도 키우거나 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내가 본 모습은 그랬다. 다만 2013년까지만 해도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로부터 운영을 잘 한다며 인센티브도 받은 적이 있다고 하니, 아마 이득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때는 최소한 적자를 보지 않는 수준에서 나름대로 유지를 해 왔었던 것도 같다.

 

이렇듯 동성아트홀은 영진위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 지원 사업 심사 쪽에 많은 의지를 하고 있었고, 내가 본 극장의 상황도 한창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을 시기였다. 수도권도 비슷한 처지겠지만, 지방은 훨씬 더 심한 수준이다. 많은 수의 예술·독립영화 전용관들이 이 심사로 주어지는 지원금 덕분에 한 해를 넘긴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6.jpg

동성아트홀에서 <야간비행>이 상영된 후 이송희일 감독과의 대화 현장

 


이런 동성아트홀이 폐관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은 건 올 1월이다. 사실 이미 한 반 년 전 쯤부터 운영하는 게 빡빡해 보였다. 작년 그 즈음에 대구 동성아트홀이 영진위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 지원 심사 대상에서 탈락했기 때문이었다. 동성아트홀을 포함해 부산 아트씨어터 C&C, 거제 아트시네마, 안동 중앙시네마, 대전 아트시네마. 총 다섯 개 지역 극장이 심사에서 탈락했다.

 

다섯 개의 극장을 탈락시켰으니 그만큼의 지원금을 받을 극장이 그럼 어디냐고? 멀티플렉스인 롯데시네마다. 예술영화 전용관인 아르떼 관이 포함된 다섯 개 지점이었는데, 롯데시네마 측은 눈치가 보여 이 지원금을 영진위에게 반납한다. 눈치 보고 반납했으니 욕하려다가 말았다. 그러나 가야 할 극장에게 당연히 돌아가야 할 지원금을, 영진위는 풀지 않고 '자신들이 관리한다'는 영화발전기금에 편성해버렸다. 지원금의 규모가 줄었다.

 

영진위는 인터넷 언론 '뉴스민'과의 인터뷰에서 지원금을 주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입장을 밝혔다.

 

"10년간 사업을 진행했는데, 관객 수나 시설 면에서 개선되지 않은 전용관이 있다. 이번 기회에 전용관들도 전환점이 돼야 한다. 줄곧 지원 받았다고 계속 같은 자세로 있었기 때문에 발전도 없었다. 타성에 젖었기 때문이다. 예술영화관 사업 지원금 추가 공모는 없다." 

 

동성아트홀의 관계자 분은 영진위가 저런 말을 할 거라고 미리 예측하고 계신 듯했다. 당시 롯데시네마가 지원금을 반납했다는 소리를 듣고 풍악을 울리고자 태평소를 구하러 막 나가려 했던 내게, 그는 단호히 말했다. 보통 정부 쪽 기관에서 재심사를 한다고 해도 그 기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설사 한다고 해도 반환된 지원금을 받아낼 가능성은 별로 없을 거라고. 당장이라도 김상범 선생의 명곡 '왔구나 타령'을 부를 기세였던 나는 그 말에 숙연해지고 말았다. 이 중 거제 아트시네마가 작년 10, 경영난으로 폐관했다. 그 다음 동성아트홀이 폐관을 결정했다.

 

 


3. 솔직히 좀 두렵다

 


<씨네 21> 766호에는 <씨네산책>이라고, 정성일과 허문영 평론가가 김혜리·김영진·이동진 평론가와 대화를 나누는 특집이 실려 있다. 거기서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한 말이다.

 

'요즘의 한국 상업영화 시스템은 망하는 게 낫다고 봐요. 그래서 전 이 시스템에 대해 별로 근심 안 해요. 무슨 시나리오 심사를 갔는데, 옆방에서 투자 회의하는 소리가 다 들리는 거예요. 거기서 한국 감독들을 다 죽이고 있었어요. 옆에서 박찬욱도 날리고, (누구나 다 아는 감독들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얘는 이래서 안 돼, 쟤는 저래서 안 돼 라는 둥 하면서.


점심 먹으러 갔더니 그 옆방의 사람들이 인사하러 왔는데 서른 갓 넘은 대리급들이에요. 이 사람들이 한국영화산업의 미래를 맡고 있는 거지요. 이런 제도라는 게 과연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거제 아트시네마에 이어 대구 동성아트홀이 폐관하는 것에 대해 두려운 점이 하나 있다면, 살아보지 않은 과거의 시대로 돌아가는 듯한 감흥을 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70년대 같은?

 


7.jpg

(출처- MBC <PD 수첩 - 스크린을 훔치는 완벽한 방법>, 2/17 방송)

 


외국 영화 직배사가 생긴 게 1988년이었다. 직배사가 없던 시절에는 한국영화를 몇 편 제작할 경우, 외국영화 수입 쿼터를 주는 제도로 대신했다. 그래서 어떤 시기에는 한 해 한국에서 개봉되는 영화들 중 외국영화가 20편인 경우도 있었다. 한 해에 20편말이다. 고작 20. 나머지는 그 20편의 외국영화 수입권을 따내기 위해 영화사 측에서 정권과 검열의 눈치를 보며 졸속으로 제작한 작품들의 향연이었다. 그 중 70년대는 특히 호스티스 영화의 시대, 혹은 새마을 운동 찬양 영화의 시대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많이 남아 있다. 그 퀄리티가 어찌나 독보적인지, 한 대학교 응원단장이 한국영화에 출연했다고 같은 학생들에게 '지성인이라 할 수 있는 대학생이 감히 국산 방화 따위에 출연했다'라며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지금의 내 눈엔 그 20편의 '외국영화''예술·독립영화' 로 보인다. 이런 예술·독립영화 전용 극장들이 사라져가고, 멀티플렉스만 남는다는 건 분명 문제다. 거기다 멀티플렉스를 소유한 기업들이 무서운 기세로 영화도 만든다. 김영진 평론가의 지적대로 '투자 기업의 입맛에 맞춰' 영화를 만드는 경향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의 예술관이 이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돈을 주지 않겠다는데, 이렇게 해야 관객들이 더 봐준다던데, 순응하는 영화만 만들어질 가능성이 보인다. 말이 멀티플렉스이지, 개봉관의 상당수가 하나의 영화만 걸리는 판에 이제는 만들어지는 작품들의 질까지 거기서 거기가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들이 <또 하나의 약속>이라든지, <야간비행>이라든지, 아니면 <천안함 프로젝트><다이빙벨>같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데 누가 투자를 할까? 긍정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해봐야 대부분 누군가가 찔릴 이야기라든지, 사회통념상 문제될 거 같다며 둘러대면서 거부할 거다.) 단순히 완성도의 차이나 정치적인 관점 등등을 놓고 따지기 전에 지나친 간섭은 '다양한 소재'의 영화가 제작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막는다. 심지어 저런 작품들은 자신들이 만든 것도 아닌데, 멀티플렉스에서 제대로 된 시간대에 상영되지 못하거나 애초에 상영되는 것조차 거부당한다. 그냥 극장에 걸어달라는 것도 한국에선 힘든 일이다. 부지영 감독의 <카트>가 있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 작품이 정말 흔치 않은 시도를 한 거고 흔치 않은 성과를 거둔 것이다.



8.jpg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연이어 백혈병에 걸려 사망하자, 유족들과 노동자들이 산재 인정을 위해 법적 투쟁을 벌였던 것을 영화화한 <또 하나의 약속>. 나서서 제작하려는 영화사를 찾기 힘들어 제작비 모금 후원을 받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촌 메가박스가 도중에 상영 취소를 하는 등, 멀티플렉스에서 적은 수의 관으로나마 개봉하는데 무척 어려움을 겪었다.

 

이송희일 감독의 <야간비행> 역시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다.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 할지라도 퀴어에 관련된 요소들이 들어가 있으면, 투자를 받기 힘들다고 감독은 말한다. 심지어 캐스팅조차 어렵다고. 몇몇 배우들은 퀴어적인 요소들이 조금만 눈에 띄어도 출연을 고사하며, 설사 출연을 했다고 쳐도 그들의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십자가를 들고 울면서 찾아오는 등 해서 끝끝내 섭외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당신이 말하는 그 예술·독립영화라고 분류된 작품들을 보러 갔는데, 화면 빨이나 완성도가 너무 구려. 당신이 비판하는 대형 영화사 혹은 기업 투자 받은 영화들이 더 나아보이던데. 일단 잘 만들어야 할 거 아니야. 우리가 다 옹호해줄 수는 없다고. 네가 오히려 더 감정적인 거 아니냐?"

 

라고 물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 대형 투자를 받은 작품들 중에서도 걸작들은 분명 등장하고 또 존재한다.

 

그러나 그걸 인정해도,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한 영화가 여러 개의 관을 독차지하는 것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멀티플렉스의 장점으로 대표적으로 거론하는 것이 '복수의 영화를 한 장소에서 동시에 상영하므로, 관객의 영화 선택을 용이하게 한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못 나가거나 초라해 보이는 영화라 할지라도 멀티플렉스에 걸릴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분명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 하늘을 달리는 걸작들이 존재할 텐데, 그런 작품들이 대기업 보기에 거슬린다고, 혹은 대기업의 투자를 받지 못해서, 자기네들이 수입한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개봉관을 잡을 기회조차 놓친다면?

 

한국의 멀티플렉스가 이런 작품들의 상영을 할 수 있게끔 예전부터 조율을 해 왔었는지에 대해선 많이 회의적이다. 그런 걸 하라고 다그칠 수 있는 영진위부터 '발전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예술영화 상영관을 하나 만들었다는 이유로 멀티플렉스에다 지원금을 주고 있는 상태니까.

 

'예술·독립영화 전용 상영관'은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유일하게 멀티플렉스의 상영 권리를 박탈당한 작품들을 수호하는 역할을 겸한 셈이다. 동성아트홀 그 중 하나였다. 이를테면 대구에 존재하는 그 많은 극장들 중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유일하게 상영한 곳이 동성아트홀이었다. (그 바람에 SNS에서 한 때 '좌빨 상영관'이라느니 하면서 잠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극장이 사라진다면, 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수의 영화들, 애니메이션들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걸까.

 


9.jpg

이상호 기자·감독의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할 때의 동성아트홀 상영관 풍경

 

 


4. 대구시

 

 

위에서 언급한 <씨네 21>말인데, 동성아트홀을 비롯해서 대구·경북지역의 예술·독립영화 상영관의 상영작 프로그램을 구성했던 남태우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이 그 잡지와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의 증언을 통해 동성아트홀이 있는 대구시 측의 '영화'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대구시가 뮤지컬 사업에 투자할 돈의 반의 반의 반만이라도 독립예술영화전용관에 지원한다면 대구가 독립영화의 메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에서 최소한의 지원만 해도 숨통이 트일 텐데. 대구시에 '대구를 한국의 선댄스로 만들어라, 한국의 클레르몽 페랑으로 만들어라' 아무리 얘기해도 영화는 부산에서도 하고, 전주에서도 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 영화가 그 영화가 아닌데."

 

29일에 대구시 측에서 동성아트홀에 왔다 간 적이 있었다. 극장의 폐관과 관련해서 나름의 대책을 마련해줄 생각으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인터뷰를 전에 본 적이 있기에 '이 사람들이 웬일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뭔가 의지가 있나보다 싶어 대구시가 동성아트홀에 찾아가기 전전날에 대구시 페이스북과 시청 공식 홈페이지 등등에 극장 유지를 할 방법을 마련해 줄 수 없겠느냐는 식으로 관객으로서 호소의 글을 적었다. 그러나 그들이 극장에 체취를 남기고 갔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다. '개인사업자가 소유한 극장이니 힘들다'라는 식의 이유를 댈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만, 역시나.

 

동성아트홀에 관객으로 오가면서, 그 곳의 관객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크게 뭔가에 대한 가르침을 얻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느꼈고, 배울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했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모든 경험들은 극장에 들어가 삐걱거리는 그 곳의 의자에 앉고 나서, 털털거리는 에어컨 소리를 들으며, 어딘가 어둑어둑한 스크린을 응시할 때에얻는다. 그 극장 상영관의 공기를 느끼고 나서야 총체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영삼옹이 뭔 의미인지 말도 해주지 않고 그저 세계화, 세계화 외친지가 어언 20년이 넘었다. 동성아트홀은 그 때부터 대구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계화 시대인데 굳이 그 도시가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 가서 자유롭게 새로 시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동성아트홀은 거기 쭉 있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 존재한다는 건 보통 지금 그 도시에서 서 있지 않으면 물러설 곳이 없거나, 아니면 그 도시에 뼈를 묻고 싶은 무한한 정이 있지 않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면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거나.



Untitled-1.jpg

주변이 바뀌어도 이 극장은 언제나 버텨 왔었다.

 


사실 어떤 형태든 간에 토박이로 살아온 도시에 대해 별로 정이 없는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존재하고 버티는 게 그저 신기했다. 대기업이 운영하고 투자·배급하여 멀티플렉스의 여러 상영관에 걸리는 영화들을 개봉하지 않는 이상, 여기에서는 완성의 여지는커녕 미완성으로써 극장 유지도 될까 말까 할 텐데.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결국 동성이 그 곳에 있었기에 '여기까지 내려올 일이 없겠지'싶은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도시에 살며 이 극장을 오고 갔을 사람들 모두 극장의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여기 있지 않으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거나, 사명감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정말 사랑해서 대구라는 도시에 있었거나. 그들에게 동성아트홀의 존재는 위로와 격려 같았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동성아트홀이 나의 20대의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삶이 흐릿해 지더라도, 극장 안에 앉아 있으면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야지 하는 의지가 솟아올랐다. 물론 의지박약으로 극장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흐릿해지곤 했지만 말이다.

 


13.jpg  

 



5. 이후 예상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예술영화 상영관들의 운명은 더더욱 가혹해질 것이다. 동성아트홀은 일단 25일 마지막 상영을 한 뒤, 폐관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 현장에 나는 가지 않았다. 지켜보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영진위는 맨 마지막으로 서울을 압박할 생각인지, 아래에서부터 야금야금 파먹으며 올라오고 있다. 일단 영진위 자체가 부산으로 이전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을 상영했다고, 현 집행위원장의 강제 교체와 영화제 출품작을 사전 검열을 하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거제 아트 시네마를 폐관시켰고, 다음은 동성아트홀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서울의 독립영화 전용관 중 하나인 인디플러스가 예술·독립영화에 대한 영진위의 조치로 인해 제대로 상영을 못할 위기에 처했다. 당장 3월에 잡힌 정기 상영회 일정들이 모두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결국 이 문제는 단순히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의 열악한 문화 인프라, 장사가 안 된다는 문제 등으로 국한시킬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예술영화 전용관들의 위기에 대한 것이다.

 



6. 글을 마치며



어느 언론에서 제일 먼저 게재했는지 모르겠고 제목도 잊어먹은 글이지만, 언젠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ㅍㅍㅅㅅ에서 봤던가) 그 글의 요지는 한국사회에서 뭔가에 대해 항변하려면, '스펙부터 쌓아야한다'는 것이었다. 왜냐면 한국사회가 약자는 사람대접을 해주지 않고, 최소한의 존엄성조차 없애기 때문이라고 했다. 굉장히 짜증나는 글이었는데, 그 글이 오만방자해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읽을 때 정말 이 사회가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말하자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는 얘기다.

 

그래서 문득 내가 이 글을 써서 얼마나 많은 주목을 이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학력이라도 좋았으면 조금 더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제기랄. 이 글을 쓰기 위해서 고3 때 수능공부를 열심히 했어야 했나. 아니면 박사학위 몇 개 따거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서 우승이라도 했어야 했나. 펜이 강하다는 건 결국 특정 인사들에 한해서였나.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나. 그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을까? 열심히 공부해서 어디 외국 대학교라도 갔다 왔어야 하는 건데. 이럴 때마다 공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믿는 것 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니 믿음만 가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믿는다. 동성아트홀은 언젠가 꼭 다시 운영을 재개할 수 있을 거라고. 공식적으로는 '폐관'했다고 하지만, 나는 이 극장이 폐관했다고 믿지 않는다. 그냥 잠시 쉰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동성아트홀은 옛날에 잠깐 폐관한 적이 있었다. 제한상영관에서 예술·독립영화 전용관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3개월 정도 폐관했다. 제한상영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홍보 포스터를 붙이는 구역 역시 제한이 있어 제대로 장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 역시 국가기관의 정책이었다. 어떻게 국가기관 정책 치고 도움 되는 게 하나도 없다만, 동성아트홀은 그렇게 모습을 바꾸고 다시 문을 열었다.

 

지금의 상황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극장에게 닥친 큰 원인은 자금난이니 말이다. 문제는 그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을 실현하기 힘들다는 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성아트홀이 폐관을 철회하고 다시 운영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꼭 동성아트홀의 추억만으로 이 글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썼다면 정말 죽은 자식 고환 만지기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글이 될 거 같아서. 비록 위에서는 '죽음'이라는 표현까지 썼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믿지 않고 있기도 하고.

 

그렇게 3월이 됐다. 나는 지금 이 끄적임을 취소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극장이 다시 부활했는데, 옘병 재수 없게 이런 글이나 써놨다며 두들겨 맞고, 그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려 사과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제발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도록 동성아트홀이 다시 휴식을 끝내고 재개장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무척 바라고 있다. 이런 궁상맞은 글을 쓴 것에 대해 사과할 수 있도록, 다시 예술·독립영화 전용 극장들을 운영할 수 있기를.

 


14.jpg

2층에 있는 대구 동성아트홀로 올라가는 계단

 


P.S: 글의 제목은 조지 로트너 감독의 1981년작인 <어느 연약한 짐승의 죽음>에서 따온 것입니다. 엔리오 모리코네 옹께서 음악을 맡으셨고, 'Chi Mai' 라는 곡이 특히 유명하죠. 그 곡까지 넣으면 더 구슬퍼 질까봐 따로 링크를 걸까 하다가 그냥 말았어요. , 잘 모르겠네요. 그거 링크 걸어놨으면 좀 더 설득력이 있었을까요?

 

 






홍준호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