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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은 참 묘한 지점에 있는 만화가다. 그를 과소평가하는 사람을 만나면 감싸주고 싶지만 반대로 과대평가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미숙한 점들을 설명하게 된다. 


이것을 혹자는 강풀이라는 작가와 웹툰이란 장르가 함께 성장하는 것을 보며 자라온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갖는 개인적인 감정 정도로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말인데 이렇게 표현해보면 어떨까? 


어떤 독자든 그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동시에 단점 또한 찾아낼 수 있다. 


최근 그의 연재작인 '무빙' 또한 이 표현이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갓 완결된 이 따끈따끈한 웹툰, '강풀액션만화 무빙'이 오늘의 크리티크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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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부활한 딴지 크리티크는 음악만 다루지 않고 웹툰도 다룬다.

모든 이미지는 당연히 다음 만화속세상에 '무빙' 연재분에서 갈무리


'무빙'은 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주인공 김봉석이 또다른 능력자인 여주인공 장희수를 만나면서 숨기고 살았던 능력에 자부심을 갖게 되는 과정(1부)과 아버지 세대 능력자들의 고뇌(2부), 그리고 북한 능력자들과의 충돌(3부)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한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내용 정리는 이 정도만 하겠다. 궁금하신 분은 직접 보시라.)


강풀 만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확실히 재미있다. 그가 많이 다루는 소재, 짝사랑이나 초자연적 현상들은 새롭진 않지만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작가가 고민한 흔적을 보여주는 편이다. 불필요해 보였던 인물이라도 끝에 가서는 사건의 해결에 기여하고, 다소 투박해 보이는 대사들도 의외의 복선으로 재조명되곤 하며 독자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러나 이렇게 '짜임새 있는 스토리'에 신경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유독 영화화 되면 그 재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왜 그럴까? 


바로 강풀의 만화가 웹툰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며 생긴 특징 때문이다. 대자보를 그리던 경력 덕에 위에서 아래로 보는 시선 이동에 맞는 연출 감각이 키워졌다. 한 주 한 주 이야기를 끊어 연재할 수 있다는 특징은 수시로 주인공 시점을 바꿔대도 이야기가 튀는 느낌을 상쇄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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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이 즐겨 사용하며 웹툰의 주요 연출로 자리잡게 한, '과잉된 컷을 통한 연출' 

청소하는 상황을 전달하는 컷과 반창고가 살짝 떨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컷 사이에

하나의 더 컷이 더 들어가 있다. 필요 없는 컷이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스크롤을 통해 콘텐츠를 접할 독자들에게는 효과적인 환기법이 된다.


그러나 영화는 다르다. 과잉된 컷은 롱테이크를 남발하는 단조로운 연출로 빠지기 쉽고, 수시로 주인공을 바꿔대는 구성을 그대로 쓰면 관객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물론, 강풀은 웹툰 작가다. 영화화하기 쉬운 만화를 그려야 될 의무도 없고 그러지 못하는 것이 작품 자체를 저평가할 빌미를 제공해주지도 못 한다.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진 것은 영화로 각색한 사람들의 책임이겠다.) 그러나 '무빙'의 평가를 이 지점에서 시작하는 이유가 있다. 강풀의 만화를 영화화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런 특징들이 바로 강풀의 만화가 앞으로 보완해야 할 단점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점은 지나치게 잦은 플래시백이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할 때도, 특정 행동의 숨은 의미가 발견될 때도 '무빙'의 시점은 한결 같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이 어떤 캐릭터에겐 감정이입에 효과적일지 몰라도 늘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이강훈 같은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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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소개하기 위해 이야기는 여주인공 장희수가 처음 전학오던 날로 (또!)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그가 희수를 좋아하는 감정,

주인공 김봉석에게 느끼는 질투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게 해주진 못 한다.


심지어 희수의 17대 1 과거 에피소드는 불필요해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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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의 마지막에 한 컷으로 설명된 여주인공 희수의 과거.

이 쯤에서 독자들은 이미 희수의 초능력과 성격을 충분히 암시 받았음에도

이 싸움이 왜 일어났는지를 다루는 에피소드(12화)는 기어이 나오고 만다.


강풀은 미심썰 시즌1 때부터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 개개인의 사연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를 지속적으로 드러내왔고 이것은 작가로서 대단히 멋진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특정 인물의 사연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과거사를 나열하는 것 외에도 많이 있다. 신체적 특징이나 옷차림, 독특한 행동, 표정 등. 그러나 이런 간접적 암시 방법을 택하지 않고 굳이 직접적으로 과거사를 보여줌으로써 '아, 얘 사연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만들려는 건 주입에 가까운 표현으로 독자들이 나름의 해석을 하며 보다 오랜 시간 작품을 즐길 여지를 빼앗을 수도 있다.  


여기서 두번째 단점이 노출된다. 바로 컷의 함축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모든 컷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강풀은 암시나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컷을 그리려 하기 보다는 직접적이더라도 명료한 컷을 좋아한다. 이것은 앞서 지적한 대로 과도한 친절이다. 때로는 같은 상황을 여러 번 보여주게 됨으로써 은근한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 이로 인해 피로한 이는 독자보다 작가이다. 그가 왜 특정 회차에 이르러 미칠 듯이 스크롤이 길어지는 분량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지, 성실하게 원고를 해도 마감을 못 지키는 경우가 많은지를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세 번째 단점은 캐릭터의 디테일이다. 


앞에 갈무리해 보여드린 희수의 격투 장면을 다시 보자. 


격투장면.JPG


희수와 싸우고 있는 학생들의 옷차림에 주목하자. 어떤 특징이 느껴지는가? 저 일진 여학생들이 교복을 입는 방식은 희수나 다른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들의 불량함이 옷차림 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되었다면 12화에서 애들을 괴롭히는 과정을 그렇게 길게 보여줄 필요는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강풀은 이제 베테랑이라 불려도 될 위치의 작가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웹툰의 장르적 특징으로 잦은 플래시백으로 끊어지는 이야기와 사연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부족한 캐릭터성의 단점이 가려지고 있음은 결코 운으로되는 게 아닐 것이다. 철저히 계산된, 그만의 스타일로 봐줘야 될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위의 단점들은 어떻게 보면 기본기에 해당하는 영역이기에, 장르를 잘 이용한다 해도 모두 가려지지만은 않는다.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곳이 바로 '무빙'의 후반부다. 북한 공작원이 죽을 때마다 각각의 과거 회상 장면이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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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작은 악역 캐릭터 한 명에도 애정을 갖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전까지 어떤 형태로든 이들의 절박함을 공감케 만드는 장치가 부족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 것을 이런 식으로 캐릭터의 사연을 그 때 그 때 어필하며 만회하는 것은 분명 세련되지 못한 방법이다. 동시에 자칫하면 커다란 주제로 집중력 있게 나아가야 할 후반부의 몰입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연출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강풀의 웹툰, '무빙'에 침묵 외계인 얼굴을 박게 된 경위를 설명해봤다. 많은 독자들이 좋아해주고 재미있게 본 웹툰치곤 짠 점수라고 하실지 모른다. '만화가 재밌으면 됐지'라고 생각할 분들도 계시겠다. 동감이다. 웃는 외계인이 박힐 만화가 딱히 뭐 대단한 요소를 갖고 있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해당 작품을 접한 독자들의 재미와 여운이 좀 더 길고 큰 울림으로 남는 작품이길 희망할 뿐. 그리고 위에서 지적한 부분의 보완이 강풀 만화의 여운을 보다 업그레이드 시켜줄 수 있으리라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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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딴지 크리티크는 문화 콘텐츠 전반을

우주적 관점으로 디벼본 후

외계 생명체의 감각 기관에 어찌 작용할 것인가,

연구해보는 코너로 최고 1등급부터 최저 5등급까지의 

리액숀 외계인이 대기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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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다른 별의 관점을 갖고 있다'

이런 분들 졸라 환영입니다.




퍼그맨

트위터 : @ddanzipu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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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그룹 마켓팀원. 편집부 일도 하고 왔다갔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