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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10. 화요일

뒤통수












나는 대한민국의 한 언론사 기자다. 연차·부서·나이 등은 비밀에 부친다. 이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졸라 쫄리는데다가 나 역시 한낱 쥐꼬리 월급으로 적금 넣고 13월의 세금 폭탄 맞아가며 사는 여느 직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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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페이스북 '기레기'


1. 취재하지 않는 기자들


기자가 ‘기레기 보고서’라는 반성문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하나다.


이대로 놔뒀다간 순수했던 기자들 역시 기레기가 될 것이고, 기존 기레기들은 더더욱 기레기의 늪을 빠져나올 수 없게 될 것이며, 기자를 지망했던 취준생들까지 기레기를 지향하는 인간들로 변할 것 같아서다.


첫 번째 이야기로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상식을 뒤엎는 주제를 제시해 본다. ‘취재하지 않는 기자들’ 이야기다.


소위 ‘온라인뉴스팀’, ‘멀티미디어팀’, ‘디지털콘텐츠팀’이라는 핵우산(?) 아래 숨어 각종 연예 소식, 국제적 이슈, SNS 소문 등을 확인 절차 없이 ‘우라까이’(갖다 베끼기)해 기사 수를 채우는 이들이 대표적인 ‘NO 취재 기자’다. (기자라는 타이틀도 졸라 아깝다)


당신이 보는 연예기사의 대부분은 이들이 바삐 복사하고 붙여 낸 ‘복제 기사’라고 보면 된다.


심지어 이들은 다른 언론사에서 나온 기사를 복제해 새로운 기사인 양 제목을 바꿔 인터넷에 배설하는 것도 모자라 다시 자신의 기사를 복제, 제목만 싹 바꿔 안면몰수하는 ‘자가 복제’ 기술까지 선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10분 전에 A매체가 “‘이태임-예원’ 논란 난무한 싸움 진실 드러날까?”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고 치자. 그리고 10분 뒤 같은 A매체가 똑같은 내용의 기사를 제목만 살짝 바꿔 “예원 측 '이태임에게 반말한 적 없다'”라고 썼다면 독자는 조금 다른 내용인 줄 알고 속아 2개의 기사 모두를 클릭하게 된다. 이를 ‘어뷰징’(abusing)이라 한다.


어뷰징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언론사가 의도적으로 클릭수를 늘리기 위해 동일한 제목의 기사를 지속적으로 전송하거나 인기검색어에 올리기 위해 클릭 수를 조작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언론사들은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클릭 수 요원’들을 양성하고 있다. 하루 종일 클릭 수 높이는 일만 하는 것이 이들의 어마어마한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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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는 노트북이 아닌 데스크톱이 제공된다. 대형 모니터 2~3개를 번갈아 보며 SNS를 뒤지고 자극적인 사진을 찾아 클릭 수 높이기용 기사를 만들어 내는 게 이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에 취재는 없다. 누군가 열심히 취재한 내용을 교묘하게 짜깁기하는 편집술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양심이 있는 언론사들은 이들에게서 기자 타이틀을 뺏는다. 그리고 그 대신 ‘에디터’라는 타이틀을 붙여준다. 개인적으로 이게 옳다고 본다.


더 웃긴 건 몇몇 언론사가 이런 기자들에게 ‘수상의 영예’를 안겨 준다는 것이다. 상장 하나 달랑 주는 게 아니라 명절 상여금 정도의 금액을 ‘툭’ 내 던진다. 기자가 아닌 영업사원으로서 수고했다는 거다. 이 달콤하고 더러운 ‘돈의 맛’이 이들의 영업질을 부추긴다.


물론 이들에게도 고충은 있다. 이들 중에도 현장을 누비며 취재한 기사를 작성하고 다음 아이템을 발굴하는 ‘진짜 기자질’이 하고 싶어 이 바닥에 들어선 사람이 있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이런 기자들 역시 남의 기사나 가져다 편집하는 기레기 생활에 적응한 나머지 애당초 가졌던 기자로서의 사명감 내지 의욕 등을 과감히 버린다는 것이다.


현장 취재를 나갔다면 추운 겨울 바깥에서 개처럼 떨고 무더운 여름에는 비지땀에 흠뻑 젖은 사타구니를 긁었을 텐데 사무실 안에서는 사계절의 변화를 굳이 체감할 필요가 없으니 자연히 몸이 편하고 덩달아 마음도 편해지기 마련.


노트북을 앞에 두고 커피 한 잔 홀짝홀짝거리며 시종일관 남의 기사를 ‘넝마주이’처럼 주워 되파는 일을 하다보면 사명감이나 양심은 개나 줘버리게 된다. 기자 타이틀, 떼야 한다.


취재하지 않는 기자들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보통 언론계에서는 정치·사회·경제부 소속 기자들을 ‘취재기자’라고 칭한다. 아니, 칭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 '취재기자' 타이틀을 단 이들 역시 취재 없이 기사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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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보통 언론사의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짚어보자. 기자들은 오전 7~9시 사이 회사 또는 현장으로 출근한다. 팀장 주재 하에 아이템회의를 한다. 회의는 회사라면 회의실에서, 바깥이라면 메신저 혹은 카톡방에서 진행될 수 있다.


기자들은 각자의 아이템을 보고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다. 여기서 ‘킬’, ‘킵’, ‘오케이’ 등이 정해진다. 킬은 말 그대로 아이템이 ‘꽝’이라는 의미다. 킬 당한 기자는 다른 아이템을 내놔야 한다. 그리고 팀장 및 다른 기자 동료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 또 킬 당했다면 팀장이나 선배급들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아이템이나 그날 주요 이슈에 관한 취재를 던져준다. 굴욕적이지만 꽤나 따뜻한 풍경이다.


‘킵’은 보통 아이템의 시의성이 떨어지거나 매력적이지 않아 보강이 필요한 경우 결정된다. ‘오케이’는 말 그대로 ‘좋으니 진행하라’는 뜻.


‘오케이’ 판정을 받은 기자들은 알아서 취재를 진행하면 된다. 그리고 취재된 내용으로 마감 시간에 맞춰 기사를 작성하면 된다. ‘취재기자’라는 타이틀은 이런 과정을 통해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몇몇 언론사들은 이런 과정을 대강 거치거나 생략한다. 그러니 기자가 다른 언론사에서 며칠 전에 다뤘던 아이템을 그대로 갖다 내놔도 더 병신 같은 팀장급 기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지면이나 웹 페이지를 채우는 것은 ‘정통’ 입장에서 보면 아주 쪽팔린 일이다. 그런데 이런 언론사들은 그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른다. 팔릴 ‘쪽’이 없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구태의연한 말이 진리긴 하다. 다른 언론사에서 앞서 다뤘던 것을 기자가 개의치 않고 자신이 직접 취재해 기사화했다거나 방향을 바꿔 새로운 시각이나 입장을 제시했다면 인정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여기서도 우라까이가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어느 정도 연륜을 갖고 있는 기자들은 기사의 몇 문장만 읽어봐도 이 기사가 취재기사인지, 우라까이 기사인지 눈치를 챈다. 정작 본인은 ‘눈 가리고 아웅’하며 취재기사라고 오리발 내밀지 모르겠지만 포탈에 의심되는 부분 복사해서 붙여 넣으면 검증은 빤하다. 속이기 쉽지만 들키기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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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이렇게 일한다는 것은 언론사 자체가 굉장히 허술하게 돌아간다는 의미다. 기사거리가 없는데 20~40면을 채워야 하니 일은 곧 밀린 숙제가 된다. 어느 기사가 재탕, 삼탕 끓여낸 사골기사인지 검증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내일의 면을 채워 ‘면피’(免避)하는 것이 정말 ‘면피’(面避)가 된 환경이다.


합법적인 ‘NO 취재 기사’는 따로 있다. 통신사 기사나 보도자료 기사가 그것이다. 연합뉴스나 뉴시스 등 통신사(언론사에 돈을 받고 기사를 파는 곳)가 아닌 모든 언론사는 ‘우라까이’를 하지 않고선 그 많은 기사를 만들어낼 수 없다. 심지어 요즘에는 통신사도 우라까이를 하는 형편이다.


계약이 된 통신사의 기사를 그대로 갖다 쓰는 것은 합법. 약간 수정해 올리는 것은 암묵적인 관행이다. 통신사 기사를 받아쓰는 것, 기분 참 좆같지만 몸이 열 개가 아니니 그냥 한다. '돈 내고 쓰는 건데 뭘' 하는 자기최면, 필요하다.


어쩔 수 없는 ‘NO 취재’란 이런 경우에 한정돼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게으른 기자들이 이런 행태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다. 각 기관, 기업, 단체의 보도자료를 COPY&PASTE한 기사는 회사의 수익과 직결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관계나 수익과 큰 관련이 없다면 보통 기자 판단대로 처리된다. 그런데 몇몇 기자는 아이템을 발굴하지 않기 위해 즉, 취재하지 않기 위해 이런 기사에 매달린다. 기사를 안 쓸 수는 없고 일하는 티는 내야하니 수라도 채워 면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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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도자료는 상당히 깔끔한 편이다. 특히 기자 출신의 기업 홍보팀 직원이 보낸 보도자료는 거의 손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작성돼 있다. 취재부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제(취재 아이템을 보고하는 것)를 거의 하지 않는 기자들이 보통 이런 식으로 기자질을 한다. 출입처 기자실에 콕 박혀 보도자료를 각종 포탈에 배달(?)하는 것이다. 이들은 타이밍을 봐가며 보도자료를 배달한다. 2~3시간에 하나씩 해야 '나 아직 일하고 있어요'를 시전할 수 있다. 일을 이렇게 해도 시간은 잘 가는 모양이다.


이렇게 일하는 기자들은 아이템 발굴할 시간에 자신에게 유의미한 각종 딴짓, 개뻘짓을 끊임없이 한다. 여기자의 인터넷은 쇼핑몰 혹은 연예기사 창으로 채워진다. 남기자는 스포츠 중계를 보거나 게임 방송을 보며 낄낄댄다. 이런 기자들이 취재기자랍시고 언론사에 남아 ‘월급 루팡’ 노릇을 하고 있으니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사고가 제대로 보도되지 못한 것이다. 취재를 해봤어야 취재를 할 것 아닌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세월호 취재로 한참을 진도에 머물렀는데 도와준답시고 한 여기자가 내려온 것. 연차는 선배지만 보도자료 우라까이를 주업으로 하는 기자이기에 현장에 와서 잘 할지 걱정됐다. 역시 설마는 사람을 잡고,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출입처 기자실이 익숙한 이 기자는 바깥 현장 공기에 굉장히 낯설어 했다. 엄청 늦게 나타나서는 현장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우왕좌왕, 개무룩하기 일쑤. 결국 내가 간단한 취재 지시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학생 정도면 할 수 있는 수준, 그 여기자 이따위 것 해내고 서둘러 취재에서 발을 뺐다. 나도 그게 편했다.


이 여기자 알고 보니 수습 때 마와리도 거치지 않은 ‘개 핫바지 기자’였다. 그러니 현장 취재에서 맥을 못 출 수밖에. 이런 기자들이 선배랍시고 나설 때는 밥값 계산할 때 밖에 없다. 이런 기자들이 후배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것 보면, 참 안타깝다.


'뭘 안다고 씨부려?'

 

 

보통 제대로 된 언론사들은 수습기자들을 뽑아 ‘사쓰마와리’를 시킨다. 드라마 <피노키오>가 묘사한대로 경찰서를 돌며 사건을 캐는 일이 바로 사쓰마와리, 줄여서 마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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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드라마 <피노키오> 中


마와리는 ‘군대’ 같은 느낌이다. 안 하면 좋겠지만 하면 남는 게 있다. 괜한 ‘부심’이 생긴다. 마와리를 한 기자와 안 한 기자의 마인드는 천양지차다. 실력 차이도 확연히 드러난다.


그런데 요즘 기레기 양성에 혈안이 된 핫바지 언론사들 몇몇이 새끼 기자들에게 마와리 대신 클릭 수 높이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시작을 이렇게 하니 이런 기자들이 사건 사고 현장에 가서 제대로 할 리 없다. 이렇게 마와리 대신 클릭 수 높이는 법을 배운 기자들은 현장에서 바보가 된다.


전 언론사가 기레기 양성에 여념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괜찮은 언론사들은 진짜 선수를 키워내는 데에도 힘을 쏟는다.

 

 

‘시작이 중요하다’. 취준생들이 대기업을 선호하는 것처럼 기자 지망생은 이름 있는 언론사를 좇는다. 보통 이름 있는 언론사들이 제대로 가르친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언론사들 중에도 ‘기레기 양성소’가 섞여있다. ‘기레기 보고서’가 절실한 이유다.


기자라면 취재하자. 취재해서 기사 쓰자. 정말 기자라면 말이다. 나부터 각성하겠다.







뒤통수


편집 : 딴지일보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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