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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19. 목요일

뒤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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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마냥 경찰서와 파출소를 뛰어 다니던 수습시절 얘기다. 


재수 없게 들릴 테지만 난 꽤 사건, 사고를 잘 물어오는 수습기자에 속했다. 당시 내가 물어와 족족 기사화했던 사건, 사고들은 사실 지극히 평범한 폭행, 절도, 성추행, 교통사고 등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족족 기사화에 성공했냐고? 


내 나름의 비결은 재미난 포인트를 잡는 것이었다. 포인트를 부각해 선배에게 보고하면 선배가 내 얘기를 잘 포장해 팀장급에게 보고하는 식이었다. 물론 팩트를 왜곡하지는 않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겠다.


심야시간 서울 OO구 OO주점 앞에서 40대 남성과 20대 여성이 술김에 시비가 붙어 쌍방폭행이 벌어졌다고 치자. 여기까지 확인된 상태로 이들이 파출소에 잡혀 들어왔다면 기자는 '40대 남성이 시비 끝에 빡쳐서 20대 여성을 때렸고, 이 여성이 저항하면서 살짝 폭행이 있었나 보다'하고 별 것 아닌 걸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런데 좀 지켜보니 20대 여성이 '선빵'을 날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선빵'을 부각해 기사의 내용을 새롭게 풀어낼 수 있다. '심야시간 시비 끝 남녀 쌍방폭행... 20대 여성이 선공',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 정도 내용만으로도 사건 기사를 쓰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뭔가 밋밋하고 아쉽다면 좀 더 새로운 팩트를 찾아내면 된다. 


자, 한 대 맞은 남성의 직업이 '검도사범'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좀 더 취재하면 여기까지는 쉽게 알아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 기사의 내용은 또다시 새롭게 바뀔 수 있다. '심야시간 남녀 쌍방폭행... 20대 여성, 검도사범 때려 눕혀', 뭐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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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질'은 여기까지 하고 오늘의 주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털어보자.


앞서 수습기자 시절의 추억(?)을 굳이 늘어놓은 이유는 오늘 보고서의 주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취재한 기사가 회사의 달콤한 엿이 되는 '더럽고 짜릿한 첫 경험'을 저 당시에 했기 때문이다.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OO파출소로 가 사건을 구걸했다. 경찰은 역시 '구간반복' 음성을 틀어 놓은 것처럼 "사건, 없습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이런 XXX... 사건이 많은 파출소 경찰들은 으레 저딴 식으로 얘기하고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겠다'는 의미의 썩은 표정을 날린다. 없다는데 별 수 있나. 이럴 땐 조용히 녹음을 진행하며 기다릴 뿐이다. 


30분쯤 지났을까. 30대 남성 2명이 OO나이트클럽에서 여자 1명을 놓고 싸웠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이 현장으로 출동해 이들을 곧바로 파출소에 데려왔다. 


남성 A씨는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고 B씨는 후줄근한 야상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 "맞았다"고 주장했다. 쌍방폭행 사건에서는 때린 놈들이 늘 저렇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더라. 


경찰이 저들의 신원을 알려줄 리 없으니 나는 조용히 이들이 작성하는 진술서를 훔쳐봤다. 사건 내용은 단순하고 평범해 기사화하기에 별로였다. 다만 이들 중 1명의 직장이 눈에 띄었다. 


사건의 대강을 파악하고 조금 유순해 보이는 경찰에게 접근해 정장 차림 남성의 직장과 직업을 넌지시 물어봤다. 아무리 불친절한 경찰도 이쯤 되면 인정상 1~2개의 질문에는 답을 해주기 마련이다. 


정장 차림 남성의 직장이 우리가 알만한 대기업 계열사였다. 당시에는 해당 기업이 대기업 계열사인지 몰랐지만 개피곤과 귀차니즘을 핑계로 수습들의 보고를 무시한 채 잠든 선배를 억지로 깨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선배는 내게 "잘 하면 기사화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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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간밤 사건의 세부 내용을 구걸하기 위해 피곤에 절은 몸을 이끌고 택시에 올라타 OO파출소로 향했다. 그때 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젯밤 OO파출소 쌍방폭행 피의자 직장, OOOO 확실한 거니?" 


"네, 확실합니다."


"증거는?"


"진술서 확인했고 자기 입으로 OOOO 다닌다고 밝힌 음성도 녹음돼 있습니다."


"그래, 알았다."


이때까지 나는 내가 취재한 이 사건이 기사가 되는 줄 알았다. OOOO이 대기업 계열사인 걸 몰랐기 때문이다. 


마와리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했는데 부장이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한참을 통화하고 있었다. 잘 아는 사이처럼 부장과 OOOO 관계자는 내가 취재한 사건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제 그 친구가 나이트클럽 앞에서 싸운 모양이야..."


"........" (OOOO 관계자 말까지 들을 정도로 내 귀가 소머즈 급은 아니다.)


둘의 통화가 끝났다. 다 써 놓은 기사는 보기 좋게 지면에서 빠졌다. 그리고 그 다음 날 3면 우측 하단에 OOOO의 모기업 제품 광고가 제법 크게 실렸다. 내가 취재한 사건 기사는 그렇게 회사의 엿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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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알다시피 언론사는 기업, 관공서, 대학, 병원 등의 광고를 먹고 자란다. 언젠가부터 종이신문은 광고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돼 버렸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특종을 쓰지 않는 이상 어느 면에 '톱' 기사를 썼다는 등의 '커리어'는 이제 기자 혼자만의 '부심'에 지나지 않게 됐다. 


언론사가 사건 기사까지 '킬'해가면서 광고를 수주하는 집단으로 변질된 첫 번째 이유는 극심하게 척박한 매체 환경 때문이다. 집계를 내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나라의 언론사 수는 어마어마하다. 대형 사건, 사고 현장을 가면 정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언론사 기자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광고의 '과실'은 한정돼 있는데 언론사 수는 포화상태를 훨씬 뛰어넘고 있으니, 매체 인지도가 유명 일간지에 비해 약한 곳은 광고가 선사하는 '달콤한 엿'을 맛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기사가 묻히면 월급이 안 밀린다'는 언론사의 정신이 멀쩡히 잘하고 있는 기자를 본의 아니게 기레기로 만드는 것이다. 


살림이 빠듯해진 언론사가 기업, 관공서, 대학, 병원 등의 광고를 '따먹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부러 '조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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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활을 하면 '조진다'라는 말을 숱하게 듣는다. 뭣도 모르는 말진 기자들도 처음 '조짐'의 칼을 쥐면 마치 자신이 히어로 무비의 주인공이라도 된 냥 정의(?)의 갑질에 취한다. 한껏 올라간 어깨에 삐딱한 자세, 상대의 연배와 상관없이 반말과 존대말을 섞어 쓰는 것을 '조짐'의 필수선택옵션으로 장착해 상대를 까는 데 혈안이 되는 것이다.


조질 대상이 누가 봐도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면 기자 입장에서 나름 명분이 선다. 하지만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곳을 '광고' 수주 목적으로 조질 때에는 '내가 기자질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하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조짐 기사' 판별은 간단하다. 시의와 상관없이 한 언론사가 특정 대상을 연일 조지고 있다면 '광고' 목적의 조짐 기사일 가능성이 높다. 정말 비판할 것을 비판하고 있다면 독자 입장에서 읽어도 상관없지만, 별 내용 아닌 것을 부풀려 지적하고 괜히 까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이런 기사는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 


이런 기사의 특징은 '시작은 창대하지만 그 끝은 미약하다'는 것이다. 웬만해서 이런 기사는 단타로 끝나지 않는다. 첫 기사와 두 번째 기사 사이부터 언론사와 조짐 대상 간의 물밑협상, 즉 '밀당'이 진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밀당을 잘 하는 것이 곧 언론사의 영업력(?)이 된다. 이때부터 서로는 만나서 웃고 뒤로는 '뒤땅' 까는 변태 같은 행태를 반복한다. 이때 요긴하게 사용되는 것이 일선 기자들이 잘 조져 놓은 기사다. 


기사의 비판 강도가 셀수록 '엿'의 사이즈는 커진다. 영업을 잘하는 윗선들은 후줄근한 '조짐 기사'도 '빅엿'으로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지만 영업을 못하는 '병신' 윗선들은 할 말(광고 좀 줘~)을 못해 전전긍긍 상대에게 말린다. 겁을 주려다 되레 겁을 먹는 것이다. 월급이 밀리기 싫다면 차라리 영업이라도 잘하는 기레기 윗선을 만나는 편이 낫다.


이런 특수 목적을 가진 기사는 보통 취재력이 '썩 괜춘한' 기자들이 맡는다. 취재를 조또 못하는 기자가 어설프게 조졌다가 되레 소송이라도 걸리면 매체 이미지가 바닥을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왕 하는 거 '빅엿'을 '물엿'으로 만들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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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현재 대부분의 언론사는 이런 구태에 젖어있다.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지 못한 채 악습을 전통처럼 받들면서 상대와 척을 진 채 한참을 쌩 깠다가 돈 떨어지면 '똑똑' 노크해 '보따리'를 내놓으라 한다. 이런 일에 중용(?)되는 일선 기자들은 기자로서의 양심과 한낱 직장인으로서의 배고픔 사이에서 갈등하며 '펜'을 '매서운 칼'로 둔갑시켜 '보따리'를 안 내놓는 상대의 허를 찌르고 또 찌른다. 그리고 비열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몇몇 언론사들이 때마다 하는 각종 행사 역시 모두 비즈니스, 편히 말해 기자들의 월급을 위함이다. 정상적으로 투명하게 운영된 행사라면 굳이 지적할 필요가 없다. 언론사의 엄연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행사 안에도 더러운 구석이 존재한다. 간단히 예를 들어 한 언론사가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자선 바자회'를 열었다고 치자. (이 정도 규모의 행사를 하는 언론사는 극히 드물지만...) 나름 홍보가 잘 돼 바자회 수익도 썩 괜찮았다. 이때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모인 돈이 진짜 어려운 이웃에게 쓰일까?'. 이 의심은 꽤나 합리적이다. 행사의 함정은 그때만 지나면 쉽게 잊힌다는 데 있다.


언론사가 뻑하면 주최하는 '무슨 무슨' 대상 시리즈. 정말 제대로 된 심사 과정을 거쳐 줄 만한 기업 또는 대학 등에 수여하는 거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그런 언론사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경우, 아니라고 봐야 한다. 통상적으로 광고를 많이 줬던 혹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기업, 대학 등등이 이런 '무슨 무슨' 대상의 큰 상을 거머쥔다. 또는 언론사가 먼저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라는 의미로 기업, 대학에 상을 떡하니 던져주기도 한다. 비즈니스의 물꼬를 트기 위한 '밑간'인 셈이다.


언론사의 윗선들이 꾸역꾸역 생각한 생계 수단이란 게 딱 이 정도다. 윗선이 물갈이되지 않는 이상 현 시점에서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개발되기는 어렵다. 그 와중에 언론사 수는 엄청나고 기사 구독은 공짜인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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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뭣도 모르는 남의 '뺨'을 후려갈기면서까지 내 주머니를 채워서야 되겠나.


기자들이여, 이상을 좇자. 좋은 기사로 매체 인지도와 이미지를 높여 지면과 웹페이지가 광고판의 역할을 훌륭히 겸하도록 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기자가 제대로 된 취재를 할 수 있도록 놔두자. 진종일 광고 영업한답시고 술 먹는 일 없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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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취재하지 않는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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