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3. 19. 목요일
귀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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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줄 알았다. 나만 그렇다는 것을 깨달은게 언제쯤이었을까
겉보기에는 멀쩡했다. 남들 하는 만큼 공부하고, 친구들도 잘 사귀고, 주위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알바도 하고 연애도 하고 그러고 살았다. 그런데 속은 영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은 그게 영 아닌 것인지도 몰랐다. 남들도 다 나처럼 밥 먹으면 속이 메스껍고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물먹은 솜 같이 축축 늘어지고 그런 줄 알았다. 몸이 쌩쌩하다고? 내가 기억하는 한 그런 기분은 느껴보지 못했다.(적어도 언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몸이 늘 얼음장 같은 것은 기본. 두통약 없이 외출하지 않는 것은 옵션. 퍽하면 체해서 드러눕고 약을 먹으면 약까지 토해낸다. 한의원에 가서 진맥을 받으면 의사가 깜짝 놀라
"몸 상태를 알고 있느냐, 뭐하는 분이냐"
고 물어봤다. 그러면서 하는 말...
"스트레스 안받게 조심하시고 운동하고 식이요법하고 푹 자고 잘 먹고..."
이게 내가 대략 설명할 수 있는 귀신과 함께 사는 사람의 경험담이다. 이사람 저사람 만나보니 나와 다른 식으로 느끼는 사람도 많더라. 그리고 둔한 사람들은 정말 잘 모르기도 하더라.
어릴 때 잠시 할머니와 살았던 집은 긴 복도에 세 집이 늘어선 옥탑이었다. 할머니는 무조건 서울에 유명한 학교에 아이를 집어넣어야 한다며 나를 억지로 당신 집에 데려갔다. 유명하다는 초등학교에 아이를 집어넣고 만족하신 듯 할머니는 매일 매일 맛난 음식을 먹이고 으쓱해 하셨다.
그리고 왜인지 밤만 되면 ‘그만 자라’ 하고 나가서 새벽까지 돌아오지 않으셨다. (지금도 그 질문엔 대답을 안하신다. 왜 나가셨어요? 날 혼자두고...)
그 집이 내가 기억하는 ‘귀신보기’의 확실한 시작점인 것 같다. 나는 우리 옆집에 사람들이 정말 많이 사는 줄 알았다. 밤만 되면 사람들이 복도를 마구 뛰어다니고 문을 두드리곤 했다. 정말 무서운 날들이었다. 문을 열어서 확인하지 않아도 그네들이 남자들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그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이 아주 많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내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나? ㅎㅎ 마당에도 밤마다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느꼈다. 분꽃이 가득 피어있던 화단에도 사람들이 올라가 뛰어다녔다. 새벽에는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화장실을 쓰는 소리가 매일 들렸다.
나는 할머니가 나가길 기다렸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왜 나를 데리러 오지 않는지 물어보곤 했다. 밤마다 마음이 아팠던 엄마는 몇 개월 만에 훔쳐가듯이 나를 다시 집으로 데려가셨다. 꽤 크고서야 사실 그 집에 우리 말고 아무도 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집에서 키우던 개 두 마리는 그 높은 옥상에서 제 발로 뛰어내려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가 살고 나간 뒤 그 집에 살았던 부부가 있는데 아저씨는 내가자던 방 문 앞에서 목을 매서 자살했고 아주머니는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일들이 있지만 중략하고. 지금 이러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이유는, 이제는 이런 것들을 정리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건 우리 언니를 만나게 된 시점, 그때 부터였다.
나와 같은 사람의 부류는 조그만 안테나가 있는지 서로를 알아볼 때가 있다. 술자리에서든 어디서든 '혹시 당신?'하고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내 대답은 늘 한결 같았다.
“무슨 소리 하는지? 전 그런 것은 모릅니다만”
나도 술을 쳐 마시고 보이는 대로 이야기 해본적도 있다. 그 여자애가 집을 빙빙 돌고 있는데 말이지 하고. 그러면 옆사람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그런 것들을 조금 즐기기도 했을까? 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런 이야기를 하건 말건 내 머리만 아프다.
우리는 일터에서 만났다. 그 해에 가장 중요한 미션인 전시 행사 자리에서였다.
일처리를 위해 그녀가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첫눈에 일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것이 본업이라고? 아닌 것 같은데?'
살면서 지금까지 내가 만나보지 못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무당은 아닌 것 같고 비구니도 아닌데. 보통 사람은 절대 아니다. 묘한 느낌인데...
이윽고 회식자리가 다가왔다. 나도 그녀도 같은 생각인지 싫어하는 직장상사를 피해 멀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언니와 나는 훗날을 기약하며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해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쉽게 사람을 신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도와줄만한 일이 있다며 올 수 있냐는 언니의 전화를 받고 냉큼 승낙했다. 어쩐지 망설여지지가 않았다. 내 뜻이었을까? 또 다른 사람의 뜻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 인연이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힘들지 않아?”
“괜찮아?”
그녀의 질문은 쏟아졌다. 일하는 내내 언니가 자꾸만 나를 떠봤다.
“아니요 그런 거 잘 모르는 데요”
나는 동문서답 아닌 동문서답을 하며 자리를 피해 다녔다. 모르는 사람들은 쟤네 무슨 이야기 하나 싶었을 것 같다. 나는 걱정했다. 귀신을 보네 어쩌네 그 이야기 하는 게 틀림없는데 말을 해도 괜찮을까. 대체 왜 떠보는 거지? 있는 대로 말했다가 나를 미친년으로 보진 않을까...
결국 일을 마치고 나오는 내 뒤통수에 대고 그녀가 이야기 했다.
“살면서 한번은 도와줄 수 있어. 혹 귀신을 본다던가...”
"......"
아.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귀부인
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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