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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26. 목요일

귀부인








 

 





 

살면서 한번은 도와줄 수 있어. 혹 귀신을 본다던가..



!!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약 3. 그녀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곧 그냥 이야기하기로 결정했다. 도와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들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그녀가 내 이야기에 얼마나 공감해 줄 수 있는지 확인해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녀와 조용한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통 주변에 내 귀신보기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해주면 이렇게 반응한다.



미안한데 너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내 두서없는 이야기들을 그녀는 참 쉽게도 알아들었다. 다 알아듣다니!! 그 자체로도 참 반가운 일이다.

 

어렸을 적에는 그냥 그런대로 판단이라는 것이 섰다예를 들어 학창시절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에서 내가 잠을 잘 못자는 이유는 내 방안에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 방에서 종종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가 내 옆에서 막 싸우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네들 말은 내가 듣기에는 아주 아득히 들리고 무엇보다 너무 빨라서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불편해 하는 기색도 있었다.


내가 새벽에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듣기 싫었는지 그네들이 라디오를 탁 꺼버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무엇을 보는지 궁금한지 내 단발머리를 걷고 쳐다보기도 했다. 자려고 누워있으면 꼭 그렇게 맨발로 방을 또 창밖을 돌아다녔다. 새벽엔 왜 그렇게 창문을 두드리는지 모른다. 아마 내 관심을 원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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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 듯 말 듯 한 맨발로…. 동동동

 

그런 식으로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성인이 되었지만 내가 보고 듣는 것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정보 없이 세월만 흘렀다. 성인이 되면서는 나를 무서운 집에 재워주었던 할머니와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이 집에서 10년을 살았다. 이사 온 첫 날부터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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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BC드라마 <주군의 태양)


특히 안방은 엉망진창. 나는 바로 아직 가구도 들이지 않은 내 방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뭐 그 방도 엉망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기분 탓인지 이 집은 낮에도 어두컴컴했다. 할머니는 전기세를 아낀다며 집에 환하게 불을 켜는 것을 싫어하셨다.

 

어제는 모르는 할머니, 오늘은 청년, 그제는 어린 아이가 보였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옆자리에 와서 앉아있고 안방에서 훔쳐보고 샤워를 하고 있으면 계속해서 문을 열었다. 분명 문을 잠그고 샤워를 하는데 어떻게 자꾸 여는지 모르겠다. 자다가 눈을 떠보면 옷이 잔뜩 걸려있는 행거 위에 앉아 다리를 동동 거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밖에 나갈 때도 따라왔다. 대신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하고 수풀 사이에 숨어 빼꼼이 나를 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피곤한 밤. 하도 잠을 못자게 깨워대니 벌떡 일어나 



피곤해 죽겠다. 잠 좀 자자!!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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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훔쳐보면 귀엽기라도 하지… ..

 

얜가? 쟨가? 내가 보는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사람인가? 아마 그래서 모습을 바꾸어 가며 나를 자극하는 것인가?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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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은 그대로 바닥이었다. 이게 살아가는 것인지 살아지는 것인지... 떠밀리듯 여기저기 다녔다. 때로는 내 집보다 바깥이 훨씬 편안했다. 남들은 밤새며 시험 공부할 때 라면이며 치킨이며 야식도 잘 먹던데 나는 속이 부대껴 잘 먹지 못했다.


할머니는 내가 늘 새 모이처럼 밥을 먹는다며 영계를 재워놓고 부지런히 고아 먹였다. 밤을 새워가며 과제를 해야 할 땐, 기운이 없으니 뭘 먹긴 해야 했다. 하지만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모두 부대끼니 고르고 골라 플레인 요거트와 커피 정도. 주변에서는 속도 모르고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는 것이라 짐작하기도 했다.


계속 시달리던 나는, 최후에 이런 선택을 했다.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본 척 하자.

 

자꾸 관심을 두지 않으면 이 세계를 보는 눈이 무디어지지 않겠나? 혹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대화를 시도한다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 그냥 보이는 것을 받아들이자고 하는 것을 그네들이 안다면 눈이 더 확 열려버릴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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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덧붙였다.

 


요즘에는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사리분간이 안된다고 해야 하나? 갈수록 숫자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녀는 내가 말하는 장소와 공간까지 영상지원이 되는 듯 했다. 이런 종류의 대화를 하던 중에 가장 깊은 종류의 공감이었다. 하루 종일 지내본 그녀의 일터는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내가 가 본 어디도 편하지 않았는데 이 곳만큼은 들어서자마자 환하고 좋았다. 그리고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사람 이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가만. 살면서 한 곳이라도 그런 공간을 본 적이 있었나? 성당, 교회, , 그리고 우리집 모두를 포함해서

 

그녀가 나에게 제안을 건냈다.

 


해결할 생각이 있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생각이 있으면 너 나하고 일단 좀 지내자. 시간이 되니?

 


해결할 방법이 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신내림 받자 소리가 싫어서 단 한 번도 무당집을 드나들지 않았던 나였다. 기도 좀 해보면 어떨까 하고 슬쩍 제안하는 아는 스님의 이야기도 알아서 하겠다며 잘라냈던 나였다. 사실은 정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기도를 하는 등 나한테 제안하는 방법들이 모두 내 감각을 활짝 열어 버릴까봐 그것이 늘 두려울 뿐이었다.

 

마음속에는 결정이 섰다. 나는 주말마다 그녀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먼 거리를 움직여 그녀의 일터이자 집으로 갔다. 그렇게 나의 귀신보기 정리와 그녀와의 가벼운 동거가 시작되었다. 이때만 해도 곧 그녀와 아주 살림을 차리게 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으려나? ㅎㅎ

 

첫 날밤.

 

정신이 나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에게서 맑은 물 같은 것이 흘러나와 물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괜찮아?


 

하고 걱정스레 물어왔지만 전혀 나쁘지 않았다. 잠을 못 이루면 어떠나. 어차피 집에서 자는 잠도 그냥 그런데. 새벽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참 편안하다. 그녀가 어떻게 귀신보기를 정리해 나갈 것인지 자세한 절차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있구나. 당분간은 이대로 있자. 하고 마음먹었다







귀부인


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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