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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31. 화요일

김현진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몸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나를 스쳐 간 당신의 몸, 

당신의 이마를 한때 어루만졌던 누군가의 손, 

아스팔트 위에서 사정없이 깎여나가던 누군가의 피와 살,

철탑에서 얼거나 타들어 가는 몸들, 

당신이 나를 낚아채 주길 바라면서 

숨죽여 뺨을 대 보았던 당신의 쇄골.


몸은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은밀한 삶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 '몸'에 대한 이야기다.

 











저번에 제가 장난스럽게 쓴답시고 한 글에 모욕감을 느낀 분들 많으셨죠. 죄송합니다.



남자가 잘생기면 성희롱이 아니고 안 그러면 성희롱이다.”

 


이렇게 이 문장만 딱 떼고 보면 모욕감을 느낄 여지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그건 제가 여자라서 남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한 거지, 여자로 바꿔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남자 분들도 매력적인, 내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를 유혹하면 기쁘겠지만 전혀 내 취향이 아닌 여자가 나를 집적거리면 성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거나, 이 여자가 나를 얼마나 만만히 보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여자가 들이대면 누구를 막론하고 고맙다, 하는 분은 없을 테니까요


남녀를 불문하고 어느 분이 지적하신 것처럼 외모의 문제라기보다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들이대주면 고맙고, 전혀 공감대도 없고 매력도 없는 사람이 들이대면 치근거리는 걸로밖에 안 느껴지는 거겠죠. 저 역시, 다행히 많지는 않지만 되도 않게 들이댔다가 이불에 하이킥 한 적 많답니다. 이분들이 부디 저를 용서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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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살면서 좀 신기했던 건, 저렇게 성적으로 유혹하는 상대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을 때 화내는 남자가 엄청 많더라구요. 여자들도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 하면서 화내는 사람이 있겠지만, 여자는 살짝 꼬셔 봤는데 저쪽에서 영 시들하면, 아뿔싸 내가 별로 매력이 없구나 저 사람에게... 살을 뺄까? 엄청나게 창피스러운 마음과 함께 생각이 뭐 이렇게 가거든요. 주로 자책, 자학, 자기반성으로.

 

그런데 남자들은 야 같이 자자, 그랬는데 싫다고 하면 화를 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아 나랑 자기 싫다고, 그럼 실례했어, 하는 식으로 매끄럽게 물러나는 사람은 거의 못 본 것 같아요. 끈질기게 하자고 설득하다가 그래도 안 한다고 하면 결국 화를 막 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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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어요. 혹시 속아서 한 투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아직까지 남자가 돈을 내야 된다는 생각하는 여자도 많고, 여초 사이트에서는 그 남자가 나를 좋아하는지 알려면 그가 돈 쓰는 걸 봐라, 마음 가는 데 돈 가게 되어 있다, 이런 말을 현명한 충고라고 서로 주고받으니까요.

 

뭐 마음 가는 데 돈 가는 건 남녀를 불문하고 마찬가지겠지만 그런 것이 애정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는 생각은 저에겐 없어요.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등골 빼주느라 골수가 모자랄 지경이라니까요.

 

어쨌거나 같이 안 잔다고 화내는 사람들은 혹시나 데이트 비용 같은 거 부담하는 걸 일종의 화대로 여길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엔 공짜가 없으니까, 하는 생각도 있고 남에게 빚진 기분도 싫고 해서 저는 거의 데이트 비용도 반반씩 하거나 차라리 제가 더 내거나 하거든요. 그래도 화내는 건 똑같아요! 아마도 제가 거지같은 애들만 만난 거겠죠. 근데 제 친구들도 그렇게 버럭질 당한 애들 의외로 많아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게요. 제가 최근 라종일 교수님과 책을 낸 걸 아시는 분은 아실 텐데요, 교수님이 출판기념회를 지인들을 불러 여셨어요. 저도 참석했고요. 선생님이 연세가 있다 보니 참석자 중에 50대면 상당히 젊은 축이더라구요. 그 중에 60대 가량의 어떤 남자분이 언제 술 한 잔 대접하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감사하다고 인사했어요. 그건 그냥 예의 같은 거잖아요.

 

근데 연락처를 어떻게 아셨는지 계속 문자를 하시는 거예요. 언제 술 마실 거냐고. 그래서 교수님이 합석하시면 뵙겠다고 돌려서 거절을 했어요. 그러니까 에이 교수님 있으면 재미없다, 그리고 제 친구 중에 괜찮은 애 몇 명 데려오래요. 술 언제 먹을 거냐 하는 것 정도는 그러려니 했는데 제 친구 중에 반반한 애 데려오라는 건 갑자기 기분이 확 상하더라고요. 아니 그럴 거면 룸에 가시면 될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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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좋게 사양했지만 기분이 좋진 않았어요. 무엇보다 이런 제안이 실례가 될 수 있다고 전혀 상상하지 않는 태도, 자기가 거절당하리라고 전혀 믿지 않는 태도. 이런 건 참 싫으면서도 부럽더라구요.

 

바꿔서 생각해 보면 30대 초반 남성이 70대 여교수님과 책을 냈는데 그 출판을 축하하는 모임에서 어떤 60대 여성이 술 한 잔 대접하고 싶다, 그렇게 말하는 것까지야 괜찮죠. 그런데 연락처를 알아내서 언제 술 마실 거냐, 그리고 네 친구 중에 괜찮은 애 있으면 몇 명 데리고 나와라, 이렇게 남녀를 역전시켜도 참 곤란한 상황 아닐까요.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제가 입만 산 글 쓰지 말고 현장의 노동자 경험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녹즙을 배달한 적이 있어요. 22개월간 꽉 채워서 했으니 녹즙병장 만기 제대한 셈이죠원래 성격이 무진장 무뚝뚝하고 사실 수줍음을 많이 타는데, 그런 걸 오피스가에 녹즙 배달하는 일을 하면서 교정할 수가 있었죠. 친절하게 말하고, 모르는 사람이라도 먼저 인사하고 그런 거요.

 

경쟁업체가 많아서 노골적인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경비나 청소하시는 분들이 공짜로 뭐 주거나 그런 거 없다고 엄청 갈궜어요. 그런 사정을 아는 어떤 분은 혀를 차면서 그러시더라구요.

 


왜 이렇게 힘든 일 하냐, 요즘은 술집이 옛날처럼 막 터치하고 그런 거 없다. 다 장사 점잖게 한다. 그런 서 일하면 돈도 훨씬 많이 벌텐데

 


이런 충고를 주셨어요. 제가 한 많은 아르바이트 중에 술에 관련된 게 없는 건 결벽보단 이런 거예요. 진짜 좋아하는 건 일로 하고 싶지 않달까? 어쨌든 이 정도를 성희롱이라고 생각할 만큼 내공이 없진 않았어요. 게다가 그분은 진심으로 제가 돈을 많이 벌길 바래서 충고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이런 건 진심일 때 참 더 곤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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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어떤 차장님이 이러셔요. 직급이 있는 만큼 물론 유부남이셨죠. 날도 더운데 매일 고생하는 거 보니까 맥주 한 잔 사고 싶다. 그래서 말씀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어요. 그런데 그 분의 계획은 굉장히 구체적이더라구요. 자기 친구 두엇 데려올 테니까 저보고 예쁜 친구 둘만 데려오래요. 이건 뭐, 유부남들하고 단체 미팅하자는 거잖아요? 요즘 대학원이 바쁘다고 둘러댔지만 속으로 좀 씁쓸했어요.

 

이런 사람들한테 정말 부러운 건 그거예요. 거절당하리라 상상하지도 않는 것! 이 제안이 상대에게 실례가 될 수 있다고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 초 긍정의 힘! 이런 자신감을 절반만 빌려오고 싶어요. 그렇다고 젊은 애들한테 집적대는 데 쓸 건 아니고 쭈뼛거리는 성격 교정에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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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두께가 이 정도는 되는 듯...

 

글 읽어주시는 분들 중 남자분들에게 참 궁금해졌어요. 사실 남녀역전의 성희롱 상황이 없지 않을 텐데 공론화되는 경우가 드물잖아요? 그런 경험이 있으시면 좀 들어 보고 싶어요. 댓글로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하나 더 궁금한 건, 자자고 해서 싫다고 하면 버럭 화내는 남자분들 말이에요, 왜 화내는지 이유를 아시는 분 계세요? 아시는 분 있으시면 꼭 듣고 싶습니다!


저의 견문을 좀 넓혀 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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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입니다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