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5. 03. 31. 화요일











얼마 전 딴지에 올라왔던 ‘파검흰금 기사’의 요지는 개인의 서로 다른 시각의 차이를 인정해 주자는 것이다. 물론 객관적 사실은 파랑/검정이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과 내 시각이 옳다고 언쟁하는 건 무의미할 것이다. 파랑/검정으로 보이는 사람과 흰색/금색으로 보이는 사람, 그냥 서로의 다른 시각을 인정해 주면 된다. 앞선 두 편의 글에 올라온 댓글 중, 독자의 시각을 피력한 글에는 답을 달지 않았다. 서로 다른 시각을 그대로 인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아내와 대통령의 동생, 후보자격이나 있나?


미국과 같은 선거 시스템이 있는 나라에서, ‘전직 대통령의 아내’와 ‘대통령의 동생’이 다음 대선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이 과연 그들의 능력으로만 된 일일까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북한은 삼대에 걸쳐 권력을 세습하였고, 한국의 대형교회들 역시 세습을 통해 교회의 권력과 부를 다음 세대로 성공적으로 이전하였다. 이것처럼 혹시 미국 정치인들도 권력의 맛을 본 집안에서 대통령 후보를 계속해서 배출하는 것이 아닐까?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권력을 좋아한다. 권력 안 좋아하고 세상사 다 초월했으면, 정치 안 하고 산에 들어가 수도사가 됐을 거다. 그런데 미국인들에게 권력(power)이란, 개념은 사람을 지배(dominate)하는 게 아니라, ‘영향력(influence)’을 의미한다. 매년 <타임>지가 그 해를 대표할 100인을 선정할 때 쓰는 단어도 바로 영향력이다. 참고로 영향력은 자신의 철학과 능력을 바탕으로 세상과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2008년 당내 경선 과정에서 끊임없이 언급하였던 게 국민의료보험의 실행이었다. 이는 남편이었던 빌 클린턴이 약속했던 공약이었고, 대통령이 되자마자 자기 부인인 힐러리를 준비위원회 장으로 임명했을 만큼 둘 다 열정을 가졌었다. 당시 클린턴 정부는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의회여서 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었지만, 힐러리에게는 미국 국민 전체가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도록 하겠다는 의지와 비전이 있었다.(사실 국민 의료보험 실행한다고 대통령에게 떨어지는 거 없다. 보험 회사들은 다 반대하고, 공화당도 예산 따로 잡아야 된다고 반대한다. 일반 국민 중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건 그냥 대통령 말 한마디에 4대강 파헤치는 거랑은 좀 다른 이야기다. 이들은 권력을 통해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 하고, 자신들 비전에 따라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이 둘 다 능력을 입증 받은 사람들이다. 기자 질문도 파악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하는 낙하산 인사 정치인과 다르다. 국무장관직 4년, 플로리다 주지사 8년, 그리고 이전의 크고 작은 경력을 보면, 이들은 얼굴 팔아서 정치판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힐러리의 자서전에 따르면, 힐러리는 대학 시절 워싱턴에 가서 국회의원 인턴 생활부터 시작했다. 젭 부시 역시 주지사가 되기 전에 플로리다 주정부 각료직을 두루 수행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가 된 게 아니란 말씀이다.



힐-젭.jpg

전직 대통령의 아내인 힐러리 클린턴(좌)와 

전직 대통령의 동생 젭 부시(우)



여담이긴 한데, 미국 국회의원 가운데는 한국처럼 앵커 출신이 없다. 사라 페일린이 대학졸업 직후 아이다호 무슨 지방 방송국에서 일했다는데, 전국 방송도 아니고 말 그대로 동네 방송국이다. 거기다 정치 생활을 시작한 곳은 고향인 알래스카다. 하원이나 상원의원들이 인지도를 높이거나 경력을 쌓아가는 건 분과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다. 분과 위원회 활동(군사, 외교, 교육 등)을 하면서 그 분야 전문가가 되고, 텔레비전에 나와 코멘트도 하면서 경력과 인기를 쌓아가는 거다. 즉, 유명해지고 국회의원 되는 게 아니라, 국회의원 되고나서 전국적 인지도를 높여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들은 대통령의 아내와 대통령의 동생이기 전에 자신들의 지지 기반인 당의 이념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진보와 보수 진영의 대표로서 대선에 나서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두 개의 의견,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


이처럼 미국 대선은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양당의 힘겨루기다. 얼마 전 총선을 끝낸 이스라엘을 보면,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집권여당이라는 게 없고, 여러 정당이 연합정권을 형성한 후 총리를 지명한다. 미국 역시 군소정당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들이 차지하는 위상은 지극히 미미하다. 이렇게 미국 정치가 양당 체제로 가게 된 이유는 미국인들이 어떤 안건을 가지고 찬반을 갈라서 하는 토론에 익숙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학교 토론에서도 그렇고, 작문 과제물을 봐도 주제 하나를 던져 주고 여기에 반대 혹은 찬성하는지 밝히고 그 의견을 뒷받침할 근거와 이유를 제시하라고 한다. 그래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내거는 기본명제는 ‘미국을 강대하게 만들겠다’로 똑같지만, 어떻게 그 명제에 도달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은 상반된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 시 주요 쟁점에 대한 각 후보 자신의 방법론이 더 현실성 있고, 타당한 방법이란 걸 증명하기 위해 죽어라 토론을 벌인다. 예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인 반값 등록금이 2012년 오바마의 공약 중 하나였다면, 후보 토론회 중 사회자가 반값 등록금을 받을 수 있는 게 국립대학만인지 아니면 사립대학도 해당되는지, 세수를 어떻게 마련할 것이며, 다른 정부 부처의 예산안과의 충돌은 없는지, 이 정책으로 정부 적자가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물어볼 것이다. 후보들의 답변을 들은 뒤, 논리가 안 맞는 부분에 대해서 사회자도 다시 질문할 것이고, 약점을 잡은 상대편 후보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것이다. 만일 성공적으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 방송을 시청하고 있던 국민들은 말만 그럴듯하고, 실현 방안은 마련해놓지 않은 말 그대로 ‘비어있는 공약’임을 알게 된다.



201210230203165033.jpg

2012년 대선 당시 토론 중인 롬니와 오바마



다시 말해서, 약속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약속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이 집을 사면서 저금해놓은 금액과 연봉을 감안하여 적당한 가격의 주택을 구매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무리 집이 좋아보여도 주택 대출금 갚을 수입이 되지 않으면 다른 집을 골라야 한다. 그런데 집 좋아 보인다고 무조건 사면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책 방향


그러면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국의 기존 정당은 여야를 막론하고 전부 보수세력이며,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이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 역시 그럴까?


공화당의 경제정책은 ‘기업위주’로,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대한 막고자 한다. 특히 공화당 극우파는 ‘리버르테리안주의(Libertarianism. 자유지상주의)’에 가깝다. 이들의 논리는 경제를 시장 경제 논리에 맡겨야 튼튼해진다는 건데, 누구나 알다시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는 결코 대등해질 수 없다. 주도권을 쥔 것은 자본가이기 때문에 심판관이 없으면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경영을 할 공산이 크다. 그 와중에 직원 임금과 복지 문제는 뒷자리로 밀려날 것이다.


공화당은 이 심판관이라고 할 수 있는 연방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 하자는 거다. 이들은 기업의 세금을 낮추고 최대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미국이 부강해질 거라고 말한다. 기업이 잘 돼야 일자리도 창출되고, 국민 총생산량도 올라간다는 논리다. 그래서 이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최저 임금 인상에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또한 정부 예산으로 지원을 해야 할 국민의료보험 제도 역시 폐지하길 원하고 있다.



republican-democrat-battle.jpg



반면, 민주당은 연방정부의 경제 개입을 주장한다. 부시 때 기업이 받던 세금 인하 혜택도 오바마 정부에 들어서는 폐지되었고, 고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였다. 예를 들어,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을 하지 못하고(그래도 여전히 하지만), 최저 임금을 $10.25로 올리려고 한다. 또한 상위 1%의 세금을 올려, 일하는 중산층을 위해 쓰자고 한다. 공화당 입장은 미국은 자유로운 나라인데, 민주당의 이러한 규제는 그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뭐, 착취당할 자유가 자유라면 할 말 없지만, 암튼 그게 공화당의 논리다.


이번엔 외교 정책으로 공화당은 한마디로 강한 미국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다. 작년 러시아가 크리미아를 합병했을 때, 공화당 의원들은 미국이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러시아에 본때를 보여 주게 파병해야 한다는 말) 조지 W. 부시 정부 아래에서 두 차례 전쟁을 하고도 또 전쟁놀이를 시작하자니 정신이 제대로 박힌 건가 싶지만, 이들의 요지는 약하게 보이고 자꾸 양보하면 미국을 우습게 본다는 거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건데, 남의 나라 문제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공화당이 크리미아로 파병하자고 주장할 때, 민주당과 오바마는 러시아에 경제 제재 조치를 내리는데 그쳤다. 남의 나라에 일 생길 때마다 군대를 파견해서 미국 젊은이들을 죽게 할 만한 이유가 없다는 거다. 그리고 전쟁하려면 예산이 있어야 한다. 솔직히 전쟁에 쓸 예산이 있으면 자국민한테 쓰는 게 낫겠다. 게다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하였던 미군을 점차적으로 철수하고 있는 판국에 또 파병이라니,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건 아니올시다’ 였겠지.


이민 정책에 관해서도 두 당의 입장이 상반된다. 공화당은 불법 이민자는 다 되돌려 보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합법적인 절차를 통한 이민자만 받아주겠다는 거다. 불법 체류자는 운전면허 시험도 보지 못하게 하고(미국에서 운전면허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 임시로라도 합법적인 일을 할 수 없게 하자고 말한다. 이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어가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오바마가 이민 개혁을 위한 행정명령 담화에서 밝혔듯,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이 주로 하는 일은 정원사, 가정부 등 미국인들이 하기 꺼려하는 일들이다.



1231.jpg



민주당의 경우, 불법 이민자에 대해 공화당보다는 인도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불법 이민은 나쁘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족을 데리고 국경을 넘은 이들을 매정하게 추방할 수 없다는 거다. 특히 속지주의를 택하는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 땅에서 태어난 자녀가 있는 경우, 그들을 미국에 두고 부모만 추방함으로써 생이별하게 만드는 건 인도적 처사가 아니라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불법 이민자 문제를 떠나 이들은 미국이 이민의 나라이고, 이민을 통해 부강해진 나라이기에 그 전통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야 한다는 거다. 실상,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분야에서 외국인 박사 없이 미국 내의 인력만으로는 택도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구글 엔지니어 가운데 30%가 인도인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결론적으로 미 대통령 선거는 후보마다 약간의 견해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예를 들어 젭 부시는 공화당 후보이지만, 이민 정책에 관해서는 공화당 주류와 약간 차이를 보임), 대체적으로 상반되는 의견의 두 후보를 앞에 두고 유권자가 선택을 하는 것이다.



데모그래픽(demographics)이 대선에 미치는 영향


2009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인구 구성 비율은 백인이 약 65%, 히스패닉 16%, 흑인 13%, 아시안 5% 정도 된다. 따라서 2008년과 2012년 대선에서 백인이 전부 백인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인단을 뽑았다면, 오늘날 흑인 대통령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로 구성된 사회이기 때문에 데모그래픽(편집자 주-인구통계자료)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20140807220201_P5YtcodF_2008EB8584_EBAFB8EAB5ADEB8C80EC84A0.jpg

민주당과 공화당의 나와바리. 

파란색이 민주당. 빨간색이 공화당. 



공화당과 민주당의 지역 기반을 살펴보면, 공화당은 남부와 중서부 지방이고, 민주당은 동, 서부 연안 도시 지역이다. 미국 상위 1% 부유층은 대부분 공화당 지지자들인 반면,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 중엔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은 편이다. 공화당 지지자의 데모그래픽을 보면, 백인, 남자, 중장년층이 많고, 도시보다는 농촌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많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이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낙태라든가 동성 결혼에 대해선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반면 민주당의 경우, 백인 및 히스패닉, 유색 인종 등 다양한 인종 구성을 이루고 있고, 여자 및 청장년층이 많으며, 주로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만큼 다원화된 사회에 익숙하며, 진보적이다. 따라서 낙태와 동성 결혼에 대해 대체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렇게 갈라놓고 보면, 백인 남자는 모두 공화당 후보를 찍어야 할 거 같은데, 만일 이 백인 남자가 교육 수준이 높고, 독신이며, 도시에 거주한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다. 또한 히스패닉은 모두 민주당 후보에게 몰표를 줄 것도 같지만, 히스패닉 장년층은 가족 중심적 가치를 가진 매우 보수적인 집단이기에 낙태에 반대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미국 대선이 복잡해지는 거다.



대통령 선거와 거짓말


거짓말은 누구나 한다. 한국 정치인도 하고, 미국 정치인도 한다. 세상에 거짓말 안하는 정치인은 없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중 대선과 관련하여 거짓말을 했다가 들킨 사람이 있다. 바로 37대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공화당 후보)이다. 1972년에 치러졌던 닉슨의 두 번째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닉슨 측근의 지시로 비밀공작단이 민주당 본부 사무실에 몰래 침입하였다가 발각되었다. 바로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닉슨은 이 사건과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이 나서 결국 대통령직을 사임했다.(이 사건엔 국가 정보 요원까지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1.jpg

리처드 닉슨



우리는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건 알고 있는데, 사건 발생으로부터 닉슨이 사임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시간이 있다는 것은 잘 모르실 거다. 즉, 닉슨은 자기 양심에 따라 알아서 즉각 물러난 게 아니라, 버틸 만큼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1972년 6월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앞서 말했듯 닉슨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고, 민주당 사무실에 침입하여 서류를 뒤진 사실이나 도청 등에 자신은 관련되지 않았다고 똑 잡아떼었다. 1973년 1월, 대통령 취임식도 치렀다. 그해 국회 차원에서 주도하는 특별 조사 결과, 닉슨의 백악관 스태프가 워터게이트에 연루된 게 밝혀졌다. 한편 닉슨은 국회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국민 담화 발표를 통해 자신은 거짓말하는 사람 아니라고 '이 사람 믿어주세요'를 꾸준히 외쳤다. 1974년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백악관 녹음테이프가 공개되었고, 이 테이프 덕분에 닉슨이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했다는 정황이 마침내 포착되었다. 2년 동안이나 거짓말로 버티던 닉슨은 탄핵 일보 직전에 울며 겨자 먹기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 사건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닉슨 측이 숨겨오던 백악관 녹음테이프를 공개하라고 판결을 내린 것이 대법원이었고, 그의 탄핵에는 민주당 뿐 아니라, 공화당 의원들도 참여할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의 여자 문제


정치인과 여자, 너무나 오래된 레파토리라서 신선함이 떨어지지만 빼놓을 수 없는 메뉴 중 하나다. 존 F. 케네디에 이어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와 관계를 맺었던 마릴린 몬로의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비밀도 아닌 사실이다.


그들의 동생으로, 형들의 발자취를 따라 대통령직에 도전하려 했던 상원의원 테드 케네디가 1972년과 1976년 당내 경선에 나올 수 없었던 이유는 1969년에 발생하였던 자동차 사고에서 죽은 여자와 관련이 깊다. 1969년 7월 18일 저녁, 테드 케네디는 자신의 형인 로버트 케네디의 선거 스태프들을 위해 파티를 열었다. 테드 케네디는 그 중 여자 선거 스태프 중 하나였던 메리 조 코페크니를 데리고 파티장소를 떠났으며, 당시 파티에 남아있었던 사람들은 4명의 유부남과 5명의 처녀들이었다고 한다.



11.jpg
테드 케네디와 메리 조 코페크니



한편, 파티 장소는 마사의 포도원(Martha's Vineyard. 나중에 존 F. 케네디의 아들도 이 근처에서 비행기 사고로 죽음)이라는 섬이었고, 당시 <뉴스위크> 기사에 의하면 으슥한 곳으로 향하던 자동차가 물에 빠졌다고 한다. 테드 케네디는 탈출에 성공하였지만, 불행하게도 메리 조는 탈출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익사하고 말았다. 이것만 해도 문제지만, 문제를 더 크게 만든 건 사건이 일어난 후의 테드 케네디의 행동 때문이었다. 그는 신고도 하지 않은 채, 9시간을 숨어 있다가 경찰서에 출두하였다. ‘차파퀴딕 사건(Chappaquiddick Incident)’으로 알려진 이 비극적 사건은 이후 테드 케네디의 대선을 향한 야망에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


따라서 1972년, 1976년 당내 경선에 출마하지 않았고, 1980년에 이르러서야 당내 결선에 출마했지만 지미 카터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케네디 가문의 이름과 두 형의 명성, 그리고 자신의 오랜 상원의원직 경력 등 대통령 후보가 될 만한 자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추락한 도덕성은 영영 회복 할 수 없는 것이라 대통령 후보로조차 선출되지 못하였다.



22.jpg
존 에드워즈와 리엘 헌터



존 에드워즈 상원의원 역시 여자문제로 정치 인생에 타격을 입은 케이스다. 에드워즈는 2004년 민주당 당내 경선에 출마하였고, 그해 존 케리(현재 미 국무장관)와 함께 부통령 후보로 대통령 선거 캠페인까지 치렀다. 그리고 2008년에는 힐러리, 오바마와 함께 민주당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에 출마하였다. 노스 캐롤라이나 주립대학 로스쿨 시절 만난 아내와 4명의 자녀를 두었던 핸섬한 정치인 에드워즈와 자신의 캠페인 직원이었던 리엘 헌터와의 혼외정사 기사가 불거져 나온 건, 당내 경선 직전인 2007년이다. 이런 루머에도 불구하고 에드워즈의 아내는 변함없이 에드워즈의 캠페인을 후원하였고, 그는 아이오와 코카스에서 오바마에 이어 당 지지율 2위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이 스캔들의 영향 때문인지 아닌지 뉴햄셔에서는 지지율 3위로 떨어지고, 마침내 경선에서 사퇴하고 말았다.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서 탈락한 후, 그해 6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헌터와의 혼외정사 사실을 인정하였다. 결국 에드워즈는 정계에 복귀하지 못하고 본업인 변호사로 돌아갔다.



2000년 대선과 연방 대법원 판례



6.jpg

2000년 대선 직후 <뉴스위크> 커버



2000년 선거는 미 대선 역사상 가장 극적인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선거가 끝나고도 한 달이 지나도록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이는 플로리다 주의 선거인단 투표가 고어와 부시 중 누구에게 갈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33.jpg

앨 고어와 조지 W. 부시



일단 처음 개표가 끝난 상태에서 조지 W. 부시가 1,800여 표차로 플로리다 선거인단 투표를 모두 가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박빙의 차이 때문에 확인 차원에서 재검표를 했고, 327표차로 그 차이가 더 줄어들었다. 그래서 플로리다 주 법원은 고어가 지정하는 네 개의 카운티(도시 여럿을 합해 하나의 카운티가 되는 꽤 큰 행정 구역 단위)에 한해, 수작업을 통한 재검표를 허용한다. 모두 개표 할 때 기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보고가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이 수작업을 통한 재검표에 걸리는 시간이 장난 아니어서 플로리다 주 법으로 정해진 데드라인(선거일로부터 일주일 내 선거 결과가 나와야 한다)까지 시일을 맞출 수가 없었다.


따라서 고어는 플로리다 주 법원에 시일을 연장해 달라는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11월 26일까지로 연장된 이 데드라인을 넷 중 세 카운티는 여전히 맞추지 못했고, 플로리다 주장관은 조지 W. 부시를 승자로 선포하였다. 이에 고어는 기계를 통한 검표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어 플로리다 주 대법원에 수작업을 통한 재검표를 승인해 달라고 항소했고, 주 대법원은 항소의 이유가 타당하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부시는 12월 9월 연방 대법원에 플로리다 주 대법원의 결정이 위헌이라며 소송을 냈다. 선거를 끝낸 지 어언 한 달이 지났고, 주 정부가 연방 정부에 대통령 선거인단을 제출해야 할 데드라인이었던 12월 12일, 마침내 대법원은 5:4로 부시의 손을 들어줬다. 플로리다 주 대법원의 수작업을 통한 재검표 승인은 헌법 수정 조항 14조인 ‘모든 국민이 법에 의해 동등하게 보호를 받는다’를 위반한다는 게 연방 대법원 결정의 요지였다. (당시 보수색이 강하던 대법원이 부시를 선호하였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란 해석도 일각에선 있었다) 어쨌거나 재검표를 못하게 됐으니, 2000년 대선의 승자는 부시로 정해졌고, 부시는 미국 43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이로써 세 번에 걸친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한 모든 것’ 연재를 마친다. 생각보다 길어진 연재를 마지막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정치라는 것이 깨끗할 수만은 없기 때문에 미국 정치인들도 추문에 얽히는 일이 있다. 다만, 견제 세력(입법부, 사법부)이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어서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그 행동에 책임을 지게 만든다. 닉슨의 경우에서 봤듯이, 대법원의 테이프 공개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다면, 의회가 그의 탄핵을 결의할 의지가 없었다면, 그는 4년 대통령 임기를 마칠 때까지 백악관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힐러리와 젭 부시의 오점이라 할 만하다고 언급한 부분들이 사실 한국의 정치판을 오래토록 보아온 나에게는 큰 문제로 인식되진 않는다. 군함이 통째로 가라앉은 것과 벵가지에서 외교관 두어 명 죽은 거랑 비교할 수도 없다. 하지만 힐러리는 벵가지 사태로 인해 최근까지도 기회만 생기면 공화당의 공격을 받았다. 게다가 젭 부시가 관련되어 있는 부동산 회사 이야기도 그가 일하던 회사가 사기성 짙은 경영진에 의해 운영되었는데, 그런 회사를 위해 일했다는 게 정치인 양심에 걸리지 않느냐 이 정도의 뉘앙스다.


난 개인적으로 시스템을 믿는 편이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였다. 정치인을 건전한 권력의 바운더리 안에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시스템이다. 미국 사회가 좀 더 진보한 면이 있다면 바로 이 시스템 때문일 것이다.







 


지난 기사


대통령의 아내 vs 대통령의 동생

미국 대통령은 국민이 뽑는 게 아니다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