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5. 04. 02. 목요일

산하









夜續河道多 (야속하도다)    밤은 이어지고 물길은 여러 갈래


請臥待女人 (청와대여인)    눕기를 청해 여인을 기다리네


鬼家巫健羅 (귀가무건나)    귀신나오는 집 무당은 비단을 탐하고


靺盜謨駝拿 (말도모타나)    말갈족 도적은 낙타 잡아챌 궁리하는데


我兒瑟包拏 (아아슬포라)    나는 구슬 같은 아이 끌어안아 잡을 뿐


耳鼻消愾抒 (이비소개서)    코와 귀 쇠약해지고 분노만 터지는데


巨吏碍眼刺 (거리애안자)    높은 관리 가로막고 눈을 찌르고


衙針鬱痲子 (아침울마자)    관아 담 울창한 침들은 내 자식을 얽네






이러지는 않을 줄 알았다

 

세월은 빠르다. 그러나 아무리 빠르다 해도 그 길이가 줄어들지는 않는 법. 1년이란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작년 416일 이후 가슴을 치고 눈물바람을 하던 사람들 그 누구도 1년 뒤를 내다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보름이면 시신 수습은 끝날 것이고 몇 달 내로 줄줄이 사탕으로 이 사고에 책임이 있는 이들이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수갑을 찰 것이며 통곡하던 유가족들도 살 사람은 살아야지 하면서 자식들, 가족들 가슴에 묻은 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2015416일은 어떨까 물어 봐도 아문 상처를 간만에 후비듯 추모의 묵념이나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운운하는 공치사라도 나누는 날 정도로 가늠했을 것이다.

 

3220144.jpg

사진 - 좌린


하지만 오늘 나는 통한에 잠겨 말한다. 정말로 이럴 줄은 몰랐다. 정녕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참말로 이럴 줄은 알지 못했다. 새까만 바다에 생때같은 아이들과 우리 이웃들을 무더기로 몰아넣고 나서, 도무지 손 하나 쓰지 못하고 버벅거리고, 해경은 언딘만 찾고 앉았고 당일 날 사고 7시간 뒤에야 애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발견이 안됩니까?” 헛다리짚던 대통령께서는 에로배우도 아니면서 누구 옷 벗기겠다고만 벼르다가, 유족도 아닌 할머니 붙잡고 위로하시던 그 어지러운 시간도 1년이면 가지런해질 줄 알았고 추슬러질 줄 알았고 실타래가 풀릴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너무나 놀랍게도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음모론에 찬성하지 않는다. 국정원이 세월호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잠수함 충돌에 핵 폐기물 어쩌고를 들으면 귀를 씻고 올 준비가 돼 있으며 해경이 일부러아이들을 구조하지 않았다고도 여기지 않는다. 애먼 소리 허튼소리 다 집어치우고 나는 이 사건의 실체가 거창하고 치밀한 음모가 아니라, 손 쓸 수 없을 만큼 참혹한 무능과 사악하기까지 한 탐욕의 결과라고 믿는다. 아니 사건 초기부터 그렇게 믿어 왔다.

 

그러면 1년이면, 365일 가까운 시간의 덩어리가 우리 뒤에 놓였다면 최소한 그 무능과 탐욕의 실체는 밝혀지고 규명되고 처벌되고 폭로되며 열 번 돌이켜 반성하고 백 번 뼈를 깎아 다짐하고도 남는 시간이 아닌가. 그런데 대체 우리 앞에 있는 사실은 무엇인가. 우리가 새로이 알게 된 진실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하다못해 은행 창구에서 입금 사고가 나도 전 행원들이 집에 못가고 CCTV를 닳도록 보고 이유를 찾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돈을 세고 또 센다. 하물며 300여 명이 죽어나간 참사 1년이 지나도록 구조 책임을 맡은 이 나라의 정부가 어떻게 움직였고 무슨 대응을 했고 왜 그렇게 버벅거렸는지에 대한 백서 한 장 나온 게 있는가.

 

연합.JPG

출처 - 연합뉴스


지상 최고의 구조작전 한다고 뻥은 쳐 놓고 결국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그 막막함을 자백하고 이차저차 바뀌어 왔노라고, 그래서 지금은 동급의 배가 무너지면 이케 저케 행동할 것이라는 매뉴얼이라고 확립된 게 있는가. 선원들은 제대로 키를 돌렸다는데 왜 배가 균형을 잃었는지, 짐은 얼마나 실었고 평형수는 어느 정도를 뺐으며, 그 일은 어느 정도 관성이었고 그 관성에 실려 배 불리고 지갑 살찌운 놈들은 누구인지 그 근처까지라도 접근해 본 적 있는가. 왜 초기 구조가 무능의 극치였는지, 장비 문제라면 무엇이 부족하고 훈련 문제라면 어떻게 모자랐는지 도대체 지금 정리된 게 있는가. 복기된 게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거기다가 기껏 여야 합의로 구성된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정부 말대로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절규하는 가운데 세월호의 비밀을 함께 간직하고 있을 쌍둥이 배 오마하나는 고철로 팔아넘긴단다. 이즈음에서 작년 4월 온 나라를 울렸던 한 마디가 다시 호출되지 않을 재간이 있겠는가. “이게 나라냐이게 나라냐 말이다.


4546.jpg

사진 - 좌린

 

연합뉴스사장은 간부들 끌고 국기 게양식을 선포하고 군인이고 경찰이고 죄 태극기를 옷에 단다고들 지랄들이다. 험한 소리를 용서하라. 지랄들이다. 군인들 하얀 계급장이 공비의 과녁이 되어 숱한 목숨 빼앗긴 이후 몽땅 검정색으로 교체한지 얼마나 됐다고 형형색색의 태극기를 군복에 달고 나서겠다는 것인가. 그거 하나로도 한숨이 한바가지지만 대체 뭐가 자랑스럽다고 그 깃발을 드러내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태극기가 자랑스러우면 국민들은 달지 말래도 달고 들지 말래도 들며 뜯어말려도 그 아래에서 열정과 함성을 바치게 마련이다.

 

그런데 대관절 수백 명 국민의 목숨이 바다에 파묻혀도 행여 우리 대통령에 누를 끼칠세라 깔아뭉개고 교황도 위로하는 유족들을 못 본체 외면하던 정부 주제에 무슨 태극기를 어디다 갖다 붙이며 무슨 자긍심을 유도한다는 것인가. 바다에 묻힌 세월호에도 태극기는 걸려 있었을 것이다. 그 태극기를 건져 와서 코앞에 들이밀고 싶다. 자랑스러우냐? 경례하고 싶어 손이 안절부절을 못하겠고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태극기를 외면하지 않는 그 애국심이 등천을 할 것 같으냐? 동방에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 부르면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핑 돌겠다 싶으냐?

 

이럴 줄은 몰랐다. 1년이 지나도록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 나는 앞으로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지 않을 것이다. 비애국자라고 불러도 좋고 종북이라도 불러도 좋다. 태극기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태극기에 부끄러워서 이 역사적인 깃발을 이 오욕과 황사의 공기에 내놓지 않을 것이다.

 

a0107670_497bfab1b471d.jpg


태극기에 한 번 얼굴을 파묻고 들어보라. 태극기가 외마디 욕설을 퍼부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대표하는 나라의 주권의 소재인 국민 수백 명이 한날 한시에 떼죽음을 당해도 1년이 지나도록 그 이유는 도리도리인데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어떻다는 개소리나 하고 보상 받지 않았냐는 뻘소리나 난무하고 원인을 밝혀 보자는 시도는 시작부터 표류 상태인 나라라면, 태극기가 그 하얀 바탕이 벌겋게 물들지 않겠는가. 쪽팔려서, 미치고 팔짝 뛰도록 쪽팔리고 우세스러워서 그 건곤감리들이 뒤죽박죽이 되지 않겠는가.

 

지난 31일 밤, 가뭄을 달래는 봄비는 반가웠으나 광화문 광장에서 비닐을 덮고 누운 유가족들의 모습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서러웠다몰랐다정말로 몰랐다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1년이 되어가는 지금유가족들이 아직도 저 바닥에 눕게 될 줄은 몰랐다


IE001814601_PHT.jpg

출처 - 오마이뉴스 이희훈 기자


나는 그래도 이 나라가 이 정도까지는 아닐 줄 알았다. 이러지는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참 독한 상놈의 나라로구나. 태극기가 내사 마 못해먹겠다고 흑백적청의 가래침을 내뱉고 돌아설 나라였구나.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려 들지도 않고 오로지 자기 먹고 살 생각, 건사할 생각 밖에 없는 닭대가리의 나라였구나.








 산하

트위터 : @sanha88


편집 : 딴지일보 cocoa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