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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데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줄거리가 궁금하면 다음날 연예뉴스를 보면 돼’ 맞는 말이다. 드라마든 예능이든 다음날, 아니 방송 종료 후 한 시간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 수 있다. 유달리 어그로를 많이 끌었던 <쇼미더머니4>도 그랬다. 곳곳에 배치된, 다분한 어그로 덕분인지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어그로 좀 끈다하는 출연진은 물론 심사위원단까지 매스컴에 오르내렸다. 덕분에 <쇼미더머니>의 본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프로그램의 내용을 소상히 알 수 있었다. 바라지도 않았건만 본의 아니게 박히는 힙합 못에 한동안 고생 좀 했다.


여기저기 치이는 <쇼미더머니>에 하도 귀에 ‘힙합’을 때려 박아서인지 진저리가 날 때 쯤, 문득 내가 한참 좋아했던 랩퍼 ‘제리케이’가 생각났다. 한 때 나의 오빠 (아님) 였던 바로 그 제리케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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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 바로 이 사람.


‘제리케이’ 그 이름을 낯설어 할 분들을 위해 ‘클리셰’ 설명을 해보겠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출신의 랩퍼로 소울컴퍼니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소울컴퍼니 해체 후 독립레이블인 ‘데이즈 얼라이브’를 설립하였으나 현재는 ‘독립’ 타이틀을 벗고 수하(?)에 리코, 슬릭, 던 말릭을 데리고 있다.


사회 문제와 인간의 본성을 건들기 좋아하면서도 사랑노래는 엄청 달달하게 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가사를 쓴다. <마왕>, <다 뻥이야>, <화창한 봄날에> 등 ‘힙합 좀 안다’하면 한 번쯤은 제리케이 노래를 들어봤을 게다. <나는 꼼수다>가 한참일 때 <나는 꼼수다>와 <나는 꼽사리다>의 OST를 만들어주기도 하는 등 딴지일보의 독자들과도 아무도 몰래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이다.



한 번도 안 들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다는 바로 이 노래.


분명 좋아해마지 않지만 한동안 소식을 들을 수 없어 나조차도 잊고 살았던 제리케이의 이름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달달한 사랑 노래로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아님) 제리케이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이래선 안 되었다. 나의 제리케이가 어떻게 사는지 알아야만 했다.


예로부터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미 궁금해진바 어떻게든 제리케이의 현재를 알아야 한다. 그래, 인터뷰를 하자. 지금이다, 기획해야 한다. 인터뷰해야 한다.


그리고, 만났다. 오타쿠의 탈을 쓴 한 기자의 성정은 이렇게 결실을 맺었다.



(빠심으로) 만나버린 제리케이


챙타쿠(이하 챙):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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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케이(이하 K): 네, 반갑습니다.


챙: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만남은 제리케이의 매니지먼트사인 ‘스톤쉽’의 합정동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참고로 제리케이의 레이블은 ‘데이즈 얼라이브’고, ‘스톤쉽’은 매니지먼트만 맡고 있다)


K: Jerry K라고 합니다. 힙합을 하고 있고 ‘데이즈 얼라이브’라는 레이블을 이끌고 있습니다.


챙: 우선 결혼 축하드립니다.


K: 네, 감사합니다.


얼마 전 제리케이는 <결혼결심>이라는 곡을 내고 연애 끝에 결혼했다. 들어보면 제리케이의 결혼에 대한 소회를 느낄 수 있는데, 애인 있는 사람은 결혼하고 싶게 만들고, 애인 없는 사람은 당장이라도 옆에 누군가 생길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머리 속에서 제리케이의 새 노래 <결혼결심>이 BGM으로 깔리는 가운데,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가기로 했다.



심심하면 ‘빡’치는 랩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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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 보통 제리케이를 두고 ‘가사를 잘 쓴다’고 하죠. 다른 랩퍼들 보다 본인이 가사를 잘 쓴다고 생각하는 포인트가 있다면요?


K: 남들이 안 하는 얘기를 하는 게 큰 것 같아요. 남들은 안 하지만 저는 하는 얘기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 얘기들이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나 봐요. 그게 매우 직설적이어서 사람들이 그런 얘길 많이 해주셨던 것 같아요. 이젠 재미가 없어서 지나치게 직설적인, 기사에 가까운 직설적인 화법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음 앨범을 작업하는 중이라 다음 앨범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나올진 잘 모르겠어요.


챙: 사회문제를 다루는 가사를 자주 쓰시죠. 사회비판을 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K: 관심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해요. 쟤는 작정하고 사회비판한다. 근데 저는 아니거든요. 랩이라는 게 그렇더라고요. 평소에 자기가 깊이 느끼는 거, 인상 깊게 느끼는 거, 약간 격해졌던 감정이 자연스럽게 가사로 나오는 거예요.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고, 거기서 느끼는 감정들과 생각들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거든요. 제가 사회비판 가사를 쓰려고 쓴다기 보다 ‘쓰여진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챙: <마왕>, <다 뻥이야>, <시국선언> 등 사회문제를 중심으로 가사를 자주 쓰시잖아요. 사회를 비판할 때 어떤 감성으로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K: 그냥 있는 그대로의 현재 감정에 충실해서 써요. 사회적이거나 부조리한 것에 ‘빡쳐’ 있을 땐 거기에 완전히 몰입해서 쓰고, 뭔가 핑크핑크에 몰입된 시즌엔 사랑 얘기를 자연스럽게 쓰고. 어떻게 하려고 쓰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와이프한테도 일침 놓고 이러진 않을 거 아니에요? 진중권 씨도 루비한테는 엄청 러브러브 하시잖아요. 사람한테는 굉장히 다양한 면이 있죠. 저는 다양한 면을 극대화 시키고 거기에 몰입했을 때 자연스럽게 가사가 나오는 타입이라서요.


챙: 노래마다 주제가 있잖아요. 주제를 잡는 방법이 궁금하거든요. 노래를 만들 당시에 한참 관심 있는 거여서 하는지.


K: 그렇죠. 평소에 어떤 아이디어들이 떠오르면 메모를 잘 해요. 예전에 ‘Nothing Book’이라고 한때 유행했던 게 있어요. 아무것도 안 쓰여 있는 공책에 막 적었었죠.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면서는 스마트폰에 많이 썼고, 지금은 에버노트에 써요. 생각날 때 마다 써놨던 것들이 어느 정도 쌓이고 틀을 갖추고 괜찮은 비트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곡으로 나와요. 퍼져있던 아이디어가 합쳐지는 느낌이에요. 평소에 그런 생각들을 계속하고, 계속 관심이 가고, 자꾸 빡치고, 자꾸 생각을 많이 하고.


챙: 자꾸 빡치는 게 포인트네요.


K: 네. 자꾸 빡치는 게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제리케이가 빡쳐서 쓴 노래의 흔한 예


굉장히 자주 ‘빡치’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 이렇게 다방면의 사회문제를 비판할 리 없다. 사회의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며, 자주 빡치는 것을 아이덴티티로 삼아 (아님) 살아가는 제리케이와 ‘최근에 빡쳤던 얘기’를 해보기로 했다.


챙: 한 달에 한 번씩 앨범을 발표하던 때도 있었는데, 요즘 앨범도 잘 안 내시고 공연도 적게 하고, 요즘 통 볼 수가 없네요.


K: 결혼 준비하는 게 별거 없는 것 같아도 굉장히 신경 쓸 게 많아요. 결혼하고 나서는 같이 사는 것에 적응하느라고 음악작업에 몰입을 못한 게 있죠. 그래서 제가 작년 9월에 앨범을 내고 그 사이에 싱글만 몇 개 냈던 거예요. 그래도 지금 정규앨범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챙: 음원이 뜸한데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는지?


K: 음원이라는 게 ‘롱테일 비즈니스’에요. 제가 소울컴퍼니부터 힙합을 10년 했으니까 음원이 굉장히 많아요. 그 음원들이 다 제 이름 앞으로 들어오고 있고 저작권 수입도 있으니까요. 크게 욕심 부리지만 않으면 생활할 수 있는 정도는 되니까. 근데 ‘롱테일’이라는 건 끝에 가서는 굉장히 작으니까 계속 뭔가를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계속해서 작업하는 거고요.


챙: 공연도 안 하시는 것 같다.


K: 제 앨범이 나왔을 때 쇼케이스를 하는 것 같이, 시기적인 게 필요한 것 같아서 안 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리고 <쇼미더머니> 이후로 중급의 공연들이 싹 사라졌어요. <쇼미더머니>에 나와 몸값이 올라간 랩퍼들이 많아져서 인지 아주 큰 규모, 악스홀(스탠딩 2,000명, 좌석 1,090명 수용)이나 브이홀(스탠딩 600명, 좌석 252명 수용) 정도의 큰 규모의 공연들은 많아졌지만, 중급 공연들이 싹 없어졌어요. 저도 요즘 공연의 섭외가 잘 안 되고 있는 걸 느껴요. 그래서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잘 없지 않나싶네요.


제리케이를 자주 볼 수 없었던 게 내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나보다. <쇼미더머니>에 나오지 않는다고 <쇼미더머니>의 영향을 안 받을 순 없는 모양이었다.


K: 사실 제가 한동안 <쇼미더머니4>에 대해 빡침모드였어요. 요즘은 <쇼미더머니>와 미디어, 현재 힙합씬에 대한 얘기를 가사로 많이 써요.


챙: <쇼미더머니> 시리즈가 1년에 한 번씩 나오잖아요? 그 때마다 빡친다는?


K: 요번이 유독 심했어요. 도를 넘어섰죠. <쇼미더머니>에 세 번까지 속았으면(시즌이 세 번을 넘어갔다는 뜻) 이미 끝난 거라고 봐야 하는데, 또 속고 나가는 사람들의 자기변명이 너무 보기 싫었어요. 내년에는 되레 초연해져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또 모르죠. <언프리티 랩스타>가 시작됐으니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쇼미더머니4>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그로를 위한 방송이었다. 오디션부터 기행을 일삼던 블랙넛을 주요 소재로 배치하고, 그 바쁘다는 스눕독을 앉혀놓고 개싸움을 하는 등 한 회라도 ‘자극’을 주지 않거나 욕을 먹지 않으면 어색할 정도였다. 심사위원으로 나와도 모자랄 피타입이 나와서 이슈가 되나 했더니 그냥 그렇게 사라졌다. 버벌진트와 산이는 블랙넛을 탈락시킨 후 번복을 하는 등 ‘오디션’ 프로그램의 기본을 어기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정상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면 주목을 받아야할 결승전이 어그로 인사가 사라진 탓에 싱겁게 끝났다. ‘화제’, ‘자극’을 빼면 뭐가 남는지 궁금한 시즌이었다.


한낱 시청자도 이러는데 업계 종사자인 제리케이는 더 빡칠만 했다.



각 잡고 말해보는 힙합 예능과 힙합씬


챙: <쇼미더머니> 얘기를 더 해볼게요. <쇼미더머니1> 때 보이콧하셨잖아요.


K: 네.


챙: 그 이후로 벌써 3년이 됐는데, 3년 동안 출연제의가 온 적 있었나요?


K: 있죠.


챙: 진짜요? 어떻게 하셨어요?


K: 일단 <쇼미더머니1> 때 저랑 화나가 문제 제기를 했어요. <쇼미더머니> 제작진이 화나한테 오디션 참가자로 오라고 했거든요. 지금은 그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돼버렸지만 그 당시엔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10년 정도 나름대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면서, 언더그라운드에서 자기음악 즐겁게 하는 사람한테 오디션을 보러오라니요. 그리고 심사위원이 누가 될 지 모르겠지만, 드렁큰타이거가 온다고 해도, 드렁큰타이거 앨범에 화나가 피쳐링을 한 적이 있거든요. 자기가 피쳐링해줬던 사람이 본인을 심사하고 있는 게 무슨 꼴이에요. 그거에 대해서 저랑 팔로알토가 제일 격하게 반응을 했었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화를 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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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당시에 <쇼미더머니> 제작진이 만나자고 했었어요. 저랑 팔로알토랑 그거에 대해서 반대의견을 가졌던 분들이랑 얘기를 한 번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좋다고 했어요. 근데 갑자기 그걸 방송에 쓰겠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저는 그러면 할 생각이 없다고 했죠. 왜 내가 거기에, 악마의 편집이 될 게 분명한 데 안 나갔었죠.


<쇼미더머니2>는 지나갔고, <쇼미더머니3> 할 때 미팅을 하자고 하더군요. 갔어요. <쇼미더머니3>를 기획중인데 랩퍼들의 조언을 듣고 싶다고 했어요. 저는 가서 “당신들이 힙합에 대해서 모른다. 이해가 전무하다 이해가 적은 게 아니라 없으세요.” 이렇게 대놓고 얘기를 했죠. 결국은 저한테 참가자로서 출연해줬으면 좋겠다고 하고, <쇼미더머니2>에 스윙스도 나왔는데 너는 왜 못하냐는 투더라고요. 제가 느끼기에는 그랬어요. “나는 당신들이 체육관에 사람들 줄 세워놓고, 심사표 들고 다니는 꼴은 못 보겠다. 그거 빼고 <나는 가수다>처럼 경연중심으로 간다면 나는 할 생각은 있다”라고 했죠. 그거 아니면 안 한다고 했어요. 뭐, 그 포맷을 버릴 수 없는 모양이더라구요. 이해는 됐지만 계속 싫었죠.


그 후로 한 번 더 미팅 제의가 왔었어요. <쇼미더머니>가 아닌 다른 힙합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근데 포맷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해서 가서 똑같은 얘길 해줬어요. 그리고 나온 게 <언프리티 랩스타>죠. 이젠 좀 징그러워요.


조금 격앙 된 제리케이의 목소리에 간접적으로나마 그 당시 제리케이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챙: 한 팟캐스트에서 <쇼미더머니>를 ‘재벌’에 비유하셨죠. 혹시 없어져야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인지?


K: 정확히 말하면 <쇼미더머니>는 개발독재 같은 거고, 거기에 나와서 수혜를 본 아티스트들을 재벌처럼 느끼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시스템에 있어서, 전체적인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는 정책들이 없어져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 정책이 잘 되기를 바랄 뿐이지. 지금처럼 파괴적인 방향이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말이죠.


챙: 없어질 필요는 없는데 방향을 바꿀 필요는 있다.


K: 그런 존재,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이 없어질 수는 있어요. 그런데 힙합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없어질 필요는 없죠. 기왕 힙합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프로그램이라면, 개발독재가 잘못됐다고 비판을 하듯 주장하는 거예요. 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밑에 있는 자원들 다 빨아들여서 고사시키지 말고.


챙: <쇼미더머니>가 생태계를 해치고 있다는 거네요.


K: 그렇죠.


챙: 본인의 트위터에다가 “<쇼미더머니>도 예능인데 왜 그렇게 날이 서 있냐”라는 식의 댓글을 다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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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일단 <쇼미더머니>가 예능을 표방하지 않았어요. 굉장히 사명감 있게 ‘힙합의 대중화’를 표방하고 나선 프로그램이죠. 플레이어들이 예능으로 생각하고 나갔다면 스눕독 앞에서 싸이퍼 할 때 개싸움하고, 또 거기에 대해서 화낼 이유가 없어요. 예능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앞에서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는 거잖아요. 근데 그 안에서도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고, 어떤 경연에서 시스템에 대해서 랩하고, 욕했죠. 플레이어들은 예능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목숨 걸고 나가죠. 마이크로닷 같은 경우는 싸이퍼 하고 나서 너무 재밌다고 했잖아요. 차라리 그게 멋있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화낼 거면 그게 뭐하는 짓이에요.


그냥 까놓고 여기 돈 벌러 나왔고, 자기는 이게 멋없다는 걸 인정하면 오히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거기에서 멋있는 척 하는 게 정말 별로에요. 전반적으로 비슷해요. 예능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면 가서 예능하고 왔으면 좋겠고, 그게 아니면 자기들이 얼마나 멋없게 비춰지고 있는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자기들이 얼마나 멋없는지 모르는 것 같아요. 한 명이 멋없는 행동을 하면 다 쟤 멋없다고 할 수 있지만 전체 절반이 멋없는 짓을 하고 있으면 둔감해지잖아요.


챙: 내년엔 <쇼미더머니5>, 내후년엔 <쇼미더머니6>가 나올 텐데, 앞으로 <쇼미더머니>는 어떻게 될까요?


K: 뭐, <쇼미더머니>에 나갈 사람은 계속 나가겠죠. 이번에 지원자가 7천 명이었다던데, 곧 1만 명이 되겠죠. 나갈까말까 고민하던 사람들도 계속 나갈 거고요. 안 그랬으면 좋겠어서 제가 계속 떠드는 거지만 그냥 그렇게 되겠죠. M.net은 저보다 훨씬 힘이 센 집단이니까.


인터뷰 내내 제리케이에게서 <쇼미더머니>에 대한 염증을 느낄 수 있었다. 힙합씬에서 10년을 넘게 보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염증이었다.


앞에서 조금 언급을 하긴 했지만, M.net의 두 번째 힙합 예능 ‘대작인 <언프리티 랩스타2>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 지 궁금해졌다.


챙: <언프리티 랩스타2>가 시작됐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K: 최악이죠. <쇼미더머니>가 -10이라고 생각하면 <언프리티 랩스타>는 -100이에요.


챙: 어떤 부분에서?


K: 일단 그거야 말로 예능프로그램이죠. 절대로 음악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쇼미더머니>는 그래도 음악 프로그램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긴 해요. 후반부에 보기 싫은 장면들을 자꾸 넣긴 하지만, 무대를 풀로 보여주고 음악으로서 접근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쇼미더머니>는 음악 프로그램인데 질 낮은 예능을 섞으려고 애쓰는 프로그램 정도로 볼 수 있지만, <언프리티 랩스타> 음악을 가지고 질 낮은 예능을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그걸 다루는 방식이 음, 캣파이팅이라고 하나. 여자들끼리의 신경질 싸움에 초점을 맞추죠. <도전 수퍼모델>이랑 똑같이 하잖아요. 음악 프로그램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실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언프리티 랩스타>는 실력이 보장되지 않은 랩퍼들이 싸우는 모습으로 흥미를 끄는 프로그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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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나가서 유명세를 얻고 돈을 조금 더 벌 순 있겠죠. 그게 얼마나 자신을 착취하는 행위인가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얘기를 만약에 그 사람들이 듣는다면 꼰대 같은 소리하고 있다고 할 지 모르지만, 전 그 프로그램은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해요.


챙: <언프리티 랩스타2>의 미래에 대해서 한 마디 하자면?


K: 글쎄요. <언프리티 랩스타1>만큼 이슈를 만들겠죠.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각 캐릭터에 대한 가이드라인 같은 게 있었다고 들었어요. 제작진이 누군가를 섭외하면서 당신은 이러이러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뭐, 소문이니까 신빙성이 없을 수도 있죠. 어쨌든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인데다 많은 자금과 자극들로 흥미를 끌겠죠. 그리고 또 스타가 한 명 탄생하겠죠. 그게 다일 거라고 봐요. 전 <쇼미더머니>는 할 거면 잘 했으면 좋겠는데 <언프리티 랩스타>는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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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과 여혐 ‘클리셰’


K: 게다가 <언프리티 랩스타> 이후에 출연자들이 하는 언행이나 제이스의 신곡 같은 것들을 보면, 요즘 말로 하면은 여혐이죠. 여혐 컨텐츠. 정확히 여혐 컨텐츠에 해당된다고 생각해요.


챙: 여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얼마 전에 본인의 노래 <You're Not A Lady>의 가사와 관련해서 반성을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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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네, 제가 반성의 시간을 가졌죠.


<쇼미더머니4> 출연자인 송민호가 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를 내뱉은 뒤로 국내힙합에 대한 ‘여혐논란이 있었다. 가사의 주인공인 송민호가 (사과답지 않은) 사과를 하긴 했지만, 비단 송민호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여혐이 힙합씬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소라는 점이다.


힙합씬에서의 여혐 문제가 붉어지던 중, 제리케이도 본인의 지난 노래들에 여성비하 요소가 있다는 트위터를 받고, 반성을 한다. 위와 밑에 올라온 트위터는 그에 대한 제리케이의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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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 저도 처음에 그 노래를 들었을 때 조금 불편했던 게 사실이에요. 우선 반성을 한 이유가 궁금해요. 


K: <쇼미더머니>에서 송민호 가사로 인해서 힙합에서의 여혐논란이 일어났잖아요. (송민호의 것처럼) 질이 낮진 않을 수도 있지만, 나도 분명히 불편한 가사를 썼을 텐데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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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호는 <쇼미더머니4>에 출연해 위와 같은 랩을 했다.

결국 산부인과협회에 공식 사과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것에 대해서 얘기를 한 번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섯 <새끼손가락>이라는 노래의 가사에 대해서도 언급했던 거죠. 송민호 사태가 터졌을 때 바로 ‘이런 건 문제다’라고 하는 건 물타기 같고, 발 빼는 느낌 같아서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 와중에 <You're Not A Lady>의 가사도 여혐의 일종이라는 트윗을 몇 번 봤죠. 정말 그런가? 저는 그거에 대해서는 생각을 미처 못했거든요. 여성분들이 더 좋아해주는 노래고 저도 그럴 의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트윗을 보면서 이럴 수도 있겠다 싶었죠. 뭐랄까 모종의 반성의 시간을 가졌죠. 그런 생각을 계속 해오던 와중에 어느날 마침 그 트윗(<새끼손가락>과 <You're Not A Lady>가 여혐의 일종이라는)이 올라왔고 지금은 이 얘기를 해도 되겠다 싶었죠.



그리고 ‘힙합은 원래 그래’라며 그런 행동을 쉴드치는 게 무식한 짓이라는 건 여러 평론가분들이나 칼럼들을 통해서 다 나왔다고 생각해요. 조심해야 하는 게 아니라 마인드셋에서 뭔가가 뒤틀려있다는 걸 인식을 해야 하는 거지 표현을 조심해야 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얘기까지 좀 더 하고 싶었는데 트위터로 하긴 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조심보다는 평소 하는 생각들에서 ‘차별’을 제거해나가는 ‘자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전 나름대로 성찰을 하고 나름대로 계속 갈고 닦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도 남아있구나, 그런 거를 발견했죠. 좀 더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게 맞겠죠. 


사람이라면 (범죄가 아닌) 잘못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잘못을 부인하고 몰랐다는 식으로 항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중에라도 그 잘못은 ‘잘못이다’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 잘못을 인지하고 인정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그 점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챙: 3년 전에 화제가 됐던 제이통의 <찌찌뽕>이라는 노래 아시죠.


K: 네.


3년 전쯤, 랩퍼 제이통이 <찌찌뽕>이라는 제목의 노래는 낸 적이 있다. <찌찌뽕>은 노래의 제목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찌찌’가 나온다. 더 야한 노래도 나오는 마당에 ‘찌찌 정도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뮤직비디오에도 계속 여성의 ‘찌찌’가 나온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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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통의 실수로 모자이크가 된 클린버전이 아닌 원본(유두가 그대로 노출 된)이 퍼졌다.


뮤직비디오 속 여성 둘(사진에서 가면을 쓰고 있는 여성 둘)은 유두를 포함한 자신의 전라를 숨김없이 노출한다. 서로의 가슴을 만지기도 하고, 제이통을 비롯한 타인들이 가슴을 만지게도 한다. 이 뮤직비디오는 당연히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내가 제리케이에게 이 질문을 한 이유는 하나였다. <찌찌뽕>의 뮤직비디오가 한창 이슈일 때 제리케이가 트위터에 이렇게 썼기 때문이다.


“가식 없는 제이통”


“좀 지나치고 충격적이고 거부감이 든다고 충분히 느낄 수 있고, 그게 현 상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겠죠. 동시에, 일종의 극단을 보여줌으로써 논의의 경계를 확 넓혀주는 역할도 있을 거 같아요.”


챙: 제이통의 <찌찌뽕>을 보고 트위터에 썼던 말(바로 위에 있는)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K: 저는 그 곡이 좋았거든요? <찌찌뽕>은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곡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예술이 다루지 못할 부분이 없고, 표현하지 못할 부분도 없잖아요. 다만 송민호의 가사가 논란에 휩싸인 건 완성도가 부족했고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폭력적인 것이든 음란한 것이든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는 것들을 예술로 펼치려면 전제조건으로 ‘그 자체로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전체 전개에 있어서 이게 반드시 필요하고, 이게 있어야 설득이 된다던가. 전체적으로 납득할만한 하면 저는 오케이거든요.


챙: <박쥐>에 성기노출이 나오는 것처럼?


K: 그렇죠. 송민호의 가사 논란 때 ‘영화에서는 괜찮으면서 음악에서는 왜 안 돼’라는 말이 있었는데,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곡에 완성도가 없었기 때문에 논란이 있었던 거예요. 저는 <찌찌뽕>이라는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보여준 파격과 관념을 파괴하려는 어떤 의지가 좋았어요.

여성에 대해서 묘사하는 장면들이 지나치게 자극적이죠. 그런데 그거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거기에 대해서 기분이 나빴던 여성분들이 많이 있을 건데, 그 책임은 그 노래를 좋아하고 응원했던 사람들이 같이 져야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그런 부분일 수도 있겠죠. 어쨌든 저는 그 곡과 뮤직비디오가 하나로 어우러져서 나름대로 맥락이 있는 작품이 됐다고 지금도 생각을 하거든요. 거기에 나온 배우들도 어디서 잡혀온 게 아니고 동의 하에 섭외가 된 거고요. 


챙: 노래의 주제가 ‘고환’이었어도, 생각을 하셨겠죠?


K: 그렇죠. 너무 당연한 것 같아요.



랩퍼 제리케이


챙: 노래 얘기를 해볼게요. 본인 노래 중에 가장 아끼는 노래가 있다면?


K: 몇 달 전까지는 <다 뻥이야>였어요. <다 뻥이야>가 가장 최근 앨범이었고, 제일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해서 좋아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다음 앨범을 작업하고 있으니까요. 예전보다 더 좋은 거를 하고 싶은 게 뮤지션의 본능이잖아요.



브릿지랑 훅에서 부인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챙: 아무래도 소울컴퍼니 출신이라, 소울컴퍼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저는 소울컴퍼니하면 ‘부드러움’이 떠올랐어요. 그 속에서 유독 사회비판 가사를 쓰던 제리케이님이 특별했다고 할까. 언론정보학과 출신이라서 그러셨나요?


소울컴퍼니, 제리케이가 속했던 소울컴퍼니는 2004년 키비와 더 콰이엇을 중심으로 총 16명의 뮤지션이 모여 만들어진 힙합 레이블이다. 멤버의 변화는 있었고 비판도 있지만, 첫 컴필레이션 앨범 <The Bangerz>를 시작으로 2011년 해체하기 전까지 한국 언더그라운드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고 있다. 소울컴퍼니 출신으로는 더 콰이엇, 매드클라운, 랍티미스트, 화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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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컴퍼니의 마지막 단체사진


K: 그런 측면이 없진 않겠죠. 거기에서 방법론이나 언론윤리를 배웠으니까요. 그래서 그 때 하던 꼴이 마땅치 않았던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제가 소울컴퍼니 때 썼던 가사들은 ‘겉핥기’라고 생각해요. 그 때 좀 더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가사를 썼다고 생각해요. 그 노래들도 자체로 또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요. 그러니깐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으로의 의미는 있지만, 더 깊이 파고들지 못했던 게 아쉬워요.


챙: 소울컴퍼니는 그 당시에 하나의 아이콘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절실한 사람들이 보기에 ‘솔컴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하나의 네임드(?)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K: 뭐, 그렇죠. 근데 마냥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게 제가 소울컴퍼니의 창립멤버거든요. 소울컴퍼니를 시작할 때 CD 찍는 비용 백만 원을 모으기 위해서 멤버들이 왕복 세 시간짜리 공연장에 가서 사람도 아무도 없는데 공연하고, 공연비로 받은 5만 원은 적립해놓고 김밥천국가서 김밥 사먹고 하던 이런 과정이 있었다는 건 모를 거예요. 결코 쉽게 하진 않았죠. 어떤 분들이 보기엔 저희가 개발독재 시대에 적산기업으로 쉽게 돈 벌어놓고, 지금 와서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노력하라고 하는 꼴로 보이겠죠. 뭐, 어떻게 보면 맞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때보다 지금이 힙합에 대한 관심과 힙합시장이 훨씬 커요. 경쟁자가 많아져서 어려워졌다고 볼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 때는 랩퍼들이 ‘돈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어요. 티비에 나오지 않는 이상 그걸로 성공한 사람을 본적이 없기 때문에.


얘기를 하다보니까 옛날 대기업 회장들이 하는 얘기랑 비슷하기도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저희가 어디에서 투자를 받아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다들 금수저라서 쉽게 쉽게 돈을 써가면서 한 게 아니에요. 소울컴퍼니는 정말 자수성가한 타입이에요. 멤버들이 CD샵에 가서 입고하고, 정산 받고, 이런 식으로 없던 것을 개척해서 자수성가 한 거죠. 어쨌든 지금은 지금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고, 그 때는 그 때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게 다 솔컴빨, 솔컴덕 아니냐고 하면, 어떡하겠어요. 맞는 건 맞는 거니까. 특별히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챙: 소울컴퍼니 시절과 달라진 게 있다면?


K: 지금 생각하면 저는 소울컴퍼니 때 ‘힙합’을 하지 않았어요. 그냥 ‘랩’을 했어요. 힙합이 뭔지 몰랐었던 것 같아요. 그냥 랩하는 게 좋았어요. 랩은 나름대로 잘 했고, 남들하고 다른 점이 있어서 살아남은 거라고 생각하지 제가 힙합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소울컴퍼니를 나와 혼자 ‘데이즈 얼라이브’를 하고 2집 만들고 믹스테입 만들고 하면서 깨달은 거죠. 아직 멀었지만 저의 깊이가 어느 정도 깊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삶의 방식으로서의 힙합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려고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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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컴퍼니 초반에는 ‘우리가 이것을 해내야 한다’라는 보이지 않는 구심점이 있었어요. 어느 순간 각자 보는 것이 달라지고, 시야와 시간이 다 달라지고, 가고자하는 욕망도 달라졌죠. 지금은 같이 모일 수 없다고 생각해요. 행사에선 각자 자기공연하고 갈 수 있겠지만, 옛날처럼 모여서 같이 노래 부르는 게 될 것 같진 않아요. 이제는 결이 다른 사람들이 됐다고 생각해요.


챙: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끝까지 소울컴퍼니에 남아계셨네요.


K: 저한테 소울컴퍼니는 ‘20대’였거든요. 20대를 시작하면서 소울컴퍼니를 시작했고, 20대가 끝나면서 소울컴퍼니가 끝났기 때문에. 창립 멤버였기도 했고요. 음악은 계속 하고 싶었지만 소울컴퍼니 이후에 둥지를 찾고 싶지도 않고, 찾을 이유는 없었어요. 소울컴퍼니 안에서 벌어진 일들이 저한텐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래서 굳이 다른 둥지를 찾을 이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뭐랄까 ‘둥지’ 같은 느낌으로 계속 틀어 앉아 있었던 것 같아요. 끝날 때까지.


소울컴퍼니가 힙합씬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본인은 자신의 얘기를 ‘옛날 대기업 회장들이 하는 얘기’ 같다고 말하지만, 소울컴퍼니, 그리고 제리케이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특히 과거보다 계속 나아지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제리케이와 제리케이


어느새 인터뷰를 한 지 한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질문만 던졌음에도 기력이 딸려 선물로 가져간 호두과자를 훔쳐 먹는 대범함을 보인 나에 반해 제리케이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자신의 생각을 한 시간이나 말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에도 제리케이는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처럼 생생했다. 


챙: 힙합씬에 몸담은 지 10년 정도 되셨잖아요. 지난 10년을 회상을 한다면?


K: 멋모르던 ‘랩 덕후’가 뮤지션이 되느라 고생했다. ‘소울컴퍼니’라는 큰 벽이 있었으니까 큰 보호막이 있었으니까, 남들보다는 고생을 덜 하긴 했는데, 그 나름대로 고생했고 수고했다. 앞으로는 더 잘했으면 좋겠다.


챙: 10년 후에도 김진일(제리케이 본명)이 아닌 제리케이로 있을 것 같나요?


K: 제 가사 중에 ‘50이 넘어도 서있을 거야. 무대 위에’라는 가사가 있거든요. 사람들이 랩이나 댄스음악이 젊은 사람들 음악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나이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 안 해요. 10년 뒤면 마흔이 넘었을 테지만 계속 하고 싶어요. 음악을 하다보면 하고 싶은 게 달라질 순 있겠지만요.


챙: 수장으로 있는 데이즈 얼라이브를 어떻게 끌고 갈 생각인가요?


K: 플랜은 없어요. 플랜이 설 수 있나하는 생각을 해요. 플랜을 세우면 그 플랜에 맞춰서 음악의 느낌을 변경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냥 ‘멋있는 거’, ‘계속’, ‘많이’가 다예요. 앞으로도 멋있는 걸 계속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챙: 마지막으로 딴지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한다면?


K: 딴지에 찾아오시는 분들이라면 기존의 어떤 것에 반하는 정서가 있으실 거라고 생각을 해요. 세상이 그 정서를 깎으려고 해도 날카롭게 가지고 계셨으면 좋겠다. 그런 가치를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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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간에 제리케이의 본명이 ‘김진일’인 게 떠올라 “별명이 없냐”고 물어봤다. ‘일진’이나 ‘소년탐정 김전일’ 등 대충 생각해도 너댓 개는 있다고 할 줄 알았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콤플렉스 중에 하나였던 게 주변 사람들이 저를 막 편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라고 했다. 아, 조금 이해가 됐다. 그만큼 제리케이는 인터뷰가 진행 된 한 시간 반 내내 진지했다. 쓸 데 없는 질문에도 성실히 대답할 정도로 진지했다. 나까지 진지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제리케이를 보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진지함이 제리케이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겠지 싶어서. 나는 언제 이렇게 진지해봤나하는 (중2 같이) 뜬금없는 생각을 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여러모로 ‘배움’에 가까운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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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10월 10일 홍대 롤링홀에서 제리케이와 데이즈 얼라이브가 공연을 한다고 한다. 제리케이를 생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으니 많이들 보러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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