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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체제에 불만이 가득한 종북좌파로서, 노력은 하지 아니하고 기득권을 비난하는 것으로 허송세월을 해왔던 필자는 운명적으로 다음의 칼럼을 읽게 되었다. 민족정론지 조선일보의 민족정론기자 김광일 논설위원의 사자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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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아직은 화를 내지 않겠으나, 아니다 싶으면 화산처럼 분노할 것이라 경고하는 이 절정고수는 누구인가. 누구긴 누군가, 김광일이다.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한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폐륜아인 우리는 멋모르고 김광일의 콧털을 건드렸으나, 그는 아직 재채기를 하지 않았다.


다 우리 복이다. 정말 다행이다. 김광일이 불후의 명 사설로 우리의 철없음에 찬물을 끼얹어주지 않았다면, 그는 조만간 자신의 말처럼 ‘화산처럼 분노’했을 것이다. 그 화산재에 우리는 공룡처럼 죄다 멸종했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멀쩡히 살아있다. 이게 다 누구 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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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서 묻나?


김광일은 우리를 멸종시키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를 멸종시킬 의지와 능력을 동시에 지닌 사람도 아니다.

멸종시킬 능력이 있으면서도, 아직은 기회를 주고 있는 사람이다.

.

.

 

대인배다.


우리가 최저 시급을 받으며 편의점 삼각김밥 가장 깊은 곳에 숨은 참치살을 혀끝으로 탐색할 수 있는 것은 다 그의 관대함 덕이다. 아멘.


경이롭다. 그는 어떤 인물이길래 이리도 그릇이 큰 것일까. 그의 기념비적 명문에 다 나와 있다.


“실력이 있으면 사법시험도 붙고 은행도 들어갔지만 그게 안 되면 벽돌도 나르고 리어카도 끌었다.”


프로필을 보니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자마자 명문고 교사 생활을 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체적으로는 27세에 조선일보에 입사하신 분이다. 그 뒤로는 쭉 펜대만 잡으셨다. 아니 대체 벽돌을 언제 지고 리어카를 언제 날랐단 말인가. 매일 저녁과 방학을 학업이나 수익 좋은 과외 대신 서민 체험으로 꽉꽉 채우신 게 분명하다.


고시공부와 취업 준비와 각종 시험 준비에 더해 최저시급 알바까지 하느라 잠 잘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내 사촌, 취직도 못하고 서른이나 먹은 이 게을러터진 녀석에게 이분의 칼럼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김광일의 일갈에 대오각성하기 전까지 이 땅의 산업화란 평화시장에서 폐병 걸린 여공과 공사판에서 스러져간 일꾼들이 이룬 줄 알았다. 세상에, 서울대 불문과에 산업 전사가 숨어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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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이 감내한 주거 환경도 비범하다.


“아비가 평생 마련한 아파트라도 헐어서 궁리해보라는 뜻이냐.”


“이층 양옥의 북쪽 모퉁이 방에 철제 계단 타고 올라가는 전세를 살았고, 그도 안 되면 헛간 같은 지하 단칸에 신혼을 꾸렸다.”


철제 계단 오르는 게 암벽 등반 쯤 됐나 보다. 이층 양옥에 나도 한 번 살아보고 싶다. 물론 나는 그만한 인물이 못 되므로 한낱 잠꼬대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고 보니 나도 “헛간 같은 지하 단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노력 덕에 단칸방은 자라고 자라 결국 아파트가 되었다. 그러나 어찌 필자의 범속한 아버지를 김광일에 비교하겠는가? 아버지는 김광일처럼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못 돼서 IMF 이후 “평생 마련한 아파트”를 은행에 반납하시고 말았다.


김광일의 사설이 사실은 그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데, 부러워 죽겠다. 아비가 헐어줄 아파트가 있다니. 하지만 담담히 받아들이겠다. 김광일 같은 대인배의 아들로 태어나는 행운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닐 테니.


그 아들은 어떤 행운아인가. 아무 생각 없이 태어났더니 아버지가 김광일이다! 젊은 것들보다 무거운 것도 잘 들고, 밤샘도 훨씬 잘한다. 우월 유전자의 총 집합체다. 시대적 한계로 영어와 컴퓨터에 있어서는 “잠시 움찔”했지만 후천적 노력이 천재성을 이길 수는 없는 법. 김광일의 영어는 그냥 영어가 아니다. 이름하여 “실전 영어”다. 그는 “상대의 눈빛을 제압”해서 계약을 따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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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용 실전 눈빛


그렇다.


국제무역의 핵심 비결은 대한남아의 눈싸움이었던 것이다.


우리 젊은 것들한테 미리 좀 가르쳐주시지… 우리는 나약하고 아둔해서, 이렇게 콕 집어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단 말이다. 야속하다. 물론 우리가 모자란 탓이지만 그래도 서운한 마음 어쩔 수 없다. 사회생활 내내 교사와 기자로 계시면서 언제 외국 업체와 거래를 트셨는지는 따지지 말자. 벽돌 나르는 중에 틈틈이 하셨을 것으로 믿는다.


노파심에 한 번 더 말한다. 그는 김광일이다. 우리 같은 모지리가 아닌 바에야, 설마 산업화 세대 전체의 업적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미숙아적 과오를 저지르겠는가?


기러기 아빠에 관한 동정적 시선도 주목할 만하다.


“너희 영어는 혀에 '빠다'를 바른 듯 R과 L, F와 P 발음을 잘 구별하더라. 그것도 우리 기러기 아빠들이 외로움 참아가며 너희를 어미와 함께 외국에 보냈던 덕이다. 아비 혼자 불어터진 라면을 먹고, 아비 혼자 늦은 밤 욕탕에서 '난닝구 빤쓰' 빨며 외로운 눈물을 삼켰다는 것을 너희는 모른다.”


당연히 모른다. 기러기 아빠의 약 60%가 월수입 500만 원 이상을 번다. 그 중 900만 원 이상, 즉 억대 연봉자의 비율이 무려 15%나 된다. 소득 최하위 15%도 월수입 300만 원 이하를 집계한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월급’이 110만원이다. 전체 임금 노동자의 과반이 200만원 이하의 월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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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기사 원문보기


김광일 논설위원님께서는 제발 이해해 달라. 귀하의 높은 시야로 우리를 평가하지 말아 주시라. 그럴수록 우리는 자꾸만 작아진다. 우리 같은 천민이 어떻게 기러기 아빠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기러기는 아무나 되나. 날개가 있어야 하늘을 나는 법이다.


참,


“너희의 젊음이 상이 아니듯 내가 늙어가는 것도 벌이 아니다.”


이렇게 유명 소설의 구절을 인용하셨다. 물론 필자는,


‘어르신들의 산업화가 상이 아니듯 우리의 불안도 나중에 태어난 벌이 아니다.’


라고 대응하려 했지만 마음으로만 중얼거리고 바깥에 꺼내지는 않으려 한다. 이미 썼지 않냐고? 잘 봐라. “(큰따옴표)가 아니라 ‘(작은 따옴표)다. 작은 따옴표는 대화가 아니라 생각이라는 거, 우리 국어시간에 다 배우지 않았냐 말이다.


그래도 이미 활자로 쓰이지 않았냐고?


왜 그러시나, 아마추어같이. 우리 젊은 것들이 투덜대는 이유가 오직 이기주의와 나약함 때문이라는 사실을 꿰뚫어보는 김광일의 관심법 앞에서 뭘 숨길 수 있겠는가. 이해를 못 하겠으면 그의 명문을 다시 읽어보라. 그는 세상 이치를 다 알고 있다. 무급 인턴이 기러기 부장님 입맛에 맞게 커피를 타지 못하는 이유도 알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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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기 세대를 죄인 취급하는 것도 익히 알고 계시다. 그래서 섭섭하시단다. 천부당 만부당이다. 필자 같은 경우는 김광일 세대 전체가 아니라, 김광일 세대 중의 일부, 그러니까 예를 들면 조선일보 기자 같은 사람만 죄인 취급 한단 말이다.


그는 펄펄 끓어오르는 마그마를 가슴에 품은 활화산이다. 흘러내리는 용암에 형체도 없이 증발할까 두렵다. 나로서는 인간 활화산의 준엄한 시선을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인다. 독자 여러분도 마찬가지라 믿는다. 제발 살려만 달라.


이 글을 쓰는 지금에도 덜덜 떨리는 손가락이 뱉어내는 오타를 수정하느라 식은땀이 흐른다. 차가운 깡소주로 활어처럼 뛰는 염통을 진정시키며 황급히 결론을 내려 본다.


활화산 지대에 사는 주민의 놀란 가슴이 진정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활화산이 조속히 휴화산이 되는 것이다. 굳이 의학적이면서도 유교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렇다, 大김광일 위원님께서 얼른 흙으로 돌아가셨으면 한다.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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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