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trexx 추천12 비추천0







1. 도구의 인간
 


1.jpg

Man Made Project(Ami Drach & Dov Ganchrow) 

-인류 최초의 도구 재료인 '돌'과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손잡이: 과거와 미래 디자인 결합



인간은 도구를 사용한다. 도구는 인간의 ‘손’을 확장한다. 종이에 글을 쓸 때 연필을,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을 사용한다. 도구 발전의 역사가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도구의 역사는 가공과 재료의 변천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석기와 신석기를 돌의 가공 기술로 나누기도 하는데 구석기는 돌을 돌로 떼어내어 만들어냈다고 하여 ‘뗀석기’로 신석기는 돌을 갈아서 가공했다고 하여 ‘간석기’라 명명한다. 청동기와 철기는 재료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또한 도구에 대한 가공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물건이 정교해 질수록 그것을 만드는 도구는 복잡해졌다. 보다 섬세한 작업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도구들은 형태가 복잡하여 사용법이 어려워진다. 발달된 도구들은 학습하여 숙련된 전문가들만 사용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사용하기 어려운 도구들은 많은 사람들의 폭 넓은 사용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특정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느냐, 보다 우월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계급은 나누어졌었다. 이는 개인뿐 아니라 집단도 해당된다. 현대 자본주의에 이르러 이 개념은 조금 다르게 적용되는데 도구를 생산하는 기업이 상품인 도구를 더 많이 공급함으로써 권력을 얻기 때문이다. 도구는 이제 상품이 되었고 상품을 만드는 기업은 수익을 위해 사용자들이 그 도구들을 더 많이 구매하도록 유인한다.


상품이 지속적으로 판매되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계속하여 구매를 하여야한다. 아무리 훌륭한 기능을 가진 상품이라도 사용법이 어려우면 시장에서 외면 당하기 십상, 경쟁자(기업)는 기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사용자들이 손쉽게 사용하도록 만들어 시장에 선보인다. 성공적인 상품들 대부분은 기능을 최초로 선보인 제품이 아니라 사용법이 간편한 제품인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격’이다)


오늘날, 도구의 혁신은 기능(기술)을 구현했을 때가 아닌, 많은 사용자들이 간편하게 사용할 때 급격히 이루어진다. 전문가들에게만 팔 제품이 아닐 바에야 기업은 기술개발의 문제와 더불어 ‘사용 편의성’을 고민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복잡해진 도구를 보다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구현하는 건 ‘사용자 인터페이스 (UI)’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2. 컴퓨터 사용자 인터페이스


2.png

Xerox STAR: 최초의 GUI, 키보드와 마우스가 기본 입력장치다.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는 흔히 컴퓨터 용어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도구는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해당된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하는 등의 모든 도구 사용 행위가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통해 이루어진다. 오히려 초기 컴퓨터는 커서만 깜빡꺼리는 검은 화면에 명령어 입력을 통한 제어를 했기에 사용자 인터페이스라고 할만 한 것이 없었다. 엄밀히 말해 전문가용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었다. 초기 컴퓨터는 크기와 가격 등 일반 사용자를 고려할 필요가 없는, 학습이 된 전문가를 위한 특수장비였다.


공학자들의 기기였던 컴퓨터가 가정용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건, TV를 트로이목마 삼은 1977년의 애플 II 덕분이다. 컴퓨터 UI가 높은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GUI(Graphic User Interface) 때문인데, GUI의 발전이 MS 윈도 95의 돌풍으로 이어져 90년대 중반 이후에야 비로소 컴퓨터의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일반 사용자들에게 친숙하게 되었다. 


컴퓨터 GUI가 곧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아니지만 GUI를 구현하기 위해 UI는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GUI는 입력기기를 바꾸어 놓았다. GUI와 더불어 도입된 입력장치인 마우스는 기본 입력장치인 키보드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지만 아이콘과 윈도우 개념으로 기존에는 명령어를 키보드로 입력하는 것을 ‘마우스’를 통해 손쉽게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OS가 하는 보편적인 수행 대부분을 마우스를 통해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마우스는 컴퓨터의 필수 UI가 되었다.


컴퓨터의 UI는 키보드와 마우스로 구현되었고 이는 초기 모바일 기기에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바뀌었다면 마우스를 대신하여 스타일러스가 등장한 정도. 그러나 마우스와 같은 영광을 얻지 못했다. 아니 물리 키보드와 스타일러스는 초기 모바일 기기 UI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다.


3.jpg

Windows CE - 왼쪽 하단 시작버튼과 메뉴 구성은 데스크탑과 똑같다.

그러나 손으로 제어하는 건 쉽지 않다.

아이폰 등장 이전 스마트폰의 GUI는 데스크탑 UI를 그대로 옮겨온 형태였다. MS가 모바일 OS로 야심차게 내세웠다 결국 말아먹은 Windows CE는 OS 기반기술은 Windows 9X(NT)와 완전히 달랐지만 UI는 거의 동일했다. MS는 모니터에 비하면 작디작은 모바일 기기에 데스크탑 윈도를 우겨 넣었다.


Windows CE의 UI 도구는 마우스 대신 스타일러스를 기본 입력장치로 구성하였다. 데스크탑의 메뉴, 아이콘 및 윈도우 버튼(창 닫기, 최소화하기, 전체화면)을 똑같이 모바일에 적용하였다. 데스크탑에 있었던 구성요소를 작은 크기의 모바일 디스플레이에 적용 하다보니 각 구성요소인 아이콘, 윈도우 버튼이 동시에 줄어들게 되었다. 결국 메뉴, 버튼 등은 사람의 손 보다는 스타일러스를 활용할 수 밖에 없었다.(스타일러스에 대하여는 다음편에서 다루겠다)


MS는 ‘터치’ UI 개념이 없었다. Windows CE는 문자를 입력할 때 스타일러스 필기인식 아니면 물리적인 키보드가 있어야 했다. 아이폰 이전 스마트 폰의 맹아였던 블랙베리는 물리 키보드 뿐 아니라 화면에 마우스 커서가 있었다. 즉, 아이폰 이전 어느 기기도 ‘터치’에 대한 개념이 전무했다.


아이폰은 소프트웨어 키보드를 채용한 최초의 스마트폰은 아니었지만 소프트웨어 키보드의 개념을 완성하게 된다.



3. 아이폰 터치 UI, 키보드와 스타일러스를 대체


4.jpg


5.jpg

iPhone Multi-Touch


2007년 아이폰의 등장으로 모바일 기기의 물리 키보드(자판)와 스타일러스를 대체할 UI 변화가 일어났다. 아이폰에 터치 UI를 적용할 수 있었던 건 잡스의 언급을 빌자면 멀티터치와 관성 스크롤링 덕분이다. 이 기술은 정전용량방식 터치스크린에서 구현 되었는데, 기존 모바일 기기 터치스크린의 대세는 강압식(저항막 방식)이었다.


강압식 터치스크린은 압력을 인식하여 동작한다. 고로 손가락 터치 보다는 압력을 쉽게 전달하는 뾰족한 스타일러스에 최적화된 방식이다.(강압식 터치스크린을 차용한 자동차 네비게이션은 손톱으로 콕콕 눌러야 잘 인식된다) 그러나 애플이 아이폰에 적용한 전류를 이용한 정전용량방식은 장갑을 낀 상태에서는 인식할 수 없지만 전기가 통하는 손가락(우리 몸은 도체다)을 화면에 ‘터치’함으로서 인식하여 동작한다. 강압식과 비교했을 때 정전식의 결정적인 장점은 ‘멀티터치’가 가능하고 손가락 터치속도에 따라 스크롤이 움직이는 관성 스크롤링(flicking 제스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잡스는 정정용량식 터치스크린을 통하여 강압식에 사용된 스타일러스와 물리적 키보드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일부 이용자는 물리 자판이 없어서 쉽게 발생하는 오탈자에 불만이 다소 있었지만, 커진 화면과 민감하게 반응하는 멀티터치로 기존의 모바일 기기 UI를 넘어서게 되었다.


6.jpg


아이폰 OS 기술은 MAC OS인 OS X으로 개발되었다. 즉 소프트웨어 기반기술은 MAC OS X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폰 UI는 MAC OS X하고는 전혀 다른 UI였다. 아이폰 UI는 ‘터치’를 위해 디자인 되었고 손 동작으로 OS의 모든 기능을 수행하도록 만들었다.


MS와 달리 애플은 데스크탑 OS와 완전히 다른 터치 UI를 적용하였고 그 결과 어마어마한 보상을 받게 된다. 아이폰 이후 스마트폰은 정전용량 터치스크린이 대세가 되었고 터치 UI를 적용하게 되었다. 애플의 멀티터치로 대표되는 터치 UI는 대중화를 이루었다. 멀티터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성공하였다. 하지만 애플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3D 터치를 통해 터치스크린을 진일보 시켰다.


애플 3D 터치는 터치 UI의 새로운 진화를 예고한다.



4. 멀티터치의 진화, 애플 3D 터치


같은 건반악기지만 피아노와 하프시코드는 다르다. 하프시코드는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음량의 변화가 없다. 살살 치거나 세게 치거나 음량이 똑같다. 그러나 피아노는 해머로 현을 때리는, 타건을 통해 소리를 내기 때문에 음량 표현의 진폭이 달라지고, 음량 자체가 커져서 표현을 좀 더 다양하게 할 수 있었다.


… (중략)…


이런 피아노의 급격한 진화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시대에 이루어졌고, 이것은 19세기에 유럽 산업혁명기의 최고 산업이 된다. 20세기를 상징하는 산업이 자동차 산업이었듯, 19세기를 상징하는 산업은 피아노 산업이었다.


강헌 - 전복과 반전의 순간(모차르트와 베토벤, 그리고 피아노)


강헌 교수님 말씀처럼 19세기를 상징하는 상품은 ‘피아노’였다. 피아노 UI는 매우 훌륭하다. 음계가 많아지거나 음량이 커지면 악기의 크기가 커진다. 악기가 커지면 연주하는 자세(UI)가 바뀐다. 음계가 많은 하프는 서서 연주하게 된다. 그러나 피아노는 많은 음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앉아서 연주할 수 있다. (현악기에서 첼로가 사랑받는 이유는 앉아서 연주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앉아서 연주하게 되자 열 손가락 모두 자유롭고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프처럼 현을 뜯는 대신 건반을 두드리게 되고 음량의 변화를 표현할 수 있게 된 피아노는, 그래서 가장 사랑 받는 악기가 된 게 아닐까 싶다.


이번 애플 3D 터치 구현 방법을 보고 하프시코드와 피아노가 떠올랐다. 기존의 멀티터치를 평면적인 하프시코드에, 애플이 아이폰 6s에서 선보인 3D 터치를 입체적인 피아노에 비유한다면 너무 심한 비약일까?


7.jpg

맥북에 적용된 멀티터치 기술

 


8.jpg

맥북 포스터치는 터치 강도를 인식할 수 있다.



애플이 아이폰 6s에 적용한 기술은 애플워치와 맥북에 적용한 ‘탭틱’기술*(맥북에서 포스터치)의 확장판이다. 누르는 세기에 따라 진동이 일어날 뿐 아니라 UI가 바뀌게 된다.


*시장에 먼저 나온 바 있는 햅틱 기술 또한 터치의 힘에 따라 반응(인식)하는 UI다. 하지만 이는 힘에 따른 진동 반응으로 약하게 누르면 약하게 진동하고 강하게 누르면 강하게 진동하는 기술이다. 근본적인 UI 변경은 아니었다.


애플은 3D 터치 기능을 Peek과 Pop으로 설명하였다.


-애플 홈페이지 Peek과 Pop 설명

실제로 콘텐츠를 열어보지 않고도 내용을 미리 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대응까지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받은 편지함에서 메일 하나하나를 가볍게 누르면 Peek를 통해 내용을 살짝 미리 볼 수 있고, 그중에 자세히 읽고 싶은 메일이라면 조금 더 깊이 눌러 Pop을 통해 열 수 있습니다.



애플 홈페이지 설명을 읽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맥 OS X에는 2007년에 선보인 QuickLook(훑어보기)기능이 있다. 도큐멘트 파일을 응용프로그램에서 실행하지 않고 파인더에서 스페이스 바를 누르면 문서를 간단히 볼 수 있다. 


가령 한/글 문서를 보기 위해서는 한/글 프로그램이 반드시 실행 되어야 한다. 문서를 간단히 보기 원한다면 이는 매우 번거롭다. QuickLook을 이용하면 프로그램 실행 없이 스페이스 바를 눌러 문서를 간단히 볼 수 있다. 


3D 터치의 Peek 기능은 응용프로그램 전환없이 관련 콘텐츠를 열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QuickLook과 유사하다. 다시 설명하면, 아이폰에서 메시지로 받은 URL 주소의 페이지를 확인하려면 기존에는 메시지 앱에서 벗어나 사파리를 실행하여 해당 URL로 이동해야 하지만 Peek 기능을 이용하면 메시지 앱 안에서 간단하게 해당 페이지를 훑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9.jpg

맥 사파리에서 포스터치 적용 예 : 링크를 세게 누르면 훑어볼 수 있는 별도 창이 뜬다.


Peek과 Pop 이외에도 압력에 따라 터치가 인식된다면 여러가지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릴 때, 보다 세게 터치하면 진하게 표현 된다거나 가상 악기들(피아노, 기타 등)의 표현을 더 섬세하게 할 수 있게 되는 등,  iOS 나 기본앱에서 선보인 기능 뿐 아니라 새로운 기능들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5. 열린 결론


단언하긴 이르지만 애플의 3D 터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로 자연스럽게 정착 할 것 같다. 이미 맥북에 적용한 포스터치는 인터페이스 적용에 있어서 사용자 시험이 끝났기 때문이다. 아직 확실치 않은 것은, 3D 터치 UI가 기존의 멀티터치가 이룬 혁신을 제대로 대물림 할 수 있느냐다.


손가락을 벌리면 사진이 커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멀티터치는 인간의 직관에 부합하는 사용법이다. 멀티터치 UI가 사용자에게 정착할 수 있었던 건 마우스와 스타일러스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었다는 것도 이유다.


그런데 사용자가 3D 터치를 이해하고 아이폰에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용자 직관을 더 확장해야한다. Peek과 Pop 같은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하여 ‘학습’이 필요할 수도 있다. 애플 3D 터치의 성공 여부는 '직관적으로 바로 사용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학습을 해서라도 이 기능을 익히는 것이 유용한가'라는 질문의 답에 달려있다. 3D 터치 시연을 위해 국내에 빨리 아이폰 6s가 들어왔으면 한다.


다음편에서는 ‘학습이 필요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애플 펜슬'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trexx

트위터 : @trexxcom


편집 : 딴지일보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