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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20. 월요일

챙타쿠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세월호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슬퍼하고, 그들을 내치는 정부를 보고 분노했었지만, 항상 거기까지였다. 당연히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해온 일도 없다. 인터넷을 통해 유가족들의 노력만 쳐다보았을 뿐 언제나 '무관심한 시민1'로 살아왔다.


1주기가 다가옴에 따라 더 이상은 무관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바깥으로 나가진 못해도 적어도 잊지는 말자 싶었다. 그러다 4월 14일쯤인가, 세월호로 기네스북에 도전한다는 글을 보았다. 이름 하야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 4,160명의 시민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4,160개의 촛불을 밝히는 기네스였다.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월호를 인양하기 위해, 세월호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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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주기 바로 다음 날인 4월 17일, 일찍 퇴근을 하고 친구와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입장은 7시부터지만 6시부터 작은 행사가 있다고 했다. 친구와 나는 밥을 단디 먹은 뒤 6시 좀 넘어서 시청광장에 도착했다.


중간중간 무리한 카메라 확대로 화질이 안 좋은 사진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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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0명이 촛불을 들자는 목표였지만, 신청자만 6~7천 명이었다. 그래서 인지 시작하려면 꽤 멀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 꽤 많았다. 7시부터 입장인데다, 아직 4,160명이 줄 서 있는 것 같진 않아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랬더니 6시 20분. 몇 분 사이에 사람이 꽤 늘어있었다. 4,160명 안에 못 들어갈까 봐 재빠르게 행렬에 들어가기로 했다. <한겨레21> 부스도 있었고, 리본 다는 부스도 있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이 서있기에 그것들 다 포기하고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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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면서 바라본 무대(좌)
표식이 있는 부분이 촛불을 든 시민들이 서 있을 자리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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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뒤로 줄 선 사람들이 시청 문 앞까지 늘어섰다.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멀다.

내가 서자마자 몇 분 안 되서 이렇게 줄이 늘었다.
(서울시청 문 앞까지 늘어섰다)



내 뒤로도 엄청나게 줄을 섰지만, 8개인 출입구 모두에 엄청 줄을 섰다. 물론 키가 작아서 시야가 넓고 높진 않았으나 ‘바글바글’한 게 느껴졌다. 사람은 늘어가고 날은 어두워지는 가운데 입장 시간인 7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입장을 시작해도 모자랄 판에 굳이 7시까지 기다리나 했지만, ‘기네스북’ 도전이라 규정대로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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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도 이렇게나 많았다.



6시 반이 넘어가니까 슬슬 춥기 시작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추워할 순 없어서 가져온 여분의 옷을 꺼내 입었다. 친구와 나 모두 서로가 추워하면 빌려 줄 생각으로 여분을 가져왔으나 빌려주기는 무슨. 각자의 옷을 입고 꽁꽁 싸맸다. 페럿들이 난로 밑에 손잡고 서 있듯 친구랑 엉겨 붙어서 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추워! 아웃사이더 보다 빠르게 춥단 말을 연발하고 있던 그 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7시를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7시입니다. 입장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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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촛불을 든, 배의 밑동을 맡은 사람들이 먼저 입장을 했다.



꺄! 드디어 7시! 대망의 기네스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라고 하지만 내가 서있던 8번 출입구 사람들이 입장하는 것은 아직 멀어 보였다. 왜냐하면 나는 노란색 촛불을 들어야 하는 줄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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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0명이 그냥 촛불만 들고 서 있는 게 아니라,

위의 사진처럼 촛불로 세월호를 만든다. 

그래서 세월호의 밑동인 파란색 촛불을 든 사람들이 먼저 입장하고,

선체인 노란색 촛불을 든 사람들은 그 다음에 나중에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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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촛불을 든 사람들이 먼저 입장하고(표시 된 곳 위에 서야 함)

노란 촛불을 든 사람들이 하나씩 입장했다.



파란색 촛불을 든 사람들이 다 입장하고, 내가 있는 8번 출입구도 입장을 시작했다. 7시 20분쯤 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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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줄 선 사람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꼬불꼬불 서 있어서 티가 안 날 뿐 사람이 정말 많았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한 500명 정도 됐나? 일반 행사 같으면 금방 들어갔겠지만, 기네스북 규정때문에 한 명씩 체크한 후 입장해야 해서 상당히 오래 걸렸다. 하긴 행사 시작 전 참가자 각각에게 보내준 QR코드(입장권이자 개인을 체크하는 수단)를 출입구에서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니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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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하는 시민들을 바라보는 시민들

이렇게 입장은 하지 않았어도 끝까지 함께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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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가 보인다. 이때가 7시 30~40분쯤? 몸이 꽤 차가웠다. 



나랑 내 친구는 줄 듯 줄지 않는 줄에 조금 지루했으나, 오래 기다린 덕분에 7시 40분쯤 입장할 수 있었다. 약 2,100번째로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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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지 한 시간 반 만에 드디어 입장!



모두가 그렇듯 QR코드를 확인하고 노란색 촛불을 받아 입장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서 서있었더니 자원봉사자 분이 자리를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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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마다 표시가 있다.

표시 위에 얌전히 앉으면 된다.

나는 세월호의 선체 부분이라 노란색 표시 위에 앉았다.



앉으란 데 얌전히 앉긴 앉았는데, 뒤에 아무도 없었다. 바로 옆에만 해도 사람들이 뒤로 길게 있는데 내 뒤만 비었더랬다. 사람이 덜 들어온 건가 싶었는데 내 뒤로는 노란 표식이 없었다. 아, 내 뒷자리는 빈 자리였다. 내가 배의 가장 윗부분인 것 같았다.


좌린님1.jpg

저 동그라미 안에 있었다.

(사진- 좌린)



맨 뒷자리라 추워서 조금 슬프긴 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입장한 지 한 시간이 다 되가는데 아직 반 밖에 안 찬 게 중요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7시 4~50분에도 2천명 대였던 것 같다. 숫자가 올라가는 숫자가 빠르다고 해도 마음은 불안했다. 이미 들어온 상태라 밖에 얼마나 있는 지 몰랐고, 줄도 일찍 선 편이어서 다른 줄에 사람이 얼마나 있는 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참가비를 낸 사람이 6천명이 넘었지만, 좋은 일 한다니까 우선 입금만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사람들이 다 온다는 보장도 없고, 지금과 같은 속도로는 4천 명을 못 넘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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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4,160명은 그냥 넘길 것 같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꽤 불안했다. 



하지만 내 기우는 정말 기우였던 건지 3천 명을 넘긴 그 순간부터 숫자가 훅훅 올라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QR코드 리더기가 분발한 건지, 친구랑 사진을 찍고 있는데 훌쩍 3,500명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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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초는 아니고, 촛불같이 생긴 등이라고 보는 게 맞다. 


사회자가 자리에서 일어나길 청했다. 나는 ‘진짜 됐다’는 확신에 기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잔디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에 빨리 일어나고 싶었던 생각도 조금은 있었지만.

사람들이 일어섰고, 행사가 시작되었다. 4,160명이 다 들어올 때까지 사회자가 계속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아, 단원고 학생 찬우의 아버님께서 나오셨다. 단원고 아이들 대부분의 부모님이 그렇듯 차분한 목소리셨다. 스피커가 곳곳에 달려있었다고 해도 울림이 심해서 말이 잘 들리진 않았지만, 그것 좀 추운데 있었다는 이유로 추위에 몸이 굳었다고 툴툴대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저 분들은 나의 갑절, 아니 몇 곱절을 이보다 더한 추위에서 떠셨을 텐데 고작 이 정도로 추워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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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을 마친 찬우 아버님 다음에 송경동 시인이 ‘세월호를 인양하라’라는 제목의 시를 낭독했다. 또 가수 손병휘 씨가 ‘잊지 않을 거야’를 열창했다. 우는 사람도 있었고, 함께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함께 노래를 불렀다. 잊지 않을 거야, 잊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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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드디어 입장한 사람 수가 목표했던 4,160명을 넘었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3천 명을 넘긴 순간부터 어느 정도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진짜로 넘기다니!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들 한 마음이라는 사실이 감동적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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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팅이 너무 빨라서 ‘4,160’의 순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이게 오후 8시 14분.



모든 사람이 환호했다. 초반과 달리 숫자 올라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4,160’이 지난 지 얼마 안돼서 4,400명을 넘겼다. 기네스북에 도전해야 하는 시간은 다가오는데,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처음 고지한대로 4,999명까지는 받을 줄 알았으나, 8시 2~30분경, 4,475명으로 출입을 막았다.

이 때부터는 촛불을 껐다. 기네스북 도전 시간까지 단 하나의 촛불도 켜선 안 된다고 했다. 정말이지 매우 추웠다. 사람이 말이라도 하면 시간이라도 빨리 가서 덜 추울 텐데, 친구도 나도 말할 기운이 없었다. 거기다 하도 웅크리고 있어서 온 몸이 다 쑤셨다. 고작 이 정도로 힘들어하다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지만, 정말 추웠다. 백팩이 무거워도 바람을 막아줘서 오히려 고마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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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추웠던 시간이 지나고, 8시 50분쯤에 사회자가 촛불을 키라고 했다. 드디어 결전의 순간이었다. 키가 작은 나는 높이, 더 높이 손을 들었다. 상공에서 혹시나 안 보일까 하는 마음에 손을 높이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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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나보다 작은 아이가 열심히 팔을 뻗었다.

귀여우면서도 그 마음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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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했던 4,160명보다 315명 많은, 4,475명의 시민은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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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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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도전이 끝나고, 세월호의 이름이 더 멀리 알려지길 바라며 촛불을 껐다. 부디 세월호를 인양하고, 세월호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는 날이 오리라 생각하며. 


모든 행사가 끝난 후, 집에 갈 사람은 집에, 광장 안으로 들어올 사람은 들어오라기에 나와 친구는 집으로 향했다. 희생자들을 위한 굿을 한다던데, 보고 싶긴 했지만 도저히 체력이 남아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지친 게 우습지만, 정말 힘들었다. 옷을 여며봐도 춥고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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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물론 나는 이 사진만 찍고 구경은 하지 않았다.



시청 광장에서 그림자처럼 사라지려는데, 기네스북에 참여하는 시민과 참여하지 않는 시민을 가르던 끈에 리본들이 매달려있는 걸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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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 매다는 소녀가 예뻐서 찍어봤다. 



여기까지 하고,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시청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집에 와서 보니 볼이 발그레해서 감기약에 쌍화탕까지 먹고 잤다. 창피하게도 고작 세 시간 서있었다고 병이 생길 뻔했다. 엄마는 잘했다며 호탕하게 웃었지만, 이 정도 추위도 못 견디는 내가 부끄러웠다. 한 겨울도 아니고 4월에 세 시간 서있었다고 몸살이 오려고 하다니. 


강골인 내가 세 시간 밖에 있었다고 힘들어하는데, 1년을 넘게 밖에서 지낸 유가족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세 시간, 추위를 이기며 서 있었다고 해서 '유가족들 힘든 거 다 알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게 절대 아니다. 그저 세 시간으로도 느낄 수 있었던 추위를, 계절을 가리지 않고 느껴 온 유가족들의 그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는 것이다. 여름에는 더위, 겨울에는 추위, 이 속에서도 유가족이 거리로 나갈 수 밖에 없는 그 이유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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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자.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온 나라가 슬픈 날에, 다른 나라에 가서, 다른 나라 사람에게 헌화를 하는 그분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헌화를 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것. 그거 하나다.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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