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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23. 목요일

스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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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이 덕내는 어디서 나는 거지? 혹시 너도?


몰라도 지장 없고 안다고 돈 되는 것 아니지만,

어렴풋이 알아두면 행복한 명랑잡지식 총출똥!


손쉽게 후딱 끓여 잡숫는 딴지인의 정보 야식,


'덕후라면'






지우개는 연필로 쓴 것을 지우는 도구이다. 연필심으로 쓰이는 흑연은 육각형의 판상구조로, 글씨를 쓸 때 이 육각형 구조가 층층이 밀려나면서 종이에 묻는다. 반대로 지우개는 종이에 밀려난 흑연을 감싸며 말아내는 방법으로, 흑연을 종이에서 다시 떼어낸다. 연필과 지우개의 관계는 흡사 종이를 두고 펼쳐지는 모종의 삼각관계다. 연필은 최대한 종이를 향해 끈덕지게 달라붙고, 지우개는 흔적도 없이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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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지우개는 일반적으로 합성고무(Synthetic rubber)로 만든다. 고무지우개의 발명 이전에는 작고 날카로운 돌로 글씨를 긁어내거나, 딱딱해진 빵으로 닦아냈기 때문에 가난한 학생들은 먹을 빵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글씨를 틀리지 않으려고 늘 긴장했었다고.


그러다 1770년 영국의 기술자 ‘Edward Nairne’에 의해 고무지우개가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지우개 역시도 빵 부스러기처럼 잘 으스러지는 단점이 있었는데, 이 문제는 1839년 과학자인 ‘Charles Goodyear’가 고무를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을 발명하면서 해결된다. (훗날 세계 최대 고무 타이어 제조사인 Goodyear는 찰스의 위대한 발명을 기리기 위해 그의 사후에 이름을 기업명으로 사용했다고)


뉴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해 저명한 출판인 ‘존 브록만’이 ‘지난 2천년동안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창의적인 답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과학저술가인 ‘더글라스 러시코프’는 당당히 ‘지우개’라고 답했다. 인간의 실수를 수정하는 지우개가 없었다면, 과학은 물론 정부와 문화, 도덕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산업화를 거치며 어느새 만만해진 지우개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값싸고 꼭 내 돈 주고 사야 하나 싶은 희미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지만, 지우개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많은 것을 되돌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미국의 교육학 학자 ‘John W. Gardner’는 ‘삶이란 지우개 없이 그리는 그림’이라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미술업계에서는 지우개를 제2의 연필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그만큼 지우개의 조력 없이는 연필의 활약도 없다는 말이겠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면 참 작고 금세 지저분해지며, 내 돈 주고 산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만큼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지우개. 하지만 이 작은 물건 딱 한 가지에 미쳐서 수십억의 연구비를 쏟아 붓는 회사가 있다면? 그것도 한 군데가 아니라면?


‘덕후라면’ 첫 번째 에피소드, 지우개 편 시작한다.


S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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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에도 수많은 브랜드가 존재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구사인 독일의 ‘파버카스텔’이나 ‘스테들러’, 일본의 ‘펜텔’같은 대기업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우개 하나만 죽어라고 판 기업이 존재한다. 바로 일본의 ‘SEED’다.


이 회사는 오직 지우개 한 품목만을 100년 가까이 파왔다. 놀랍지 않은가? 어지간하면 지우개 팔다가 펜도 팔고, 노트도 팔고, 연필깎이도 팔만한데, 지우개 하나만 주구장창 판다는 뚝심이 정말 대단타. SEED는 최초의 플라스틱 지우개 양산 회사이자 최초의 수정 테이프 개발사이기도 하다. 지금은 네모난 흔히 보는 그 지우개 달랑 1개만 파는 것은 아니고 펜처럼 꽂아서 쓰는 지우개와 가정용으로 쓰이는 생활용 지우개 같은 것도 판매한다.



MI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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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업계도 은근 경쟁이 치열해서 SEED 혼자 지우개를 다 따 먹은 것은 아니다. 라이벌인 ‘MILAN’은 SEED의 3년 뒤인 1918년에 설립되어 4대째 사업을 하고 있다. 얘네는 지우개만 만드는 것은 아니고 토털 문구로 확장을 했다. 제품의 질 못지않게 디자인에도 신경을 쓰는 편이라 각종 디자인 어워드의 상을 받기도 했다. (‘9012 Cristal Suave’ 모델은 2000년 디자인 플러스에서 Best design을 수상했다) 동글동글 하면서도 각진 특유의 디자인은 덕후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 충분하다. 가격은 대충 3~4불로, 지우개치고 다소 고가지만 하나쯤 가질만한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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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버카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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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 역사의 시초하면 쉽게 떠오르는 이름이 1761년 설립된 ‘파버카스텔’이다. 파버카스텔은 가장 오래된 문구사이며, 현재 회장은 8대인 ‘안톤 볼프 강 그라프 폰 파버 카스텔’ 이다. (독일 이름에 ‘폰’이 붙으면 귀족이다. 지난 3세기동안 왕족과의 혈연으로 이 집안은 유럽일대에서 엄청난 가문으로 성장했다) 늙었다고 낡은 게 아니라서 영향력도 막강하다. 250년간 100개 넘는 국가에 진출함은 물론, 문구 아이템만으로 연간 1조 매출을 내고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기업이 튼튼하게 유지되는 데는 직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도 한몫 했다고.

파버카스텔이 만든 혁신들- 6각형 모양으로 잘 굴러가지 않는 연필 / B,HB 등의 연필심 표기 등급 / 지우개 달린 연필 / 세계 최초의 의료보험 제도 고안 / 최초의 사원 기숙사 및 유치원 설립



스태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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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버카스텔의 경쟁자로 같은 독일의 문구사인 ‘스테들러’를 빼놓을 수 없다. 이 회사 역시 1835년대에 설립된 연로 기업이다. 스테들러가 생산하는 지우개는 ‘Mars’와 ‘Rasorplast’ 두 가지 라인인데, 마스 지우개는 1800년 특허청에 등록되기도 했다. 문구류 중에서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특허기록이라고 한다. 수백 년간의 발전을 거듭한 Mars는 아직도 생산되고 있다.



펜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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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하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이름이 일본 Pentel로, 롤러 볼펜을 최초로 개발한 회사다. 흔히 쓰는 볼펜에는 앞에 쥐똥만한 쇠구슬이 들어가 있어서 글씨를 쓸 때 자유자재로 굴러간다. 그러면서 잉크가 부드럽게 종이위로 흘러나오는데, 그 방식을 펜텔이 만들었다. 펜뿐만 아니라 지우개라는 품목에 있어서도 일찌감치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했던 터라, 펜텔 지우개는 종이 위 연필 뿐 아니라 플라스틱이나 옷감, 스티커 점성도 지울 수 있다.



나도 어렸을 적에 지우개를 모은 적 있었다. 그때는 더 잘 지워지냐가 기준이 아니라, 향기가 나는지, 색깔이 예쁜지가 관건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별 성과 없이 흐지부지 된 기억이 난다.


원고를 준비하면서 20년 가까이 지우개 1,000개를 모은 지우개 덕후의 블로그를 찾아냈다. 그녀의 열정을 구경하고 있자니 잊었던 내 안의 덕심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언제부터인가 나이 먹고는, 좋아하는 것을 모으고 소중히 간직하는 일에 점점 무뎌져 간다. 몇 천원이면 질 좋은 지우개를 소유할 수 있는데, 주말에 문구점에 가서 지우개를 한번 골라 보면 어떨까? 그나저나 다음 편 ‘덕후라면’은 뭘로 끓여야 되나 벌써부터 고민이네.



잠깐, 덕후라면 ‘지우개 성능 테스트’


교보문고에만 가도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지우개. 덕후라면 MUST HAVE ITEM들을 구입하여 필자가 손수 성능 테스트를 해보았다. 테스트에 사용된 모델은 순서대로,


1) FABER-CASTEL ‘Dust free’
2) STEADTLER ‘Mars plastic’
3) Pentel ‘Ain’


이며 온/오프라인 가격은 약 500원~ 800원이다. 얼마 안 하니까 정 궁금하면 사서 직접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개인적으로는 ‘파버카스텔 더스트 프리’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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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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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는 

<벙커깊수키 통합2호 : 결혼 특집1(14년 11월호>에 실린 

스곤의 연재물 <덕후라면 : 지우개 편> 전문이다. 



현재 통합 2호 종이버전은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지만

매진되어 레어템이된 관계루다가

구매가 불가능하다.  



다만

본지의 특별한 아량으로 

<애플 뉴스가판대>에

웹 버전을 1억 개쯤 비치해 놓았다는 

경영 기밀을 독자제위께 살포시 흘리는 바이니 

걍 참고만 하시라.

 

통합 2호 라인업은 여기서 확인하시라(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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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깊수키 최근호 라인업 및 백일장 확인은 여기서(링크)






스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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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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