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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24. 금요일

도비공









시작하기 전부터 사회 각계각층의 우려를 자아내던 4대강 사업의 폐해가 현실로 드러나는 시점이다. 그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지역에 관련된 뉴스가 있어 흥미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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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연합뉴스


어떤 이들이 생각하기에 4대강 사업은 재앙이었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꿩 먹고 알 먹는 사업이었다. 강바닥을 깊게 파서 배들이 자유롭게 오가면 내륙 운송이 활발해질 것이고, 멋있게 보(라고 쓰고 댐이라 읽는다)를 지으면 관광객들도 증가할 것이고, 공사과정에서 강바닥을 파내 얻은 준설토는 건설 현장에 팔아서 돈 벌고, 예측대로만 진행된다면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사업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난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아마도 이 사업을 구상하신 분께서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나는 천재야'라고 부르짖었을지도 모른다.


호사다마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 왠지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그토록 훌륭한 구상에도 불구하고 생각 못했던(물론 반대론자들은 충분히 예측했던) 역행침식, 녹조라떼, 큰빚이씨벌레의 창궐 등 부작용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거기다 경제 효과는 예상만큼 대단하지 않다. 현재 4대강 사업의 진행방향은 점점 비관론자들의 주장이 옳았다는 쪽으로 흘러가는 모양새이다. 사실 4대강 사업을 하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왜 미국이나 독일 같은 선진국들이 있던 댐도 폭파시키고 강의 모습을 원상복구하는 데 힘을 쏟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민을 했더라면 그렇게 반자이 돌격하듯이 강물에 콘크리트를 쏟아붓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우리보다 훨씬 이전부터 앞선 기술로 자연 환경 개조해본답시고 이리 주물럭 저리 주물럭 했던 나라들은, 자연은 그냥 놔두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4대강 사업 역시 우리가 경제 발전만을 중시하기보다는 환경 문제까지 함께 고려해야한다는 값비싼 교훈을 준 사업이었고, 선진국으로 들어서기 위한 성장통의 하나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안 겪고 넘어갈 수 있는 고통을 안겨 준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당연히 진행되어야 한다.


아무튼, 내가 위에서 저 기사를 인용한 것은 '여주'라는 도시에 관련된 기억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이 추진되던 여주시에서는 찬성 결의대회가 수시로 열렸고 실사를 나온 환경단체를 습격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어떤 식당 주인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사람은 여주에 살 자격이 없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다면 멀쩡히 흐르는 강물을 막아버리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여주 시민들은(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하지 않았을까. 도대체 무슨 동기로 인해 저들은 자신의 생활터전이 파괴되는 것을 저토록 찬성하고 나섰던 걸까.



4대강 사업에 찬성했던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있긴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동기는 개발은 땅값 상승을 불러일으킨다라는 한국 사회의 집단 무의식이었다고 본다. 예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벼운 대화 중간에 땅값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동료 한 사람이 자신이 대치동 토박이라며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박정희 시절 강남이 개발될 때 집값이 다섯 배가 상승하자 아버지는 미련 없이 오래도록 살아온 집을 처분해서 현금화했다고 한다. 누구나 이 이야기의 결론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땅값이 무려 다섯 배가 뛰었으니 더 오를 일은 없을 테고 비싼 값 받을 때 팔자라는,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판단을 내렸지만 그후로도 대치동 땅값은 내릴 줄 모르고 치솟았고, 현재는 평당 분양가가 당시 기준으로 백 배 이상을 호가한다. 아버지가 그때 파시면 안 되는 거였어라며 길게 한숨을 내쉬는 동료의 모습을 보며 위로를 해야하는지 어째야 하는지 약간 난처했던 기억이 난다.


'부동산'은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다. 가령 삼성이 무너지면 한국 경제가 위험하다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도 갤럭시의 매출이 저조하다고 해서 어떤 대책을 세우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정부가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시장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자유방임주의를 신봉하던 경제학자들 역시 부동산 경기 침체에 국가가 개입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스탈린 시대 소련 관료 못지않게 국가의 적극개입을 주장한다. 이 모순적인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사회에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대략 박정희 시대 강남 개발부터라고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뿌리가 깊다. 1937년 출판된 이태준의 소설 '복덕방'을 봐도 퇴락한 구한말 관료 출신 노인들이 귀동냥으로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가 낭패를 당하는 비극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듯 그 역사만 봐도 부동산 투기는 한국 경제의 기형성, 그 중심 중에 중심에 자리잡고 앉아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누군가가 특정 시기에 특정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재산이 몇 배, 심지어는 백 배 이상 불어난다는 것만큼 이상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이상스러운 일은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려도 재산이 늘어나기는커녕 현상유지에도 급급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니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 경제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는 좌파 성향의 경제학자들 역시 자본의 행태에 대해서는 대단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만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부동산 문제가 마치 공기처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으로 인식된 탓은 아닐까.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미 한 세기도 훨씬 전에 토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헨리 조지라는 경제학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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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조지는 1839년 미국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평범한 빈곤층 자제였다. 공교육 경력으로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으며 사환, 선원, 인쇄공, 출판사원 등을 전전한, 오늘날로 말하자면 닥치는 대로 비정규직 일을 마다하지 않고 선택한 청년 시절을 보낸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독학으로 경제학을 익혀 걸출한 자신만의 이론을 세웠다. 아마도 밑바닥 인생으로 고생하는 동안 왜 나는 이토록 열심히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고, 부모 잘 만난 것들은 뭐 열심히 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계속해서 그들의 재산은 불어만 갈까라는, 수천 년의 수수께끼를 직면한 탓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나름대로 수수께끼를 풀었다라는 자신감으로 써내려간 '진보와 빈곤'의 원고를 손에 들고 출판사를 찾았지만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았다. 결국에는 자비 출판을 택하게 되었는데, 출판사 편집자들의 선입견과는 다르게, 이, 우리나라로 치면, 경제학 비슷한 학위 하나 없는 야매 필자의 경제학 저서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의 대중적인 인기에 힘입어 헨리 조지는, 비록 낙선하기는 했지만 뉴욕 주 주지사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고, 심지어 톨스토이조차 그의 이론을 지지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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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의 원고를 퇴짜 놓았던 출판사 편집장들의 심정은 

박진영이 아이유, 구하라, EXID 하니를 번번이 퇴짜 놓고 

이제 와서 아쉬움에 군침 흘리는 상황의 그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헨리 조지는 생전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사망과 동시에 매우 빠르게 잊혀진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사람들에게 제발 그만하라는 무리들이 있는 것 처럼, 헨리 조지 역시 '그 놈 얘기 좀 그만하라'고 윽박지르는 세력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가 제기한 토지세에 대한 아이디어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는 조롱을 받고, 그에 대한 이미지는 풍차를 향해 진격하는 돈키호테처럼 왜곡되고 만다. 그리고 그에 대한 확인사살은 오늘날에도 진행 중이다.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경제 입문서 중 하나인 토드 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에는 경제학 발전에 영향을 끼친 여러 경제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이 소개되어 있다. 여기에 '당연히' 헨리 조지는 누락되어 있는데 -사실 이 책에 이름을 올린 경제학자보다는 언급되지 않는 경제학자가 몇만 배는 많을 것이다- 저자는 리카도를 소개하는 항목에서 느닷없이 헨리 조지를 거론하며 그의 지대론에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맨큐의 경제학'에도 헨리 조지의 토지세를 한 페이지 정도(책 전체의 분량은 천 페이지 넘으니 대략 0.1% 정도 할애한 셈이다.) 읽을 자료로 할애해 소개하고 비현실성을 지적한다.(내가 보기에는 두 책의 저자가 공통적으로 헨리 조지에 대해 수박 겉핥기 식의 이해를 하고 논리 전개를 해나간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들의 허점은 조금 뒤에서 언급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토록 세대를 이어가며 거듭되는 확인사살이야말로 헨리 조지의 사상이 사람들에게 불편한 어떤 것을 담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듯 하다.


사람들은 사회가 성장(편집자 주- 헨리 조지의 저서에서는 progress라고 표현한 모양이지만 이 글에 사용된 정치 성향을 나타내는 '진보'와 의미 구분을 위해 '성장'이란 단어로 대체하였습니다.)하면 빈곤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일찍이 귀태 박정희 선생 역시 우리나라가 소득 일만 불 시대가 되면 빈곤 문제는 사라질 것이라고 누누이 선전을 해온 바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했듯이 또한 헨리 조지가 관찰했듯이 사회가 성장해도 빈곤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헨리 조지에 따르면 차라리 성장이 덜 된 사회에서는 빈곤층이라 할지라도 그나마 열악한 일거리라도 찾을 수 있지만, 사회가 성장한 후에는 아예 근로에서 배제된 빈곤층이 대량으로 발생해버린다. 진보가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빈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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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해왔다. 오늘날 빈곤문제의 발생 원인에 대해 연구한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마르크스라 할 수 있다. 헨리 조지보다 적어도 한 세대 이전에 활동한 마르크스는 빈곤의 문제에 대해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헨리 조지는 마르크스의 해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자본가들은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는 사람이 아니고(그런 자본가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하다), 다들 경영이나 신제품에 대한 아이디어 개발, 또는 조직 관리를 통해 나름대로 자기 몫을 하는 사람들이다.(이를테면 스티브 잡스를 단지 자본가라는 이유만으로 폄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쁜 놈의 대명사처럼 인식된 빌 게이츠 역시 그냥 놀고먹는 놈은 아니다.) 더구나 자본가 계급이 빈부격차를 불러일으킨 최초의 인간들도 아니다. 자본가 계급이 없었던 시절에는 빈부격차가 없었던가?


헨리 조지는 시대를 관통하는 빈부격차의 원인에는 '토지의 사적 소유'가 가장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마르크스가 자본가의 착취가 빈곤의 원인이라고 주장한 것은 대개의 경우 돈이 많은 자본가들이 토지를 많이 소유한 땅부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간과한 착시라고 생각했다. 회사의 경영자로서의 자본가는 분명히 사회 진보에 나름 한 몫을 하는 사람이지만, 토지 소유자로서의 개인은 사회의 진보를 역행하는 존재이다. 다만 사회적으로 대개의 경우 한 사람이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데, 마르크스는 이것을 구별하지 못했고 긍정적인 자본가의 역할마저 매도하기에 이르렀다라는 것이 헨리 조지의 생각이었다. (아마도 이런 주장 때문에 헨리 조지의 연구를 진보성향 학자들마저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지대(토지 임대료)에 대해 처음으로 체계적인 이론적 접근을 시도한 사람은 고전파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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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대가 발생하는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규모가 작은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굳이 황무지를 개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가장 비옥한 땅을 골라 경작하게 된다. 이때의 생산량을 100이라 가정하자. 사회의 규모가 커지면 경작량을 늘려야하는 압박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전에 황무지로 방치하던 땅을 경작하게 되고 이 땅에서는 90의 생산량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가장 비옥한 땅을 경작하고 싶어하고 이 수요가 지대를 발생시킨다. 비옥한 땅을 소유한 사람은 자신의 땅을 일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최대 10에 해당하는 지대를 받을 수 있다. 사회 규모가 더 커지면 이번에는 생산량 80을 얻을 수 있는 3등급에 해당하는 토지를 경작하게 되고 여기서 다시 한 번 지대가 발생한다. 1등급 토지는 생산량 20에 해당하는 지대를 받을 수 있고, 이제까지 지대를 받지 못하던 2등급 토지 역시 10에 해당하는 지대를 받게 된다. 


이런 식의 연쇄적인 진행이 지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리카도의 분석이고, 지대 발생에 대해 오늘날에도 수긍할만한 견해를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헨리 조지는 기본적으로 지대가 발생하는 원리에 대해서는 리카도의 이론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의 분석은 보다 구체적이고, 리카도는 제기하지 않았던 지대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를테면 리카도가 토지의 비옥도가 지대를 발생시키는 원인이라고 한 것에 대해 헨리 조지는 아무리 비옥한 땅이라 할지라도 거주자가 한 사람 뿐이라면 그의 삶은 로빈슨 크루소나 다를 것 없이 비참할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는 자신의 필요를 위한 모든 것을 오로지 스스로의 노동으로 얻어야만 한다. 이를테면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직접 사냥을 해야 하고 고기를 손질해야 하며 땔감을 구해야 하고 직접 조리해야 한다. 토지의 비옥도는 이 사람의 삶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이 지역에 또 다른 사람이 거주하게 되면 두 사람은 각자 역할 분담을 할 수 있게 되고, 처음 거주자는 약간의 여유를 얻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 지역에 계속해서 인구가 유입되면 각자의 역할 분담을 통해서 사회가 형성되고 인프라가 구축된다. 그래서 이 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소문이 나게 되면 곳곳에서 이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오게 되고 도시가 형성이 된다.(아마도 이런 분석은 서부개척 시대를 경험한 미국 태생의 헨리 조지가 경험적으로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시점이 되면 도시는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살기 좋은 이 지역에서 살려는 사람들이 계속 유입된다면 이때부터 지대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 헨리 조지의 분석이다.


여기서 헨리 조지는 한 가지 중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회가 발전할수록 구성원들은 삶의 다양한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고, 그것은 누구 한 사람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구성원들 전체의 노력과 기여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지대가 발생하면 어째서 토지 소유자들은 단순히 토지를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구성원들 모두가 이루어놓은 성과를 독점하는가.


헨리 조지의 문제의식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무한도전에 출연해 유명해진 인디 밴드 '장미 여관'의 리더 육중완이 어떤 예능에서 홍대 앞에 사느냐는 질문을 받자 손사래를 쳤다. 홍대 앞의 땅값이 워낙 비싸서 인디 뮤지션들은 감히 홍대 인근에 살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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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앞, 고대 앞처럼 평범한 일반명사에 불과한 '홍대 앞'이라는 단어를 고유명사로 바꿔놓은 사람들은 일찍부터 그곳을 무대로 자신들의 개성을 발산해온 인디 뮤지션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홍대 앞이 인디 뮤직의 메카로 이름을 떨치면서 인근의 땅값은 폭등하고 돈 없는 뮤지션과 소규모 기획사는 정작 자신들이 일궈놓은 터전에서 쫓겨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홍대 앞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영화 '국제시장'에 '꽃분이네'라는 매장이 출연해 유명세를 타자 건물주는 권리금을 올려달라는 요구를 했고 꽃분이네 주인은 가게를 내주어야 할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사회적 이슈가 되어 폐업의 위기를 넘기기는 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런 땅부자들의 횡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재능있고 부지런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어떤 지역이 명소가 되면 지역의 부동산 소유주들은 월세를 올려 정작 그곳을 명소로 만들어낸 사람들을 쫓아버린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사회는 활력을 잃게 된다. 헨리 조지는 바로 이것이 성장한사회에 빈곤이 만연하는 근본 원인이라 지적한다.


헨리 조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문제제기를 바탕으로 토지세라고 하는 매우 독특한 아이디어를 해결책으로 내놓는다. 그의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어느 지역의 지대가 상승해서 부동산 소유자들이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역 공동체 모두의 노력을 일부가 독점하는 불로소득이다. 따라서 지대 인상분 전체를 세금으로 거둬들인다. 헨리 조지는 부동산 소유자들의 지대 인상분만 모두 세금으로 거둬도 나머지 국민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될만큼 충분한 재원이 확보될 것이라 주장했다.


당연하겠지만 헨리 조지의 아이디어는 부동산 소유자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경제학자들은 그의 토지세 개념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가령 맨큐의 경제학에는 헨리 조지의 개념이 실현 불가능이라는 점만 지적하고 있지만, 모든 새로운 개념은 처음에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지대 인상분을 계산해서 세금으로 거둬들인다는 개념이 이상적이라면, 그것을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어내는 것은 경제학자와 정치인들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그 발상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인 것이다.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핑계일 뿐, 주류 경제학은 토지 소유자들에게 부담이 되는 조세정책을 만들어내고 싶지 않았던 것 아닐까? 이를테면 참여정부에서 실시된 종합부동산세는 헨리 조지의 토지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케일 작게도 전봇대를 뽑고 마늘값이나 걱정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종부세를 무력화했다. 결국 의지의 문제이지 현실성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나마 맨큐의 비판은 양반이다. 주류 경제학이 헨리 조지에게 돈키호테라는 낙인을 씌우기 위해 노력하는 행태는 토드 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에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의 '단일세 운동'은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 경제학자들은 리카도가 논의했던 '경제 지대'와 소작인들이 지주에게 지불하는 단순 지대를 구분했다. 리카도에 따르면, 경제 지대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토지 또는 노동 또는 자본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초과해서 지불하는 비용을 말한다. 리카도의 분석에서 토지는 곡식을 생산하는 데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농지로 유지하기 위해 다른 비용은 전혀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토지 소유자들은 그것을 곡식을 생산하는 데만 사용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지주에게 지불되는 비용은 모두 경제 지대이다. 미국의 유명 프로야구 선수였던 윌리 메이스는 자신이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공짜로 경기를 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는 했다. 만일 정말로 그가 그랬다면, 그가 받은 연봉은 모두 경제 지대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연봉을 받지 않고도 경기에 나설 수 있는데 연봉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배우 역시 경제 지대를 받는다.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액션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이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은 배우로 계속 연기를 할지, 아니면 벌이는 적지만 씀씀이 또한 적은 재봉사로 전향할지 결정을 못하고 계속 망설이고 있다고 가정하자. 스탤론은 자신이 여러 편의 영화에서 액션 배우로 인기를 끈만큼 편당 출연료로 3만 달러 이상을 받지 못하면, 미련 없이 할리우드를 떠나 지금까지 남들에게 숨겨왔던 재주를 발휘해 재봉사를 나설 참으로 마음을 다 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뜻하지 않게 그의 전작들을 3차원 영상으로 재구성한 패러디 영화 '록키 대 람보'에 1인 2역으로 출연하는 조건으로 무려 500만 달러의 출연료를 제안받았다. 우리는 이미 그가 영화 편당 3만 달러에도 출연할 용의가 있다는 속내를 알고 있다. 그런데 500만 달러라니! 그는 당장 계약서를 쓰자고 성화를 부릴 것이다. 이때 우리는 그가 마음에 두고 있던 3만 달러를 '이전 수입'이라 하고, 나머지 497만 달러는 경제 지대라고 할 수 있다. 토지에 대한 단일세 운동을 전개했던 헨리 조지는 아마 이 경제 지대를 모두 세금으로 거둬들여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대목을 읽을 때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가 몇 번을 다시 읽었던 기억이 난다. 토드 부크홀츠는 헨리 조지가 말하지도 않은 '경제 지대'라는 개념을 가지고 엉뚱한 논지를 전개하며 눈속임을 하고 있다. 논리학에서 말하는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의 전형적인 예로, 가히 논리학 교과서에 사례로 등재해도 될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헨리 조지는 부크홀츠가 횡설수설한 경제 지대는 애초에 입에 담지도 않았고 그의 관심사는 오직 문자 그대로의 지대에 집중되어 있었다. 야구 선수의 연봉이나 영화 배우 출연료 같은 것은 조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더구나 스탤론의 예시 역시 헨리 조지의 주장을 공격하기에는 허점이 많다. 3만 달러에도 계약할 준비가 되어 있는 스탤론이 500만 달러 받은 것은 아마도 배우로서 그의 가치가 재조명된 탓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스탤론의 과거 노력 덕분이다. 더구나 500만 달러라는 거액을 받더라도 그것은 스탤론이 새 영화에서 직접 연기를 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사례금으로서 불로소득을 설명하는 사례로 적절치 않다. 만약 스탤론의 기획사에서 500만 달러를 챙기고 그에게는 3만 달러만 떼어줬다면 그것은 불로소득의 사례로서 적합할 것이다. 헨리 조지 역시 기획사의 과도한 착취는 비난했겠지만, 스탤론의 출연료를 세금으로 거둘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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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Thumbs&Ammo


보다시피 주류 경제학은 헨리 조지의 아이디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조롱하기와 망각하기 수법으로 상대해왔다. 물론 헨리 조지의 아이디어에 빈틈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지대 인상분만 세금으로 징수해도 국가재원 모두를 충당할 수 있다는 그의 예측에 대해서는 지대 인상폭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또한 방법론에 있어서 지대의 인상분을 모두 세금으로 징수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들이 헨리 조지의 토지세 아이디어를 묻을 만큼 강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의 진보를 이루어낸 사상과 발명품 가운데 처음 발표되는 시점에 이미 완성품의 형태를 갖추었던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 유용함을 제공하는 사상이나 발명품들은 현실에 구현되는 순간부터 처음에 생각하지 못했던 오류와 난점들이 발견되기 마련이고,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면서 진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헨리 조지의 사상이 다소 비현실적이고 엉뚱해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사상을 폄하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헨리 조지는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지 사유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대안으로 토지세라는 제도를 고안해냈다. 만약 오늘날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현실에 부합하도록 개선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진보와 빈곤에 관한 헨리 조지의 처절한 외침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어떤 사람은 증기를 잘 이용하면 인간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전기를 이용하여 지구 곳곳에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비결을 내면의 귀로 듣게 되었다. 모든 방면에서 물질의 법칙이 드러났다. 모든 산업에서 무쇠로 된 팔과 강철로 된 손가락이 생겨서 자연의 증식력이 증가한 것과 같은 효과를 부의 생산에 미쳤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토지 소유자가 모든 이익을 취했을 뿐이다. 우리 세기의 놀라운 발견과 발명은 임금을 올려 주지도 않았고 힘든 일을 덜어 주지도 않았다. 단지 소수를 부유하게 하였고 다수를 무력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도비공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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