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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28. 화요일

이즈딴지






이 글은 일요일에 글입니다.

 





나는 가만히 있지만, 시간은 가고 그러다 보면 일요일이 되기도 한다.


저번 주 일요일 아침.


지난 밤, 잠에 고약하게 취한 탓에 눈은 못 뜨고 귀부터 열렸다. 성당 일정 때문에 많이 바쁘신 어머니는 늙어서까지 못난 아들놈 아침밥까지 차리시느라 번거롭고 바쁘셨다. 허무하게 지나간 수백 수십 번째 토요일을 익숙하게 아쉬워하며 무기력하게 이불 안에서 잠시 부스럭거렸다. 입 냄새가 아주 최악이 아닌 걸 보면 용케 양치는 하고 침대에 누웠었나 보다.


마음 편하게 누워있을 수만은 없어 일어나 세수를 하고, 붕 뜬 머리 대충 수습했다. 물 한잔 마시고, 담배나 하나 피면 좋겠는데 아침 식사를 마다할 순 없었다. 아침 식사를 최대한 맛있게 먹고, 어머니 심부름에 나섰다. 성당 행사가 동네의 한 중학교에서 열리는데 그곳까지 차로 데려다 달라는 부탁이었다.


차를 가지고 와서 어머니를 모셨고, 가는 길에 어머니 친구 분도 태워야 했다. 그런데 약속한 골목에 도착했는데 친구 분이 보이지 않았다. 이분은 핸드폰을 가지고 계시지 않아 예상 경로를 따라 차를 몰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만날 수 없었다. 기다리기 따분하셨는지 마음에 드는 골목길로 걸어가신 것이었다. 그분을 태웠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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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많은 아들과 그의 늙은 어머니가 한 공간에 있는 건 그리 안전하지 않다. 나이 많은 아들이 미혼이라면, 애인도 없다면 더욱. 너 결혼할 생각 없는 것이냐, 선은 도대체 왜 안 보겠다는 것이냐, 친구 손자들은 중학생도 있다 하시며 아들에 대한 원망과 본인의 슬픔을 절묘하게 조합하시어 방어할 수 없는 치명타를 끊임없이 꽂아 넣으신다. 나는 침만 꿀꺽꿀꺽 삼킬 뿐. 나이 많은 아들인 게 가장 먼저 죄송하고, 그 다음 슬프고, 점점 답답해지고, 슬슬 짜증이 나려다가 어머니 얼굴을 보면 또 가슴이 아프고. 또 침만 꿀꺽꿀꺽 삼킨다. 10km도 되지 않는 그곳은 왜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냐.


그날, 어머니의 공격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거기서 그쳤다면 아주 효과적인 공격이었을 것이다.


너 혹시 말 못할, 그러니까 이루어질 못할 상대와, 그러니까 유부녀를 만난다거나, 혹은 동성과 관계를 갖는 건 아니냐 하시며 나이 많은 아들을 어디 선자리라도 뻥 차 보내려 하셨지만, 어이없게도 이 철없고 염치없는 나이 많은 아들은, 꼼짝도 못 하고 앉은 자리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우리 불쌍한 어머니 또한 막내 따라 역시 빵 터지고 말았다. 의도치 않게 어머니의 공격은 훈훈하게 끝나고 말았다. 실패한 어머니의 다음 레파토리가 어떨지 걱정된다. 기대도 조금...


물론 웃으며 끝이 났지만 그렇다고 내상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어머니를 내려드리며 행사 끝날 때쯤에 비 올 것 같으니 꼭 전화하시라고 말하곤,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짧았던 길을 따라 집으로 왔다.


방안에 들어선 후 다시 누울까 하다 청소기를 집어 들었다. 먼지를 빨아들이고, 걸레질을 했다.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의 먼지도 열심히 닦아냈다. 물 한 잔 마시고 설거지를 했다. 행주도 깨끗하게 빨아놓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커피를 한잔 달게 타 놓고, 신선한 유기농 담뱃잎으로 담배를 하나 말았다. 그럭저럭 일요일 아침이다. 커피를 들고 담배를 입에 물고 나오자 비가 꽤 굵게 내리고 있다. 기대만큼 담배 맛이 좋지는 않았다.


잠시 후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벗어놓은 옷가지를 역순으로 입은 후, 차를 붕붕 몰아 도착하니 어머니와 친구 분들이 계셨다.


“다섯 명 탄다. 가능하지?”


어이쿠, 그럼요. 어머니는 조수석에, 어머니 친구 분들은 뒷좌석에 비좁게 엇갈려 앉으시고 어렵사리 차 문을 닫았다. 차 문이 모두 다 닫혔는지 두세 번 확인했다. 차 안은 금세 습기가 꽉 차 올랐고,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이날만큼 페달과 핸들을 조심스럽게 다룬 적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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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르르’, 만화라면 차 지나간 자리에 효과음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조신하게 차를 몰았다. 반갑지 않은 신호에 걸릴 때면 모든 승객이 관성을 못 느끼게끔 ‘스르르르’ 하며 멈췄다. 운전이 이렇게 힘든 것이었나.


결린 목과 어깨의 긴장을 풀어보려 으쓱으쓱 하는데, 머리가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상황을 모델링 하고 함수를 세운 뒤, 계산을 위한 방정식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기 전 모든 변수의 값을 추정하고, 다음 신호등 앞에 ‘스르르르’ 하며 멈출 때쯤 결과가 나왔다.


420, 단위는 year(s). 물론 나까지.


98년 식 중고차에 420 years가 비좁게 들어가 있었다. 아침부터 드는 슬픔과 원망에 어찌 대처해야 할 줄 몰라 청소와 설거지 등 집안일로 머리를 비우다 나왔는데, ‘420’이라는 숫자를 만나자 좀 더 깊고 무거운 곳으로 내려앉은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어머니와 친구 분들의 대화와 독백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친구 분들께서는 나에게 과한 고마움을 표하시며, 이 짧은 거리에 마땅한 대중교통이 없음을 탓하시고, 뭐랄까 좀 재미있어하셨다. 대화에 참여 안 하시던 어머니께서 내게 명령하셨다.


“저기 예전 동사무소 있는 데서 올라가자.”


옙. 아, 저 어머니, 많이는 아니지만 돌아가는 길인 데다가, 꽤 가파르고 긴 언덕이 있고, 바로 좁은 두 갈래 골목을 만나는데, 그 안에 알뜰하게 주차된 차가 있어 쉽지 않은 구간이지만, 밝게 웃으며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난 직진을 했다.


자. 이제 찻길 코스는 끝이 나고 곧 언덕 앞이다. 휴. 420 years. 손안에 땀이 배어 나오는 걸 느끼며 힘차게 1단으로 내리고 엑셀을 밟았다.


“아이고, 여기를 차 타고 넘어가는 건 처음이네.”


뒷좌석 가장 불편하게 앉으셔서 조수석 머리 부분을 붙잡고 계시던 어머니 친구 분께서 말씀하시자 깔깔깔깔 웃음이 터졌다. 나 역시 처음이라며 맞장구 치시는 분의 말씀이 웃음소리에 약간 묻혔다. 아이고, 이렇게 일요일 잘 보냈다고 좋아하신다.


뒤꿈치를 바닥에 꾹 대고 발가락 끝까지 힘을 모아 액셀을 끝까지 눌렀다. ‘우웅’ 하며 차는 내게 왜 이러냐며 성질을 냈고, 난 무시한 채 제발 이 언덕이 끝날 때까지 맞은편에서 차가 나타나지 않길 바랐다. 우우웅. 어머니와 친구 분들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는 언덕을 다 넘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안전하게 언덕을 벗어났고, 두 갈래 골목을 마주했다.


“위에 있는 골목으로 가자”


넵. 정확하게 차량 1대의 통과만을 허락하는, 주차된 차 옆의 옆구리를 씰룩쌜룩 빠져나갔다. 이 골목에 사시는 두 분을 내려드렸다. 안녕히 가세요. 아유 고맙네, 고마워. 차 문이 닫혔는지 확인하고, 어머니 친구 분들께서 차에서 안전하게 거리를 두셨는지 확인하고 스르르 골목길을 요리저리 다니면서 모든 분을 댁에 모셔다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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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도 집 앞에 내려드리고 드디어 나 혼자 된 차 안에서 휴, 가볍게 페달을 밟으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일요일의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밥 먹고 낮잠 자고, 저녁 먹고 또 자고... 그렇게 그 하루 역시 기억나지 않는 수백 수십 번째 일요일 위로 조용히 떨어져 가지런히 쌓였다. 그리고 그렇게 또 며칠이 흘렀다.



가만히 있다 보면 시간이 가고 요일이 바뀐다. 그러다 보면 목요일이 되기도 한다.


지난주 일요일 지나 이번 주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 종일.


여느 목요일 점심 식사 후,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다음날인 금요일에 휴가를 냈다. 계획이 없었으니 사유가 있을 리 있나. 대충 쭈뼛거리며 결재를 받았다. 자리에 돌아와 내 기분이 좋아지는지를 천천히 가늠해 보았다. 해방감도, 설렘도 없었다. 그렇게 퇴근을 하고, 잠을 자고, 금요일 아침, 일어나 출근하는 것처럼 집을 나섰다.


뭐하지?


딱히 고민할 것도 없었다. 일단 영화나 보자. 정말 십 년이 넘도록 조조 영화를 본적이 없었다. 자세히 따지고 들면 십오 년도 넘을 것 같아 징그럽다 싶어 머리를 흔들어 숫자 계산을 지우고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검색했다. 다행히 보고 싶던 영화가 오전 9시 20분쯤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 근처의 영화관이었다. 이래저래 잘 되었다 싶었다. 그리고 정말 간만에 지옥철을 탔다.


학교 앞 역에 도착하자 반항하듯 승객을 태우기만 하던 지하철은 드디어 그들을 내려놓았다. 나를 포함해서. 학생들로 보이는 승객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 극장으로 갔다. 밖으로 나오자 보이는 곳 마다 금연 표시다. 짜증났다. 햇빛 좋은 곳에서 아침 바람맞으며 담배 피울 곳이 점점 사라진다.


시원한 생수를 마시며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봤다. 마지막 부분에서 머리가 퐁퐁퐁 터지는 장면에서 유일하게 시원하고 통쾌한 웃음이 터졌다. 영화가 끝나자 어떤 느낌도 들지 않았다. 무탈하게 시간을 보냈다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지 하며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나와 담배를 하나 피웠다.

 

유난히 불편한 구두를 신은 채로 담배를 피고 느긋하게 10분 정도 걸어 대학교로 들어갔다. 자유롭게 걷고 있는데, 해방감 보다는 난데없는 초조함에, 곧 초라함으로 바뀔 초조함에 주눅이 들어버렸다. 처음 2시간 동안은 껌껌한 극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이런 나를 잡아 준건 담배냄새였다.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하얀 A4 한 뭉치를 진지하게 읽으며 입에 물린 담배를 맛있게 피우며 날리던. 그제야 좀 마음이 편해졌다.


무엇인가에 주눅이 들어버린 나이 먹은 아저씨가 학생들 틈에 껴서 담배를 하나 피웠다.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러자 배가 고팠다. 학생식당으로 가볼까.


많이 바뀌었다. 식권 파는 곳도 여러 곳이고, 식당 위치나 개수도 전과 같지 않고. 잠시 학생들이 어떻게 사서 먹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따라 했다. 물론 메뉴는 나름 소신 있게 정했고, 맛있게 잘 먹었다. 식권을 엉뚱한 곳에 낸 것만 빼고는. 다행히 식권에 맞는 음식을 내주었다. 다음 번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돈까스를 썰고, 한 점 먹으려는데 스마트폰 알림이 윙 했다. 월급이 들어왔다는 알람이었다. 첫 번째 돈까스 조각을 입안에 넣고 씹으며, 지금 내 기분을 가늠해 보았다. 단순하고 싶었던 하루가 복잡해진 것 같아 불쾌했지만, 돈이 들어온 것이니, 참 마음이 복잡했다.


억지로 느긋하게 점심을 마치고, 여유로운 식당에서 잠시 은행 업무를 봤다. 스마트폰으로 여기저기 입금을 하고, 가계부 어플로 정리를 하고, 잔액을 한번 확인하고, 스마트폰을 껐다. 뭐가 이렇게 번거로운지. 숨이 찰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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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한잔 뽑아 주변에 사람이 없는 자리를 골라 앉고 담배를 하나 피웠다. 이상하게 바람만 빨리는 것 같고 맛이 없었다. 머리도 좀 아픈 것 같고. 자, 이제 뭐할까. 구두가 발을 꽉 쥐는 것 같다. 피곤하다. 구두를 벗고 벤치에 다리를 올렸다. 야호! 나도 이제 아저씨 다됐다. 하루가 정말 짧다. 벌써 오후 2시다. 그렇게 잠시 앉아 있다가 불편한 구두에 발을 쑤셔 넣고, 또 다른 영화를 예매했다.


그렇게 나의 휴가 하루가 끝났다. 이날을 기억할까? 얼마나 기억할까? 갑자기 휴가를 하루 내서, 하필이면 불편한 구두를 신고, 비좁은 지하철을 타고, 조조 영화를 보고, 대학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담배를 피웠던 하루. 담배 연기로 나의 주눅을 풀어주었던 고마운 여대생의 담배 연기가 있었던 하루.



그리고 그렇게 또 며칠이 흘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다.


올해 들어 기억에 남는 하루와 또 다른 하루가 있어 일기를 써봤다. 하지만 또 며칠이 흐르면 저 밑에 깔린 수많은 날 중의 하나로, 기억도 나지 않을 그 날들을 말이다. 이러느라 오늘, 이 일요일도 거의 다 가버렸다. 항상 배고파하는 저주에 걸려 계속 무엇이든지 먹어야 하듯 내가 처한, 다시 쓰면 내가 선택한, 현실의 의미 없음을 탓하다 지겨워, 다 포기하고 떠날까 하는, 막상 하지도 않을 결정을 호기로운 척 상상하다가 멍해지는 이 반복을 좀 끊어보려고, 지난 며칠에 대한 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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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들, 수십 년을 이 동네에서만 살아오면서 집 앞 언덕을 처음으로 차로 올라오신 분, 평생 전화라곤 집 전화 외에는 가져본 적이 없으신 분, 비 오는 오전의 짧은 드라이브가 기억에 남을 재미있는 일이신 분.


나는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 분들에 비하면 젊어 힘이 더 세고, 일을 할 수 있어 더 많이 가졌고, 더 오래 살 수 있다. 굳이 나를 이 사회라는 말판에 놓아야 한다면 강한 다수 쪽에 세우는 것이 맞겠다.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정작 나는 어떤가.


이 사회를 살면서 나는 위선적 회피 기술과 가식적 대응 없이는 수분도 견디기 힘들다. 지난주 일요일에 잠시 모셨던 분들의 삶을 어디 작은 곳에라도 담아둘 여유조차 없다. 작은 공간이라도 보이면 코를 들이밀고 제발 숨 쉴 수 있기를 바라며 호흡을 시도하지만 숨 쉴 그 무엇은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난 특별히 운이 좋은 편도 아니고, 능력도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내 안에 남아있는 소중한 호흡만 낭비한 셈인 것이다. 조용히 숙이고, 피하고, 남을 어딘가로 밀어 넣으며 숨 쉬고 살아남을 뿐이니까. 나는 왜 자유의지로 매번 자신을 억압하고, 속박하는 선택만을 하는가. 아니라면 나 역시 밀침을 당하고 있는 건가.


어머니 또래 분들과 굳이 비교하자면 나는 강자다. 하지만 나 역시 다른 부분에서는 약자다. 우리 모두가 약자인 부분이 있다. 열심히 가리고는 있지만. 내가 도울 수 있을 때 돕고, 내가 약할 때 편안하게 쉬면서 기운을 차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하루와 그런 하루를 억지로 모아봤지만, 조화롭지 않고, 다 엉망이다. 제대로 돕지 못했고, 편안하게 쉬지도 못했으니까.


약점이 노출되는 순간 삶은 고달파지기 시작한다. 돈이나 직장이 없거나, 장애가 있거나, 성적 소수자거나, 소속된 단체에서 정치적으로 밀렸거나, 여자이거나, 담배를 피운다던가, 못생겼거나, 나이가 많거나, 뭐 엄청나게 많다. 이 많은 게 다 약점이 되기도 한다. 발을 미친 듯이 쥐어짜는 구두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 신고 다니는 나처럼, 결국 자신의 삶을 옥죈다는 걸 모르는 건지 무시하는 건지, 자신과 다른 것을 약점이라 보고 지적하고 아프게 쓰러질 때까지 찌른다.


그렇다고 무작정 약자를 위로하고 걱정하기만 한다거나, 나는 괜찮다고 안심할 일 또한 아니다. 나도, 너도, 지금 어딘가 확실하게 존재하는 특정한 곳에서는 최전방을 지키고 있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조금 붕 떠서 이야기하자면 모두 지금 누군가에게서 멀리 떨어진 얇은 보호막이라는 말이다. 다만, 아직 다른 다수가 나와 너를 보지 못했고, 나와 너를 지적하지 않고 괴롭히지 않았을 뿐이다.


‘다름’의 소재는 많지 않다. ‘너’의 다름이 지적당하고 쓰러지면, 그 다음은 바로 ‘나’다. 최전방의 누군가가 최고의 전사이자 전략가이고, 나에게로 연결된 길이 험난하고 곳곳에 복병과 장애물이 배치되어 있고, 나는 튼튼한 성안에 안전하게 있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길을 넓고 곧게 뚫려있으며, 신호등이 있지만 지키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누가 보면 쑥스러울까 봐 세워둔 것 신호등일 뿐이고 그 길 끝에서 난 노숙 중이거든.


제발 내가 지키는 곳에는 오지 말기를 바라며 빈손으로 초소를 지키고 있는 심정이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구석에 고개를 처박아 봐도 다들 너무 비슷해 숨이 턱턱 막힌다. 각자 자신의 삶 속에서 솔직한 선의로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타인과 지금보다 조금 멀리 떨어져 그들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면,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 같은데. 평범한 한 명이 위헌적 상황을 지적하면, 수천의 공권력이 스스로 멈춘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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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건을 양쪽에서 잡고 당기면 언젠가는 끊어진다. 어디가 끊어질까? 내가 사는 이 사회를 누군가 무엇으로 잡고 힘을 준다면, 어느 부분이 가장 먼저 끊어질까.


가장 약한 부분이 가장 먼저 끊어진다. 그때 나는 어디에 있을까.








이즈딴지

트위터 : @ezzztwit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